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이승주와 한결. 두 사람은 영원을 약속하며 사랑의 각인을 맺는다. 연인과의 행복한 나날들로 가득할 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앞날은 승주의 모친으로 인해 어둠으로 뒤덮였다. 노름빚에 생모는 하루가 멀다고 승주에게 돈을 요구했고 급기야 승주를 담보로 한결의 집에서까지 돈을 받아낸다. 지칠 줄 모르는 친모의 악행에 승주는 결국 한결의 곁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암흑과도 같은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교통사고로 객사했다는 친모의 부고가 날아든다. 10년 동안 그녀의 사채 빚을 갚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승주에게 남은 건 허망함과 한결에 대한 죄책감뿐이었다. 한결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선 과거의 과오를 갚아야만 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승주는 고급주점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승주가 일하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뜻하지 않는 재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한결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감히 바랄 수도 없는 그곳에서 찬란히 빛나는 그를 다시 만난다 한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재회하는 순간부터 범람하기 시작하는 애정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 “이 손 놔 줘.” 닫혀 있던 한결의 입술이 벌어지며 흘러나온 목소리는 단호히 말을 했다. “싫어.” 이 사랑은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서른 살의 사내가 요령도 없이 부리는 투정마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인지. 승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가 느낀 막막함을 피력했다. 그때 두 사람을 향해 기사가 버럭 소리쳤다. “이봐요. 탈 거예요, 말 거예요?” 기사의 짜증 섞인 말투에 승주는 머뭇거렸다. 그사이 다시 한번 강한 힘이 승주의 팔뚝을 차체 밖으로 잡아 이끈다. ‘엇…!’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휘청거리던 승주의 몸이 그대로 한결의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그런 승주의 허리를 팔로 옥죄며 한결이 대답했다. “안 탈 겁니다.” 한결이 고개를 젓자 버스는 빠르게 그곳을 떠나버렸다. 이제 언제 또다시 버스가 올지 알 수 없으니 승주는 난감했다. 그보다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그의 단단한 팔이, 체온이, 맞닿은 서로의 살갗이 승주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얼어붙은 몸은 따스한 그의 체온에 녹기 시작했다. 승주의 두 뺨은 옅은 홍조가 번지고 있었다. 본능과 이성이 제멋대로 뒤엉켜버린 머릿속은 이미 블랙아웃을 외쳤다. 간신히 이성을 붙들며 승주가 그의 하박을 밀어내려 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반항이었다. “이, 이 손 놓아 줘….”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욱 매섭게 저의 몸을 끌어안아 왔다. 한결의 가슴팍과 승주의 등이 한 치도 없이 맞물렸다. 승주는 그와 맞닿은 등허리가 몽땅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열기를 느꼈다. 정신이 몽롱하게 흐트러지며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어느새 단전은 용암을 삼킨 듯 작열하기 시작했다. 몸의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십 년이란 시간이 무색할 만큼 단지 그의 품에 안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황홀해하는 자신이 승주는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그의 품에 매달려 자신을 안아 달라, 사랑해 달라 애원하고만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승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 아… 이 손…….” 승주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번 사지를 버둥거렸다. 그때였다. 승주는 다급히 숨을 삼켰다. 그런 승주의 동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목덜미를 덮쳐오는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한결의 숨이었다. 한결은 이내 승주의 목덜미로 제 입술을 묻었다. 드러난 목덜미로 촘촘히 맞닿던 그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안착했던 곳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은 ‘잇자국’ 위였다. 그곳에 여전히 입술을 맞대며 한결은 말했다. “드디어 찾았다. 내 오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