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71화
2부 외전 14화 태량붕탁(2)
송시열의 근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삼대운동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삼대운동으로 두각을 드러내면 반강제로 입신체비사로 발탁될 염려 때문에 스스로를 절제한 송시열의 노력 덕분이었다.
“자네는 참 이상하단 말이야. 삼대운동이 팔백 근에서 팔백오십 근으로 늘어났을 뿐인데 내수린 기술은 일취월장하니 상리와 맞지 않아. 혹여나 힘을 속이고 있는가?”
“제 재주가 심부근육(코어근육)의 발달에 치우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긴 그런 사람도 있을 법하지. 여하튼 재주가 좋으면 그만이니 계속 노력해 보게.”
창원부정의 차남 이응강(李應岡)은 더 이상 종친이 아니고 평범한 사대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포나루의 내수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늘도 여섯 시간에 달하는 입신체비와 내수린 수업을 마친 송시열은 일정이 끝난 뒤 개인수련에 몰두하였다.
“내수린 일정을 마치면 보통 내수린꾼들은 대자로 뻗어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다. 내수린을 끝내고 근적을 찾아 벌하려면 근력은 물론이요, 근지구력도 키워야 하지.”
근력을 발달시키려면 8회 내외의 횟수로 입신체비를 시행하는 것이 답이다. 반면 횟수가 늘어날수록 근력 대신 근지구력이 발달하며 이는 약 40회에서 정점에 달한다.
40회를 반복하려면 최고 기록의 4할 3푼, 약 43%가 한계이다.
반면 송시열의 어깨 위에 올라간 대역기의 무게는 150근(96㎏)에 달하였으니 평상시에는 공좌(스쿼트)가 350근에 달한다는 증거였다.
“서른…… 넷! 서른다서! 크허어억!”
35회의 공좌를 반복하다 뒤로 자빠진 송시열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대자로 뻗어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역기에서 공령 하나를 빼내고 다시 공좌에 돌입하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수양자께서는 무리하지 않으라 하였지 입신체비를 그만두라 하지 아니하셨다. 나는 아직 무리하지 아니하였다.”
19세의 나이에 수양대군의 젊을 적의 기록, 아직 진양대군 시절에 기록한 삼대운동 1,000근을 달성한 송시열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근육을 키웠다.
세상은 넓으며 수많은 근적이 있을 것이니 아직 자신의 경지는 부족하다 여겼다.
다시 송시열의 어깨 위에서 출렁거리는 공령은 마침내 마흔 번을 움직였고 송시열은 온몸의 힘을 소진하였지만, 부모님이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주신 유청분말을 삼켰다.
마침내 이 년의 수련이 끝나고 이응강의 수료증을 받아 어엿한 내수린꾼이 된 송시열은 신장이 지구척으로 5척 반(183㎝)이며 체중이 155근(100㎏)이 되는 우람한 체격으로 돌변하였다.
이응강은 송시열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자네는 내 인정을 받고 모든 기본기술을 능숙히 발휘하며 고급기술의 접수도 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엿한 내수린꾼일세. 내 자네의 재능을 알고 있으니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데 원하는 곳이라도 있던가?”
“저는 고작 스물한 살에 불과하니 세상을 돌아보며 마음이 맞는 내수린 극단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친께서는 스물다섯까지 내수린을 행하라 하셨으니 평생 내수린만 하고 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네. 내수린꾼이 되어서 평생을 살면 훗날에 골병이 들어 고생하는 경우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세상을 알아본 뒤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것도 답이지.”
좋은 내수린 극단을 소개해 주려는 이응강의 뜻을 거절한 채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 송시열이 향한 곳은 북인들이 운영하는 사설 역참이었다.
송시열의 체격을 확인한 북인들은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자네 귀가 만두처럼 부풀어 있으니 젊은 나이부터 내수린을 익혔군. 자네 혹시 극단에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면 극단이라도 찾고 있는가?”
“극단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주유하며 많은 것을 배우려 하니 가급적 이 수려한 강산을 많이 돌아보는 극단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가 참 대범하니 좋군. 알다시피 내수린 극단은 각 목(牧) 이상에 고정적으로 있는 목극단과 한 개 도 단위로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도극단이 있다네. 반면 우리 북인들은 사설 역참을 따라 움직이는 대규모 극단을 운영하지. 어서 말에 오르게나.”
말에 오른 송시열은 근래에 들어 북인과 백정들이 가장 많이 이주하는 요동의 길목 의주에서 한 극단을 만나게 되었다.
원양(原壤) 내수린 극단의 단장(團長)은 송시열의 등을 두드리며 단숨에 그를 극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덩치도 우람하고 내수린 수련도 많이 쌓은 젊은 친구인데 우리 북인 극단에 합류하게!”
본관을 시작으로 성명과 자(字)를 적는 구간이 있었으나 가장 널리 쓰이는 호(號)를 적는 곳이 없었다.
의아한 송시열이 붓을 멈추자 관장은 송시열의 외모를 살펴보면서 말하였다.
“유생들 가운데 내수린을 익혀 극단에 참가하였지만, 신상이 퍼져 나가 골치를 썩이는 이들이 있다네. 호는 널리 쓰이지만, 별호(別號)야 아무렇게나 지을 수 있으니 내수린용 별호를 지으면 된다네.”
“내수린용 별호라 하셨습니까? 그런 별호에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젊은 시절 서애 대감과 겨뤘던 내수린꾼 칸한군(몽골어의 칸 + 칸의 한역 한 + 군: 君, 킹왕짱)도 있고 상대를 관으로 보낸다면서 지은 관직행(棺直行: 관으로 보내 버린다)라는 별호도 있다네. 어떠한 별호가 좋을까…….”
만사에 호탕한 북인들이니 저런 별호를 지어도 한 점의 부끄럼이 없었지만 송시열은 엄연히 유학을 배운 자이기에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엉뚱한 별호를 얻을까 두려운 송시열은 막 짓고 있는 건물의 재목을 보며 말하였다.
“제 장기가 심부근육이며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심부근육이 곧게 선 나무와 같다 하였습니다. 큰 기둥을 뜻하는 태주(太柱) 대신 태량(太樑)이라는 내수린 별호는 어떠합니까?”
“태량이라. 나쁘지 않은 별호인데? 부르기도 좋고 입에도 착착 감기는군.”
간신히 신예 내수린꾼 태량이라는 별호로 불리게 된 송시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극단에 합류하였다.
이미 십여 년 이상 활동한 내수린꾼들은 새로 가입한 송시열의 몸매를 보며 이런저런 평가를 내렸다.
“근육이 아주 아름답게 발달했는데. 이거 조금만 더 키우면 모든 절의 사천왕상의 표준이 된 수양대군의 몸과 흡사할 정도야.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질(지방)이 부족하니 문제로군.”
“자네가 한양에서 배울 적에야 의원이 항시 치료하였지만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정양할 시일이 나지 않아서 문제야. 그러니 많이 먹고 또 먹어서 몸을 불리게.”
송시열의 앞에는 돼지 등뼈탕과 당수육(조선식 바비큐)이 잔뜩 놓였는데 이걸 다 먹는다면 온몸의 지방이 불어날 수준이었다.
내수린꾼들은 송시열의 앞에 고봉밥도 놓아주며 말하였다.
“혹여나 왜인 가운데 힘 좀 쓴다는 놈들처럼 몸이 불어날까 염려하는가? 어차피 근육도 늘리고 지질도 늘려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네. 대충 스무 근을 불리면 적당하겠지.”
“이렇게 저를 위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몸을 가꾸겠습니다.”
몸을 불린 송시열이었지만 첫 공연에서 접수역할로 거세게 메쳐진 다음에도 몸이 멀쩡하니 지방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지질이야 언제든지 걷어낼 수 있으니 송시열은 내수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었다.
석 달 동안 세 번의 공연을 마친 송시열은 마침내 평양 인근의 마을로 향하였다.
내수린을 공연하기 전 산천을 돌아본다며 사방을 돌아다닌 송시열에게 드디어 근적이 포착되었다.
“요즈음 들어 소출이 좋지 않은데 이놈의 자식들이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더냐? 내가 네놈을 짊어져서 논두렁에 집어 던져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나리! 요즘 들어 서리가 자주 내려 곡식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천기(天氣)는 거스를 수 없으며 저희도 소작료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
“법은 멀고 근육은 가까운 법이다. 법으로 정해진 소작료는 사 할이지만, 오 할로 늘릴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고 있어라.”
소빙기 때문에 작황이 감소하여 백성들도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근육만 앞세운 근적들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송시열은 나무 뒤에 숨어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마침 좋은 소리가 나왔다.
“이틀 뒤에 내수린 극단 세 개가 모여 내수린을 실시한다던데 그걸 보고 흥분한 마음이나 달래게 기생을 끼고 술이나 한잔하면 어떠하겠나?”
“그러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이틀 뒤에 저 정자에서 해시(亥: 오후 9시)에 만나도록 함세. 우리 여섯이 모여 마실 것이니 술 한 동이로는 부족하겠군.”
저들을 벌할 시간과 장소도 알았지만 단순히 두들겨 팬다면 유생이 유생을 구타한 사건이 될 뿐이다.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장에게 이번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내수린 공연이 복수자설 중편(中篇)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용이라 하였습니다.”
“자네도 잘 알고 있군. 평양 내수린단과 협력하여 복수자설 중편의 대미인 영웅호걸들이 성길마왕의 부하 대성팔장과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려 하네. 일곱 영웅호걸이 일백 명과 격전을 벌이면 얼마나 위엄이 넘치는 장관이겠나?”
복수자설 중편의 악당은 서로의 혼(魂)을 공유하는 성길마왕의 부하 대성팔장(大星八將)이 악당이었다. 소설의 호걸들은 부하를 동원하고 서로를 회복시키며 끝없이 달려드는 대성팔장을 상대로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복수자설 전편이야 영길리의 해적을 상대하였으니 일개 극단이면 재현할 수 있었지만 중편은 규모가 달랐다.
최소 세 개 극단이 협력하여 재현하기로 하였으니 단장은 송시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네는 힘이야 충분하니 대성팔장 가운데 한 명을 담당하면 좋을 것이네. 영웅호걸이야 일백 명을 상대로 열 명을 메치고 신농도의 영웅 마우이는 마흔 명을 메쳐야 하니 힘이 많이 들겠지만 자네 배역은 합만 맞추면 되니 염려 말게.”
“제가 마우이를 담당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제 근력이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당할 수 있겠나? 마흔 명을 메친다면 가장 간편한 기술인 측폭격(사이드워크 슬램)으로 따졌을 때 백오십 근 영압(밀리터리 프레스)을 사십 회 수행하는 거라네. 상대가 호응해줘서 힘이 좀 덜 들겠지만 자네가 백오십 근 공좌를 사십 회 수행할 정도라면 몰라도…….”
“단장님께 보여드리지는 않았지만 제힘은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직접 보여드리지요.”
정말 사십 회의 공좌를 수행한 송시열의 모습을 확인한 단장은 그의 근력과 기술이 정점에 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다른 내수린 극단의 콧대를 눌러줄 겸 송시열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러분! 저희 원양 내수린 극단은 신예 내수린꾼조차 비범합니다! 이번 복수자전 중편에서 마우이 역을 담당한 내수린꾼은 석 달 전에 가입한 태량입니다!”
송시열의 재능을 알고 있는 원양 내수린 극단의 내수린꾼들은 그러려니 하였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은 달랐다.
고작 경력 석 달이 가장 험난한 배역을 담당하였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대며 태량이라는 별호를 외쳤다.
이윽고 시연된 내수린 공연에서 송시열은 전력을 다해 올곧은 자세를 유지한 채, 상대를 집어 던지고 메치며 복수자설의 영웅 마우이의 재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링에서 내려오자마자 앞으로 자빠지며 실신한 척하였다.
당연히 의원이 송시열을 진료하였고 그는 과로로 인한 빈혈(貧血)이라고 대략적인 처방을 내렸다.
따로 배정된 별실에서 죽은 듯이 잠을 청하는 송시열이었지만 구석에 달린 시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하다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역시 나는 마우이같이 힘만 앞세운 영웅은 취향이 아니라니까. 덕국대장처럼 기술이 넘치거나 은가이(솔로몬의 창세신)의 영웅처럼 관절 기술을 걸어서 상대를 무너트려야지.”
보통 사람은 일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였지만 송시열에게는 여력이 남아 있었다.
그는 밤에 움직이기 편하게 가벼운 복장을 입은 뒤 방 밖으로 나오려 하였지만 얼굴이 문제였다.
“아무리 몸을 혹사시킨 사람이라 하여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도 용모파기(容貌疤記)가 포착되면 답이 없다. 근육이야 다들 흡사한 형상이니 들키지 않겠지만 외모가 문제로군.”
북인이 주 구성원인 극단답게 북인의 취향대로 복면이나 각종 분장도구가 있었으며, 개중에는 애단현에서 내수린을 벌였던 고란이 사용한 것과 흡사한 박쥐 형상의 복면도 있었다.
송시열은 가면을 확인하며 피식 웃고 이를 착용하며 말하였다.
“예전에 장수 고만도(고란의 호)가 스스로를 편복(蝙蝠: 박쥐)인이라 칭하며 서애 대감과 합을 맞춘 적이 있다지. 편복의 힘을 본떠 죄인을 때려잡는다 하였으니 참으로 좋구나.”
복장도 검은색으로 갖춰 입은 송시열은 야음을 틈타 성 밖으로 향하였다.
혹시나 자신들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봐 방 안에는 몸에 열이 올라 씻고 오겠다는 쪽지까지 남겨두었다.
송시열이 들은 대로 마을 구석에 있는 정자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몸을 숙여 정자 근처까지 접근하니 근적들은 자신의 팔뚝을 자랑하며 술을 정신없이 들이켰다.
수풀에서 재빨리 기둥을 밟고 추녀를 부여잡은 송시열은 용수철처럼 지붕 위로 올라가 숨을 들이켰다.
본래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탁하고 한껏 내리깐 목소리를 낸 일갈(一喝)이 쩌렁쩌렁 사방을 울렸다.
“근적들을 벌하려 내가 왔다! 백성을 핍박한 너희 근적들은 어서 벌을 받으러 나오너라!”
발돋움이 지붕을 강타하자 기왓장이 쏟아지며 서까래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상에 나무 조각과 지붕 안에 있는 진흙이 떨어진 근적들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이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송시열은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정자 입구에 우뚝 서자 근적들도 정신을 차렸다.
박쥐를 형상화한 가면과 속에 근육이 꿈틀거리는 흑색 복장을 확인한 근적 가운데 한 명이 송시열에게 주먹을 휘두르려 하였다.
“이 머저리 놈이 감히 술판을 더럽혀! 네놈을 두들겨 패고 관아에 넘겨주마!”
“관아로 가야 할 놈은 네놈이다!”
술에 취한 주먹보다 송시열의 반응이 빨랐다.
단 두 걸음을 박찬 송시열은 전신의 힘을 집중하여 어깨로 돌진하였고 그 거대한 근육에 적중당한 상대는 다시 정자로 날아가 주안상을 부수고, 여력이 남아 정자 밖으로 날아갔다.
“어서 덤벼라! 네놈들의 술이 백성들의 눈물이요! 네놈들의 안주가 백성들의 고혈이다!”
“힘 좀 쓴다고 까부는 거냐! 우리는 다섯 명이나 남아 있다!”
5명이건 15명이건 어설프게 근육만 단련한 이들이 송시열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먼저 달려오는 한 명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뒤 면직락을 날리자 상대는 송시열을 짓밟으려 하였지만, 송시열은 용수철처럼 몸을 굴리며 일어나 옆차기로 가슴을 걷어찼다.
메치고 업어치며 두들겨 패니 유생을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멀쩡하게 서 있는 이들은 없었다. 송시열은 근적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채 엄히 꾸짖었다.
“네놈들이 관아에 고발하고 싶으면 고발하여 보거라! 내 너희들이 백성들의 소작료를 멋대로 올리려 협박한 일은 이미 알고 있으니 법의 지엄함을 온몸으로 일깨워 줄 것이다!”
올바른 근육이 잘못된 근육을 바로잡았으니 근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사건이었다.
근적들은 관아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자신을 습격하였다 고발했지만, 송시열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어제 마우이 역을 실시하고 기력이 너무나 쇠하여 누워 있었습니다.”
“하긴 사람을 마흔 명이나 메쳤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자네는 계속 쉬게나.”
송시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평양 감사는 수많은 이들을 조사하였지만, 박쥐의 복면을 착용하고 근적들을 구타한 이를 찾지 못하였다.
심지어 관청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내수린꾼들이 풀려난 뒤, 근적들이 도를 넘어섰다는 소문을 퍼트리기에 이르렀다.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송시열의 행동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아예 소문을 미리 입수한 다른 마을로 말을 타고 달려가 근적들을 벌하니 3년이 지나 송시열의 나이 24세, 1630년에 이르러서는 그가 벌한 근적이 삼백 명에 달하였다.
“이번에 근적을 벌하는 협객(俠客)의 소문을 들었나? 호랑이 복면을 쓰고 백성들의 소를 멋대로 갈취해 잡아먹은 근적 여섯 명을 두들겨 팼다 하더군.”
“얼마나 힘이 좋은지 한 대를 맞으면 뼈가 무너지고 피부가 터져나가서 근적들이 붕탁(崩坼)이라 부른다더군?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백성들의 소문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송시열이었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25세가 될 것이며,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수린을 그만두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원양 내수린 극단은 그사이 송시열 덕분에 기세가 불어나 북인 내수린 극단 중 손꼽히는 경지에 올랐다.
관장이야 송시열의 행동을 알고 있었지만, 그 또한 근적들이 못마땅하기에 그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날 귀띔을 해주었다.
“자네가 근적들을 벌하는 협객임은 내가 알고 있다네. 나 또한 의리를 아는 사람이니 앞으로 삼 년 동안 적당한 사람을 선발하여 근적들을 벌할 예정이네. 자네는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관직에 오르면 될 것이네.”
“단장님께서 저를 이토록 아껴주시니 후일 관직에 오르면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나야말로 자네가 찾아오면 고마운 일이니 염려하지 말게. 그럼 누구를 협객으로 뽑아볼까?”
송시열과 악수를 나눈 관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송시열을 대신할 인재를 선발하기로 하였으니 할 일은 다 하였다.
그러나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음에도 송시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삼 년 동안 벌한 근적이 삼백 명에 달하지만 근적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기세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만 들려오는구나. 역시 부친께서 말씀하신 대로 관직에 올라야 하는 건가.”
내수린꾼 생활을 마친 채 관직에 돌아온 송시열은 그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여 일 년 만에 소과에 장원 급제하고 훈도 생활을 임실에서 보낸 뒤 대과에 방안(榜眼: 2위)로 급제하였다.
1633년 마침내 관직에 오른 송시열은 견식을 넓히라는 조언에 의하여 홍문관의 박사(博士: 정7품 관직)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처음 출근하였을 때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인 이이첨은 송시열의 몸을 훑어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거 명성이 자자한 후배가 아닌가. 호가 태량…….”
“대제학께서는 제 호를 잘못 알고 계십니다. 제 호는 우암(尤庵)이니 태로 시작하는 사사로운 별호는 사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거 내가 잘못 알고 있었으니 사과하겠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님께서 말년에 좋은 제자를 두었다 하였는데 자네가 여기에 올 줄은 몰랐군. 그런데 눈에 근심이 보이는군?”
한때 화공원에 근무하여 명성을 떨친 이귀의 아들인 이이첨은 본래 역사처럼 청렴하고 충의를 다하는 관료이기에 변한 역사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송시열 또한 이를 알고 있으니 이이첨에게 속삭이듯 말하였다.
“근래에 들어 근적이라 하여 입신체비로 얻은 근력을 삿되게 쓰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익히 알고 있다네. 사실 문제가 복잡한 것이, 예조도 우리 홍문관도 심지어 우리가 소속된 집현전도 이를 억누르려 하지만 교화(敎化)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더군.”
“교화에 한계가 있다 하셨습니까?”
“어찌 보면 아국을 향한 세상의 흐름이 문제이며 달리 보면 한계라 할 수도 있겠지. 일단 자네가 업무에 종사하기 이전에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알아야 하니 서책을 읽어보게.”
이이첨의 조언대로 서책을 한 아름 쌓은 송시열은 이를 탐독하며 조선의 역사를 상세히 알게 되었다.
조선은 개국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근육으로 극복한 국가였다. 이는 근육에 대한 찬양이 아닌 역사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였을 때에는 3만의 왜구에 나라가 위기에 몰렸지만 입신체비 이후 일본과의 두 차례에 걸친 분쟁을 압도적인 승리로 장식하였다.
건국 초기부터 압박을 가해온 명은 이미 나라가 붕괴될 조짐이 보여 유민이 탈출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은 여러 차례 명에 원군을 보낼 정도의 여력이 있었다.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오스만 제국도, 세조(이홍위)의 아들 환종의 치세에 서방에서 건너온 유럽의 개척자들도 조선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천하를 찾아봐도 조선의 적수가 없는 상황이니 송시열은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덮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조선이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견뎌오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가 되어 적수가 없어지니 백성을 비롯한 모두가 오만해지기에 이르렀구나. 결국 이 오만함이 입신체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적수가 없다는 말은 스스로의 힘을 사용해 위기를 극복할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았다.
사용할 곳을 잃은 힘은 멋대로 뻗어 나가며 스스로를 어지럽히게 마련이다.
근적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였다.
입신체비의 근본은 효도의 상징인 근육을 기르라는 옳은 뜻이었지만 이 뜻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왜 근육을 기르지 못하지? 이는 백성들의 효심이 부족하고 마음이 부족해서이다.’
그나마 유학을 가다듬은 입신체비였지만, 스스로 곪아가며 정체되기에 이르렀다. 송시열과 같이 이러한 현상을 파악한 이들이 점차 생겨났지만 자성(自性)을 되찾자는 목소리를 내려 하여도 외부 요인이 문제였다.
연전연승을 거두고 세상을 주름잡은 조선이 어찌하여 스스로 뉘우쳐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며 시대의 흐름이라 여기는 이들이 더욱 많았다.
이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송시열은 정치에 투신하기로 하였다.
#작가의 말
송시열의 이야기를 고작 3화에 쓰려고 한 제가 잘못입니다.
월요일 날 연참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외전을 완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구상 중인 내용만 따져도 1만4천 자가 넘어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