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짖지도 않고

※ 작중 다소 강압적인 관계 및 장면이 일부 등장하오니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대사는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주해강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5년이나 홀로 품고 있는 첫사랑이 있다. 어느 날, 그 첫사랑을 길 위에서 마주쳤다. 그것도 그 첫사랑이 여자 친구에게 뺨을 맞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끝날 일회성 재회라고 생각했건만. “재밌었냐? 아까 나 처맞는 거 보니까 재미있었냐고.” 이상한 방식으로 더럽게 얽히기 시작한다. “정유현. 그런데 우리는 무슨 사이인 거냐?” “음… 형 게이 아니라며. 나도 아니거든. 내가 형한테 꼴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귈 수는 없잖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별 의미는 없고… 진짜 그냥 궁금해서.” “다행이다. 나 사귀면 잘 못해 주거든. 우린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 혐오는 없었으나 명백한 거절이 다정하게 돌아왔다. 해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니. 이렇게 끌어안은 채 잠들고, 침대 위를 뒹굴며 섹스하는 게 네겐 단순한 ‘친밀함’인 거야? 뭐 이래. 뭐가 이렇게…. 뭐가 이렇게 쉽고 잔인해. *** “넌 첫사랑 없댔지. 그럼 짝사랑은 해 봤어?” 해강이 유현을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짝사랑? 그딴 걸 왜 해.” “좋아하면 하는 거지, 뭘 왜 해.” “그러니까, 좋아하면 사귀면 되지 짝사랑을 왜 하냐고.” 해강은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좋으면 사귀면 되는 거지…. 하지만 사귀고 싶다고 누구나 상대와 사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해 보았자 유현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세상이 있다. 유현의 세상에서는 아마 ‘거절’이나 ‘거부’, ‘짝사랑’ 같은 단어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을 거다. “너 차여 본 적도 없지.” “아니, 많아. 먼저 사귀자더니 헤어지자는 말도 먼저 하던데. 재수 없다고.” “그렇게 차이면 안 힘들었어?” “힘들 게 뭐 있어. 나 싫어 간다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건 추한 거야.” 추한 거. 해강이 작게 유현의 말을 따라 읊조렸다. 정유현, 지금 네 앞에 세상 제일가는 추한 사람이 있다. 내 사랑은 너와 달라. 하나도 멋있지 않아. 늘 찌질하고 한심해. “누가 그러더라. 진짜 사랑하면 사람 다 변한다고.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진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통장이고 다 빼 주고 무릎 꿇는대.” 유현의 어깨에 코를 박은 채 잠꼬대처럼 웅얼거리자, 유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놀고 있네. 그딴 거 다 개소리야.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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