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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7화 (7/168)

7화

대공 새끼가 오빠를 등지고 주저앉아서는 실드를 펼치고 있었다. 왜 저러고 있나 했더니 검게 그을린 바닥이 보였다.

나름대로 검을 던져 신벌의 영역을 지정한 건데, 지정한 영역에서 공격 범위가 좀 더 넘어가 버렸나 보다.

나는 바닥에 꽂혀버린 검을 주워 들었다.

[B급 성물, ‘오래된 검’이 내구성 한계로 파괴됩니다.]

“아.”

B급이래도 성물이라서 어느 정도 버티겠거니 했는데 무리였던 모양이다.

파스스, 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검에 나는 혀를 찼다.

무기는 의뢰 보상으로 떨어지기 쉽지도 않은데, 언제 또 이런 걸 받는담.

뭐, 그래도 던전은 공략했으니까.

【00:02:11】

넉넉하게 남은 시간에 괜히 뿌듯해졌다.

그나저나 별님께서는 바쁜 모양이다. 의뢰를 완료했는데도 보상을 안 주네.

시간이 늦어져도 보상은 어떻게든 들어오니까 나는 우선 던전부터 빠져나가기로 했다.

“대공, 그 사람 좀 챙겨줘. 곧 던전 무너진―!!”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두 눈을 한 번 깜빡이기 무섭게 뒤통수를 강타하는 통증이 밀려왔다.

“악!!”

나는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몸을 굴렀다. 던전을 빠져나오는 그 짧은 순간에 권능에 제한이 가해졌나 보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 나는 바로 대공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대공 새끼야! 제발 안전 운전 좀 해달라고!!”

“죄, 죄송! 근데 그대로 있었으면 꼼짝없이 들켰을걸요?”

“뭘 들켰…….”

헉, 미친. 저 개미 떼처럼 모인 사람들은 뭐야.

“오빠는?”

“여기요. 근데 이분이랑 친남매세요? 더럽게 안 닮았는데요? 이분한테 유전자 몰빵됐는데?”

“닥치고.”

“넵.”

나는 오빠를 살피며 울상을 지었다.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는 얼굴은 많이 상해있었다.

망할 새대가리. 곱게 안 보내줄 걸 그랬다.

그렇게 오빠를 살피고 있는데 대공 새끼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저는 이마안― 악!!”

나는 대공 새끼의 발목을 붙잡아 그대로 넘어뜨리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어딜 가려고.”

“왜요! 다 끝났잖아요!!”

다 끝났기는 무슨. 이제 시작인데.

대공 새끼가 던전을 빠져나오면서 이동한 곳은 불 꺼진 단독 주택의 지붕 위였다.

권능이 제한된 몸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어진다. 내게 지붕 아래로 뛰어내려 안전하게 귀가할 재주 따윈 없다.

그리고 오빠는 또 어떻게 하고.

“던전 공략된 거 아니야?”

“공략된 거 맞는데…….”

“근데 공략자는 어디 있어?”

여기서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오빠를 개미 떼처럼 모인 사람들 앞에 (몰래) 놓아주고 가기.

효과는 오빠가 던전을 공략하고 나왔다면서 매스컴을 타게 되는 거다. 영웅 이미지는 덤.

두 번째는 그냥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를 시전하며 오빠랑 집으로 돌아가기.

효과는 오빠가 청년 치매를 의심하며 병원을 다닐 수도 있다는 거다.

“…….”

나는 고민하다가 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대공.”

“싫어요. 안 할 거예요.”

뚱한 얼굴로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두드리고는 녹음했던 것을 틀었다.

―그대,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 거야?

“…….”

대공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 그거.”

나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대가 그리 구슬피 우니 내 어찌하면 좋을지…….

“으아아악!!”

대공이 달려든다. 나는 몸을 틀며 대공 새끼를 피했다. 지붕과 입을 맞춘 대공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울먹거린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길드장이란 사람이 길드원의 흑역사를 그렇게 저장해도 되는 거냐고요!!”

“응, 돼.”

우리 길드원은 돼. 무조건 돼.

대공 새끼, 그대니 뭐니 그렇게 말하는 거 억지로 하는 거라고 했지?

흑역사라고 말하는 거 보니까 자기도 부끄러운 거 아나 보다. 마왕처럼 부끄러움 따위 없는 지독한 콘셉트충이면 어떻게 하나 했다.

|마왕| : 서울의 밤이 어찌 이리 요란스러운지 내 모르겠느니.

뉴스 봐, 뉴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화면을 두드렸다.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대공아, 말 듣자?”

대공 새끼가 굴욕감 짙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 *

오빠는 아웃브레이커 던전을 단신으로 공략한 ‘영웅’이 되었다.

[단독] 하운의 길마, ‘도하준’… S급 아웃브레이커 던전 단신으로 공략!

도하준 단신으로 S급 던전 공략 가능함?

└ㅇㅇ가능함

└하운 피셜로는 공략자 2명 더 있다는데;

하운 피셜 나왔다~ 도하준이 아니라 신원 미상의 남녀 페어가 공략한 거란다 얘들아~~

└그 피셜 나도 좀 보자

└222

└hawon.com/main.html

└ㅁㅊ; 수배 때렸네;;

약간의 문제는 생겼지만 말이다.

|Pr. 북부대공| : 길마님

|Pr. 북부대공| : 님

|Pr. 북부대공| : 님아ㅏ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공의 개인 메시지를 무시했다.

―길마님아!!

“흐악!”

무시의 대가는 가혹했다.

고막을 때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넘어졌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에게로 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

무시하세요, 무시해.

“의, 의자가 부실하네…….”

멋쩍게 의자를 바로 하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Pr. 신살자(길드장)| : 진언ㅅㅂ아!!

|Pr. 북부대공| : 어떻게 할 거에여! 어떻게 할 거냐고여ㅕ!!

|Pr. 북부대공| : 그 사람 하운 길마라고 왜 말 안 해줘써여!!

|Pr. 북부대공| : 나의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이 파괴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여!!

별 쓸데없는 걸 걱정한다. 변장 때문에 우리를 알아볼 가능성은 1퍼센트도 없는데 말이다.

아, 변장은 나한테만 해당 사항이 있나? 대공은 의뢰를 안 받았었으니까……. 어쨌든 그때 ‘오빠’라고 부른 게 걸리지만 괜찮겠지.

오빠는 아웃브레이커 던전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짬을 내 집에 들렀었다.

“하운아, 괜찮아?”

“으응, 괜찮은데? 오빠는?”

“오빠도 괜찮아.”

그렇게 짧은 대화를 끝마치고는 도하인을 데리고 곧장 길드로 돌아가 버렸다. 대공 새끼가 집에 데려다주자마자 도하인이 깨어난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다.

|Pr. 북부대공| : 어떻게 할 거냐고요오!!!

|Pr. 신살자(길드장)| : 안락하고 평화롭게 하운에 소속되면 되겠네. 길드 탈퇴해.

|Pr. 북부대공| : 그걸 말이라고ㅗㅗㅗㅗ!!!

대공 새끼가 분노의 엿을 날린다. 나는 비웃음을 날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역시 인생은 쓴맛이다.

길드를 탈퇴한다라.

그건 대공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단 대공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9서클대마법사| : 회사 폭파시켜 줄 사럼~

길드 채팅에서 한가로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법사 놈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고, 나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니까, 귀환의 모두에게 말이다.

참고로 가입은 강제다.

차원을 이동했다가 지구로 귀환한 순간 귀환자들은 이 길드에 소속된다.

3년 전에 ‘드래곤슬레이어’라는 녀석이 물음표 하나만을 던지며 들어오고 나서는 신입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있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국적이 한국이라는 것뿐. 연령도 성별도 모두 다르다.

아, 공통점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성좌, ‘유교의 패륜아’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하나같이 노답이라는 거다. 여기서 나는 제외한다.

의뢰가 들어오기 무섭게 개인 메시지도 길드 메시지도 모두 조용해졌다.

나는 반쯤 남은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테이크아웃하기에도, 버리고 가기에도 애매한 양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셔야지!!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

|Pr. 신살자(길드장)| : 메시지 보는 거 알거든?

|Pr. 신살자(길드장)| : 야

|Pr. 신살자(길드장)| : ㅑ

무시한다 이거지?

나는 대공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그만두고 길드 메시지로 시선을 돌렸다.

|신살자(길드장)| : 사랑하는 길드원 여러분~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낮술하심?

|신살자(길드장)| : ㄷㅊ

내 언제인가 법사 새끼의 흑역사도 꼭 저장하고 말리라, 굳게 다짐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이 시대의 진정한 차도남!!

|신살자(길드장)| : 북부 대공님의 간드러지는 플러팅 들으실 분~

|북부대공| : 흐어어어걱

|북부대공| : 스타ㅂ

|북부대공| : 님니니ㅁ 자까만 스타ㅂ1!!

역시나 북부 대공님께서 곧장 등장해 주셨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켜 마시며 대공 새끼한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번 의뢰 네가 뛰어라^^

|Pr. 북부대공| : 아 진짜ㅏㅠㅠㅜㅠㅠㅠㅜㅠㅜㅠㅠ

|Pr. 신살자(길드장)| : 그대여, 왜 그리 구슬피 우는 건지―☆

허공에 떠있던 의뢰 메시지 창이 사라졌다.

[‘북부 대공’ 님께서 의뢰를 받으셨습니다.]

나타난 메시지 창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망할 새끼들, 너희 눈에는 맨날 신살자가 의뢰를 받았다는 메시지가 떴었겠지.

|9서클대마법사| : ???

|9서클대마법사| : 대공아?

|용사| : 길드장, 죽었니?

|드래곤슬레이어| : ?

|정령사| : 이 경우에는 길드장님이 아니라 대공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무림제일고수| : 왓더펔!

“…….”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던 길드원들이 사이좋게 나타났다.

“허허, 이거 개탄할 일이로다.”

“……?”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렸다.

비어있던 옆자리에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기른 남자가 앉아있었다.

“삼쵼, 개탄이 무슨 마리에요?”

“……!!”

그리고 그의 앞에 나에게 ‘천사’라는 칭호를 붙여줬던 꼬마도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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