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반느

※ 본 작품에서는 강압적 관계 등 호불호가 갈리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매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 새희에게 삶은 그런 의미였다. 보육원에서 만난 은석과 언제까지나 함께이고 싶었다. 그러나 새희는 은석을 배신했고, 자신을 버리지도, 용서하지도 못하는 은석의 곁에서 새희는 방치되며 망가진다. 더는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새희의 삶이 한 번 더 소용돌이친 건, 은석의 약혼녀 이진을 만나면서부터. 그리고 이진의 애인인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서부터. 잔혹하고 습한 눈을 가진 그 남자는 너무도 태연하게 새희를 욕망한다. 너무도 태연한 그 욕망에 새희는 경악했고, 경악한 다음 무너져 내렸고, 무너져 내린 다음 온몸이 짓무르도록 애절해졌다. 언제부턴가 새희의 삶은 그 남자의 것이 된다. 그 남자를 상실한 삶은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 * * “나랑 자고 싶나요?” 입에선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직설적인 말이 튀어 나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 이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리라. 희한하게도 그는 재밌어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새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귓가에선 환청처럼 이진의 매혹적인 웃음소리가 울린다. 이건 부도덕하다. “당신한텐 애인이…… 주이진 씨가 있잖아요.” 그는 못 먹을 걸 먹은 것처럼 인상을 썼다. 그 이름이 지금 나왔다는 것에 어이없어하는 기색이다. “내 앞에서 결혼할 남자의 애인까지 소개시켜 주는 여자에게 정절을 지키란 말입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정절이란 단어는 이질감이 들었다. 의심이 마구잡이로 솟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으리라. 헛걸음했다는 말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환상적인 연주로 경계를 풀었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였던 것이다. 실망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에게 엄청난 실망감이 들었다. 실망감은 보기 드문 격분으로 타올랐다. “나는, 저는, 그럴 생각 없어요. 은석이 모르게 그런 짓은…….” “결혼식이 다음 주인 거 알아요?” 김언혁은 차분하게 칼날을 겨눴다. 그는 얼마든지 새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난도질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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