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갈구하며 부딪치기보다는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에 더 익숙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부유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이탈리아에서 성장한 지인. 모종의 사건 이후 비밀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가족을 떠나 홀로 한국행을 택한다.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한 지 4년 차. 화보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태국 방콕에서 한 남자가 접근해 오고, 지인은 이례적으로 그의 유혹을 받아들인다. 하룻밤 상대일 뿐인 그의 표정과 눈빛이 왠지 계속 마음에 걸리지만, 지인은 늘 그래왔듯 감정의 동요를 모르는 척한 채 서울로 돌아간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나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때 있어요. 정지인 씨가 날 안 싫어했으면 해서 얌전한 척하는 거지.” 능란해 보였던 첫인상만이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조급함을 드러내며 정성을 쏟는 그에게 지인은 마음이 기울어 가고... 가끔은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 자기 자신을 위해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선택들. 그중 최고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SM물이 아닙니다. 주인공들의 과거 경험, 개인적 성격과 얽혀 BDSM과 관련한 일부 성향들이 다루어지지만, 가학/피학의 SM 관계, 지배/복종을 기반으로 한 DS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단행본 출간과 함께 교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 내용 자체는 변함 없으며 부분적으로 디테일한 설정이나 대사 등에 수정이 있습니다. 연재로 작품을 구매하신 독자분들께서는 '내 서재'에서 다운받은 도서를 삭제하신 후, '구매목록'에서 전체 회차를 재다운로드하시면 수정된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단, 재다운로드시 기존 내용을 다시 복구하실 수는 없습니다. ■짧은 발췌 나의 농담에 그는 눈을 갸름하게 접으며 예쁘게도 웃었다. 그리고 양팔 아래로 손을 넣어 어깨를 단단히 껴안았다. 아직 이어져 있던 하반신이 더 바짝 밀착되었다. 근거리에서 똑바로 나를 바라보는 두 눈을 피할 곳이 없었다. “연애하는 거죠, 우리?” “......” “나 이제 형 애인이죠?” 그는 보채거나 조르지 않았다. 듣기 좋은 차분한 목소리는 속삭이듯 조용했다. 표정을 숨기려 손등으로 입술 주변을 쓸다가, 머뭇머뭇, 나를 안은 그의 팔로 손을 뻗었다. “우리 둘 다... 그런 거 일일이 말로 해야 하는 나이는 지났잖아요.” “내가 이렇게 듣고 싶어 하는데. 잠깐 쑥스러운 것 정도는 한 번만 참아주면 안 돼요?” “......” “확실하게 말해줘요.” 이번에는 그의 음성에서 약간의 동요가 느껴졌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요구가 아닌, 애원을 담은 부탁에 가까웠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서, 과거에는 그를 안아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었고, 큰 변화가 닥치지 않는 이상 이번에는 공간의 제약을 받을 일이 없었다. 억지로 마음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그의 팔을 쓰다듬던 손으로 어깨와 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쑥스러움에 괜히 그의 볼을 꾹꾹 누르면서 잘생긴 얼굴에 일부러 장난을 쳤다. “나이보다 의젓한 줄 알았는데. 이럴 때 보니까, 내 애인도 연하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