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조용한 신전. 오직 한 커플과 한 명의 신관만이 그곳에 있었다. “두 사람은 이로써 제국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습니다.” 신관조차 형식적인 목소리였다. 잘 살라는 말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축하하는 이도, 그들 사이에 뜨거운 애정의 입맞춤도, 눈 맞춤도, 반지 교환식도 없었다. 그렇게 베르샤의 연인이었던 라온과 베르샤의 친구인 키나는 부부가 되었다. * “……일찍 오셨네요.” “왜 먼저 갔습니까?” 키나가 라온을 바라보니,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화난 듯 보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녀가 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옷은 왜 혼자 고른 겁니까?” 공작 부인의 품위에 맞는 옷을 고르지 못할까 봐 걱정한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드는 질문이었다. 수수한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던 그를 떠올리며 키나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맘에 안 드시면 디자이너를 불러서 바꿀게요.” 키나가 문 앞에 서 있는 라온을 지나쳐 디자이너를 부르려고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내가 안 올 줄 알았습니까?” 문고리를 돌리려던 키나의 손이 멈췄다. 그를 돌아보지 못하는 건, 마주 보면 자신의 마음을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다정함으로 처지를 잊은 그녀의 옹졸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