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집을 샀거든.”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미성리의 한 산골 마을. 이 마을의 유일한 젊은 이로 살아가던 정원은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백구십이 넘는 키에 대문 한쪽 너비와 맞먹는 어깨, 험상궂은 인상은 금방이라도 정원을 끌어낼 것처럼 위협적이었으나, 같이 살게 된 날이 길어질수록 보이는 겉모습과 사뭇 다른 다정함에 정원은 마음을 주고 만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 한여름 날의 소나기, 비 온 뒤 젖은 흙의 냄새, 아직 벗지 못한 담요 속 열기, 코끝에서 맴도는 우유의 고소하고 비릿한 향, 선명하지 않은 무지개 그리고. “아저씨는 여름 안 싫어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서울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며 벗어났던 이곳의 여름을, 성우는 좋아했으면 싶었다. 아까처럼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옷이 젖게 되더라도, 주변에 하나뿐인 마트의 주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을 부리더라도. 이곳 사람들처럼,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렇게, 도시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의 시간을 좋아했으면 싶었다. “안 싫어해.” 정원은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