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균열현상관리본부 그곳을 대표하는 1급 이능사 진소람은 누구보다 강하고 또 누구보다 게으르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이불을 머리까지 폭 덮고 자고 밍기적거리며 나간 출동지에선 사고를 치고 돌아와 딴청부리기 일쑤. “이미 좀 망친 게임을 하는 기분 알아요? ……어차피 다음 판이 올 테니 이번엔 그냥 마구잡이로 하는 거죠.” 사실 그의 정체는 세 번의 삶을 회귀하며 대균열로부터 세상을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이었다.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한 삶을 반복한 끝에 이번 생은 시작도 전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알고 있습니다. 진소람 씨 열심히 한 거.” 그리고 지난 세 번의 생에서 전부 소람을 구하고 죽은 남자, 한태운. 그는 모든 생에 그랬듯 또다시 소람의 곁으로 찾아온다. 머지 않아 다가올 대균열. 아무 대비도 안 된 이번 생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람은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를 구하고 자신이 죽겠다는 다짐을 한다. 적어도 다시는 실패자인 자신 따위를 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일단 그 때까진 자자......” 그 순간을 기다리며 꾸물꾸물 살아가던 소람에게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생겨난다. ‘망친 판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조금 더 오래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