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는 헛숨을 들이켜 마시며 두 눈을 끔뻑였다.
“흐…흐어억! 집에 갈래! 이게 뭐야! 엘리시온에도 저딴 건 없었는데!!”
“…….”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목 근육을 움직였다.
나보다 머리 한 뼘은 더 큰 남자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이…….”
대공 새끼였다.
“미친놈아!!”
망할 대공의 뒷덜미를 잡으며 버럭 소리 질렀다.
“잘난 마법 뒀다가 뭐 해!”
“도망치는 데 쓰고 있었죠!! 저거 터트렸다가 알 쏟아져 나오는 거 보고 토할 뻔했다고요!!”
“알……?”
“네!! 저기 봐요! 연가…….”
대공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오므린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게 심상치가 않다.
끼이이익.
성역은 악한 것을 정화시키는 구역이다. 말이 ‘정화’라는 거지. 사실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까 그 말은.
“시, 시발.”
“흐어억!!”
“태워! 태우라고!!”
짓눌리던 벌레가, 아니, 커다란 바퀴벌레가 으깨져 버렸다.
허공에 튀는 숙주의 몸집만큼이나 큰 커다란 바퀴벌레의 동그란 알에 대공이 날 선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는다.
콰―앙!!
치솟는 불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또 다른 권능의 효과로 얼굴의 화끈거림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나는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파티는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
* * *
“흠…….”
도하준은 달려들던 충왕종을 불태워 버리고는 턱을 쓸어내렸다.
아웃브레이커 던전이라니. 같이 휘말린 그분은 무사하려나. 그분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구하러 가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줄어드는 시간이 마음에 걸린다.
아웃브레이커 던전은 제한 시간 안에 공략하지 못하면 게이트가 열린다.
하필 S급 던전이라서 공략에 실패하면 못해도 3급 게이트가 주택가에서 열려버리고 말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더욱이 가까이에 안락한 가족의 보금자리도 있다.
휘말린 두 사람이 부디 자신과 같은 강한 각성자이기를 바라며 도하준은 걸음을 내디뎠다.
[규격 외의 존재들로 인해 난이도가 자동적으로 조절됩니다.]
노이즈가 낀 메시지에 도하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00:48:32】
동시에 허공에 떠있던 시간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00:08:32】
줄어든 시간에 도하준은 걸음을 박차며 내달렸다.
* * *
【00:07:49】
순식간에 줄어든 시간에 멍하니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보스 룸! 당장 그쪽으로!!”
“거기가 어딘데요?!”
그걸 알면 이러고 있지 않지!
40분 넘게 있던 시간이 10분 이내로 줄어들어 버렸다.
던전님, 이러기 있기? 없기?
―키에엑!
그 와중에 축축한 안개 속에서 바퀴벌레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바퀴벌레도 우는 생명체라는 걸 이렇게 알게 됐다.
잠깐만.
바퀴벌레, 바퀴벌레는 벌레. 벌레도 애완으로 키우는 사람이 많다지?
기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대공.”
“뭔지 모르겠지만 싫어요.”
대공의 칭호 중 하나가 테이머다. 자기 입으로 신물(神物)을 조련하겠다느니 뭐니 나불대기도 했고.
“너 몬스터도 조련할 수 있어?”
“어흑…….”
우는소리를 내는 걸 보니 조련할 수 있나 보다.
“바퀴벌레 가자.”
“뭘 가요! 못 해! 못 한다고요!!”
“못 해도 되게 해!!”
근성으로라도 되게 해라, 대공 새끼야. 애초에 네가 중력이니 뭐니 마법만 사용하지 않았어도 프란체스카는 진작 잡았을 텐데!!
나는 이를 으득 갈며 안개 속을 노려봤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보스(Boss)에게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는 존재들이다. 처리해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존재들이란 거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단번에 처리했겠지만.
“대공. 이 던전 제시간 안에 공략 못하면 게이트 터질 거야.”
나는 대공의 어깨를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없다고.”
“…길마님 혼자 보스 룸인지 뭔지 찾을 능력 충분히익! 악! 아파요!!”
나는 대공의 어깨를 꽉 쥐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신벌 맞고 싶지 않으면 그냥 좀 해라, 응?”
―끼에엑!
“히익!”
타이밍 좋게 안개 속에서 거대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대로 대공의 어깨를 밀쳐 바퀴벌레의 제물로 삼, 아니, 바퀴벌레를 조련하게 했다.
비틀거리며 벌레 앞에 선 대공이 희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린다.
바퀴벌레가 흥미롭다는 듯이 대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공이 훌쩍이는 소리를 한 번 내더니 벌벌 떨며 입을 연다.
“그, 그대… 나, 나에게 이, 이름을 알려주겠어?”
“그 망할 그대라는 소리는 꼭 해야 하는 거야?”
“누가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칭호 효과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서 억지로 말하는 것뿐이라고요!!”
“별 쓸데없는…….”
대공이 내 말을 끊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마치, 겨울의 성벽 위에 선 북부 대공님처럼 말이다.
“토마스가 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달래요.”
“…….”
뭐 저런 게 다 있지?
일단 대공의 말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커다란 바퀴벌레가 날개 비슷한 것을 쭉 펼치더니 퍼드득 떤다.
세상에.
바퀴벌레에 날개가 달려있다니. 외래종인가?
나는 말없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대공이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쳐다본다.
“길마님.”
“왜.”
“진짜 해야 해요……?”
“네, 진짜 해요. 그러니까 빨리 해.”
“끄흡, 흑.”
대공은 콧물 삼키는 소리를 내고는 커다란 바퀴벌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말이다.
“토마스, 내가 그대의 주인이 되는 걸 허락해 주겠어?”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바퀴벌레는 허락하노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대공의 손바닥 위로 가느다란, 하지만 결코 가늘지 않은 더듬이를 내렸다.
바퀴벌레가 다시 날개를 펼칠 때까지 대공은 미동도 없이 서있기만 했다.
* * *
쿠―웅!!
“……!”
잔해 속에 처박힌 도하준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쿨럭이며 피를 토해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보스 룸의 문을 연 것까지는 좋았다.
―그로아아악!!
문제는 예상보다 보스가 너무 강하다는 거였다.
던전의 등급, S급.
높은 난이도에 굳게 마음을 먹었기는 했지만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웃브레이커 던전을 단독으로 공략하는 건 처음이지만, S급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러 나선 건 처음이 아니니까.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 걸까.
화려하게 깃을 펼치고 있는 커다란 새는 도하준의 공격을 우습게 막아내고 있었다.
도하준이 비틀거리며 몸을 가눌 때. 돌연 아웃브레이커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프란체스카(S)’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후웅―
날카로운 발톱이 도하준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도하준이 황급히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 했으나 때는 늦은 것 같았다.
―빼앇!!
그러나 인간은 쉽게 죽지 않는다고, 절대 파괴될 리 없는 보스 룸의 벽이 파괴되면서 커다란 벌레가 튀어나왔다.
벌레는 곧장 새를 들이받았고.
“대공 이 미친 새끼야! 안전 운전 모르냐!!”
“토마스가 속도를 즐기는 게 좋다는데 어떻게 해요!!”
충돌로 인해 반쯤 파괴된 벌레의 머리 위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보스 몬스터에 부딪힌 충왕종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뜻밖의 상황에서 도하준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오빠!!”
“……!!”
익숙하게 들리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을 것이다.
* * *
망할! 오빠라고 부르면 어떡해!!
오빠는 지금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변장’의 효과가 적용 중일 테니 알아볼 리가 없다.
“하운이……?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알아봐서는 안 되는데.
“대공.”
“네?”
|Pr. 신살자(길드장)| : 저 사람 좀 기절시켜 줘.
대공이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메시지를 보내냐고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곧장 허공을 박찼다.
대공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몸을 틀며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었다.
빠악―!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경쾌하게 울리는 타격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공 새끼가 축 늘어진 오빠를 바닥에 눕히고 있었다.
“야! 사람을 그렇게 기절시키면 어떡해!!”
“이렇게 해야 나중에 안 깬단 말이에요!”
“…….”
대공 새끼는 나중에 꼭 족치자.
―빼아아아악!!
지금은 저 새대가리부터 족치고.
이를 악물며 들고 있던 검을 곧장 새대가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새대가리는 우습다는 듯이 이걸 피했지만 어차피 새대가리를 맞히려고 던진 게 아니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성역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로아아악!!
헤라의 귀한 공작새였던 프란체스카께서 성역의 범위 안에서 발버둥 친다. 나는 주먹을 쥐며 의뢰의 내용을 상기했다.
분명 고통 없이 처리하라고 했지.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고통 없이 갈지는 모르겠다.
나는 주먹 쥔 손을 그대로 프란체스카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았다.
빡―!!
경쾌한 타격음 소리와 함께 푸른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빼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프란체스카스는 푸른 전격에 구워졌다.
[성좌, ‘가정의 수호자’가 프란체스카를 부르며 오열합니다.]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간단하게 프란체스카에게 애도를 표했다. 쿠웅, 옆으로 쓰러진 커다란 조류에게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나는 가볍게 땅을 딛고 섰다.
|Pr. 북부대공| : 흐어어거걱1!
@|Pr. 북부대공| : 길마니마 미쳐ㅆ나요7!!
“말로 하면 될 것을 메시지는 왜 보내?”
“길마님아 미쳤나요!! 죽을 뻔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