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슈트를 차려입은 장신의 남자. 마치 초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새까만 눈동자. 다정한 슈트와는 다르게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던 머리칼까지. 그것이 그녀의 아버지가 기태에게 하린을 팔아넘긴 날, 하린이 느낀 그의 첫인상이었다. “몇 살이니?” “고 1이요.” “그래,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해라.” “……그게 끝인가요?” “……뭐가 더 있어야 하나?” 그게 끝이었다. 더러운 아이라고 욕하는 건 아닐까. 뺨부터 올려 치는 것은 아닐까. 온갖 끔찍한 상상을 다 했던 제 모습이 우스울 정도였다. 그리고 19살 마지막 밤, 20살의 첫 새벽.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미묘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기태는 자신의 방으로 하린을 호출했다. 그녀가 호출에 기꺼이 응하며 그의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았을 때. “하린아.” 평소와 달리 끝이 갈라지던 나지막한 음성. 이대로 잠겨버릴 것만 같은 눈빛에 몸이 멋대로 떨려오기 시작했다. “……네?”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