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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5화 (5/168)

5화

우연찮게 동네를 지나가던 ‘테이머(Tamer)’가 공작새를 길들이려고 노력 중인 건가?

굳이? 저렇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공작새를 달래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HIDDEN STATUS OPEN】

[Main]: 북부 대공(Ex)

[Sub]: 엘리시온의 귀환자(Ex), 테이머(S), 5서클 마법사(A), 플러팅의 귀재(A)

“…….”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

나는 일단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녹음을 시작합니다.

헉.

황급히 폰을 감싸 쥐었다. 무음 모드로 안 해놨었나? 들킨 건 아니겠지?

―빼아아아악!!

들켰을 리가 없겠다.

“그대,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 거야?”

네 존재가 불만이 되려고 한다.

나는 심장 부근을 움켜쥐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공 새끼, 너 왜 그래! 채팅에서는 그런 이미지 아니었잖아!!

“그대가 그리 구슬피 우니 내 어찌하면 좋을지…….”

―빼아아아악!!

도대체 저게 어떻게 구슬피 우는 소리라는 거지?

감탄을 넘어서서 경악이 찾아왔다. 대공 새끼는 정말 슬프다는 듯이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도 매달고 있다.

와, 미친 새끼.

―빼악! 그로아아악!

“그래? 내 마음을 이제 알아주겠어, 그대?”

…너희 둘이서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그로악! 그르르라악!

“좋아, 내 기꺼이 그대를 내 주인으로 모시겠어.”

“뭔 개소리야?!”

“……!”

녹음을 종료한다는 경쾌한 울림이 들렸다.

나이스 타이밍.

대공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공작새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자세로 굳어버린 대공 새끼가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그…그대는……?”

“그대고 나발이고 대공 이 미친 새끼야!!”

일순 대공의 눈동자에 마법진과도 같은 것이 떠올랐다.

대공이 두 눈을 끔뻑이더니 빼액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했다. 저 손가락을 고이 접어버릴까 보다.

“님이 왜 여기 있어요?!!”

“의뢰 뛰러 왔지!!”

“의뢰? 무슨 의뢰?”

아오!! 저걸 진짜 어떻게 때려야 잘 때렸다고 소문나지?

공작새 붙잡고 그대니 뭐니 지랄할 때부터 의뢰는 안 봤겠다 싶었지만……!

―빼으아아악!!

“앗! 프란체스카!!”

“프란……! 미쳤냐!!”

“프란체스카가 이름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화려한 깃을 펼치고 있던 공작새가 돌연 날갯짓하며 하늘을 날아가 버렸다.

“잡아! 저거 무조건 잡아야 해!”

“안 그래도 잡을 거예요! 신물(神物)을 조련할 기회를 날려버릴 줄 알고?”

“조련?”

“잡으면 제 거 할 건데요.”

뚱한 얼굴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귀환의 ‘북부 대공’은 그대로 넘어져 버려.

“흐억!!”

길드원이란 새끼가 도움 줄 생각은 안 하고 트롤링할 생각을 하네.

다행히 프란체스카인지 뭔지 새님께서는 길바닥에 닿도록 낮게 나는 중이었다.

대공 새끼랑 부딪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1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나는 손을 뻗었다.

조금 흠집 나도 괜찮겠지.

그렇게 ‘나’를 묶고 있는 사슬을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중력(Lv. 57), 지정 대상 ‘신살자(神殺者)’]

[절대 권능, ‘법칙 위의 절대자’가 대상을 변경합니다.]

[지정 대상: ‘신살자(神殺者)’ ⇒ ‘프란체스카’]

―빼엓!

“……!!”

“프란체스카!!”

손끝에 닿기 직전이던 새대가리가 땅에 처박혔다.

세상에. 새대가리 이름이 진짜 프란체스카였어. 그보다 대공 이 새끼가 감히 나를 공격하려고 했단 말이지?

너를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면서 대공 새끼를 보는데 붉은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의뢰 실패!!】

“헉.”

망할! 1분이란 시간이 이렇게 짧았을 줄이야!!

“저기…….”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

※신살자(神殺者)의 혈족이 휘말릴 예정입니다.

내 혈족이라고 해봤자 도하인이랑 오빠가 전부다.

도하인은 한창 꿈나라에 빠져있을 테니 뒤에서 들리는 저 목소리의 주인은.

“혹시 이 공작새의 주인인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오빠, 왜 여기서 나타나는 거야! 야근한다면서! 손에 그 대파는 뭔데!!

―빼에에…….

“애가 기운이 많이 없어 보이네요? 근처 동물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나는 오빠의 품에 안겨서 가늘게 숨을 내뱉고 있는 공작새, 프란체스카를 쳐다봤다.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더니 눈이 번쩍 떠진다.

그와 동시에 주택가의 창문을 모조리 깨뜨려 버릴 만큼 거센 돌풍이 휘몰아쳤다.

황급히 팔을 들어 올리며 눈을 가렸다.

|신살자(길드장)| : 대공너이시바새키야111!!!

|북부대공| : 흐어어ㅠㅜㅜ이케 될 주른 몰라써여ㅠㅠㅠㅠㅜ

|9서클대마법사| : ??

【아웃브레이커 던전 형성 완료】

위치: 37°59', 127°00'

등급: S

도대체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00:58:37】

흘러가기 시작하는 숫자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의뢰를 실패해 버릴 줄은 몰랐다.

|북부대공| : 님아 어디써여ㅠㅠㅠ

|9서클대마법사| : 어떤 님?

나는 길드 메시지를 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는 건 습한 안개뿐이다.

꽉 막힌 시야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오빠가 휘말려 버렸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를 이끄는 강한 헌터이니 무사하겠지만 걱정되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9서클대마법사| : 흐어어겈 ㅁㅊ놈아!!! 진언은 왜 날려ㅅㅂ!!!

|북부대공| : 흐어어ㅠㅜ살려줘여ㅠㅜㅠ저 던전 한 번도 공략해 본 적 없단 말이에야ㅠㅜㅠㅠ

|신살자(길드장)| : 대공 새끼야 법사한테 진언 날리지 말고 개인 메시지나 받아.

|북부대공| : ㅠㅠ

이딴 던전, 의뢰만 받으면 거뜬히 공략할 수 있다. 오빠도 바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의뢰’를 받으면 말이다.

의뢰에 실패하면서 사용하던 권능이 모두 봉인되어 버렸다.

일반인이나 다름없어진 지금, 나는 까딱 잘못하면 바로 요단강 프리 패스행이다.

|Pr. 신살자(길드장)| : ㅇㄷ야.

|Pr. 북부대공| : 안개 속.

죽고 싶냐.

살의가 들끓는 마음을 애써 잠재우며 차분히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좌표 말해줄 테니까 이쪽으로 와.

|Pr. 북부대공| : 저 한국 지리 9등급인데여?

“…….”

이 새끼가 어떻게 엘리시온의 북부 대공이란 타이틀을 얻고 귀환한 거지?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대공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북부대공| : 영지 관리는 보좌관한테 맡겼었음.

그걸 맡기면 안 됐을 텐데?

뻔뻔한 낯짝, 아니, 메시지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Pr. 북부대공| : 끼야아악!!

|Pr. 북부대공| : 님아아

|Pr. 북부대공| : 길마님아ㅠ

|Pr. 북부대공| : 바ㅋㅟ버ㄹ레 조나 커여ㅠㅜ흐어어ㅓ사려줘ㅠㅠ

“…….”

하찮다.

그보다 바퀴벌레라니, 충왕종이 주요 몬스터로 있는 던전인가?

새대가리 때문에 열린 던전이라서 빼도 박도 못하게 괴수종이 들끓고 있겠거니 했는데.

[귀환(歸還)의 ‘북부 대공’ 님께서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얘는 진짜 뭐 하는 놈이지?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삼키며 길드 창고를 열었다.

좌표를 보냈어도 올 기미가 안 보이니 내가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대로 갔다가는 그대로 곤충의 밥이 되고 말 테니…….

[B급 성물, 오래된 검]

한반도의 위대한 성좌님께 무한한 감사 인사를 보내며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언제인가 경주 단석산 정상에 올라가 돌 몇 개를 수집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보상으로 받은 검이었다.

권능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대공 새끼의 구조 요청이고 뭐고 무시할 텐데.

대공님의 마법이 있어야 오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데리러 가야겠다.

그렇게 걸음을 뗄 때였다.

[성좌, ‘가정의 수호자’가 우리 불쌍한 프란체스카를 외치며 진노합니다.]

“응? 별님, 아직 안 가셨어요?”

[성좌, ‘가정의 수호자’가 프란체스카에게 편안한 안식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너의 3대가 불행해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습니다.]

“제가 비혼주의라서요. 그런 저주는 딱히 효과가 없을 거 같은데?”

[성좌, ‘가정의 수호자’의 분노가 올림푸스를 울립니다!]

[성좌, ‘포도나무를 심은 자’가 성좌, ‘가정의 수호자’를 달랩니다.]

[성좌, ‘포도나무를 심은 자’가 성좌, ‘가정의 수호자’에게 머리채를 붙잡히며 길드, 귀환(歸還)에게 의뢰를 보냅니다.]

나이스.

나는 대공이 애타게 보내오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의뢰를 받아 들었다.

[성좌, ‘가정의 수호자’가 애지중지 여기는 귀한 공작새, 프란체스카가 아웃브레이커 던전(S급)의 보스 몬스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를 고통 없이 처치하여 성소(聖所), <올림푸스>에 평화를 가져다주세요!]

▷ 길드 보상: A급 성물 ‘올림포스산 포도주’

포도주랑 잘 어울리는 안주가 뭐지. 일단 안주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곧장 의뢰를 받아들였다.

제한 시간은 아웃브레이커 던전의 공략 제한 시간과 일치했다.

실패 시 일어날 일은 1급 게이트 오픈. 이번에 받아들인 의뢰는 절대 실패할 일 없을 거다.

“으하아악!!”

“……?”

그래야 하는데.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에 나는 경악했다. 그 그림자를 뒤덮어 버리는 커다란 벌레의 몸체에 더욱 입을 벌렸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쿠웅!

나도 모르게 발휘한 권능이었다. 커다란 땅울림에 잠깐 비틀거리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끼에엑!!

주택 하나는 잡아먹을 것 같은 벌레가 짓누르는 중력에 검은 액체를 토해내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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