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캐롯

2학기의 마지막 달이 시작된 그 날, 여자가 복도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복도를 달리던 윌리엄의 시선이 잡아 당겨지듯 오른편을 스쳐 지나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선명한 주홍색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당근 같네.’
그러나 윌리엄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여자는 이미 사라진 채였다. 여자가 잠시 색을 더했다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잿빛의 건물은 무너지고 멸망한 옛 문명의 터처럼 변해버렸다.
그 날 윌리엄의 여름이 시작됐다. 훗날 윌리엄은 25살의 여름을 회상할 때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물감으로 그린 듯한 푸른 하늘, 누가 가꾸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샛노란 밀밭, 그리고 주홍색의 그녀, 그것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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