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64화 (564/573)

근육조선 564화

2부 외전 7화 근육적 대전(2)

1940년대의 세계 최강국이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는 많은 논쟁이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 대륙이 한 나라가 되면 최강국이라 칭하기도 하였으며 다른 누군가는 대한공화국이 하나로 재결합하면 최강국이라 하였다.

다른 누군가는 후성 일대의 곡식생산량을 기준으로 최강국이 미국이라 하였으며 다른 누군가는 유럽이 최강이라며 영국의 속령을 합친 대영제국을 손에 꼽았다.

이러한 논쟁에 대한공화국이 빠진 이유는 간단했다.

[GDP나 1인 생산량 통계에서 대한공화국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1억6천만이나 되는 인구를 자랑하면서도 표면적인 생활수준은 사치재 소모가 적어서 다소 순위가 떨어진 대한공화국이지만 전시 상황에서 진정한 사치품은 따로 있었다.

“그만 좀 주시라니까요! 이러다가 공장이 미어터지겠습니다!”

“나라가 원하는데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네. 내 집안에 있는 공령이 이 톤에 달하고 별장에 있는 공령이 오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데다 대역기봉은 더욱 많이 있구려.”

“그걸 덮어놓고 다 가져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누가 교수님 좀 말려봐! 저 분 제자들이 가져온 공령만 삼백 톤이 넘어!”

한양대학교 교수이자 고고학과 학과장인 도마 안중근 교수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 질 좋은 철재 도구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인 이승만 신부와 함께 공령(플레이트) 모으기 운동을 실시하였다.

이미 제련이 끝난 철을 녹여서 병장기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임은 자명하였다.

문제는 근대화 이후 근대화(筋大化: 근육이 크게 되다)도 충분히 진행된 국민들이 축적한 입신체비도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부유한 한 가구는 평균 900㎏에 달하는 입신체비기구들이 있었으며 대한공화국 전체로 따지면 3억6천만 톤에 달하는 쇳덩이가 가정마다 잠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 도구들은 오로지 공화국군의 승리를 위해 무료로 국가에 돌아왔다.

“재정부 차관 최두선 총리께 보고 드립니다. 4월 현재 안중근 교수와 이승만 신부가 협력한 공령 모으기 운동으로 인하여 이천만 톤의 공령과 대역기봉이 모였습니다.”

“다시 말해보시오. 지금 이천만 톤이라 하였나?”

“실은 아직 보고 누락분이 많아서 더 될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최소 오천만 톤의 입신체비기구가 국가로 돌아올 것이라 예측하였습니다.”

전시 철강생산 계획에 박차를 가하던 조만식 총리는 입술을 더듬으며 할 말을 잃어버렸고, 최두선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거듭하였다.

“현재 모든 국영 제철로는 물론이며 입신체비도구를 만드는 사설 업체도 할당량을 부과하여 제철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목표 생산량이 매년 오천만 톤인데 거의 같은 양을 기부받는 실정입니다.”

1945년 기준 본래 역사 미국의 철 생산량이 6,000만 톤에 불과하였다.

이 정도의 철이라면 얼마나 많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해 보던 조만식은 최두선에게 지시를 하달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조강(條鋼) 작업은 밀리그램 단위의 불순물로 철의 질이 달라진다 하였네. 이걸 만들었던 사설 업체에 재분배해서 병장기에 쓰일 철을 다시 만들면 되겠군.”

철광석부터 시작하여 철을 만들어내는 자원보다 이미 완성된 철을 다시 벼려내는 것이 쉬운 일임은 자명하였다.

기껏해야 무쇠에 함유된 지나친 양의 탄소를 탈탄(脫炭: 탄소 제거) 처리하여 강철로 만드는 작업이 고되리라.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손을 벌릴 생각은 없었지만 국민들이 손을 들고 나선다면 이에 호응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조만식은 평상시라면 엄두에도 내지 못했을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미 국민들이 전시체제를 받아들였으니 조금만 더 힘써보시구려. 사회적 명사(名士)들과 옛 황실의 일원들을 내세워 계육(鷄肉) 생산량을 줄이고 나머지로 전선에 식량을 공급하겠소.”

조만식의 명령이 하달되었지만 국민들은 큰 불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국가 규모 대비로 지나칠 정도로 많이 길러지는 닭이 일제히 도살되어 전투식량으로 환원되어 전선에 보내졌다.

남는 닭 사료는 자연스럽게 다른 가축의 사료로 전환되었고 결과적으로 수백만 톤에 달하는 곡식이 남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한공화국 국민들은 사소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니 뭔 전쟁이라고 닭가슴살이 없어. 이래서야 입신체비를 어떻게 하고 몸은 어떻게 관리해. 다음 모병시험에서 통과해야 하는데 나도 친구들처럼 미리 닭을 길렀어야 하나?”

한 청년은 시장은 물론이요, 대형 할인매장까지 둘러보았지만, 평소에 즐겼던 닭가슴살이 보이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예전 가격보다 두 배 이상으로 오른 닭이 전부였다.

닭을 사서 닭가슴살만 먹자고 나머지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대체품을 찾았다.

그나마 물량이 남아 있는 돼지 뒷다리살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장바구니 안에 넣으며 말했다.

“이거 사서 지질(지방)만 떼어내고 삶아 먹으면 닭가슴살 대용품은 되겠지. 근어(황태) 좀 사서 국 끓여 먹으면 되고 나머지 단백질은 고소애(밀웜)나 볶아 먹어서 해결하자.”

평상시 입신체비로 가려져 있던 대한공화국의 압도적인 생산량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처음에는 필수적인 병장기를 보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물동량 포화상태가 되었고 현지에서는 수많은 문제가 산적하기 시작했다.

120량에 달하는 킬로트레인(열차의 길이가 1㎞를 넘는 편성)에 타고 있던 대한공화국 장병들은 편안한 전선 도달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혹사당한 화물차의 디젤기관이 결국 고장을 일으켰다.

이대로 방치되어 있다가는 후속 열차의 운행을 방해할 수 있기에 남은 방법은 인력으로 다음 역까지 열차를 끌고 가는 방법 하나였다.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 생각하겠지만 열차 한 량 마다 20명씩 배분된 장병들은 정말 열차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끌어! 다음 역까지 이십 리(8㎞)인데 서로 교대하면서 끌고 가야지!”

“하필 여기서 열차가 퍼질 게 뭡니까? 구난 열차는 언제 온답니까?”

“이 노선은 복선화가 덜 되어서 구난 열차가 도착할 여유분량이 없다니까! 염병할 소련 놈들! 지들이 러시아 제국을 먹었으면 복선화라도 끝낼 것이지!”

한 량 당 200톤에 달하는 중량이었지만 정말 열차가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화물이라도 따로 빼내려 했던 소련군 병사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러나 저 멀리서 다른 열차가 도착했다.

“이런 염병할! 구난열차를 보냈다면 진작 무전을 하지 왜 우리보고 이렇게 힘들여…….”

“구난열차가 아닙니다. 아예 임시 철로를 부설하러 왔으니 돌아가야 합니다.”

따로 편성된 화물열차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인부들과 자재들이 부설된 크레인으로 속속들이 하역되었다.

새로 부설할 철도에 쓰일 레일과 2미터가 넘는 철도용 못이 벌판에 널브러졌고 인부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며 말하였다.

“거기 소련 병사들! 복선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니 어서 도와주게!”

화물열차를 인력으로 옮기는 바람에 할 일이 없었던 소련군은 갑자기 할 일이 생겨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곡괭이를 잡아 들었다.

그러다 한 병사가 레일을 담은 박스에 쓰인 글귀를 보고 되물었다.

“공화국 국민들의 성원이 담긴 철로라니 대체 뭔 소리입니까?”

“이 레일은 정말 공화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철물로 만들어진 것이네. 듣자 하니 대역기봉만 모아서 다시 녹여내 만든 레일이라 하던데 품질은 보증하였으니 염려하지 말도록.”

대다수가 농부이거나 기껏해야 공장에서 하급 노동자로 살아왔던 소련 병사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지만 대한공화국에선 이런 일이 당연한 것 같았다.

이런 광경은 전선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임시로 개설한 포로수용소를 감독하던 대한공화국 병사는 같이 근무를 서는 소련군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그의 다리에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거 어쩌다가 이렇게 다리가 상했어? 이거 화농이 피부 사이로 번져나갔잖아? 여기 위생병 있나? 이 친구 다리 좀 진료해 보게나.”

소련 병사가 왜 이렇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지 몰라 눈을 굴렸지만 어느새 달려온 위생병은 상처를 확인하더니 병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병사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허벅지의 주머니에서 잘 밀봉된 소품을 꺼내주며 말했다.

“이거면 치료되겠지? 보급관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일단 상처라도 치료해 보도록.”

“치료가 되고말고요. 너 우리말 할 줄 알지? 지금부터 상처를 째고 내부를 싹 소독한 다음 항생제를 줄 거야. 포도상 구균 감염이 분명하니까 파란 약(페니실린)을 매일 세 번 먹고 하얀 약(설파제)을 두 번 환부에 뿌리도록. 그럼 좀 아플 걸세!”

소련 병사는 돼지 멱따는 것 같은 비명을 질렀지만 치료의 일환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따로 배정된 민가에서 책을 읽던 발터 모델은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을 담당하는 장교에게 되물었다.

“저게 뭔가? 내가 전선에서 간혹 사로잡은 공화국군 병사의 몸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전투 구급함입니다. 부상의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전선에 나서는 모든 병사는 구급용품을 지참하게 되어 있지요. 포로로 잡힐 경우 적에게 이득을 주지 않도록 폐기하라 하였습니다.”

발터 모델 입장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구급함에서 나오는 물자만 확인하여도 일회용 가위, 약품, 소독되어 밀봉된 붕대와 거즈, 그리고 항생제 알약이었다.

소대 혹은 중대마다 배정된 의무병이 일괄 담당하며 치료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었다.

모델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장교는 자신의 팔뚝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한 십여 년 전까지는 이런 물자가 없었지요. 그런데 훈련 중에 부상을 입고 화농이 번져 결국 장기간 휴양을 취하는 일이 잦아지자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저 과다출혈을 막거나 골절된 부위에 부목을 대는 것이 전부지 않은가? 화농이야 나중에 페니실린으로 치료하면 끝이지. 애초에 페니실린을 개개인이 사용하는 것이 미친 짓일세.”

본래 역사에서 2차 대전 시기에 널리 쓰인 항생제인 설파제(sulfonamide)는 대한공화국에서 최초로 개발해 퍼트렸으며, 이 시기는 대량생산이 힘들어 희귀 의약품이었던 페니실린 또한 대한공화국에서 최초 양산에 성공하였다.

문제는 페니실린의 보존기간이었다. 효과는 좋지만 냉동 보존 기준으로 15일, 실온에 노출될 경우 길어야 3일만 약효를 유지할 수 있는 페니실린을 모든 장병이 사용한다면, 그 어마어마한 비용은 누가 내겠는가.

그러나 장교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비용으로 따지면 옳은 말씀이기는 합니다. 대신 치료가 늦어지면 화농이 생기고 화농이 생긴 기간만큼 치료에 몰두해야 하는데 그 시일 동안 벌어진 근손실은 어떻게 합니까?”

“근손실? 운동을 안 해서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근손실은 불효입니다. 나라가 필요로 하여 병사를 모집하였는데 당장 현장에서 쓸 의약품이 없어서 근손실을 계속 겪으라 하면, 나라가 불효를 조장하는 꼴 아닙니까?”

발터 모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공세를 꺾기 위해 별동대로 예봉을 꺾고 예비대에 타격을 입혔다 생각하였지만, 대한공화국은 악착같이 공세를 늦추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공화국이 이해할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생각하였지만 그건 의지가 아니었다. 부상을 격화시키지 않는 즉각적인 치료와 부상을 입었음에도 움직이는 근육의 힘이었다.

그 근육을 나라가 뒷받침하고 있으니 이 전쟁에 희망 따위는 없었다. 잠시 지평선을 둘러본 모델은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만간 대한공화국 3개 군단이 모여서 대규모 진군을 시작하겠군. 총통이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지만 총통은 보통 인물이 아닐세.”

“보통 인물이 아니라 하셨습니까?”

“멍청이 중의 멍청이이니 정상적인 대응을 생각하지 말게. 대한공화국의 장애인들이 도시 외곽에 설치된 전용 시설에서 호화로운 삶을 보내는 것을 격리하여 말살한다고 멋대로 판단하였으니까. 총통이 어떻게 죽을지 궁금하긴 하군.”

아마 자신이 아는 아돌프 히틀러라면 자살을 택하리라.

총일지 수류탄일지 독극물일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대한공화국군이 간혹 말하는 ‘근육하다’에 당할 위인은 아니리라 여겼다.

* * *

히틀러의 꿈과 달리 1943년 11월이 되자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양면에서 초월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모국이자 가장 큰 후원자였던 영국에 대한 무제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메리카는 연합 해군을 구성하여 눈엣가시인 독일 해군을 격멸하였다.

“멋지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죽음을 맞이할 줄은 몰랐군.”

독일 해군의 마지막은 대규모 함대결전이라 불리기엔 일방적인 전투로 막을 내렸다.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인 함재기에서 쏟아지는 급강하 폭격에도 버틴 티르피츠의 갑판에서 팔짱을 낀 채 최후를 준비하는 해군원수 에리히 레더는 피를 토하는 보고를 들었다.

“적의 이순신급 전함 네 척이 티르피츠를 모두 협차(夾叉: 탄착군 안에 들어감)에 넣었습니다! 원수님! 당장 퇴각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어디로 퇴각한단 말인가. 전 승무원은 들으라, 사력을 다하여 퇴함하고 필사적으로 목숨을 건져라. 나 에리히 레더는 티르피츠와 운명을 함께하겠다.”

대한공화국 해군에 소속된 초거대 전함, 파나마 운하의 폭을 감당하지 못 하는 전함들이 전투의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티르피츠에 포격을 집중하였다.

420㎜ 함포의 일제사격으로 인해 수많은 물기둥이 치솟았으나 에리히 레더는 태연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대체 뭔 수를 썼기에 전함 여섯 척 중 네 척을 보냈지? 저놈들은 쇠를 허공에서 찍어내는 수단이라도 갖추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건함되는 물량을 포함해 이순신급 전함이 최소 열두 척이라는 소리인데.”

허공이 아닌 집 안의 입신체비시설에서 가져오고 있지만 그리 틀린 예측은 아니었다. 점차 좁혀지는 탄착군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은 에리히 레더의 앞에 이순신급 전함의 420㎜ 주포가 떨어졌다.

갑판을 관통하고 내부에서 폭발한 철갑유탄은 충격파만으로 에리히 레더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렸고, 몇 발의 포탄이 적중한 티르피츠는 굉음을 내며 격침되었다.

이제 연합군의 해군은 카를 되니츠가 필사적으로 운영하는 잠수함을 소탕할 뿐이었다.

결국 대한공화국, 호주 그리고 무진 합중국의 해군을 상대하기에 바쁜 독일 해군은 가장 치명적인 보급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짐을 빨리빨리 운반해! 조만간 대규모 공세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스탈린 서기장께서 방문하실 예정이니 군복도 제대로 입고!”

흑해 일대까지 파고들어 세바스토폴을 해방한 대한공화국과 소련 연합군은 누구보다 애타게 목말라하던 보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두 번의 격전 끝에 소련의 품으로 돌아온 세바스토폴에는 스탈린이 직접 나서 장병들의 공을 치하하였다.

“세바스토폴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흑해 일대의 제해권을 돌려받았으니 전쟁의 결말이 여기서 결정되었소. 김상옥 대장에게 소련군 명예 대장의 지위를 내릴 것이니 받아주시오.”

“혹시나 저를 숙청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숙청은 무슨! 이제 우리의 숨통이 트였으니 내가 죽고 나서 후임자라면 모를까 숙청의 숙 따위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작정이오. 그런데 이 막대한 보급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일단 폴란드 방면 전선은 우리에게 일임해 주시오.”

“그럴 여력이 있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급이 남으면 아무에게나 주시면 됩니다. 저희도 덮어놓고 생산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뭐라 할 지경이라 어쩔 수 없이 생산하였으니까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 스탈린이었지만 연이은 승리에 격양된 김상옥은 그 표정을 감지하지 못하였다.

발터 모델의 예측대로 대한공화국군은 부족한 경험을 채운 이후 우월한 육체적 능력과 화력으로 적을 쓸어 담다시피 하였으니 자신감이 넘칠 법도 하였다.

“총! 총 없는 사람이거나 구식 소총 쓰는 사람들은 모조리 대한공화국 소총을 쓰라고!”

“이 무거운 걸 어떻게 쓰나? 아 이건 공화국 병사들 전용 화기였지?”

물자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은 소련군은 쉴 새 없이 물자를 분류하였다. 대한공화국의 주력 소총인 천원(穿垣: 담을 뚫다) 소총을 짊어진 병사들은 그 묵직함에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미 쏘아본 사람에게 무게를 빼고 쓰기 편하다는 평가를 듣고 오히려 안심하였다.

간혹 분대지원화기인 5형 소총을 받게 된 이들은 9.5㎏에 달하는 거대한 무게에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한공화국군 병사들은 5형 소총을 별 무리 없이 짊어지고 600발에 달하는 탄환까지 넣은 채 움직였다.

물자 하역이 끝나자 식사시간이 되었다.

사람의 허벅지만 한 거대한 깡통을 끓는 물에 담아 덥힌 취사병들은 깡통따개로 뚜껑을 열었고 고소한 닭고기 냄새가 주변을 진동시켰다.

“드디어 맛대가리도 없는 건조식량에서 벗어나게 되었군. 근데 이거 기름이 너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전쟁터에서 뭔 닭가슴살을 찾습니까?”

닭고기를 부위를 가리지 않고 양념한 반찬이라 공화국군 장병은 위에 누렇게 뜬 기름을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 굳은 호밀빵을 썰어 먹는 소련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들 면포(빵)에 기름을 얹어 먹는 걸 좋아하지? 기름을 모조리 걷어내서 소련군에게 주고 우리는 고기만 따로 먹자고. 내가 식품영양학과에 있다 입대했는데 영양학적으로도 호밀면포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세견물(비타민)도 풍부해.”

“우리야 열량만 맞추면 되니 상관없습니다만…….”

혹한지에서 활동하여 기름이 부족한 소련군도 이 결정에 환영하였고 아예 기름을 가져가 건빵을 볶아 먹기까지 하였다.

전선의 보급이 차례로 활성화되자 지지부진한 공방전 대신 김상옥은 독일군을 격파하기 위한 비장의 한 수를 내세웠다.

“상륙작전 이전 서부전선의 예비대를 모조리 축출하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네. 지금부터 우리 동부전선 방면군단은 일제 결집하여 4차에 달하는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겠네.”

이미 대한공화국의 육군 대장인 김상옥, 김좌진 그리고 주진무 가운데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었으니 이 공세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탈린마저도 압도적인 보급에 힘입어 이 대공세에 동의하였다.

대한공화국이 더 이상의 공세를 실시하지 않으리라 오판한 히틀러는 예비대인 중부집단군을 보병 위주로 편성하였다.

그 오판의 대가는 중부집단군의 처참한 궤멸로 이어져 버렸다.

“적이 물밀 듯이 진군하고 있습니다! 전차! 전차는 어디 있습니까!”

“다 터졌다고! 저 미친 멧돼지들을 누가 좀 막아봐!”

“여기는 본영 후방! 적의 중형전차 대대가 난입하였습니다! 전차 위에서 공화국 보병들이 끝없이 쏟아집니다! 놈들이 죄다 기관총을 들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성원이 담긴 공령은 탈탄작업을 마친 뒤 곧바로 보급함으로 변신하였다. 고작 15일 만에 진수되는 해방함이라 불리는 보급함은 이미 1,000척이 넘게 완성되었다.

해방함에서 쏟아진 보급품과 결합한 대한공화국군의 화력은 독일 장성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증대되었다.

연운 경전차(다른 국가는 중형전차라 부른다)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공화국 병사들은 돌입 직후 전차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마음대로 쓸어버려! 아군 대대가 추가 돌입할 틈을 내야 하니 일단 진군해!”

“전차 대응이 가능한 놈들을 우선 공격해!”

본래 역사에서 탱크 데산트라 불리는 작전이 근육과 함께 발휘되었다.

본래 적진까지 난입하지 않고 적진 인근에서 보병이 하차해야 하지만 이미 아수라장이 된 독일군 진영에는 전차의 돌격을 막을 장비가 없었다.

5형 소총을 들고 뛰어내린 공화국 병사들은 60발 탄창이 모조리 비어버릴 때까지 자동사격을 실시하며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간혹 정신을 차린 독일군 병사들이 판저파우스트나 대전차포를 쏘려 하였지만 돌입한 공화국군의 화력이 더욱 우월하였다.

“장애인과 포로들을 학살한 네놈들을 단죄하러 왔다! 네놈들의 총이나 처먹어라!”

육군 대위인 김두한은 노획한 MG42 기관총을 들고 저속으로 난사하였다.

보병들을 노려 기관총을 쏘려던 독일군이 역으로 기관총을 쏘는 보병에게 제압당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본진에서 정비작업이 끝난 4호전차가 매연을 뿜으며 연운 경전차를 조준하였지만, 차체 측면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내부 화약이 유폭하여 전차 포탑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날아올랐다.

이윽고 세 대의 4호 전차가 연쇄적으로 터져나가자 가까스로 시작되던 대응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고 성에 차지 않다는 듯이 폭음이 연속적으로 퍼져 나갔다.

구경이 90㎜에 달하는 대전차신기전을 연속으로 발사한 자는 김일옥이었다.

“역시 일옥이라니까! 거기 이성순 대위! 뭘 하나!”

“내래 시래소니야! 두환 아우가 뭐라 하건 멋때기만 들어찬 놈들 혼 좀 빼주고 왔지. 여기 포로 한 놈 잡아 왔으니 아우가 알아서 끌고 가.”

어느새 적의 본영까지 잠입하여 장성 한 명을 두들겨 패서 끌고 온 이성순(본래 역사의 시라소니)은 코를 팽 풀어 코피를 쏟아내며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폴란드 방면은 소련군이,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그리고 헝가리 방면을 대한공화국이 담당하며 1945년 3월 마침내 독일 본토까지의 진군로가 열렸다.

동시에 노르망디와 몽펠리에의 상륙작전이 전개되며 독일군은 퇴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본래 역사보다 세력을 보존한 독일이기에 페이퍼 플랜으로 남았던 E 시리즈, 전차 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상용화시켰고 신형 중전차들이 전선에 속속들이 배치되었다.

문제는 공화국군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주포 손상! 기관총 손상! 포탑링도 손상되었습니다!”

“퇴각해! 저 멧돼지들 열 대를 우리 혼자 담당하라니 뭔 미친 개소리야!”

10.5㎝ 주포와 41식 전차에 버금가는 장갑을 자랑하는 나치 독일의 최신예 전차 E-75 한 대가 사방에서 고폭탄과 점착유탄을 두들겨 맞으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

전차장인 오토 카리우스는 이미 스무 대의 41식 전차를 격파하였지만 그동안 마흔 대의 41식이 전선에 뛰어드는 상황이었다.

퇴각을 독촉했지만 운전수는 점착유탄으로 발생한 파편에 머리가 꿰뚫려 즉사하였다.

구원을 위해 후방에서 느릿느릿하게 진군하던 초중전차인 E-100은 그 느려터진 속도 때문에 항공기의 급강하 폭격을 당해 옆으로 자빠져 있었다.

오토 카리우스는 결국 해치를 열고 백기를 흔들었다.

“항복! 항복! 항복한다고! 쏘지 마라!”

항복을 표시하고 전차에서 내려 무장을 해제하자 공화국군은 포승줄을 내밀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단단히 포승줄에 묶여 수용소에 도착하니 웬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미하엘 비트만? 이봐! 이 친구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의무병 좀 불러줘!”

“아 저 친구요? 좀 흥분해서 살짝 밀쳤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무장친위대 출신 전차병들은 하나같이 중상을 입거나 의식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대한공화국이 이 전쟁에 참전한 이유를 가만히 떠올린 오토 카리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하엘 비트만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총통께서 사로잡히면 뭔 꼴을 당할지는 불 보듯 분명하군.”

이미 독일의 운명은 경각에 달하였다. 기껏해야 버티고 또 버텨보았자 양 전선에서 두들겨 맞고 있으니 버티지 못하리라 예상하였다.

그의 예상대로 몇 달 뒤의 히틀러는 초췌한 표정으로 서류를 살펴보며 보고를 들었다.

“드레스덴이 돌파당해 동부방면의 공화국군과 서부방면의 미국군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이미 베를린에서 240㎞ 앞에서 돌파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슈타이너가 공격하면 괜찮아질 걸세. 북부방면에서 남부방면으로 관통한다면 될 거야!”

“총통 각하 슈타이너는…… 공격에 충분한 병력을 동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승리를, 최소한 대한공화국과의 종전 협약을 주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히틀러는 지도 위에 빼곡하게 놓인 압정을 살펴보면서 탁자를 마구 내리치고 괴성을 질렀다.

“그건 명령이다! 군대가 날 속였어! 무장친위대도 날 속였다고! 장군들이란 놈들은 죄다 겁쟁이 나부랭이들이야! 모두 반역자! 실패자들이라고!”

뭐라 부르짖던 운명이 변할 이유는 없었다. 대한공화국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침으로 전략을 전환하여 진군속도가 다소 늦춰졌지만 이는 오로지 승리를 확신한 군대가 취하는 전략이었다.

결국 베를린의 최후 방어선이 붕괴되기 시작한 1946년 1월 21일. 히틀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공화국군이 전한 최후통첩을 읽어보았다.

[Ich muskuliere dich – I musle you, 너를 근육 하겠다.]

밖에서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안전벙커에까지 들릴 수준이었고, 이미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모두 적의 군대로 에워싸여 있었다. 어떻게든 탈출할 길을 모색했지만,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히틀러는 서랍을 열고 권총을 들었지만 누군가가 탄약을 비워둔 뒤였다. 아마 자신을 살려 데려가면 처벌을 면제받기로 약속한 누군가의 짓이리라.

혹시나 몰라 다른 곳에 둔 독약을 꺼내 들이켰지만, 소금의 맛이 올라오며 갑자기 수면욕이 치밀어 올랐다.

“이 개새끼들! 쳐 죽일 놈들! 나를 반드시 생포할 생각이지! 그럴 순 없다!”

젊은 시절, 정확히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끝내 사용하지 못하고 기념품으로 집무실 한구석에 둔 수류탄을 떠올린 히틀러는 수면제로 몸이 둔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철십자 훈장을 짓씹어 정신을 일으키며 수류탄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든 신관을 작동시킨 히틀러는 집무실 바닥에 앉아 의식을 잃었다.

천운이라 할지 불운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30년이 넘은 수류탄의 신관은 세월이 지나도 효력을 잃지 않았고 굉음과 함께 집무실이 뒤집혔다.

세상을 뒤엎은 악마 히틀러의 시신 중 가장 큰 파편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수준에 불과하였다.

지하벙커로 들어온 김상옥은 처참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리며 명령을 내렸다.

“혹시나 그의 추종자들이 언제 세상을 진동시킬지 모르네. 모든 파편을 수거하여 한 곳에 모아 태우도록 하게. 반드시 사로잡아 재판장에 올리고 싶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결을 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한때 히틀러였던 것은 공화국군의 욕지거리와 함께 흙먼지와 뒤엉켜 화로에 소각되었고 한 사람의 시신이라 불리기엔 초라한 양의 재만 남았다.

#작가의 말

대한공화국이 최강국인 이유는 입신체비를 ‘안’ 하는 국가 근손실상황을 가정할 경우 그 막대한 생산량이 죄다 무기와 보급으로 탈바꿈해서입니다.

일본제국이야 생산량이 비참해서 숟가락까지 가져갔지만 대한공화국은 공령만 모아도 전함이 천 대 단위로 튀어나옵니다. 심지어 쇠의 질도 좋아서 조금의 가공만 더하면 병기로 사용 가능하지요.

주진무는 가상인물입니다. 조선시대에 이주한 명나라 황실의 방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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