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게이트 다음에 적합자 심사라니, 오늘 참 다사다난하게 돌아가네. 나는 곧장 검색창에 반 고흐의 전시회를 검색해 보았다.
“망할!!”
지하철 타고 1시간 30분.
경악할 만한 거리에 허겁지겁 카페를 나왔다. 늑장을 부릴 여유 따윈 없었다.
인적이 뜸한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길드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의뢰 확인한 사람!!
읽은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돌아오는 답장은 없다. 조금 전에는 시답잖게 잘도 떠들어 댔으면서!!
|신살자(길드장)| : 지금 서초구인 사람!
이번에도 답이 없다.
망할! 이 새끼들은 이럴 때만 한결같이 답이 없어!!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신살자(길드장)| : 법사! 법사!!
|9서클대마법사| : ?
다행이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건가 보다. 곧장 돌아온 대답에 나는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포탈 좀!!
|9서클대마법사| : ㄱㅊ
|9서클대마법사| : 괜찮ㄴㄴ
|9서클대마법사| : 귀찮ㅇㅇ
개새끼야!!
차오르는 욕설을 억지로 삼키며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10시 퇴근이 아니라 밤샘 출근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신살자(길드장)| : 네 회사 추적하기 전에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포탈 열어라^^
법사 새끼의 회사가 어디인지 추적할 방법 따윈 내게 없다. 애초에 만난 적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9서클대마법사| : 어디로 모셔다드릴까요, 길마님.
이런 답이 돌아온단 말이지.
정중하게 돌아온 대답에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길드로 들어온 의뢰는 모든 길드원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누군가 이를 수락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봐봐, 내가 수락하니까 사라지잖아. 나는 다시 이를 갈며 전시장의 좌표를 입력했다.
곧이어 붉은 마법진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나는 누가 볼세라 재빨리 붉은 마법진을 향해 들어갔다.
이게 바로 내가 유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하늘의 지고하신 별들의 의뢰는 거절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무시했다가는 실패 시 벌어질 일이 무지막지했다.
길드, 귀환.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 길드는 지고하신 별들의 의뢰를 받고 그 의뢰를 해결한다.
“입장권 확인하겠습니다!”
연륜이라는 우스운 이유로 길드장이 된, 나만이 그 의뢰를 해결한다는 말이었다.
[의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권능이 일부 해제됩니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첫 번째 족쇄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성좌의 의뢰를 받아야만 주어진 칭호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다. 다른 길드원들은 잘만 사용하는데 말이다. 사실, 다른 길드원들이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법사 새끼가 포털을 열어주는 거로 봐서는, 다른 녀석들도 칭호에 딸린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만나봐야 알지.”
사실 칭호의 힘이고 뭐고 다른 녀석들처럼 이딴 의뢰, 누가 받을 때까지 배 째라고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엄마! 저것 봐!!”
“손으로 만지지 말아주세요.”
“야! 저기서 사진 찍자~!”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나는.
적당한 삶을 원했‘었’다.
수중에 돈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전시회 입장권을 끊은 뒤 전시장으로 향했다.
【00:51:48】
시간도 적당하고.
적합자 심사가 언제, 어떻게 열릴지 모르겠지만 이 전시장 안에서 열리는 건 분명하다.
그냥 열릴 때까지 죽치고 앉아있어야 하나?
아니면.
[도둑맞은 A급 성물 ‘별이 빛나는 밤’을 찾아주세요.]
성물의 흔적이라도 일단 찾아볼까. 그래, 성물의 흔적이라도 일단 찾아보자.
생각을 끝마친 나는 성물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모조품을 먼저 찾기로 했다.
“누나.”
“으, 응?”
찾으려고 했는데 웬 꼬마가 나를 잡는다. 내 소매 자락을 잡은 꼬마가 입을 오물거렸다.
“엄마가 사라져써요.”
“어… 저런?”
“…….”
꼬마가 할 말이 그것뿐이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쳐다보기만 할까.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보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명 화가의 전시전이라 그런지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명 화가고 나발이고 게이트 열렸었잖아. 안전 불감증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디에서도 아이를 찾는 목소린 들리지 않았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아이의 손을 잡았다.
“누나랑 엄마 찾으러 갈까?”
“웅.”
대답 한번 잘한다. 미아 센터에 데려다주고 곧장 둘러보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후―욱!
전시장 입구를 빠져나가려 할 때, 검은 막이 위로 솟구쳐 오르며 입구를 막았다.
“…….”
꼬마가 놀랐는지 내 손을 꽉 끌어 잡는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전시장을 밝히던 불빛이 점멸하더니 이내 꺼졌다. 전시장 안에 모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 조명 나갔는데…….”
“이벤트라도 하나?”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기는 하죠.
[‘돌발성 적합자 심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
아주 커다란 이벤트가 말입니다.
검게 물든 공간에 붉게 쓰인 글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전시장 안의 웅성거림이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누나, 저거 머에요?”
나는 대답 대신 꼬마를 불렀다.
“애기.”
“웅.”
“애기는 적합자야?”
“그게 머에요?”
아무리 많게 잡아도 다섯 살 남짓한 아이가 뭘 알겠나 싶었다.
|신살자(길드장)| : 애기가 돌발성 적합자 심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북부대공| : 제로!!
답해줘서 고맙다, 대공아.
나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며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곧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애는 안 돼! 아직 일곱 살이란 말이야!!”
“비켜! 젠장! 나가야 한다고!!”
나는 들려오는 비명을 꼬마가 듣지 못하게 만들며 허공에 띄워진 붉은 문구를 쳐다봤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
특정 대상들에게 초대장이 배부되어 열리는 ‘정기적 적합자 심사’와는 다르게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리는 심사였다.
적합자, 다른 말로 ‘각성자’라고 하던가. 어떤 이는 ‘신인류’라고도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 불리든 간에 그들은 선택받았다고 했다.
우리 오빠는 선택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하지만 동생 새끼는 꺼져.
“누나, 무서버요.”
“응, 나도 무섭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붉게 쓰인 문구를 빤히 쳐다봤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를 시작합니다.]
“아가! 아가!!”
“엄마!”
아이를 부르던 여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적합자였던 모양이다.
그 소리가 시작이었다.
곳곳에서 애타는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적합자’와 ‘적합자가 아닌 자’를 선별하는 분류 작업이다.
“아…….”
멍하니 들리는 누군가의 탄식과 함께 선별 작업이 모두 끝났다.
“흑, 으, 으아아악!!”
“죽기 싫어! 꺼내줘! 꺼내달라고!!”
사방이 가로막힌 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벽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목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꼬마의 주변으로 소리를 차단해 놔서 다행이다.
내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두 눈을 말똥하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겁에 질린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멀쩡해 보였다.
“누나.”
“응.”
“사람들이 왜 저러는 고에요?”
나는 꼬마의 눈을 가리며 말을 골랐다.
“음… 겁먹어서?”
“왜?”
질문 공격이 시작됐다.
“글쎄?”
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저 질문에 답해줬다가는 끊임없이 WHY 시리즈를 찍어야 한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심사가 열린다.
그냥 단순한 심사라면 저렇게 겁에 질리지 않았을 거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 ―별이 빛나는 밤,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시작합니다.]
불이 꺼진 전시장에 돌연 환한 빛이 찾아들었다. 검은 벽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이내 그들은 몰려있던 벽에서 기겁하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검게 칠해졌던 벽 곳곳에 명화(名畫)가 걸려있다. 성좌 나리께서 찾아달라고 했던 A급 성물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백 개가 걸려있네. 모두 지고하신 별의 힘을 품고 있고.
[별이 빛나는 밤, 아름다운 명화(名畫)를 두 눈에 담다가 잃어버린 나그네의 얼굴을 찾아주세요.]
▷ 함께 살아남거나 함께 죽거나
선택지 한번 조악하다.
나타났던 메시지가 사라지기 무섭게 벽이 사방에서 좁혀오기 시작했다.
다 같이 압사당해 죽거나, 그러기 전에 살아남거나인가 보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이래서 악명이 높았다.
어떻게 적당히란 게 없어.
“애기.”
“웅.”
“엄마 보고 싶지?”
“웅.”
대답을 하는 얼굴이 참 해맑다. 나는 씨익 웃으며 꼬마를 보듬어 안았다.
“그래, 엄마 찾으러 가자.”
나는 서서히 좁혀오는 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신살자(神殺者)’의 칭호 효과를 발휘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권능, ‘진리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진리의 눈’ 사용 시간이 강제적으로 설정되었습니다.]
【00:00:29】
[절대 권능, ‘법칙 위의 절대자’가 활성화됩니다.]
[‘진리의 눈’ 사용 시간이 무한으로 재설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