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황급히 몸을 틀었다.
뭐야, 뭔데. 마왕님아 왜 여기 계세요?
|마왕| : 신살자는 좋은 녀석이었느니.
안 죽었어! 네 옆에 잘 살아있으니까 이상한 곳으로 보내지 마!!
저 긴 머리칼을 모근까지 뽑아버릴까 하는데 똑똑,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헐, 종놈이다.”
도하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리가 들렸던 쪽을 노려본다.
종놈.
그 이름은 대중에게 불리고 있는 도하인의 별명이었다. 도하인의 팬클럽은 그를 머슴으로 부른다고 들었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며 투덜거렸다.
“선글라스라도 끼고 오지.”
“이 좋은 날에 내가 왜.”
“왜기는 왜야. 사람들 시선 몰리는 거 안 느껴져?”
도하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그대로 일어나려던 나는 어정쩡하게 서고는 도하인에게 물었다.
“뭐 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이긴. 이거 안 보여? 커피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앉았지.”
“길드 일은 어쩌고? 하운 지금 안 바빠?”
“바쁘지. 바쁜데…….”
도하인이 진동 벨을 가지고 장난치더니 말을 흐린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도하운.”
“응?”
“…아니다, 말을 말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말하려면 똑바로 말해.”
“너 어젯밤에 어디 있었어.”
내 입이 방정이지.
나는 마음속으로 내 입을 찰싹 때리고는 방긋 웃음을 보였다.
어젯밤이라면 아웃브레이커 던전을 신나게 공략하고 있었지.
물론 이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방에 있었지.”
“서하랑 술 마시러 나간다고 했었잖아.”
“네가 기절하듯이 잠들어 버려서 그냥 안 나갔어. 아픈 애를 두고 나가는 게 양심에 찔리더라고.”
“양심은 무슨.”
툴툴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도하인의 말이 맞다. 내 양심에는 털이 난 지 오래다.
도하인이 손에 쥐고 있던 진동 벨이 웅웅 울린다.
“커피 가지고 올게.”
“올 때 쿠키 좀 사 와.”
“쿠키는 왜?”
“커피가 너무 써서.”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는 왜 자꾸 마시는 거야!!”
도하인은 빽 소리 지르고는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거참, 성질 더럽기는.
“누나.”
“……?”
나? 나를 부르는 소린가? 이, 일단 무시다.
“그대를 부르고 있느니라.”
“쿨럭!!”
황급히 아메리카노를 마셨다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나는 기침을 토해내고는 입가를 가리며 마왕의 조카님을 쳐다봤다.
“으응, 나? 나 불렀어?”
“녜.”
“애기가 나는 왜 불렀을까……?”
“제가 아는 천사 누나 달마서 불러써요!”
“…….”
아이의 눈은 속일 수 없다더니.
아니지, 이 경우에는 속였는데 상황이 애매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조카님, 이 여인이 조카님께서 그렇게 불러대던 천사님을 닮았다는 말인 게냐.”
“웅!”
마왕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천사님은 저렇게 안 생겼느니.”
뭐, 저런.
울컥하고 이름 모를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도 마왕의 모근을 뽑으러 가기 전에 도하인이 돌아왔다.
“도하운, 뭐 해?”
“응? 어… 애기가 말 걸어서.”
“애기?”
도하인이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옆 테이블을 흘긋거린다.
“안녕하세요.”
“어어, 안녕.”
꼬마가 참 인사성도 밝다. 도하인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내게 소곤거렸다.
“아는 애야?”
“아니, 모르는 애.”
단호히 대답하고는 옆자리에서 시선을 완전히 돌렸다.
나는 도하인이 사 들고 온 쿠키를 베어 물며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수신자는.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
|Pr. 마왕| : ?
|Pr. 마왕| : 신살자, 살아있었느냐?
“…….”
네 옆자리에서 쿠키 먹으면서 아주 잘 살아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애기랑 자리 좀 비켜. 신경 쓰여서 제대로 뭘 못 먹겠네.
마왕의 조카님께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이러다 체할 거 같다.
내 메시지를 읽은 게 분명한데 마왕한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내볼까 할 때 톡톡,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에 고개를 돌리자…….
“네 녀석 신살자인 게냐?!!”
미친.
툭, 물고 있던 쿠키가 입에서 떨어졌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찌 알아보지 못했을꼬! 그보다 신살자, 네 녀석은 왜 그리 작으냐? 그리 작은 몸으로 신을 죽였다는 게냐?”
“…….”
아니, 시간은 멈춰야 한다.
내 앞에 앉아있는 도하인이 마왕 새끼를 미친놈처럼 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Pr. 신살자(길드장)| : 미친놈아!! 왜! 알은척을 하는 건데!! 왜!!!
“신살자야.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데 왜 메시지를 보내는 게냐?”
“…….”
마왕님! 눈치 챙겨!!
당장 저 긴 머리칼의 모근을 뽑아버리며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다행히도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삼쵼. 천사 누나 달믄 누나랑 아는 사이에요?”
“이 녀석은 천사 닮은 누나가 아니니라.”
“그럼?”
“신살자이니라.”
구원 투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마왕 새끼한테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도하운.”
“으응?!”
“아는 사람이야?”
“아니!!”
“아는 사람 맞느니.”
곱게 들려오는 미성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마왕아, 너란 새끼한테 눈치란 것은 제거되어 있니?
도하인이 마왕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옆에 있는 사람은 너랑 안다는데?”
“진짜 모르는 사람이야!”
“진짜 아는 사람 맞느니.”
마왕 새끼야!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냐?! 왜 이러는 거야, 왜!!
나는 울상을 지으며 도하인에게 속닥거렸다.
“진짜진짜 모르는 사람이야. 도믿맨인데 미쳐버린 거 같아.”
“!!”
그걸 또 마왕 새끼가 들었나 보다.
뭐, 인마. 상처받은 얼굴로 그렇게 쳐다보면 어쩌라고.
도하인이 내 말에 수긍한다는 얼굴로 마왕을 노려본다. 허튼짓하면 곧장 제압할 모양새였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 여기서 벗어나자.
|Pr. 북부대공| : 끝!! 끄으으읕!!! 님 때문에 종묘 투어 하고 왔자나여!!!
타이밍 좋게 북부 대공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설움에 복받친 목소리도 들려온다.
“신살자야! 어찌 내게 그리 말할 수 있는 게냐!! 미쳐버린 도믿맨이라니!! 나는 마왕이니라!!!”
미친 새끼.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며 대공에게 답장을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37°540', 127°070'
|Pr. 북부대공| : ?
|Pr. 북부대공| : 뭐에여??
|Pr. 신살자(길드장)| : 잠깐 와봐.
|Pr. 북부대공| : 저 한국 지리 9등급이라니까여;;
|Pr. 신살자(길드장)| : 텔레포트해서 오면 되잖아!
5서클 마법사면 텔레포트는 식은 죽 먹기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역시나 금방 메시지가 도착했다.
|Pr. 북부대공| : 왔는데여? 님 ㅇㄷ?
|Pr. 신살자(길드장)| : 2층.
옆에서 시끄럽게 우는 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하인이 마왕을 흘긋거리고는 나랑 같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계단을 올라오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가 나를 보고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열려고 한다.
|Pr. 신살자(길드장)| : 내 앞에 있는 사람, 하운의 2인자님이시다.
북부 대공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대공의 시선을 도하인도 느꼈나 보다.
“도하운, 저 사람이랑은 또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냐니?”
“당장이라도 널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나는 도하인이 대공에게 시선이 팔린 사이 마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이랑 놀아.
“대공이라면 북부 대공 말이냐?”
하… 시발.
치밀어 오르는 욕을 애써 삼키고는 도하인의 팔을 꼭 끌어당겼다.
“빨리 가자.”
“신살자야! 어디를 가는 게냐!! 북부 대공은 또 어디 있다는 것이고!”
마왕의 말에 나를 노려보고 있던 대공이 화들짝 놀란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케이크를 우물거리고 있던 마왕의 조카님께서 내게 인사한다.
“천사 달믄 누나 가요?”
“네에, 가요.”
“안녕히 가세요.”
“응, 너도 참 수고가 많다.”
꼬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나는 그런 꼬마에게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대공의 옆을 지나가며 입을 벙긋거렸다.
수고해.
대공이 경악스레 나를 본다.
미안하다, 대공아. 나는 너를 소환하고 턴을 종료하겠다.
|Pr. 신살자(길드장)| : 북부 대공은 계단 앞에 있습니다, 마왕님.
“네 녀석이 북부 대공인 게냐?!”
“!!”
쨍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도하인이 걸음을 멈추고 위를 쳐다본다. 나는 도하인의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신살자니 뭐니 그런 말이 미쳐버린 도믿맨의 신종 수법인가 봐.”
“애기까지 데리고?”
“사이비가 뭔들 못하겠어.”
“세상 말세네.”
도하인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Pr. 북부대공| : 님!!
|Pr. 북부대공| : 님1!!!
|Pr. 북부대공| : 마왕님 왜 이래ㅐ여?
|Pr. 북부대공| : 왜 자꾸 북부를 붙이는 거야1!!!!
|Pr. 북부대공| : 저보고 왜 흑발인 건 가튼데 제주산 멸치처럼 말랐냐는데여어11!!!!!
|Pr. 북부대공| : 니임!! 이 사람 이상해애!!!
나는 대공의 메시지를 외면하며 도하인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