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겨우 집어삼켰다.
“신살자님께서는… 도대체…….”
“…….”
이건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이 답도 없는 상황에 한숨을 토해냈다.
“그냥 천사 할게요. 네, 저는 천사예요. 그보다 이 상황에서 죄송하지만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네? 아, 네. 뭐든 편하게 물어봐 주십시오.”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무엇이든 답해주겠다는 대답에 나는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저와 마왕 새, 크흠. 동생분이 귀환자인 걸 믿으시나요?”
“믿습니다.”
지체 없이 돌아온 대답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우마한이 설명을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적합자가 아닌 사람, 그러니까 비각성자는 ‘STATUS’라 불리는 것이 없습니다. 흔히들 상태 창이라 부르는데 저는 이를 볼 수 있는 각성자입니다.”
우마한의 눈은 절대 피할 수 없다며, 그래서 재수 없다고 도하인이 구시렁대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제 눈에 신살자님은 상태 창을 파악할 수 없다고 뜹니다. 이건 동생 녀석도 마찬가지로, 비각성자라는 말입니다.”
우마한의 눈은 과연 정확했다. 다만 중요한 한 가지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HIDDEN STATUS】
오직 귀환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 우마한은 이건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동생 녀석이 하늘을 날아다니지를 않나, 공중에 물건을 띄우지를 않나. 그리고…….”
우마한이 말을 멈추고는 작게 덧붙였다.
“자신이 마왕이었다면서 중2병에 걸린 것처럼 굴지 않나.”
“…….”
마왕 새끼, 정말 숨김없이 그대로 모든 것을 내보였었구나.
“어쨌든 저는 동생이 하는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저 모양 저 꼴이지만요.”
“내가 뭐 어쨌다고 그러느냐.”
“그 말투! 그 행동거지!!”
우마한이 빽 소리 지르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길드, ‘귀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적습니다. 길드장님께서는 ‘신살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길드원으로는 9서클 대마법사님과 북부 대공님, 용사님, 드래곤 슬레이어님, 정령사님, 무림 제일고수님이 있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
“아, 모두 귀환자라는 것까지 해서요. 이것밖에 모릅니다.”
많이 알고 계시는데요.
모르는 사이에 신상이 털린 기분이 이런 건가.
대뜸 콘셉트질에 찌들었다느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한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마왕 새끼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손가락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은 덤이었다.
내 너를 기필코 죽이리라.
마왕은 새끼 케로베로스를 부둥거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저러다 개새끼한테 물리고 말 거다.
“물렸느니.”
진짜 물렸냐!!
정말 가지가지 한다.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며 마왕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 했다.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경고를 보냅니다.]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막는 것에 실패했다면서 미안함을 표합니다.]
“마훈아?”
아들의 손을 잡고 마왕에게 다가가려는 우마한을 막았다.
“신살자님?”
그를 살짝 밀쳐내며 나는 굳은 얼굴로 마왕을 쳐다봤다.
[성소(聖所), <염화 지옥>이 권좌를 위협하는 이세계 신의 등장에 들끓습니다!]
[성소(聖所), <올림푸스>가 차원을 찢고 나온 이세계 신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성소(聖所), <아스가르드>가 차원을 찢고 나온 이세계 신의 등장에 요동칩니다!]
…“마한 씨.”
걱정스레 쳐다보는 얼굴에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사슬을 움직였다.
[‘데키온’의 마신, ‘■■■’가 이 세계에 현신합니다!]
“최대한 멀리 도망치세요.”
그래, 길드원이 끼어있는데 어째 의뢰가 수월하게 끝난다 했지.
2. 산 넘어 산
[속보] 서울 〇〇 신축 공사장 독기 누출… 접근 불가
던전 생성으로 인한 현상인지, 근처 연구소에서 일어난 사고인지 현재 파악은 되지 않고 있으나…….
머리카락을 짧게 친 여자는 눈썹 언저리를 긁적이고는 카운터를 벗어났다.
“유대공, 가게 좀 봐주렴.”
“네?”
“가게 좀 봐달라고 말했단다.”
“사장님, 어디 나가세요?”
“응.”
테이블을 닦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반장갑을 손에 끼우며 중얼거렸다.
“마왕 좀 잡고 올 거란다.”
“……?”
오늘 처음 들어온 알바생에게 가게를 맡기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마왕을 잡으러 가는 게 더 급한 일이었다.
[‘용사’는 의무를 다하셔야 합니다.]
정신 사나워서, 원.
* * *
“콜록……!”
미친, 더럽게 아파.
기침을 한 번 토해낼 때마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현신한다는 메시지가 사라지기 무섭게 공격이라니, 피할 새도 없었다.
애초에 피할 생각도 없었지마는.
애기 아버님께서는 애기 데리고 잘 피했겠지. 그런다고 맞은 공격인데 무사히 도망쳤으면 좋겠다.
동생 새끼가 가족을 공격하려고 했다면서 충격을 먹은 건 아닐까 몰라.
―숨이붙어있다니, 인간치고는 대단한 녀석이구나.
울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칭호, ‘성녀(聖女)’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온몸에 감각이 없어진다 싶었더니, 꽤 큰 부상을 입었던 모양이다.
봉인되어 있던 ‘성녀’의 칭호가 이렇게 풀릴 줄이야.
[권능, ‘치유’가 활성화됩니다.]
통증이 가시는 걸 느끼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권능, ‘정화’가 활성화됩니다.]
숨을 답답하게 막던 독한 공기도 쾌적하게 뒤바뀌었다.
―호오, 재미있도다. 네 녀석, 성녀였느냐?
“왜, 성녀 처음 봐?”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 몸을 잡으러 왔던 녀석들 중에는 ‘성녀’도 있었느니.
“…….”
마왕의 말투가 어디서 왔는지 알겠다. 마신 새끼한테 배워먹은 거였나 보구나.
데키온에서 마왕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 못지않게 참 고단하게 살았을 거 같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쿠웅―
짓누르는 중력에 마왕이, 아니, 마왕의 몸을 뒤집어쓴 마신이 비틀거린다.
―큭… 이 몸이 이까짓 힘에 굴복할 성싶으냐.
한 손을 들어 올려 왼쪽 눈을 가리는 모습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왼눈에 흑염룡이라도 봉인되어 있는 건가.
―내 이 몸을 다시 차지하기를! 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몰라, 시발아.”
―……!!
뭐, 성녀가 욕한 거 처음 보냐.
충격을 먹은 얼굴에서 언뜻 마왕의 얼굴이 보인 것 같다. 마왕의 얼굴이니까 마왕의 얼굴이 보인 게 당연하겠지.
어쨌든 나는 나를 묶고 있는 사슬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할 짓 없이 남의 세계에서 깽판이야?”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신살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그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남의 애완동물한테 의탁하고 있었냐고 성질을 냅니다.]
설마 새끼 케로베로스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마왕 놈이 강아지가 자신의 힘을 먹어버린다니 어쩐다니 하더니 그런 거였어?
나는 질색하는 얼굴로 쯧쯧, 혀를 찼다.
“진짜 할 짓 없는 신인가 보네.”
―불경한 놈 같으니라고!! 이 몸은 위대한 데키온의 어둠을 다스리는 자! 네 녀석 따윈 단번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도다!
“안물안궁.”
콰직―!
발끝에 닿고 있던 땅의 일부가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입술을 살짝 벌리며 경악했다. 마신은 다른 의미로 놀란 듯 입술을 벌리고 있었다.
―분명 목을 노렸거늘!!
성난 듯이 토해내는 목소리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마신이랑 정답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지.
그대로 땅을 박차며 손을 들었다.
“지금 별님들이 나한테 무슨 의뢰를 보내고 있는지 알아?”
단번에 한 손으로 마신의, 아니, 마신이 뒤집어쓰고 있는 마왕의 얼굴을 잡으며 나는 비딱하게 미소 지었다.
“마왕을 죽여 너를 쫓아내 달래.”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마왕 새끼의 잘못은 내 혈압을 올린 죄밖에 없는걸.
무엇보다 사탄보다 대단하신 지옥의 군주님께서 맡기신 의뢰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맡은 의뢰부터 끝내야 하지 않겠어?
[권능, ‘신벌’이 활성화됩니다.]
마신 놈을 땅에 처박기 무섭게 푸른 전격이 요란하게 튀기 시작했다.
―크학……!!
현신했다고는 해도 데키온의 마신께서는 자신의 몸이 아닌 마왕의 몸을 빌려 현신한 거다.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힘은 한정적일 거다.
그렇다고 해도 신벌이 통할 줄은 몰랐는데.
―성질 더러운 성녀 놈이!!
사슬을 움직여 마신을 옥죄려 할 때 검은 기운이 날 선 창처럼 들이닥쳤다.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마신에게서 벗어났다.
뺨을 스친 것에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닦아내기 무섭게 멈췄지마는.
―네까짓 게 나를 방해할 수 있을 성싶으냐!
“잘만 방해하고 있는데.”
쿠르릉, 하늘이 울리더니 곳곳에 벼락이 내려쳤다.
미, 미친 새끼.
[성좌, ‘이 구역의 난봉꾼’이 자신의 힘을 침범하는 것에 불같이 화를 냅니다!]
어르신,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요. 시야 방해 오지니까 의뢰 좀 작작 보내세요.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마신을 노려봤다.
마신 새끼는 이제 성역에 익숙해졌는지 잘만 몸을 가누고 있다. 여기서 더 힘을 가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마왕의 몸이…….
“…….”
그만 상상하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붉은 딸기 잼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는데 무언가가 사슬에 가로막혔다.
쨍하고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사슬에 가로막힌 건 금이 쩍 갈라져 있는 해골이었다.
―하하! 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마!
“……!!”
텅 빈 눈동자가 화르륵 타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커다란 불꽃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