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피폐해진 주인공 로한이 햇살처럼 밝고 다정한 성녀에게 마음을 위로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에 빙의해 버렸다.
그것도 주인공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흉이자, 신전에 의해 봉인 당하는 타락한 마검으로.
“나중에 네가 검을 필요로 하면, 내가 네 검이 되어 줄게.”
지키지 못할 약속까지 해가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떠돌아다니게 된 주인공을 거두어 신전에 가기 전까지만 돌보기로 하는데.
어느샌가 육아는 진심이 되고 말았다.
***
“아르펠이 계속 나랑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펠은 어느 때보다 로한의 말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빠듯하게 차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충족감이었지만 어찌 됐든 로한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이니 달갑게 받아들였다.
빵빵한 볼을 손가락으로 꾹 찔렀다. 이런 걸 귀엽다고 하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살살 누를 때마다 쿡 들어가는 볼살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자꾸만 볼을 건드리자 로한이 어깨에 묻고 있던 고개를 홱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르펠은 어쩐지 로한의 시선이 ‘아르펠은요?’하고 묻고 있는 것 같다 느꼈다. 이제는 로한을 따라, 제법 자연스럽게 옅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게 된 아르펠이 답했다.
“나도. 너랑만 있었으면 좋겠어, 로한.”
내게 의미 있는 존재는 너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