13화
―내가 이리 물러갈 성싶으냐!!
“좀 꺼져주겠니? 빨리 장사하러 가야 되거든.”
용사의 말에 나는 그대로 마왕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마신 새끼를 끄집어내었다.
우웅, 울리는 진동이 붙잡힌 마신 새끼가 뭐라 외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알 바 아니다.
【멸(滅)】
마신 새끼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자 풍선이 터지듯이 터져버리는 것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동시에 성문도 닫히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부서진 신전의 모습이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길드장.”
바닥에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밟으며 용사님께서 다가오셨다.
“괜히 붙은 칭호는 아니었구나?”
“네 말대로 접신한 거라서.”
“쉽게 처리한 거다?”
“이게 쉽게 처리한 걸로 보여?”
치유의 권능을 용사에게 사용해 주고는 정신을 잃은 마왕 새끼를 발로 가볍게 찼다.
“아오, 이 새끼를 진짜.”
“근데 길드장.”
“……?”
왜 자꾸 부르나 했더니 용사의 손에 들려있는 새끼 케로베로스가 보였다.
“얘는 또 뭐니?”
“…….”
축 늘어진 모습에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아, 맞다.
* * *
다행히도 의뢰는 무사히 끝냈다.
비록 사탄보다 위대하신 지옥의 군주님께서 우리 강아지 왜 이렇게 볼품없어졌냐고 날뛰었지만 말이다.
컴플레인은 이세계로 사라지신 마신 놈에게 걸라지. 이쪽 세계로 현신한 건 아주 일부의 힘이었을 테니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닐 거다.
마신 새끼가 지껄여 대던 말로 보면, 마왕은 데키온에서 그놈에게 붙잡혀 있었던 거 같은데…….
“마왕에게 물어봐야 하나.”
애초에 이세계의 신이 어떻게 차원을 찢고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소멸된 것도 아니라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만약 ‘일부’의 힘이 아니라 ‘완전’한 힘을 가지고 마왕의 몸에 다시 현신하면.
“아…….”
생각만으로도 골 때린다.
어쨌든 이번 의뢰가 끝나면서 신살자와 검성은 다시 봉인됐고 성녀의 봉인은 완전히 풀렸다.
힘에 제약이 가해지기 무섭게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성녀의 힘 덕분에 곧장 피로가 풀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힘 덕분에 집까지 기어 들어오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침대 위로 풀썩 몸을 눕히며 두 눈을 끔뻑였다. 오빠와 도하인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Pr. 용사| : 무사히 들어갔니?
|Pr. 신살자(길드장)| : 덕분에
|Pr. 신살자(길드장)| : ㄱㅅㄱㅅ
두 발로 뛰어오신 줄 알았던 용사님께서는 자차를 끌고 오셨던 거였다.
나는 장사하러 가야 된다는 용사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겨우 차를 얻어 탔고 안전하게 귀가했다.
마왕님을 챙길 여력 따윈 없었다.
“마훈아!!”
그의 형이 잘 챙겨 갔으리라 믿는다.
피가 묻고 해진 옷들은 용사님께 부탁했다. 집에서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오빠나 도하인한테 들켰다가는 그날로 죽음이었다.
특히 도하인한테.
[하인] : 자냐.
도하인, 얘는 진짜 양반은 못 될 놈이네.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하인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기 무섭게 도하인이 전화를 받았다.
―뭐야?
“올 때 술 좀 사 와.”
―술?
술이 굉장히 고픈 밤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모를 동생 새끼는 간단히 대답해 주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개소리 말고 자. 형이랑 나는 오늘 늦는다.
뚝, 끊긴 전화에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크흡.
이렇게 된 거 올림푸스산 포도주나 마셔야겠다.
* * *
“도하운!!”
허억, 망할 하인 새끼.
나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는 비척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도하운! 어디 있어!!”
정확히는 침대 밑의 구석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올림푸스산 포도주가 담겨있던 빈 병을 침대 아래로 밀어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방에 있었지.”
“도하운!!”
얇은 커튼이 쳐진 밖은 아직 어두웠다. 시계를 보니 ‘4’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망할 하인 새끼… 오늘 얼마나 피곤했는데.”
“정신 나간 도믿맨을 만난 게 그렇게나 피곤했냐?”
“…….”
맞다. 그랬지, 참.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는 빌어먹을 속세에 한탄했다.
“그렇게 피곤해?”
“그래! 피곤해! 엄청 피곤하다고!! 이 야밤에 왜 깨운 거야, 망할 하인 새끼야!!”
성녀의 권능, ‘치유’는 육체적인 피로에만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상당히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란 말이었다.
도하인이 뺨을 긁적거리며 내 시선을 피한다.
“…서.”
“뭐?”
“네가 안 보여서!!”
그 말에 나는 맘스터치를 시전했다.
“악!!”
신벌 안 맞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동생 새끼야. 동생 놈이 등짝을 만지며 펄쩍 뛴다.
“성질머리하고는! 내가 불 켜고 자지 말라고 했지? 그보다 어디서 자고 있었던 거야!!”
“침대 아래서. 자기가 못 봐놓고는 왜 성질이야.”
가운뎃손가락을 날려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도하인이 구시렁대며 뒤따라 들어왔다.
“오빠는?”
“길드에. 나도 다시 나가봐야 해. 옷 좀 가지고 가려고 잠깐 들른 거야.”
“그럼 가지고 가.”
크게 하품을 한 뒤 이불을 뒤집어썼다.
“근데 옷이 안 보여.”
“무슨 옷.”
눈 좀 붙이려는데 망할 놈이 시끄럽게 쫑알거린다.
“네가 선물로 줬다가 도로 가져간 거. 그거 내 방에 다시 가져다 놓지 않았어? 그거 좀 가지고 가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
허업.
숨을 들이켜 마시며 두 눈을 데굴 굴렸다. 마왕님 도우러 나갈 때 입고 나갔던 겉옷이 떠올랐다.
“그, 그 옷은 갑자기 왜?”
“내 옷 내가 가지고 가겠다는데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야?”
나는 도하인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마음에 안 든다면서 안 입는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안 입는다고 했어? 나한테 좀 작을 거 같다고만 했거든? 어쨌든 그거 어디 갔어? 내가 입는다고 방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잖아. 아직도 안 가져다 놨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하인이 찾고 있는 옷은 내가 선물로 사다준 후드 집업이었다.
동묘 시장에서 친구, 서하랑 술 한잔하고 5만 원 주고 샀던 싸구려 후드 집업.
그걸 왜 지금 찾는 거니, 동생아?
어쩌지? 지금 그 옷은 아마 용사님네 쓰레기통에 있거나 재가 되어 사라졌을 건데.
“세탁기에 넣었어?”
“응? 으, 응.”
“아직 안 돌렸지? 들고 간다.”
“잠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도하인을 멈춰 세웠다. 도하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잠깐은 무슨 잠깐이야? 피곤하다며? 불 꺼줄 테니까 잠이나 자.”
“하인아, 빈말로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동생님아.”
“노망났냐?”
노망……. 님이랑 나랑 동갑인데요.
억울하다는 듯이 도하인을 쳐다봤다. 도하인은 정말 내가 노망이라도 난 것 같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것도 동생이라고.
도하인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팔짱을 꼈다.
“왜 불렀는데?”
“그… 네 옷 있잖아.”
“세탁기에 넣었다며.”
과거의 나, 죽어라!!
머리를 굴러 변명거리를 생각해 봤다. 나올 답은 하나뿐이었다.
“잃어버렸어.”
“뭐?”
일단 거짓을 섞어 진실을 말해주자. 동생아, 네 옷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단다.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카, 카페에서.”
“카페에서 그걸 잃어버렸다고? 어쩌다?”
“화장실 간 사이에 누가 들고 갔어.”
“……?”
도하인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다.
5만 원 주고 산 그 후드 집업은 사실 1만 원도 아까울 후드 집업이라는 것을.
거스름돈을 주겠다는 아저씨에게 술에 취해 ‘우리 집 부자예요’를 시전하며 호기롭게 들고 왔었다는 것을.
“그걸 누가 들고 가?”
아무도 들고 가지 않을 옷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되는대로 지껄여 보기로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CCTV 돌려보려고 했는데 사각이라서 못 본다고 했다고.”
“언제 잃어버렸는데?”
“좀 됐어.”
도하인이 짜증스레 머리를 헤집는다.
“아, 진짜.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너는 그걸…….”
“새로 하나 사다 줄게.”
“됐거든!!”
도하인이 쨍하니 말하고서는 방을 나간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나간 줄 알았던 도하인이 다시 들어왔다.
“그럼 그날, 외투 하나도 없이 돌아온 거야?”
“그…렇지?”
“야!! 나나 형을 불렀어야지! 아니면 은율 형이라도 부르든가!! 아오! 저 미련 곰탱이!!”
쾅, 하고 닫히는 문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성질 더러운 놈.
* * *
“그래서 난데없이 동묘 시장 나들이야?”
“응.”
나는 입을 가리며 크게 하품했다. 찰칵, 거리는 소리에 눈가를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배서하, 사진 지워.”
“노옵. 얼굴 가리고 인별에 올릴 거야! 태그해 줄까?”
“필요 없어.”
나와 도하인의 초중고 동창인 ‘배서하’는 우리 둘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도중에 자퇴해 버려 같이 졸업은 못 했다.
졸업식에도 못 갔었지.
꽃다발 하나 사다 주지 못한 게 생각나서 나는 괜히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우리 운이~! 언니가 따라가 준다고 맛있는 거 사주는 거야?”
“안 사줄래.”
“인이한테 말해야겠다. 네 누나가 네 옷 사러 나왔다고.”
“야!!”
배서하가 이래도 안 사줄 거냐고 씨익 웃음을 보인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어젯밤 마왕 놈이, 정확히는 마신 새끼가 부린 소란은 독기 유출이니 뭐니 연구소에서 일어난 사고로 처리가 돼있었다. 초록 창에 뜬 뉴스에 두 눈을 비볐었더랬지.
마왕 놈이 어떻게 됐는지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디서도 우 모 씨에 대한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