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65화 (565/573)

근육조선 565화

2부 외전 8화 이제는 호주로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영상 기록물의 마지막은 언제나 묵묵히 대본을 읽어나가는 내레이터가 장식하였고 이 기록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는 병사들이 배에서 내려 가족과 해후하는 장면과 함께 내레이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계를 뒤흔든 2차 세계대전에서 모병된 병사는 대한공화국에서 1,270만 명, 참전한 병사는 총 950만 명에 달하며 옛 대한제국에 소속된 국가를 모두 합치면 참전 병사가 2,600만 명에 달한다.]

영상이 흘러가며 이미 전쟁이 끝나 폐허가 된 베를린의 모습이 나왔다.

대한공화국의 어마어마한 보급 덕분인지 공용 급식소가 생겨났으며 베를린에 함께 입성한 소련군과 피난민들 심지어 독일군조차도 흰색 완장을 찬 채로 공동 배식을 받았다.

영상으로 보니 처참하게 파괴된 베를린이 나름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부연 설명에 의하면 전후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히틀러 추종자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고.

이후에는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수많은 이들이 화면에 나오고 설명이 시작되었다.

[전시상황이 끝났지만 아직 전후처리 과정이 남아 있었다,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자들이 공화국을 주도로 한 국제재판소에서 심판을 받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대한공화국, 소련, 영국 그리고 미국의 판사들이 도열한 재판장에서는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판결이 이어졌다.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유대인들의 증언과 기타 관련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다.

<나 헤르만 괴링은 공군 원수를 역임하였기에 정부 수뇌임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총통의 생포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잔혹행위를 금지하였으며 유대인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제 죄가 크지만 인륜을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사학과 출신인 영직이가 2차 세계대전 관련 매체를 볼 때마다 오타쿠 김괴링이나 돼지괴링이라 욕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직 군살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역사가 변해 입신체비를 익혔는지 군살이 쏙 빠지고 영화배우로 나와도 될 법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에 대한 판결은 사형이었다. 인륜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하여도 정부 수뇌로서 자신의 국가가 벌인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는 일은 마땅하니까.

이외에도 구차한 변명 혹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변명이 이어졌고,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히틀러의 주치의라 불리는 자 외에는 거의 없었다.

나조차도 국방군 병사들이 변명이랍시고 내뱉은 말에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저는 명령을 듣고 철도역에 폭격을 실시하고 기총을 쏘았을 뿐입니다.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 군인으로 인식하라 하였는데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자네가 당시 탑승한 Bf109 전투기는 폭격을 마치고 화재로 인해 보육원에서 탈출하는 보모들과 유모차에 탄 아이들을 조준사격 하였다는 증언이 있었네. 본 판사는 유모차를 전쟁병기로 인식하는 자를 사회에 내보낼 생각 따위는 없네.>

<저 또한 판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러한 자를 사회에 내보낼 수 없습니다.>

<폭격 행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해 기총을 발사하였다면 선처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판사의 의견을 수렴한 대한공화국 대법원장 김병로는 망치를 세 번 내리쳐 사형 판결을 확정 지었다. 국방군 파일럿은 이럴 수는 없다면서 항의하였지만 거구의 공화국군에게 질질 끌려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재판을 받은 이는 진작 항복한 발터 모델 대장이었다.

여러 증언을 들은 김병로 대법원장은 고개를 숙인 채 판결을 기다리는 그에게 판결 직전 마지막 말을 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말하였습니다. 악이 승리하는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이들의 방관이다. 국방군의 대장으로서 다른 이들의 범죄에 방관한 사실을 인정하겠습니까?>

<인정하겠습니다.>

<발터 모델에게 휘하 장병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방임(放任)과 다른 국방군 장성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방임을 적용하여 10년 형을 선고합니다.>

재판이 끝났는데 이탈리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 추축국이라 하여 독일과 연합 작전을 펼쳤는데 가톨릭 신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장면이 전환되며 전범들의 사형 집행과 함께 신부들이 등장하였다.

기이하게도 입신체비를 익히다 만 것 같은 몸매인 신부들 가운데 몸이 성치 않은지 휠체어에 타고 있거나 한쪽 팔의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이들이 있었다.

내레이터가 부연 설명을 시작하였다.

[베네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휘어잡고 세계대전을 실시한 이후 가톨릭 신부들은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용이 필요하다며 적극 항의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바티칸은 전쟁에 반대할 것이며 악은 몰락할 것이라 천명하였다.]

[신부들에게는 입신체비가 있었지만 무솔리니에게는 군대가 있었다. 총칼을 앞세운 군대가 바티칸을 포위하였으니 더 이상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교황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구금당하였지만 각 지방의 성직자들은 저항군에 합류하였다.]

“내가 천주교 신자라서 잘 알아. 이탈리아 14개 전쟁성지에 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정말 처참하게 살았다 하더군.”

“처참함의 기준이 혹시나 입신체비 기준인가?”

“당연하지! 신부님이라면 삼대운동 사백 정도는 마땅히 하는 사람들인데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나? 몇 년이나 산속에서 돌아다니니 근육이 쏙 빠져나갔다 하더군.”

잠시 뒤 성직자들의 사진이 나왔는데 진 실장의 말대로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한, 정확히는 지나치게 많은 근육이 있음에도 음식이 부실해 근육이 소실되는 성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입신체비가 수녀님들에게도 퍼져나갔는지 지방이 쏙 빠져 힘줄이 불끈거리는 팔뚝을 자랑하는 수녀가 포탄을 운반하고 있었다.

이들은 저항군에 합류하여 산간오지에서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며 그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

[대한공화국 해군과 호주 해군의 연합작전으로 수많은 성직자들이 해방되었다. 이들은 근육이 사라졌지만 근육보다 더욱 값진 신앙심이 있었다. 이들은 죄인에게 마지막으로 성사를 집행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형장까지 당도하였다.]

전쟁 중에 잃은 신부의 한쪽 팔을 물끄러미 바라본 무솔리니는 묵주를 손에 쥔 채 벌벌 떨며 형장으로 향하였고, 병사들의 일제사격으로 사망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양 부장님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하였다.

“스탈린도 저기서 사형을 당했어야 하는데. 고작 일 년 늦게 카틴 학살(소련의 폴란드인 학살)이 발각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야.”

“대신 강제로 분단시킨 동독을 내뱉고 사실상 칩거하였으니 매는 덜 벌게 되었지요.”

화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벙커에서 수류탄으로 폭사한 히틀러의 시신은 재가 되어 육군 원수로 진급한 김상옥의 손으로 바다에 뿌려졌다.

가장 큰 덩어리인 두개골과 재를 담은 상자는 의외로 명시(明示)된 장소에 버려졌다.

<포인트 니모(Nemo), 땅에서 가장 먼 바다 한복판>

설령 본래 역사처럼 네오나치가 히틀러의 무덤을 참배하려 하여도 망망대해의 한복판인 여기까지 오는 정신 나간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영화가 막을 내리며 희생자와 참전 장병들의 무덤이 비추어졌고 우리 셋 다 땀에 흠뻑 젖어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이래서야 입신체비를 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요? 기껏해야 높은 중량 몇 번 들면 충분할 것 같은데 영화 한번 잘 봤습니다.”

“김 실장이 영화 보는 눈이 있다니까. 이제 영화는 더 볼 게 없으니 다음 일정이나 이야기하자고. 우리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알지?”

일정은 모르는뎁쇼?

숙소로 돌아오기 전 가볍게 고중량을 들어 근육을 자극한 뒤 보충제를 먹고 노곤한 몸으로 로비에 모이니 양 부장님은 지금까지 기록한 야장(野帳: 야외에서 기록한 장부)을 확인하며 말하였다.

“이거 김 실장이 담당한 야장은 어마무시하군. 내가 신입사원 때 윤 소장님 도면을 보고 놀랐는데 윤 소장님과 버금가는 실력이잖아? 김 실장 덕분에 이번 실측이 예정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 같네.”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우리의 출장 계획서는 최소 24일, 최대 28일 동안 만천서원을 실측하고 29일 차에는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애초에 문화재청, 이 역사에서 문화재부 직원들이 합류한 시점에서 실측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역사가 변했지만 사람은 비슷하게 행동하게 마련이다.

평범한 문화재 실측은 시간 단축을 위하여 먼저 3D 스캐닝으로 모델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부를 작성한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역순서 작업이다.

3D 스캐닝으로 만들어진 모델을 도면으로 베껴 그리는 작업이라 야장 하나를 작성하는 데 수치 측정과 야장 기입까지 아무리 길어도 10분 이내에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정석대로 하면 3D스캐닝이 마지막 확인 작업이 되고, 수백 장에 달하는 야장을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야 하니 업무 일정이 폭증하고 시일이 지체되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자 최 대리가 도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김 실장님이 손을 한번 대시면 건물이 그대로 베껴지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한 장을 만드는 데 10분 내외가 소모되어서 문화재부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 실력이면 어디 가서 밥 벌어먹는 데 문제는 없겠어.”

“제가 뭐 열심히 해보았는데 만족하시니 다행이지요.”

유성룡 시절에는 손이 좀 더 가늘고 익숙해서 5분 이내에 끝냈을 도면이지만 손이 투박해져서 좀 늦어서 10분이 걸렸다.

다들 내가 작성한 야장을 확인하며 감탄하는데 양 부장님은 잠시 통화를 하더니 말하였다.

“지금 소장님이랑 통화되었네. 문화재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일정을 빠르게 끝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니 투이도(통가)의 한명회 기념관의 옛 건물들도 가능하면 실측하고 오라 하더군.”

“그게 가능합니까? 운이 좋아 24일 이내에 실측작업이 끝나면 투이도로 가라 하였지만 고작 5일이라면 뭘 해보지도 못하는 형편이 아닙니까?”

“지금은 21일 이내에 실측작업이 끝나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문화재부에서 항공기 비용을 대주기로 하였으니 염려하지는 말게. 김 실장은 거기 가서도 야장을 잘 작성하겠지?”

졸지에 미국에서 다른 곳으로 가게 생겼는데 본래 역사의 나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거절할 일이었다. 반면 이 역사에서는 야근도 없고 주말에는 출장 상황에서도 휴식을 보장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미국에서 어떻게 통가로 갈지는 모르지만 그 과정 또한 여행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새 다가온 문화재부 직원들도 우리에게 설명을 시작하였다.

“투이도로 가는 비행기는 없습니다. 일정이 길어지지 않게 조절하였는데 일단 후성부에서 미국의 수도인 금성(현 샌프란시스코)으로 국내선을 타시고 바로 호주의 연성(連城: 현 시드니)에 내리셔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면 날짜변경선을 지나가서 주말이 되는군요.”

“도착하는 시기가 주말이면 나쁠 것이 뭐가 있겠나. 이틀 정도 푹 쉬면서 근손실을 방지한 뒤 다시 비행기에 타고 투이도에서 실측을 마치면 끝이지.”

미국에서 호주로 비행기를 타면 12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역사가 변하면서 튼실한 좌석이 기본이기에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아내를 위한 선물도 잔뜩 사 들고 가야 하는데 두 나라의 선물을 사들이면 충분하겠지.

예상외로 빠르게 끝난 실측자료만 정리해도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울 수준이 되었다.

혹시 파손될지도 모르니 문화재부 직원이 회사에 전해주기로 정한 장부들을 다시 점검하고, 마지막으로 윤광영의 아들이 완성한 만천서원의 성당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영직이를 두들겨 팬 다음에 아내랑 함께 와주마. 그럼 잘 있어라 미국.”

아내와 영상통화를 해서 일정이 변경된다 하였는데, 아내는 한 달 동안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작년에 정해졌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 하였다.

오히려 돌아오고 나서 장인어른께 드릴 선물이나 잔뜩 사 오라 하였고.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도 크고 튼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코노미 증후군(좁은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 혈전이 생기는 질병)을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운동 지시까지 내렸다.

* * *

호주는 내가 다녀온 적이 없다.

본래 역사에서도 호주 여행을 계획하다 유럽에 다녀왔으며, 유성룡의 몸에 빙의했을 때에도 권율이 호주의 기초를 세웠지, 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래도 호주의 이미지는 알고 있었다. 극소수의 빌딩 숲을 제외하면 모조리 사막과 황무지가 널려 있으며 캥거루와 에뮤가 뛰어다니고 토끼가 벌판을 메운 나라이다.

그 상상은 아주 당연하게 깨어져 버렸다.

“요즘 들어 호주에 가뭄이 극심하다 했는데 예전보다 황무지가 늘어났군요.”

비행기에서 착륙하기 전 바라본 호주의 풍경은 푸른 초원과 시퍼런 숲 사이에 황무지가 드문드문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마저도 내 옆에 앉은 신 주사(主事: 6급 공무원) 에게는 황폐해진 모습인 것 같았다.

권율이 관목(灌木)이나 풀 외에는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를 개선하려고 나무 한 그루를 없앨 때마다 세 그루를 심으라고 명령했는데 몇 년이나 이어져 왔는지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환경이 미래인 나라, 호주]

내용을 보니 호주가 왜 저렇게 나무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호주에 영향을 행사한 조선은 처음 오십 년은 권율의 정책에 의거하여 나무를 심어댔지만 이후에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무가 생기고 숲이 우거지자 자연스럽게 물이 생기니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선 농부들에게 농사를 배운 호인(호주 원주민)들은 급격히 발전하였고, 어느새 농경문화로 진입하였다.

이후 호인들에게 농지를 만들려면 숲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자 50만 명에 달하는 호인들이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나무를 심으라 하였고, 이들은 농지와 숲을 동시에 늘려 나갔다.

-저희 6대조께서 심으신 나무가 할아버지의 농지가 되었고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나무는 제가 농장을 만들 수 있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제 손자가 개간할 새로운 농토를 위해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렵니다.

이후 삼백 년이 넘게 흘렀다.

호주 내륙의 사막은 지나치게 황폐하여 손을 쓰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물길이 유지되는 지형만큼은 숲이 생겨났고 급기야 사람의 힘으로 사막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호주 지도를 보니 본래 역사에서 90%를 차지하던 사막의 면적이 줄어들어 고작 40%에 불과하였다.

잘 생각해 보니 사막화는 최소 50년을 들여야 극복할 수 있는데 여기는 300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한 격이다.

“어이쿠! 김 실장! 위험하다네!”

“위험하긴 뭐가 위…….”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가는데 초대형 캥거루가 멀뚱히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128㎏의 근육질이라지만 짐승과 싸울 자신은 없다. 이기면 짐승보다 더한 놈, 지면 짐승보다 못한 놈이 되니까.

시선이 마주친 캥거루는 배주머니를 탈탈 털면서 껑충껑충 뛰어가 버렸다. 중요 기관인 공항이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옆의 경고문을 보고 혼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소입록(캥거루)에게 싸움을 걸지 마십시오. 내수린으로 이겨도 발톱에 피부가 찢깁니다. 부모께서 내려주신 소중한 몸을 지켜주세요.>

<공항 인근의 낙웅(코알라)들은 야생 상태라서 지저분합니다. 껴안거나 만지지 마십시오.>

<주사위너구리(웜뱃)를 걷어차면 1,000원(현대 기준 약 2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대체 자연이 얼마나 번성한 거야. 뭔 동물의 천국이냐?”

“동물의 천국이기는 하지요. 일부 동물에게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겠지만.”

최 대리는 대학생 시절에 호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던데 조금 서글픈 표정으로 길거리를 돌아보았다.

길거리에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낙타가 끌고 다니는 마차가 있었는데 저게 지옥이라는 소리인가?

고작 이틀만 머무를 숙소니 좋은 시설을 빌리지는 않았지만 숙소 곳곳에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한글로 된 경고문을 읽고는 왜 지옥이라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고양이는 호주 법으로 유해조수입니다.>

고양이가 유해조수인가?

유해조수 논란이 있긴 했는데 호주는 왜 이러나 검색해 보니 답이 나왔다. 권율이 필사적으로 호주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토끼나 각종 동물의 유입을 막았는데 쥐는 어쩔 수 없이 유입되었다더라.

그리고 길거리에 들끓는 쥐들을 잡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양이들이 풀려났고, 고양이들은 쥐를 잡지 않고 상대적으로 둔한 야생동물을 사냥해 버렸다.

조금 더 검색해 보니 호주 정부의 입장이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호주에 있는 천만 마리의 야생 고양이들은 하루 삼백만 마리가 넘는 야생동물을 사냥합니다. 이미 쥐의 박멸이 진행되었기에 이들은 멸종위기 생물을 사냥하는 실정입니다.]

[만약 고양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영길리에서 멋대로 퍼트린 토끼와 여우에 침습되어 생태계가 파괴된 팔라와 섬(태즈메이니아 섬)과 같이 모든 동물이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보…… 본래 역사에서 호주의 토끼가 백억 마리에 달한다 했나? 참 다행이군.”

“김 실장님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시지요. 시뮬레이션 돌린 결과 아닙니까? 팔라와 섬에 있는 토끼가 일억 마리까지 늘어난다 해서 모조리 죽인 것 같았는데 다시 오천만 마리가 되었잖아요. 하여튼 고양이 지옥이라니…….”

최 대리가 어느새 다가와서 내 말을 듣고 놀랐는데 호주는 아무래도 토끼는 피했지만 고양이를 피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표정이 우울해 보였는데 최 대리의 옷에는 간혹 고양이 털이 묻어 있으니 호주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겠지.

“그럼 고양이가 자연을 파괴하는지 확인해 볼까.”

“그냥 입신체비를 하고 싶은 것 아닙니까? 저도 자연이 잘 보존된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굳이 시내를 볼 생각도 없었으니 최 대리의 기분이나 풀어줄 겸 무작정 교외로 달려 나갔다.

울창한 도시 주변의 삼림에는 코알라가 한 무더기나 매달려 있었고 캥거루와 경쟁하듯 숲길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숲에서는 앵무새를 비롯한 수많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까지 하였다. 앵무새야 과일을 먹는 새니 멸종위기 벌레만 아니면 큰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 오히려 한 앵무새가 손바닥만 한 거미를 뜯어먹고 있었다.

산림에 난 보행로는 푹신한 재질로 덮여 있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몸을 덥히며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최 대리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전 사실 이놈의 유향목(乳香木: 유칼립투스 나무)도 별로예요. 고양이들은 유향목 성분과 접촉하면 병에 걸리니까요. 그래도 삼림욕 효과는 아주 제대로 받는군요.”

“좋은 나무지. 서애 유성룡이 권율에게 유칼립투스 나무를 보내라 하였는데 이 나무가 좋은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나 음모론에서 떠드는 유성룡 미래인 설 같은 건 있나?”

“유성룡 현대인 설이요? 그거 영길리 머저리들이 이런 위인이 있을 순 없다면서 헛소문을 퍼트린 사건이잖아요. 현대 사람이면 그렇게 일벌레처럼 살겠어요?”

하긴 유성룡의 업적 대다수는 건축 관련 업적인데 이 시대에는 건축 종사자들이 야근을 안 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시대였다.

즉 유성룡이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면 스스럼없이 미친 짓을 한 꼴로 인식되리라.

아예 역사가 변해 버렸다고 생각조차 못 한 영국인들의 부족한 상상력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유허 이철의 정체는 어떻게 파악하였는지 궁금해서 슬쩍 도발을 해보았다.

“그럼 유허 이철 유성룡 설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는 필체가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거야 유허 이철의 서적을 의정부에서 근무하던 유성룡이 최종 편집했으니 필체가 비슷할 수밖에 없지요! 김 실장님께서 뭐라 하시던 제 마음속의 유허 이철은 허균입니다.”

“허균은 애송이에 불과하였는데 그런 수려한 글을 쓸 능력이 되는가?”

“이보시오! 내가 호주 사람이지만 허균을 욕보이다니 참을 수 없군! 말년에 호주의 식생활을 개선시킨 사람인데 유허 이철은 허균이 맞아!”

웬 호인도 아닌 서양인의 혈통이 진하게 드러나는 사내가 뒤에서 달려오다 우리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러다니 그 서양인의 친구로 보이는 호인도 같이 달리며 끼어들었다.

“송강 정철이 이철의 정체라니까! 송강의 글 쓰는 솜씨라면 죽고 나서 출간된 작품이 그리 많을 수도 있어!”

“글귀에 보이는 시대를 초월한 재미야말로 백사 이항복이 유허 이철이라는 증거이다!”

최 대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새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 삼십여 명이 서로의 의견을 늘어놓으며 미친 듯이 질주하였고, 결국 서로 지쳐서 숨을 헐떡거리며 쉬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진실을 내뱉었다.

“의견이 유성룡, 정철, 허균 그리고 이항복으로 좁혀드는데 넷이 공동집필한 것이 아닐까 싶군요. 그게 진정한 정답이…….”

“닥쳐! 그런 사문난적 같은 말을 하다니 너에게 내수린을 신청한다! 내수린장으로 따라와!”

마시던 우유를 나에게 내던진 사람은 덩치가 나와 비슷해 보이는 신농도인(폴리네시아인)이었는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려 하였고, 친구들이 간신히 말릴 뿐이었다.

영직이를 내수린으로 두들겨 패기 전에 실전이 필요하니 팔에 힘을 주며 내수린장으로 들어갔다.

#작가의 말

현재 호주는 녹화사업이 한계에 도달할 정도이며 이제는 내륙 사막을 보존하는 수준에서 농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8천만 명이 조금 넘는 형편이지요.

인구비율은 추후 이야기하겠지만 본래 역사의 어보리진, 여기서는 호인 40%, 동양인 25%, 유럽 이주민의 후손이 15% 그리고 폴리네시아인이 5%를 차지합니다.

서부 곡창지대에는 호인과 유럽 이주민 후손의 비율이 매우 높지만 동부는 호인이 좀 적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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