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테일러 버드

※본 작품의 원제는 〈재단사 주희재의 미학〉이며, 이북 출간 시 〈테일러 버드〉로 변경되었습니다. 과거의 상처로 7년간 작은 시골 마을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온 재단사 주희재. 조부와의 인연으로 자신을 찾아온 남자, 차주원과 만나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주희재 씨를 내 프라이빗 테일러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원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그는 희재를 포기하지 않고, 종종 꾸던 악몽에서 깨어난 새벽, 희재는 충동적으로 주원의 프라이빗 테일러가 될 것을 결심한다. “할게요.” - ……. “대표님 프라이빗 테일러, 할게요.” 첫 비스포크 슈트가 완성되고, 주원은 제 취향에 꼭 맞는 슈트를 만드는 미색의 테일러에게, 희재는 제가 만든 슈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조각 같은 클라이언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주원은 오랜 시간 새장 속에 갇혀 있던 희재를 조심스레 바깥세상으로 이끌고, 그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급변하는데……. <본문 발췌> “희재 씨.” 그렇게 다정하게, 소중한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저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매달 만나는 담당의도, 그리 친하지 않은 임 비서님도 부르는 평범한 호칭일 뿐인데. 주원이 부르는 제 이름에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깃든 것 같았다. 단순히 이름이 불린 것이 아니라 신경이 마비되고 육체가 얽매이는 기분이었다. “방금 입 맞춘 것, 사과할까요?” 그제야 눈을 떴다. 상냥한 눈동자가 희재를 담은 채 정중하게 묻고 있었다. 주원이 희재의 얼굴에서 손을 거두었다. 뺨에 남은 온기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사과. 사과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공기가 산산이 조각나 깨지고, 입술에 닿았던 주원의 숨결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그토록 마주하기 두려웠던, 7년 만에 일깨워진 감각은 쓰임을 다한 종잇조각처럼 구겨져 몸 안 어딘가에 버려질 것이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외면하고, 도망치고, 감추고, 숨기고……. 어쩌면 다시 소복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자신은 겁쟁이니까. 뻔뻔하게 이곳에 남아 다시 주원의 슈트를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사람이 가득한 영화관에 다녀오고, 근사한 저택에서 프랑스 가정식을 먹고, 와인 바에서 누군가와 입을 맞춘 오늘은…… 주희재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그리고 나의 갈라테이아 역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겠지. “……아니요.”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희재의 눈동자 안에는 주원이 담겨 있었다. “사과는……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여유를 잃지 않던 주원의 동공이 순식간에 다른 감정으로 물들어 굳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주원이 희재의 손목을 당겨 일으켜 세웠다. 덜컹,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가 휘청였다. 왼손이 허리를 안아 당기고, 오른손이 뒷머리를 감쌌다. 와인으로 적셔진 두 입술이 완전히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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