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젠틀맨 클럽

※ 등장인물의 성격적 특성상 의료윤리에 어긋나는 내용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의 손에 의해 엉망으로 망가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깨 무거운 가주 자리에 앉게 된 젊디젊은 실베스터 레녹스 공작은 한계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의사를 마주하나, 파비안 라니스터는 ‘사람을 돕는’ 의사가 아니었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서 사근사근 독설을 내뱉는 그와 함께하면, 자신을 유서 깊은 가문의 공작으로도, 거대사업체의 수장으로도, 심신미약의 환자로도 대하지 않는 듯한 그 태도에 겨우 숨구멍이 트이는 듯하다.

실베스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작 각하, 막말로 내가 그 대가로 좆이라도 빨아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당연하게도 문자 그대로 성기를 빨라는 뜻이 아니라 흔히들 쓰는 관용적인 표현이었다.

파비안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건, 눈앞의 남자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거면 됩니까?”

“아니, 씹, 그런 말이 아니라……!”

“절 맡아주신다고 약속하는 겁니까?”



◇ ◆ ◇



곤란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까는 실베스터를 잠시간 물끄러미 쳐다보던 파비안이 스윽 빈손을 뻗었다. 마디가 도드라져 남자의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음에도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우아하기까지 한 예쁜 손이다.

본능처럼 파비안의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실베스터는 그것이 자신의 허벅지를 한 움큼 쥐는 것에 그 자리에서 튀어오를 뻔했다.

가까스로 반응을 누른 실베스터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파비안을 쳐다봤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당황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파비안이 온화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동시에 차가운 파비안의 손이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허벅다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도드라진 근육을 스스럼없이 헤집은 손이 안 그래도 짧은 반바지를 들추어냈다. 그 위에 파비안의 시선이 닿는 게 촉감처럼 또렷하게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뻣뻣하게 굳어 있던 실베스터의 얼굴에 물감이 번지듯 붉은색이 퍼져나갔다.

“공작 각하는.”

귓바퀴를 타고 달게 흘러들어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실베스터는 그가 자신의 작위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해할 때, 도구 뭐 써요?”

“……네?”

“면도날 같은 건 아니죠? 페이퍼 나이프도 아닐 테고. 창상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상처럼 보이지도 않네요. 이 지저분한 건 뭘로 만든 걸까…….”

실베스터는 자신이 들은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깜빡했다. 파비안이 쳐다보는 자신의 허벅다리에 시선을 내리자, 지금껏 외면해 온 상처가 들어왔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자해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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