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73화 (외전 후기) (573/573)

근육조선 573화

2부 외전 16화 태량붕탁(4)

예당의 영수 김익도 나름 유학을 배운 자이니 경신대기근에 직면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일단 부족한 2,000만 석 미곡의 수입부터가 급선무였으니 영의정 이완은 관료 모두를 집결시켜 논의를 시작하였다.

“보통 미곡의 여유는 일 할에 불과함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오.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다소 적으나 아국의 각지에는 환곡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벌충할 수 있소. 그러하니 하주도와 대양도의 미곡을 일 할 조금 넘게 얻어올 수 있을 거요.”

“그럼 대략 육백만 석 정도를 얻어올 수 있겠군요. 혹여나 미주와 호주에서 식량을 수입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특히 미주는 식량의 보고나 마찬가지라 하였습니다.”

김익은 미주와 호주를 내세웠지만 다른 관료들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이완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송시열은 평상시에 매몰차게 꾸짖던 모습과 달리 오히려 김익에게 편안한 표정으로 가르치듯 말하였다.

“물론 미주의 미곡이 남는 지역이지만 거리가 문제요. 아국의 함선을 최소한의 수량만 제외하고 모조리 징발할 때 총 배수량(排水量)은 십사만 돈에 불과한 형편이오. 미곡으로 따지면 대략 백오십만 석이지. 이 함선들이 모두 미주에 다녀오면 어찌 되겠소.”

“미주에 함선이 도착하고 다시 돌아오는 데 넉 달이 걸리니 기껏해야 오백만 석을 들여오는 것이 전부이겠군. 우암 덕분에 내 시야가 트였으니 미주에서 곡식을 들여오는 대신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최대한 사민(徙民)합시다.”

“옳은 판단이오. 양산(襄山: 김익의 호)의 의견대로 미주와 호주는 백성을 사민하고 돌아오는 배로 약간의 미곡을 들여오면 한계요. 이제 미곡 필요량이 천이백만 석에 달하는군.”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어차피 미주는 백성을 얼마든지 보내도 충분한 고장이 아닙니까? 일단 화란(네덜란드)의 상인들이 드나드는 대양도까지 백성을 사민한 뒤 화란의 상인을 통해 미주로 사민을 시킵시다. 그렇게 하면 추가로 백만 명을 보낼 수 있습니다.”

유성룡이 미주를 개척하지 않았으면 식량이 부족해 백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렸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지만 어디까지나 기근으로 죽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을 수준의 여유일 뿐이었다.

조선은 현시점에서 최강의 수군 전력을 자랑하였다.

서양의 패자라 자처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50척의 상선과 40척 이상의 군선을 소유하였지만 조선은 500돈(450톤) 이상의 선박만 200척 이상을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세계 해양 물동량의 4할을 차지하는 조선이었지만 경신대기근은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야 할 시련으로 다가왔다.

구매 자금이야 연금을 털어내면 충분하지만, 거리와 구매 장소의 문제가 있으니 계산을 거듭하던 관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저희가 의견을 모아보니 명국에서 육백만 석의 미곡을, 왜국에서 육백만 석의 미곡을 구매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백성 일백만 명을 사민 시키면 여유가 남을 것 같군요.”

“제 의견은 다릅니다. 양산 대감의 의견은 이번 한 해만 기근을 막아낼 때의 계산이 아닙니까? 기근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전 순과 서에서 각기 오백만 석의 미곡을, 명국과 왜국에서 팔백만 석의 미곡을 구매해야 할 것입니다.”

김익과 송시열은 서로의 의견이 대립한 순간 눈빛이 마주치고 이를 갈아댔다. 예당의 의견은 경신대기근이 이번 한 해만 이어질 것이라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었다.

반면 송당은 다음 해를 내다보고 있기에 김익은 호통을 쳐댔다.

“우암 대감의 의견은 말도 안 되오! 이러한 기근이 두 해 이상 이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시구려. 더군다나 순과 서? 두 도적놈의 후손에게 고개를 숙이고 곡식을 사들인다 하였소? 그러하면 천하의 예법이 어찌 되겠소!”

“양산 대감께서도 옳은 말을 하였지만 다음 해에 평범한 기근이 발생하면 어찌 하겠소. 환곡이 바닥을 드러냈으니 환곡을 채워두어야 기근을 막아낼 수 있지 않겠소!”

“얼마 전까지 전쟁을 벌인 순과 제에서 곡식을 사들이면 못해도 한 섬에 은자 두 냥은 부를 것인데 이를 어찌 감당하려 하시오! 은자 이천만 냥을 들여 일천만 석의 곡식을 사들이고 평년이 되면 헐값의 묵은 쌀이 될 뿐인데!”

예당과 송당의 첨예한 대립은 영의정조차 수습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논의가 끝난 뒤 장계를 확인한 이면은 한참을 고민하다 김익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두 해에 걸쳐 대기근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일세. 좌찬성의 의견도 존중하여 제에서 약간의 곡식을 사들여 요동의 병사에게 배급하고 순의 곡식은 해군에서 사용할 것이나 일백만 석이면 충분하겠군.”

경신대기근을 그 시대 사람들의 상식에 맞게 해석한 이면의 뜻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기에, 송시열은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아내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나라에 화가 닥치었으니 화에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할 것이오. 앞으로 기근이 물러날 때까지 입신체비를 중단할 것이며 이를 위해 쓰이던 식료를 모조리 백성들을 위해 내놓을 것이오.”

“낭군께서 이토록 국가의 변을 중하게 생각하시니 저 또한 뜻을 같이하겠습니다. 지아비에게 서신을 보내고 친인척들에게 사태의 중함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송당의 대처는 한결같았다.

입신체비를 위해 단백질을 공급하던 닭과 돼지는 모조리 도살되고 그 곡식은 헐값에 시장에 풀려 나갔다. 심지어 걸인이 보이면 배불리 먹이고 옷을 씻기기까지 하였다.

이는 윤휴의 의견 덕분이었다.

“아무리 곡식을 들여온다 하여도 그 곡식이 닿기 전에 명을 달리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네. 그러하니 이러한 이들의 시신을 승려들과 협력하여 화장(火葬)하도록 함세.”

“좋은 대처이지만 부족하다네. 전염병이 돌면 물을 통해 돌아다니는 일이 자주 있다네. 길거리에 솥을 걸고 물을 끓여 전염병의 경로를 차단하면 어떠하겠는가? 내가 알기로 호열자(콜레라)는 끓인 물에서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하였네.”

“그러하면 우리가 소유한 산림도 백성을 위해 내어주자는 말인가? 좋은 일이니 당장 하세!”

예당에서는 평상시보다 다소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며 송당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였지만, 한 해가 지나고 1671년이 되어도 기근은 그칠 줄 몰랐다.

음력 4월에도 눈이 내리는 기상이변은 모든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나리!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보리의 싹이 트다 모조리 얼어 죽고 메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이래서는 메밀죽만 먹다 피골이 상접하여 쓰러질 지경입니다.”

“날이 풀려서 모내기를 준비했는데 모가 한 뼘이 넘게 자라 모판을 뒤엎을 시기가 되었는데도 논이 얼어붙어서 모를 심지 못하였습니다. 이러면 볍씨가 없어 벼를 심을 수 없습니다!”

“당장 주상전하께 아뢰어서 더욱 많은 곡식을 들여와 달라 청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일단 가구당 한 섬의 곡식을 나누어줄 것이니 이것으로 주린 배를 달래도록 하게.”

관료들이 백성들을 달래려 애쓰는 사이 이미 기근에 대한 소문은 조선의 적대국인 순과 서에 퍼진 지 오래였다.

작년엔 조선에 곡식을 평범한 가격에 팔았던 두 국가는 국서라 볼 수 없는 천박한 서한을 보내왔다.

[부모가 자식을 먹는 참극을 막으려면 미곡 한 석당 은자 석 냥을 내시오.]

“미곡 한 석당 은자 석 냥이라 하였지. 내가 송시열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을 어설프게 참극을 막으려다 화를 입었구나. 일단 순에 사절단을 보내 미곡 일백만 석을 사들이도록 하여라.”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격이었지만 송시열도 이면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었기에 책망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순나라에서 수입한 곡식들의 품질이었다.

막 도성으로 옮겨진 곡식을 배급하려고 다시 옮겨 담는 순간 군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 개놈의 새끼들! 맨 위에 쌓은 곡식만 멀쩡한 곡식이고 나머지는 쌀겨가 절반에 모래가 섞인 썩은 곡식이잖아! 이딴 곡식을 한 섬에 은자 석 냥에 팔아치우다니!”

“지금 뭐라 하였느냐! 곡식의 태반이 엉망이라고?”

가뜩이나 기근으로 인한 피해를 막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이면이 곡식 자루를 직접 확인하였으나, 제대로 된 곡식은 고작 일 할에 불과하였다.

이마에 핏대를 세우던 이면은 곡식자루를 집어 던지다 가슴을 움켜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바마마! 어서 의원을 불러와라! 아바마마 어서 일어나시옵소서!”

비극은 계속되었다.

혼절하여 자리에 누운 이면을 대신하여 국정을 수행하던 세자는 경기도까지 나아가 백성을 위무하고 미곡을 나눠 먹던 중 폐렴에 걸려 급사(急死)하였고, 조선의 통치는 서연(西沿)대군이 대행하게 되었다.

서연대군은 세자의 장례를 마친 뒤 선언하였다.

“순과 서 두 망종들이 도를 모르고 날뛰는 탓에 아국이 피해를 입은 것이오. 쌀 한 석에 은자 두 냥이라면 사들일 수 있지만 그보다 높은 값을 부르면 사들이지 않는다고 전하시오.”

“어차피 곡식을 팔지 않을 자들이 아닙니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수행하시며 그러한 망종들에게 집착하지는 마십시오.”

“전하라는 말이 전(戰)하라는 말이올시다! 아바마마께서 병세가 완연하시며 형님저하께서 명을 달리하셨으니 이는 모두 순과 서의 탓이 아니오!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놈들의 심부(心府)를 공격하면 놈들도 곡식을 내어놓을 것이오!”

송시열에게 밀려 정치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한 김익은 군문과 손을 잡고 대리청정에 들어간 서연대군의 편을 들었다. 이를 만류하여야 할 대비(大妃)도 손자의 죽음에 호응하였으니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모래와 겨가 섞인 썩은 곡식을 배급받은 군인들조차 이에 호응하였으니 조선군은 기근 속에서도 명나라로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반 강압적인 거래가 시작되었다.

“황상께 아뢰옵나이다. 지금 조선의 형편이 좋지 않으니 명국을 위해 군사를 사용하는 일도 힘에 벅차던 상황이었으나 충심으로 응하였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미곡 일천오백만 석을 내어주시옵소서.”

“내가 뭘 어찌하란 말인가! 미곡 일천오백만 석? 그리하면 우리 명나라가 기근에 시달림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거래가 아닌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이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명나라의 상황이었다.

명나라에서 사실상 미곡을 강탈한 조선군은 남경을 시작으로 하여 무차별적 공세에 돌입하였다.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가 자신들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순과 서는 양면으로 진격하는 조선에게 백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사이 백성들은 참혹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송시열은 오늘도 도성 인근을 돌아보다 바가지를 든 아이들을 마주하였다.

“너희들은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 아니더냐. 아버지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있을 것이지 이 흉험한 시기에 왜 동무들끼리 모여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것이냐.”

“아버지께서는 순나라와 싸우러 가셨고 어머니께서는 미곡 약간을 받으셨는데 도둑들에게 강탈당하시고 화병이 생기셨습니다. 제가 밥을 얻어가지 않으면 어머니께서는 죽습니다.”

본래 역사에서는 곡식을 들여올 방법도, 들여올 의지가 있다 하여도, 운송수단 자체가 없어 굶어 죽은 자들의 시신이 도처에 널리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비극이었지만,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그런 끔찍한 사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처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해 죽은 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이런 상황에 군을 움직이면서 사회 질서도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다.

송시열은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 집에서 따듯한 밥을 먹고 몸을 씻은 뒤 어머니를 모셔오거라. 내가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여력을 털어내면 너희들 정도는 배불리 먹일 수 있단다.”

이미 송시열을 비롯한 송당은 굶주린 이들을 구휼하기 위해 자신의 근육도 포기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니 집안 식구들은 고작 주먹만 한 꽁보리밥에 다 쉬어빠진 김치를 먹어야 했지만 송시열은 어떠한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근육이 불효로 사라졌다면 고개를 들길이 없지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라진다면 더욱 큰 효도가 아닌가. 열성조(列聖朝)께서도 이를 책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미 서연대군과 연합하여 정계를 장악한 예당과 달리 송당은 근육을 포기하고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며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

모든 노력이 결집된 덕분에 경신대기근의 사망자는 극도로 감소하였다.

기록상으로 100만 명, 추정 사망자 300만 명의 대재앙을 가져온 경신대기근은 36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참극으로 기록되었다.

마침내 1672년, 경신대기근의 이상기후가 사라지고 보리의 수확이 시작되었을 때 이면은 중병을 앓으면서도 마지막 명을 내렸다.

“서연대군이 비록 예법을 어겨 대리청정을 하였지만 이는 책망할 수 없는 일이다. 서연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이니 명…… 명…… 명을…….”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한 이면은 다시 정신을 잃고 숨을 거두었다. 그가 의도한 바는 명나라를 수호하라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미처 전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목종이라 불리게 되는 서연대군 이휴는 근적을 중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상왕에게 제대로 된 양위를 받지 못한 자신의 어설픈 지지기반을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재산을 모조리 상실한 송당은 이런 정국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기근이 지나갔으나 다음 기근이 또 이어질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저리 사치를 벌이고 백성을 멋대로 동원하다니 이 나라의 앞길이 어찌 될 것인가.”

기근이 물러가고 십 년이 지났지만 후유증이 이어졌다.

궁궐을 더욱 크게 고쳐 짓고 근적과 같은 행실을 벌이며 순과 제에 대한 공세를 끊지 않으니 백성들의 삶은 나아질 길이 없었다. 예전처럼 여유를 가지고 입신체비에 손을 대는 백성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백 년 전의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는 팔 할이 유생이면 이 할이 백성이었지만 세금이 오른 뒤에는 백성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송시열은 간언을 시작하였다.

“신 송시열 아뢰옵나이다. 기근이 물러나고 백성들의 삶이 평안해졌다고 하오나 세금이 늘어나고 더욱 큰 궁궐을 지으며 고난을 겪고 있사옵니다. 주상전하의 권위는 백성의 평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오니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정 뜻이 그러하면 백성들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재산을 내놓을 것이지 어찌하여 비단으로 만들고 흉배를 수놓은 관복을 입고 있는가. 영상인 김익은 은자 오천 냥을 내놓았는데.”

“영상대감의 재산에서 은자 오천 냥이 나올 길이 없사옵니다. 이는 백성들을 현혹하고 갈취하여 멋대로 부풀린 재산이 분명하옵니다. 이를 엄히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외척의 자리까지 거머쥔 예당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송시열이었지만, 이휴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줄을 건드린 송시열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이미 유배형이 사라진 조선이지만 사실상의 유배형이 송시열에게 내려졌다.

“아무래도 기근에 시달리며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선 것 같구려. 내가 특별히 마차를 내어줄 것이니 삼 년 동안 흑산도에 부임하여 근육도 기르고 머리도 식히고 오시오.”

좌찬성을 흑산도에 부임하게 만드는 말도 안 되는 처사였지만 이어지는 처사는 송시열의 어처구니를 쏙 빼놓아버리기 충분하였다. 비루먹은 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가 송시열이 타고 갈 물건으로 배정되었다.

분노를 억누른 송시열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원양 내수린 극단의 단장을 비롯한 내수린꾼들과 북인들에게 연락을 넣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송시열이 강제로 흑산도에 부임하기 위해 마차에 오르는 날. 그는 편복인을 연기할 때 사용하던 가면을 착용하였다.

“왜 우암 대감님께서 흑산도로 부임하신단 말인가! 주상전하께서 제정신이신가!”

“저 복면은 무엇이지? 예전에 편복군이라 부르는 이들이 착용한 복면이 아닌가?”

“그게 말이나 돼? 편복군이 나타난 건 대감께서 과거를 보시고 오 년 뒤의 일이야. 그 전에는 편복이…… 잠시. 대감께서는 예전에 내수린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

“선친께서 내수린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태량이라는 내수린꾼이라 칭찬하신 적이 있지.”

의문에 휩싸인 백성들은 한양에서 출발한 송시열의 행렬을 따라 경기도까지 항하였다.

그리고 소식을 전해들은 북인들이 일제히 집결하여 편복인의 복면을 쓴 채 송시열의 귀양 행렬을 막아섰다.

이제 칠순의 노인이 다 된 관장은 송시열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보거라! 저분이 편복군의 시조인 초대 편복인이시다! 수많은 근적들을 벌하고 또 벌하다 결국 근적들에게 몰려 저렇게 귀양을 떠나지 않더냐!”

“그럼 초대 편복인인 붕탁이…… 내수린꾼 태량이라고!? 그럼 호가 태량붕탁이야?”

이런 거추장스러운 환영회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북인의 평소 생활 습관이 저러니 어쩔 수 없었다.

송시열을 이송하던 군관은 눈치를 보다 쏜살같이 달아났고, 주변에는 송시열의 정체를 알아차린 백성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태량붕탁! 태량붕탁! 태량붕탁!”

“그만들 하시오. 내가 주상전하께서 내린 명을 받아 흑산도로 부임하는 길을 막다니. 이는 다른 이들이 이끈 것이 아닌 그대들 본연의 뜻이 분명하오?”

“제 스스로 나와 길을 막았습니다! 제 부친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대감님이 아니었다면 제 모친께서는 명을 달리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렴요! 대감님과 뜻을 함께한 송당이라는 분들 모두가 자신의 근육과 재산을 백성들에게 내어주지 않았습니까! 제 목숨을 구명하였으니 이 목숨을 대감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백성이 누가 이끌지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 왕의 뜻을 거역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예당과 송당에 속하지 않고 중립을 표시한 신료들조차 이 사태를 심상치 않게 여겼다.

목종은 다급히 조치를 내렸다.

백성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군관을 파견하였지만,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올라온 유생들은 각자 지력상소를 준비하고 십조 거리 앞에 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호위하는 이들은 북인들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흑산도로 향하지 않고 왕명을 거부한 송시열이 있었다.

이천 명이 넘는 유생과 사대문 밖에서 태량붕탁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백성들 일만여 명이 도성을 포위하였다.

“주상전하께 아뢰오니 덕으로 나라를 통치하시고 근적들이 한패가 된 예당을 모조리 내치어 주시옵소서! 신들은 주검이 될 때까지 지력상소를 멈추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이미 군관들조차 자신에게 고개를 돌린 형편이었다.

사실상 정치적인 사형을 선고받은 목종은 죽을 바에는 최대한 깔끔하게 죽기 위해 지력상소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조카에게 양위하여 상왕의 자리를 보장받는 선에서 목숨을 부지한 격이었다.

왕명을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송시열은 더 이상 정치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근적도 자신의 기반이 무너진 형편이라 순식간에 고립되고 각종 비리 혐의가 포착되어 형무소에서 일생을 살게 되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송시열은 다시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말하였다.

“내가 젊을 적에 구주에 가서 백성들을 이끌어 계몽(啓蒙)을 수행하기로 하였으나 백성들이 스스로의 뜻으로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섰소. 다음 주상전하께서 올바른 통치를 한다면 이 나라는 천 년에 걸쳐 발전할 것이 분명하구려.”

목종에게 양위를 받아 새로 왕위에 오른 성림대군은 제도를 정비하고 백성을 위한 통치를 실시하였다.

송시열은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성림대군의 스승이자 조언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1695년 을병대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송시열은 곡기(穀氣)를 끊고 비루한 목숨을 백성을 구하는 데 쓰겠다고 하며 명을 달리하였다.

이를 깊이 슬퍼한 성림대군이었지만 송시열과 스스로 해산한 송당의 뜻을 따라 을병대기근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근육으로 성립된 조선은 이후 백성의 교화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이 노력은 근대에 와서 빛을 발하였다.

질 좋은 철물을 공급한 순간, 다른 국가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모든 이들의 근대화(筋代化)가 시작된 것이다.

#작가의 말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근육조선은 완결되었습니다. 내일 후기를 통해 추후 계획에 대해 약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후기

2019년 5월 1일 연재를 시작한 소설이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에 2년 이상 연재되어 총 573화에 달하는 장편 작품이 되었습니다. 초보 작가로서 이렇게 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여러분 덕분입니다.

처음에는 보디빌딩과 대체역사물을 억지로 결합하여 과연 이 소설이 성공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이게 옳은 말인가? 혹시나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완결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당시에는 2부작 계획도 없이 오로지 수양대군이 얼마나 역사를 변화시킬까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욕심이 생겨 변한 조선이 나아간 방향을 서술하기 위해 외전을 집필하였습니다.

외전을 집필하니 지나치게 장대한 시기를 15편의 외전, 그마저도 실질적으로는 8화 내외의 묘사만으로 완성하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중요한 시기인 16세기 말엽의 서술에는 아예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완결이 다가올 무렵, 독자 여러분들께서 제 작품을 계속 보아주신 덕분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기껏해야 플롯 약간을 작성한 2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마침내 1부 총 242화에 덧붙여 2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3부 연재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 지식도 부족하며 1부와 2부의 내용에 맞추어 3부를 연재하는 일은 소설 두 편을 집필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존 설정을 참고하다 간혹 설정 자체의 오류가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내용을 계속 변경해야 하니까요.

근육조선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장기 연재된 작품이고 제가 초보 작가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작품을 집필하여서 오류나 설정 문제 혹은 문체의 문법이나 오탈자와 비문이 제법 많습니다.

더군다나 초보 작가로 장편을 연재하며 부족한 글재주가 조금이나마 늘어나게 되어서 예전에 연재한 분량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완결 되었으니 시기는 아직 미정이지만 E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차기작 준비 대신 작품 초반의 수정과 오류 정리 작업을 먼저 진행하려 합니다.

총 편수는 늘어나지 않을 내용이지만 초반부 진행과 전개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이 가해질 예정입니다. 처음 연재된 내용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께는 다소 불편함을 끼쳐드릴 수 있지만 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10월 초부터 11월 말 까지 순차적인 수정이 가해질 것이며 이후 12월부터 차기작 준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차기작에서도 만족스럽게 제 소설을 읽으실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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