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는 대신 흐르기로 선택한 황가.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받게 되는 세계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은 무사히 독립 국가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게 불행이었을까? 대한제국의 셋째 황자인 이도재는 황가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가수의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위엄을 잃지 않으며, 명예롭고 이로울 것.’ 이 한 줄의 신념이 이도재의 가슴을 항상 후벼팠다. ‘본인의 의지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니.’ 어두워진 TV 브라운관 위로 도재의 흰 얼굴이 잔상처럼 비쳤다. “…….” 브라운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어떠한 감정이 울컥하며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부유물처럼 사는 것에 대해 다른 이는 몰라도 도재는, 꿈이 있는 그는. 황제인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 매질을 당한 열여덟 이후 입 밖으로 낸 적 없던 말을 울분처럼 뱉어냈다. “가수가… 가수가 되고 싶어.” 그때 자신을 꼭 닮은 누군가가 브라운관 너머로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죽고 싶어.” “…….” “가수 같은 거… 이제 하고 싶지 않아.” 누구지? 누군데 나와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믿을 수 없는 일에 도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쿵! 도재는 그대로 자리에서 쓰러졌고 눈을 떠 보니 대한민국의 강도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