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70화
2부 외전 13화 태량붕탁(1)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공화국이 된 이유가 황제의 하야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막이 저럴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각종 신료들이 어마어마한 업무로 갈려 나가는 와중에 황제라고 업무가 줄어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제국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료들이 늘어나 스스로 업무를 분담하지만, 황제는 아무리 제국을 쪼개고 쪼개도 업무를 분담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조선시대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니 대한제국 황제의 업무량을 알 수 있었다.
종친들을 친왕으로 임명해 업무를 분담해도 황실 전체가 하루 12시간의 업무가 기본이리라.
심지어 내가 유성룡으로 살 때에 업무를 제한하라 하였으니 신료들에게 더 나누어주고 싶어도 나누어 줄 방법이 없었겠지.
“결국 대한제국은…… 뭐 이런 이야기는 대한공화국 사람이 더 잘 아실 것이니 넘어가겠습니다. 여하튼 러시아 왕국은 농토도 없고 어업도 험난한 와중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러시아 제국 시절에 왕실을 따라 이주한 해군 병력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게를 잡아서 외화를 충당했던 것이군. 근데 당시에는 냉동고도 별로 없었을 텐데?”
“처음에는 건어물을 만들거나 훈제로 대한제국에 수출하였는데 1930년대에 냉동고가 보급되며 상황이 변했습니다. 어차피 바다에 떠다니는 배가 녹슬어가는데 냉동고를 장착하고 어선으로 쓰자고 하셨지요.”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27세에 혈우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알렉세이 왕자를 대신하여 여왕 자리에 오른 올가 로마노바는 대한공화국에 짊어진 막대한 채무–연이율 1%에 상환기간이 120년이지만–를 갚으려 하였다.
타티야나의 건의에 따라 유일한 자원인 수산물 자원에 눈독을 들였지만, 어업 경험이 부족하니 신농도인을 대거 고용하여 고문단으로 사용했고 여기엔 마울리의 증조할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처음에는 가장 거대한 강구트급 전함을 어선으로 바꾸려 하였으나 여왕 올가에게 오촌 키릴 대공이 통사정을 하였고, 결국 키릴 대공이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39년 강구트 급을 개조하였다.
마울리는 당시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주며 말하였다.
“여기 보이십니까? 강구트 급이 해체되어 어선으로 쓰이게 된 날 키릴 대공의 묘비에 웬 이슬이 달라붙었습니다. 당시 기온이 영하 15도였는데 이슬이 얼지 않더군요. 심지어 이슬이 붉은색을 띠기까지 하였습니다.”
나 같아도 무덤 속에서 대성통곡을 하겠다. 자신이 죽자마자 열과 성을 다한 역작을 해체하여 어선으로 사용한다면 피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리라.
아무튼 마울리의 증조부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어선을 타고 신나게 게를 잡아들였다더라.
“강구트 급 전함은 어마어마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빙해(氷海: 베링 해)의 유빙 따위는 단숨에 무너트리며 게를 수천 톤 단위로 잡아들였습니다. 아무도 낚시를 못 하는 바다라서 증조부님이 은퇴하시고 조부님이 계실 때에도 게를 잡았지요.”
“게 하나만 잡지는 않았을 텐데? 이를테면 대구도 잡고 다른 게도 잡고.”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러시아 왕국에서 돌아오실 때에는 어선을 타고 오셨는데 그때가 되면 투이도(통가)에 잔치가 열렸지요. 보름 내내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고도 남아서 동네 고양이도 게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해산물에 그토록 까다로운 모습을 보였군.
마울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비행기가 착륙하였고 공항 수속을 마친 뒤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한명회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이미 조선시대에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으니 한명회의 업적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건물의 형태이다.
“석조군요. 이거 좀 까다로운 녀석인데.”
“바로 보았네. 투이도에 세워진 한명회 기념관의 문제가 바로 이거일세.”
지붕은 조선시대 양식인 기와지붕이었는데 기념관의 벽은 양 부장님의 말대로 돌이었다. 자연석으로 마구 쌓은 벽인데 이게 왜 이런 애매한 양식으로 지어졌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자 문화재부 직원이 나와서 설명하였다.
“청해군 한명회는 석성도(이스터 섬)에서 미주로 향하다 실패한 이후 투이도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하양도(뉴질랜드)에 거주하던 마오리족이 지진으로 인한 대기근에 시달렸을 무렵이지요.”
한명회의 저서에도 ‘주상전하의 명을 거부하게 되었으나 이는 천재지변 탓이다’라고 돌려 말한 구절이 있었는데 변명이 아니라 사실인 것이 분명하였다.
문화재부 직원은 돌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에 너무 굶주린 하양도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참극이 벌어졌는데 청해군 한명회가 함대의 모든 여유 식량을 털어 이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의 위인 한명회를 칭송하기 위한 신농도인들이 통가에 들를 때마다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럼 사백 년 전부터 쌓인 돌이 기념관을 만들 정도로 쌓였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저희도 이걸 실측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닌 것이 돌 하나하나의 형태를 상세 도면으로 만드는 작업이 번거로운 탓이지요. 훗날이 되어 저희가 실측할 때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자연석이 네 겹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오밀조밀하게 쌓인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면 도면으로 표현하는 난이도가 제법 높다.
본래 역사에는 다 포기하고 3D 스캐닝을 실시한 뒤 바로 도면으로 옮기지만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양 부장님, 제가 손으로 야장을 그리니 염려하지 마시고 실측을 시작하시지요. 수평 높이를 분간하기 위한 직자(스타프: staff, 측량용 자)를 세워주시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성룡 시절에 이런 일 많이 했었지. 각 산성 도면을 그리는데 돌의 형태와 크기도 구분해서 쌓으라고 그렇게 말을 했고 인부들은 나를 보고 일에 미친 놈이라 하면서 욕을 했었고.
하루 온종일 자연석을 그리다 보니 눈이 아려왔지만 입신체비로 워낙 단련된 몸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화재부 직원도 만족할 야장이 완성되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식사도 마치고 마울리가 있는 투이도 내수린장으로 향하니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푸짐한 체격의 내수린꾼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영직이를 두들겨 패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니 어느덧 한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형님! 형님 덕분에 철창격전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한양에서 내수린을 시연하면 형님도 한 번 끼워 드릴 테니 꼭 참가하십시오!”
“그거참 반가운 일인데 나는 이제 절육에 매진할 예정이라 폼이 좀 안 날 텐데?”
“오히려 좋지요! 형님이 절육에 힘쓰시면 어중간한 입신체비사를 능가할 겁니다!”
면세점에서 아내를 위한 선물도 좀 사들이고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영직이에게 쌀톡도 날리고 잠시 시간이 남았다.
여덟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을 때울 거리를 찾다 서점에 진열된 책자가 보였다.
<태량붕탁 송시열 전기>
송시열은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잘 아는 사람이다. 조선의 대학자이자 정치인이며 각종 논쟁을 벌인 사람이었으며 국난의 시기를 버텨나간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이 환갑 무렵에는 경신대기근이 일어났지.
그런 사람이 멀쩡한 호도 아닌 태량붕탁(太樑崩坼)이라는 기괴한 호를 가졌단 말인가.
더군다나 표지가 아주 예술적이라서 이 책을 당장 사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내수린장에 오른 송시열이 오성와락(파이브스타 프로그 스플래시)을 날리는 모습이 민속화로 남아 있다니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군. 이 평전 세 권 모조리 주시지요.”
두꺼운 책이었지만 내가 속독은 아니더라도 책은 제법 빨리 읽으니 한양에 도착할 때면 모두 읽을 수 있겠지.
책의 표지를 확인한 뒤 저자의 약력을 확인하니 아동도서 <무거운 게 딱 좋아>를 집필한 사람이라더라.
그러니 더욱 근육적 내용을 기대하며 독서를 시작하였다.
* * *
송시열의 탄생은 그 태몽부터가 비범하였다.
어머니인 곽 씨 부인은 밝은 달과 같이 새하얀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꾸었으며 아버지 송갑조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노인이 흡사한 체격의 여러 제자들과 나타나는 태몽을 꾸었다.
[이 아이를 그대에게 보내니 잘 가르치시오.]
한밤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 송갑조는 머리를 굴려 그 거대한 체격의 노인이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근육으로 대다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선 사람답게 해석 또한 당연히 근육으로 해석하였다.
“내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몇 날이 남지 않았는데 그런 비범한 체격의 노인과 제자들이 꿈에 나타나다니. 이는 필시 수양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찾아와 복을 내려준 것이 분명하다.”
공자는 9척 6촌, 현대 기준으로는 약 2m에 달하는 거대한 체격이었으며 전차를 몰고 활을 쏘며 나무를 다루는 육체적 노동으로 17세기 조선 기준으로도 어중간한 입신체비사보다 거대한 체격이었다.
당연히 그 제자들도 비슷한 체격임은 당연하였다.
선비와 같은 복장으로 거대한 체격을 지닌 사람이라 하면 당연히 입신체비를 떠올리는 뒤틀린 역사가 문제인 법이었다.
수양대군으로 인식된 공자였지만 송갑조는 한술 더 떠서 아내의 태몽마저도 근육적으로 해석하였다.
“생각하여 보니 수양자께서 말년에 저술한 영직서에 나오는 말이 있었지. 눈처럼 하얗고 향이 없는 것이 이상적인 육질(단백질)이라 하였어. 안사람의 태몽에서 삼킨 물건이 수양자께서 그토록 찾던 물건이라니. 이는 수양자께서 가호를 내리신 것이 분명하군.”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유학의 아버지 공자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송시열은 무럭무럭 성장하였다.
이후 세 살 무렵 몸 이전에 뛰어난 지능이 두각을 드러냈다.
“아버님! 우리 성뢰(聖賚: 송시열의 아명) 좀 보세요. 세상에 정음을 세 살부터 깨우치기 시작하다니요! 제가 글을 알려주고 석 달이 지났는데 조보를 읽고 있습니다!”
“세 살 하고 넉 달이 지났는데 조보를 읽는단 말인가? 조보가 아무리 정음으로 쓰여 있다지만 내가 여섯 살이 되고 더듬더듬 읽었는데. 성뢰야, 어서 조보를 읽어보려무나.”
외할아버지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어린 송시열은 침을 꼴깍 삼키고 오늘 아침 받아온 조보를 손으로 더듬었다.
가장 크고 읽기 편한 제목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짚더니 침착하게 읽어 내려갔다.
“부…… 부경에서 여덜 번 재 반구니 일어나 대열…… 연이라는 이름을 자저하여 역고…… 관을 스격하어다.”
두 살 위의 형인 송시묵도 조보를 읽는 송시열의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하였고, 큰형인 송시희는 이이의 저서인 동몽선습을 외우다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살펴보았다.
말문이 트이고 글을 읽게 된 송시열에게는 수많은 책이 주어졌다.
다섯 살이 되자 이미 사자소학과 동몽선습을 줄줄 외우기 시작하였으며 일곱 살이 되자 두 형과 학문을 논하며 같은 내용을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송시열의 부모는 셋째 아들이 자칫 책에만 매몰하여 산림(山林)처럼 고립될 것이라 생각하여 한양으로 집을 옮기기에 이르렀다.
인구가 넘쳐나는 한양에서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만나게 된 송시열은 이런 환경 변화에도 곧잘 적응하여 활달한 아이로 변모하였다.
수양대군의 축복을 받았다고 하였지만 입신체비를 본격적으로 익히려면 15세가 되어야 하였으니 아직은 친구들과 놀 나이였다.
그러나 송시열은 입신체비를 익히기 전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내수린 할 사람 여기 붙어라! 시열이 너는 너무 강하니까 나중에 붙어!”
“형들도 너무해! 내가 아홉 살이고 형들은 열 살이 넘는데 내 힘이 강하다고?”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 남아 있는 송시열이었지만, 덩치가 더 크고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나이는 9세였지만 힘은 12세도 감당하기 힘들 수준이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우모구(배드민턴)를 할 때에는 채를 휘두르다 부러트린 적이 세 번이나 있었고 보행격구(축구)를 할 때에는 몸싸움을 벌이면 둘이 달라붙어도 나자빠지는 일이 많았다.
이를 모르는 내수린꾼은 아이들을 위해 특설 링을 만들어주었다.
“왜 다른 아이를 끼워주지 않는 거니? 너희가 정하기 나름이니 문제는 아니지만 내수린을 처음 배울 때에는 과격한 기술을 사용하지 말고 가벼운 기술만 걸면서 하여라. 바닥에는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을 깔아두었으니 다칠 염려는 없을 거란다.”
호주와 미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목화는 면직물과 솜으로 탈바꿈되어 조선에 유입되었다.
덕분에 목화솜의 가격이 계속 내려가 예전 같으면 다시 틀어 몇 번이고 사용할 목화솜은 적당히 낡으면 내수린장의 완충재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자! 내수린장이 완성되었으니 어서 내수린을 시작해 보거라. 내가 중단하라 하면 무조건 중단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현대의 어린아이들이 푹신한 이불을 깔아놓고 레슬링을 즐기듯 한양의 아이들도 가벼운 내수린을 즐기고 있었다.
기껏해야 상대를 잡아 메치거나 짓누르는 정도가 한계였으니 내수린꾼이 감독하면 부상을 입을 일이 없었다.
서로를 잡아채고 메치며 땀을 흘려대던 아이들 사이로 송시열이 뛰어들었다.
다들 긴장하였지만 가장 덩치가 큰 13세의 아이가 온몸의 힘을 끌어올리며 힘겨루기를 시작하였다.
“형! 형 힘 엄청나게 세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너 정말 아홉 살 맞아?”
훨씬 덩치가 큰 상대와 힘겨루기를 하였지만, 송시열의 괴력은 상대를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상대는 전력을 다하여 훨씬 어린 송시열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점차 상대의 자세가 앞으로 쏠리자 송시열은 빈틈을 보아 괴성을 내며 상대를 밀쳤다.
“그랴아아아앗!”
“이런 세상에!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저런 기술을…… 저건 또 뭐야!”
상대를 밀쳐내 자세를 완전히 무너트린 송시열은 앞으로 기운 허벅지를 밟고 날아올라 다시 링의 구석을 밟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택견에서 사용하는 달치기(상대의 몸을 밟고 뛰어오르기)와 연계된 기술은 내수린 기술이기는 하였다.
자세가 무너져 뒤로 자빠진 상대에게 어른의 키만큼 날아오른 송시열의 전신투(바디프레스)가 작렬하였다.
상반신에 가해진 어마어마한 충격에 단번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아이였지만 내수린꾼은 같이 바닥을 뒹구는 송시열을 먼저 확인하였다.
“이 멍청한 녀석아! 와락(프로그 스플래쉬) 계열 기술은 복근과 대흉근이 갖춰지기 전에는 내장을 터트리는 법이다! 더군다나 가슴으로 직격하였으니 네 명줄이 어떻게 되겠느냐!”
“저요? 별문제 없는 것 같습니다.”
송시열의 늑골이 부러졌다고 예상한 내수린꾼이었지만, 가슴팍에는 제법 큰 멍이 피어오르는 정도였다.
오히려 어린아이치고 지나치게 많은 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확인한 내수린꾼이 질겁하여 부모에게 면담을 청할 지경이었다.
“봉사(奉祠: 종8품 관직)님 댁의 셋째 자제분은 천고의 기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고작 아홉 살 아이가 스스로를 솟구치게 만들어 와락을 사용하고도 가슴에 멍이 들고 끝나다니요.”
“와락? 당신 내수린꾼 맞는가? 나도 내수린을 조금 하지만 와락은 동료를 밟고 올라가거나 나무 위 같은 높은 지형에서 몸을 내던지는 기술이 아닌가?”
“상대를 밟고 내수린장의 구석을 재차 밟아 장정의 키만큼 뛰어오르더군요.”
태연히 가슴의 멍을 매만지는 송시열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육체적 능력이 상승하였다. 11세 무렵에는 동네 아이들 가운데 관례를 틀기 전의 아이들은 둘이 덤벼도 당해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당연히 부모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생겼다.
“이러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패악을 저지를지도 모르니 좋은 스승이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도 낭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입신체비는 효심을 몸에 새기며 차츰차츰 몸을 단련해야 하는데 이미 힘이 완성되었다면 마음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관례를 올리고 스승을 모실 나이가 아니기에, 인성 교육을 위한 스승을 찾으려는 부모가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은 사옹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교산 허균이었다.
그는 오늘도 친구를 하늘로 내던지는 송시열을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참 골치가 아프군. 내가 이런저런 잡학에 능하지 입신체비에는 능하지 않다네. 저런 아이를 가르치려면 서애 대감님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세상을 떠난 지 오래가 아닌가.”
“서애 대감이라 하였는가? 자네가 수많은 이들과 인연이 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지목해야 할 정도로 시열이의 재주가 대단하다는 말인가?”
“과장이 아닐세, 학문으로 따지면 서애대감과 흡사한 경지를 이룩할 것이며 몸으로 따지면 어중간한 입신체비사를 능가할 것이네. 그나마 사람 하나는 소개할 수 있겠군.”
재능이 뛰어난 제자를 기르려면 스승도 뛰어나야 함은 당연하다.
허균은 호주로 향하기 전 붓을 놀려 마지막으로 추천장을 썼고, 송시열은 12세의 나이에 배움을 청하러 강원도로 향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다 하여 남이섬이 된 가평과 춘천 사이의 자그마한 섬은, 변한 역사에서 은퇴한 남이 장군이 말년을 보냈다 하여 남이섬이 되었고, 이 섬에서 제자를 키우는 사람은 백사 이항복이었다.
“어제 꿈에 기인이 나타나 내 말년을 즐겁게 할 제자가 올 것이라 하였는데 그 꿈이 사실이었구나.”
송시열을 맞이한 이항복은 70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며 앞으로 나섰다. 송시열은 부모님에게 배운 대로 정성을 다하여 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이항복이 흡족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송시열이더냐? 네 체격이 제법 좋은데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더냐?”
“은진 송씨의 시열이라 합니다. 나이는 올해 열두 살이며 스승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스승님이라니? 나는 네 기본적인 학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일 뿐이다. 이 머나먼 남이섬까지 오게 된 연유가 있을 것인데 어디 섬을 돌아보며 이야기나 나눠보자꾸나.”
은퇴하여 연금을 받으며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는 이항복은 자그마한 남이섬을 한 바퀴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저 멀리서 거대한 새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송시열은 궁금한 마음에 이항복에게 물어보았다.
“저 새는 무엇입니까? 듣자 하니 이주(아프리카)에는 사람의 키보다 거대한 타조라는 새가 있다는데 혹여나 그 새를 잡아서 풀어놓은 것입니까?”
“타조는 너무 비대하여 그것보다 조금 작은 녹타조(에뮤)를 호주에서 들여왔지. 조정의 도움을 받아 육로를 끊고(본래 남이섬은 가뭄이 되면 육지와 이어진다) 조정에서 사용하는 녹타조를 모두 여기서 기르게 했단다.”
“조정에서 사용하는 녹타조를 여기서 기른다 하셨습니까? 제가 여러 서책을 보아 알기로는 녹타조가 여럿이 모이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였는데 백성들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녀석도. 이 녹타조를 호주에서 처음으로 교육시킨 것이 나인데 무얼 걱정하느냐.”
어느새 근처로 다가와 처음 보는 송시열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에뮤들이었지만, 이항복이 갓을 벗고 앞으로 두 걸음 나서니 분위기가 변했다.
70이 넘어 몸이 쇠한 이항복이었지만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가 솟구쳐 사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대체 녹타조들이 왜 질겁하여 도망치는 것입니까?”
“녀석들이 아무리 새대가리라 하지만 배우는 것이 있더구나. 조상부터 대대로 내수린으로 두들겨 패니 갓을 쓴 사람이 갓을 벗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학습하였지.”
남이섬은 에뮤를 기르면서 주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여러 수공예품을 만드는 방식을 택하였기에 수풀이 우거지고 자연이 번성하였다.
한때 남이가 말년을 보내고 이제는 이항복의 거처가 된 저택은 그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추하지는 않지만 열 살 아이가 배움을 얻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지. 어떠하더냐?”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성에는 미주인이건 신농도인이건 솔로몬국 사람이건 간혹 보였지만, 이 섬에는 세상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군요.”
“내가 은퇴하여 제자를 따로 두지 않겠다고 하니 제자를 두지 않는 대신 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기초적인 학문을 가르치라 하셨지. 덕분에 말년을 재미있게 보내게 되었다.”
이항복의 가르침은 순식간에 흡수한 송시열은 입신체비에 맛을 들이기 전에 근본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힘이 전부가 아니고 부모께서 주신 몸을 온전히 건사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진리라는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더군다나 이항복은 어린 시절부터 조식의 제자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하초충(하체를 위주로 한 계파)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힘을 드러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거듭 내렸다.
“올바른 행위를 만천하에 드러나면 질시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그러하니 올바른 행위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숨기고 겸손하게 나서는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느냐.”
어느덧 송시열이 관례를 올릴 16세가 되었을 무렵, 이항복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당장 소과를 보아도 급제는 확정이었으며 딱히 단련을 시키지 않아도 육체적으로도 어중간한 장정을 가볍게 제압할 수준이었다.
인격적인 교육을 중요시하며 언제나 농담과 해학을 담은 이항복이기에 송시열의 굳은 성격은 유순해졌으나 속에는 언제나 의(義)를 담고 있었다.
이제 관례를 올릴 때가 되었기에 이항복은 송시열에게 추천장을 쓰며 그를 한양으로 돌려보냈다.
“남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임시로 상투를 틀어주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스승을 찾아 관례를 올릴 때이다. 네 가르침이 부족하지 않고 넘쳐나니 염려하지 말거라.”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 하해와 같으니 불초 제자가 평생 스승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을 것입니다.”
“너는 이미 나를 능가할 지경이 아니더냐.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힘을 써야 할 때는 약한 이를 핍박하지 않게 배려하며 정적(政敵)이라 하여도 언제나 벗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라.”
이항복에게 절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송시열의 발걸음은 점차 가벼워지더니 이내 뜀박질을 시작하였다. 몸을 단련하지 않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니,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였다.
그러다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이 되놈의 새끼들이 어디서 기어들어 와서! 여기가 조선 땅이지 다 망한 명나라인 줄 알아!”
산기슭에서 고함이 들리기에 송시열은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하였다. 고함이 들리는 곳에 도착하니 유생 세 명이 몽둥이를 들고 명나라 복식을 입은 농민들을 핍박하고 있었다.
수많은 도적이 들끓는 명나라는 이미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었다.
워낙 덩치가 거대하기에 도적들이 서로와 싸우며 그 질긴 명줄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간혹 해안의 백성들은 도적들에게 시달리다 쪽배에 매달려 탈출을 감행하였다.
이들은 조선에 망명하기를 청하였으나 기술자들은 어느 정도 대우해주는 반면 농민들에게는 정착금을 주고 지방의 땅을 배정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를 알고 있는 송시열은 앞으로 나서서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명국의 유민들을 유생이 된 자로서 어찌 핍박한단 말이오.”
“외모만 보아하니 어린아이가 분명한데 끼일 데가 있고 안 끼일 데가 있다. 내가 머슴을 부려 개척하는 땅을 이들이 가지게 되었으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이유가 있겠느냐?”
“옛적에 만력제께서 아국을 위하여 수백만 냥의 은자를 내리심을 잊으셨소? 부친께서 옛적에 받은 녹봉에는 만력제께서 내린 은자가 끼어있으니 참아주시구려.”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조보를 통해 입수한 송시열이기에 당당하게 나서며 명나라의 유민들을 보호하였다.
그러자 유생을 자처하는 이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풀고 송시열을 협박하기 시작하였다.
“네가 어린아이라 말재간만 있지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잘 모르는구나. 세상이라 함은.”
“의로 돌아가는 법이나 그대들에게는 의가 없구려. 내 아직 관례도 올리지 않은 철부지이나 의인이 아닌 자와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소.”
이항복이 그토록 말하던 의(義)도 협(俠)도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복수자설을 비롯한 수많은 신소설에서 등장하던 정의로운 영웅호걸을 이상으로 삼은 송시열에게 이들의 근육은 효도가 아닌 남을 겁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럼 근육의 대화를 나누자꾸나!”
“내가 할 소리를 왜 먼저 하시오!”
한 유생이 송시열의 멱살을 잡아 집어 던지려 하였지만, 송시열은 반사적으로 그의 팔뚝을 잡았다.
태어날 때부터 괴력을 자랑하던 송시열은 입신체비를 익히지 않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완력을 자랑하였고 유생의 손이 풀려 버렸다.
10년 이상 입신체비를 익혔지만 고작 15세의 소년에게, 아직 관례를 올리지도 않아 입신체비를 익히지도 않은 아이에게 힘으로 밀리게 된 유생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송시열은 그의 팔뚝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하였다.
“근육이 무엇이오! 근육은 효심을 드러내고 이후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며 만일의 때를 대비하여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오! 이러한 기본을 망각하였으니 내 힘에도 밀리는 법이지!”
두들겨 맞더라도 약한 이를 지키려던 송시열이었지만 힘으로 이기니 상대의 허리를 잡고 허공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제대로 된 내수린 기술조차 아니었지만 이미 어중간한 유생을 능가하는 괴력이니 상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이대로 내수린을 시작하겠소? 여기가 내수린장은 아니지만 핍박받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아니하겠소. 어서 덤비시오!”
“네…… 네놈이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두고 보자!”
동료를 부축한 채 도망치는 유생들을 노려보던 송시열은 이를 악문 채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근래에 들어 근적(筋敵: 근육의 적)이라 하여 입신체비를 익혀 남을 핍박하는 이가 생겨났다 하던데 이런 자리에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래도 나라의 근본인 입신체비를 어지럽히는 근적들을 벌해야겠구나. 그러하면 유생으로 학문을 익히기보다는 차라리 내수린을 익혀 내수린꾼으로 이들을 벌함이 마땅하다.”
관례를 올린 송시열은 이미 학문으로 대성하였기에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송시열의 근육은 19세 무렵 이미 삼대운동 800근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송시열은 아버지에게 절을 올리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부친께 소자 말씀을 올립니다. 근래에 들어 명국이 혼란해지며 유민이 생겨나고 이 유민들을 핍박하는 근적이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자는 이러한 몰골을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시열아. 그러한 이들을 벌하려면 나라의 녹봉을 받으며 엄벌에 처하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근적들은 유생의 신분으로 가장 약한 이들을 핍박하는 행위를 하니 문제입니다. 소자는 내수린꾼이 되어 지방에서 활개 치는 근적을 벌할 작정입니다.”
양반이 백성을 핍박하면 처벌을 받지만, 명나라 유민들은 이방인이라 법의 보호에서 반쯤 제외당한 신세였다.
결국 유민들은 제대로 된 배움 없이 근육만 기른 이들이 행패를 부리기에 가장 적당한 상대였다.
송시열은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여 몸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나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남을 핍박하는 형편입니다. 이들을 지금 막아내지 않으면 후일 입신체비를 어지럽히는 근적들이 나라를 망칠지도 모릅니다.”
“정녕 네 염려가 그러하다면 내수린꾼이 되어도 좋겠구나. 다만 명심하도록 하여라. 네가 내수린꾼으로 스물다섯까지 활동하되 이후에는 학문에 매진하여야 한다. 이를 지킬 수 있다면 하여도 좋다.”
“부친께서 이렇게 제 뜻을 받아들여 주시니 소자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뜻을 정한 송시열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내수린꾼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고작 이 년이 되기 전에 온갖 기술을 섭렵하였고, 평상시에는 비석으로 쓰려고 깎은 돌을 품에 안고 움직이며 근력을 단련하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말
드디어 외전 마지막 파트 태량붕탁이 시작되었습니다.
송시열의 태몽은 고증입니다. 달처럼 하얀 구슬을 삼켰다 하는데 이를 보충제 덩어리로 받아들인 건 근육적 사상 덕분입니다.
송시열의 아버지가 꾼 꿈도 고증입니다. 그 꿈에서는 공자가 나왔는데 덩치가 워낙 거대해서 수양대군으로 인식한 건 근육적 사상 덕분입니다.
문 : 왜 입신체비를 익혀 사람을 팹니까?
답 : 한 학문이 200년 정도 이어지면 개선이 없이는 타락하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