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있네. 기억 안 나는 척은.” 길가에 차를 끼익 세운 그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붉은 레이저 같은 눈빛을 쏘아댔다. 얼굴을 마주하니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쿵쾅댔다. 태준아, 모르는 척해줘. 그냥 각자 갈 길 가자 제발. 누나 힘들다. 두 눈을 꼭 감은 예슬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밤새 내 생각하면서 잠 못 잔 거 티가 나는데 무슨 헛소리야. 말해봐. 아니야?” 순간 저도 모르게 감은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돌렸다. 얘가 어떻게 알았지. “또 보고 싶었잖아. 계속 생각났고. 내 꿈도 꿨고.” 얘가 신기가 있나? 예슬은 두 눈을 끔뻑대며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태준은 피식 웃으며 입술을 적셨다. 순진하긴. 그냥 한소리를 곧이곧대로 실토하는 건 뭔데? 그러니까 밤새도록 내 생각했다는 거네. 꿈까지 꿀 만큼. 태준이 여유 있게 상체를 세워 팔짱을 꼈다. 마음이 흔들렸다는 거지. 동요가 없을 수가 없지. 저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 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