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조선을 배경으로 한 가상시대물로, 역사적 사실 등이 실제와 다릅니다. 시대 상황과 설정상 비동의 성관계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열람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너를 무엇으로든 만들어 줄 수 있다. 내가 너를 무엇으로 만들어 주면 되겠느냐.”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되물으며, 그는 그녀의 둥근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설마, 내가 천하디천한 너 따위를 진심으로 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흠칫한 그녀가 하얗게 질린 양손을 꼭 움켜쥔 채 시선을 피한다. 그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빛을 발견한 지학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생각하는 것도 천치 같군. 이미 너는 알고 있지 않으냐….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말해 보아라. 내가 누구냐.” 머리카락을 귓바퀴에 걸어 준 손끝이 턱을 지나 맥이 뛰는 목 아래로 움직여 지그시 움켜쥔다. 그가 손가락 끝에 서서히 힘을 주어 다시금 자신을 보게 하자, 숨을 들이켠 그녀의 발뒤꿈치가 살짝 들렸다. “나는…. 네 언니 또한 무엇으로도 만들어 줄 수 있다.” 여자의 눈 속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밤하늘 같던 그녀의 눈동자 속에 모든 별이 지고, 공허한 어둠이 찾아들었다. 지학은 제 시선을 피하지 않던 그 까만 눈빛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손에 힘을 풀었다.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지근한 물을 들이부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분명 욕망이다. 급류같이 찾아드는 욕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 이것은 욕망이다. 인정하는 순간, 계집의 세상을 모조리 갖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내, 너를 갖지 못한다면… 망가트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