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63화
2부 외전 6화 근육적 대전(1)
1942년 1월, 여의도 관저에 입장한 각국의 주요 인사들은 대한제국 출신 국가의 수뇌부만 있지는 않았다. 최대 우방국인 솔로몬 연방과 한때 조선의 은혜를 입은 남미국(현 멕시코)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대한공화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의하였으니 두 최대 우방국이 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당연하였다.
회의장에 모인 이들의 면모를 확인한 조만식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대한공화국은 나치 독일의 횡포를 관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머나먼 유럽의 사람들이 아돌프 히틀러의 통치하에 억압받으며 학살당하고 있는데 공화국이 혼자 좋게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참전을 결의하였는데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미국의 대통령인 저 운일준 또한 동의합니다. 이미 총리께서 부탁하신 대로 아메리카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해제하였습니다. 유럽에 개입할 것 또한 동의하겠습니다.”
“무진 합중국의 대통령이자 여송의 대표인 저 천난일 또한 동의합니다. 비록 힘은 부족하지만, 저희의 상선은 어떠한 물자라도 옮길 수 있습니다.”
“호주의 총리인 저 응가라 박(Ngarra 朴) 또한 동의합니다. 이미 호주에 머물고 있는 옛 영국 이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어 이들이 의용군을 편성하게 도왔습니다.”
운일준은 물론이요, 작달막한 여송 원주민의 체격을 가진 천난일, 그리고 호인(호주 원주민) 특유의 금발과 갈색 피부가 돋보이는 대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이 세 국가의 국민 여론은 참전 희망에 기울어져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단 하나의 기사가 세상을 바꾸게 되었으니 대한제국에 소속된 4개의 국가가 모두 참전을 결의하였다.
국가 규모가 너무 작아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신농도인(폴리네시아인) 또한 무진 합중국에 동의하였음이 분명하였다.
다들 자신들의 참전을 결의하는 서류를 조만식에게 제출하였으나 최대 우방국에 속하는 두 국가의 대표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조만식의 시선이 중미국을 대표하여 방문한 외무 장관에게 닿았다.
“현재 중미국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본래 중미국은 아메리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힘을 합치지 않았습니까?”
“운일준 대통령께서 뜻을 정하였으니 견제를 해제하였습니다. 또한 저희가 권리의 절반을 소유한 파나마 운하의 무제한적 통행을 허가할 예정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 또한 조금이라도 빠른 진군을 위하여 조만간 크라 운하(태국의 운하, 유성룡이 처음으로 설계하였다)를 개방할 예정입니다.”
중미국의 상황은 더 볼 것이 없었다.
태평양 내부의 대한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함대가 파나마 운하를 통해 대서양으로 나아가면 제해권(制海權) 장악은 식은 죽 먹기이리라.
다음으로 조만식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솔로몬 연방의 대표였다.
그가 솔로몬 연방의 대사인 아난(Anan)을 바라보자 상대는 자랑스럽게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우리 솔로몬 연방이야 파스타 놈들을 잘 상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 놈들을 예전처럼 사막으로 끌어들여 모래 범벅 파스타를 만들면 되겠지요.”
“1차 세계대전 당시 솔로몬 제국이 참전하여 이집트를 합병한 전적이 있었지. 그런데 이탈리아가 전면전을 시작하였다면 나치 독일도 참전할 것 같아서 염려가 되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가 나치 독일의 협박 때문입니다. 1902년 당시 대한제국 발굴단과 연합하여 발굴한 ‘은가이의 아들’이 조작된 원숭이의 유골이니 당장 발표를 철회하라 하더군요.”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인 은가이(마사이의 창세신)의 아들이 원숭이 시체라니?”
조만식은 자신의 말에 아난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서애 유성룡이 발굴 방침의 기초를 세운 이후 조선의 고고학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대한제국 시대에 꽃을 피웠다.
유골의 분석과 지층의 파악을 통한 역사 분석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 결실은 50년 이상 빠른 시기에 솔로몬 연합, 당시 솔로몬 제국에서 발굴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었다.
아직 탄소 동위원소를 통한 연대 측정법이 개발되기 이전 시대이니 여러 이견이 있지만, 가장 이른 시기의 인류라는 점에는 학계 모두가 동의하였다.
사학과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조만식은 아돌프 히틀러를 비웃듯이 말하였다.
“하긴 아리아인이라 하며 자신들을 우월한 인류라 말하던 나치 독일에게는 최악의 증거품이니 그럴 만도 하지. 인류의 발상이 이주(아프리카)라 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모욕이겠구려.”
“우리 솔로몬 연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싸움도 못 하는 파스타 놈들이야 상관없지만, 독일을 상대한다면 이집트 전선은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솔로몬 제국, 이후에는 이집트를 합병하여 솔로몬 연방이 된 본래 역사의 에티오피아는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한계가 있다.
지리와 환경 문제로 인해 지역 강국의 반열에 들었을 뿐, 세계를 움직이는 열강 수준은 아니었다.
나치 독일의 전면 공세를 거대한 국토를 기반으로 하여 막아낼 수는 있지만, 기껏해야 아프리카의 뿔, 본래 역사의 에티오피아 영토까지 물러난 이후이리라.
조만식은 이를 염두에 두어 대한공화국의 참전 이전 전력 배분을 시작하였다.
“이미 모두 참전을 결의하였고 두 우방국도 협력하였으니,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하겠습니다. 호주에서는 가장 근접한 솔로몬 연방을 도와주십시오. 가능한 일입니까?”
“저희 국민들은 참전 결의에 대해서는 크게 호응하지 않았지만, 주 전선과 다소 거리가 먼 솔로몬 관련 전선이라 하면 큰 반대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솔로몬과는 국가 설립 시기부터 많은 관련이 있었으니 차라리 나은 형편이군요.”
“호주는 드넓은 사막으로 인하여 인구도 적고 군대도 그리 많은 규모가 아니지만, 나치 독일을 상대로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지켜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라 판단하겠습니다. 다음은 미국과 무진 합중국의 차례입니다.”
미국 대통령 운일준은 지난 석 달 동안 파병 계획을 미리 세워두었는지 먼저 상세한 서류를 전달하였다.
본래 아메리카를 상대하기 위한 기동 군단은 물론이요, 긴급 징병된 병력을 훈련하여 파병하기로 하였다.
육군 140만에 파병 인원 65만 명, 해군 26만 중 20만 명을 1942년까지 파병하기로 하였다.
이후 2배에 달하는 병력을 징병하여 총원 500만 명 모집에 계획상으로는 1944년 파병 인원이 320만 명에 달할 예정이었다.
운일준의 미소를 확인한 조만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렇게 무리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할 작정이십니까.”
“뒷감당이야 대한공화국이 더욱 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바로 옆에 인구가 8억이 넘어가는 대륙을 두고 머나먼 세상 반대편으로 나아갈 작정이 아니십니까?”
조만식이 아직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입을 달싹거리다가 무진 합중국 대통령 천난일을 바라보았고, 천난일은 아직 계획까지 수립하진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저희야 군대 규모가 기껏해야 오십만 명에 불과한데다 지방 치안 유지가 한계 아닙니까. 대신 저희 소속 상업 선박 절반을 군용으로 징발하겠습니다. 부족한 분량이야 새로 생산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보급 문제도 해결되었군요. 다만 아직까지 문제가 있으니, 그건 공화국의 참전입니다. 아시다시피 일 년 전까지 나치 독일과 우호적 관계로 보인 덕분에 대륙의 세 국가 모두 영길리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아무 관심도 없이 저희가 싫어서 벌인 행동이지요.”
“그러하면 큰일이군요. 대한공화국이 소련 전선에 병력을 파병하면 소련을 침공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도발을 일삼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직도 대한공화국을 대한제국조차 아닌 조선이라 부르며 폄훼하고 국제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국가.
의(義)와 협(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륙의 세 국가는 여전히 대한공화국의 골칫거리였다.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여도 8억에 달하는 인구로 인하여 끝없는 소모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세 국가는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도 대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떠한 손해도 무시하고 협력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영국의 편을 들기로 한 시점에서 명분은 대륙의 세 국가에게 있었다.
대한공화국의 참전이 늦어질수록 자신들의 손해가 커지는 다른 나라들의 대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만식은 냉정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대륙을 내란으로 진동시킬 예정입니다. 중화연맹(현 중국 남동부)에서 정보를 입수하길, 중화연맹 통령은 허수아비가 되었으며 군부와 기업은 사람을 아예 가축 이하로 취급한다 합니다. 그나마 개중 걸물이 하나 있으니 장개석이라는 자입니다.”
이미 국가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니 미리 준비한 장개석에 대한 신상명세가 전해졌다.
젊은 나이부터 군관으로 모범을 보여 군사독재 국가인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형성된 내란에 참전했고, 거기서 두각을 보인 자였다.
매사에 심혈을 기울이며 언제나 청렴결백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아 부패한 관료들에게 밉보여 준장에서 더 이상 진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만식은 장개석의 흑백사진을 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이미 지정천 정보부장이 중화연맹 내부의 혁명 단체와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장개석은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군인으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총리님, 잠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화연맹의 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국가 반역 세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삼족을 멸하는 미친 나라입니다. 대체 몇 명이나······.”
“가혹한 착취로 평균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중화연맹입니다.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면 수많은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겠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겠지요.”
겉으로는 언제나 풍족한 삶을 누린다며 대륙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중화연맹이지만, 내부는 나치 독일과 비견될 정도로 끔찍한 나라였다.
심지어 철도에 들어가는 석탄을 횡령하고 사람들을 징발하여 인력(人力) 철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다른 국가 수뇌부들도 동의하였다.
이미 남경 일대에 봉기를 준비하는 혁명군이 일만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한 조만식은 다른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이미 중화연맹에서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니, 우리 공화국은 거기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지지하면 됩니다. 또한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현 중국 남서부)에도 걸물이 하나 있더군요.”
“이 친구는 모택동 아닙니까? 듣자 하니 야심이 넘치는데도 능력이 뛰어나 중화연맹을 상대하는 동부전선 집단군 사령관 자리에 올랐습니다. 중화연맹에 내전이 벌어지면 모택동이 취할 행동은 하나이지요. 반란입니다.”
“결국 대륙은 내전에 휘둘리겠군요. 중화인민공화국이야 중화연맹과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의 내전에 관여하려 하겠지만, 세 나라는 대한을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매번 대립하니······.”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고 그 시기를 정하는 것이 우리 공화국이 될 뿐입니다. 선전포고는 대륙에 내란이 벌어져 수습이 불가능해진 이후가 되겠지만 길게 잡아도 일 년이 걸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전쟁 참가를 위해 중국 대륙을 나눠 가진 세 국가 중 두 국가의 주인을 바꿔 버리겠다는 다짐이었지만, 대한공화국에서는 전쟁 준비 과정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된 병력을 파병할 수 있으며 단숨에 독일군을 밀어낼 수 있으리라.
조만식은 최종적으로 대한공화국의 파병 계획을 말하였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6월 2차 충원된 병력의 훈련이 끝납니다. 이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하여 육군 총원 백이십만 명이자 팔십 개 사단을 우선 파병하겠습니다.”
“그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총원 백이십만 명 가운데 일개 군단을 형성할 수 있는 삼십만 명만 보낸다 해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감당할 수 없을 텐데요.”
“이미 스탈린에게 연락을 보내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임시 복선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당수 구간이 단선(單線)이겠지만, 최소한 병력을 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예정입니다.”
본래 역사처럼 영국이 야드-파운드 단위에 맞춰 만든 열차 궤도가 아닌 1,800㎜ 특수 광궤로 표준화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상당수 복선화된다면 수송 능력이 극대화되어 2개월 이내에 일개 군단을 파병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나왔다.
비록 시작에 불과하였지만 모든 계획을 수립한 대표들과 조만식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관저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마이크를 내밀었고, 조만식은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가 말하였다.
“우리 대한공화국은 나치 독일의 만행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나치 독일이 전쟁을 중단하고 반인륜적인 학살을 중단한다면 평화를 주선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할 생각이라면 응징이 시작될 것입니다.”
상식적인 지도자라면 대한공화국의 참전 의사와 동시에 화평을 시작하겠지만, 조만식이 생각하는 아돌프 히틀러는 그런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기자단 가운데 가장 앞에 선 부공차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총리께서는 대한공화국의 참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그러하면 여전히 대한공화국과 나치 독일은 우호, 혹은 중립 관계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오로지 죄인이 뉘우칠 마지막 기회를 줄 뿐입니다.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사악함으로 수많은 이들을 현혹하여 억울한 이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이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독일은 이미 악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악의 제국이라는 말은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선전포고가 없을 뿐 사실상 전쟁 선포를 한 조만식의 발언을 들은 기자단은 이 발언을 받아 적기에 바빴고, 조만식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만약 공화국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국민 모두가 창칼을 들고 분연히 일어난다면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끝은 어떠한 항복도 받아들이지 않는 독일의 완전한 패망 이외에는 허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총리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질문이 더 있습니다! 육십만 명에 달하는 모병 계획은······.”
“독일을 패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할 뿐입니다. 우리 공화국은 기존의 오백만 대군은 물론이요, 우방국과 함께 이천만 대군을 징병하여 나치 독일을 물리칠 것입니다.”
참으로 험난한 계획이지만 대한공화국은 세계 최강국에 걸맞은 힘이 있으며 이 힘을 올바른 곳에 쓸 가치가 있었다.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니 독일 대사관에 있던 외교관들이 모두 강제 추방되고 온 국민이 전시체제를 실시하였다.
입대 지원자가 너무 많아 신체 능력 검증을 통해 1:6의 경쟁률을 뚫고 병사들을 소집하였으며, 입대하지 못한 이들도 다음 기회를 노리며 전시 동원 체제에 적극 협력하였다.
이후 중화연맹의 수도 남경에서는 남경대학살이라 불리는 끔찍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일만여 명에 달하는 반정부 세력이 봉기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자국민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이었다.
* * *
대한공화국의 참전 결의 이후 아돌프 히틀러의 방침은 조만식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한공화국을 크나큰 실수를 한 사람들이라 여길 뿐이었다.
이미 영국은 제공권을 장악당하여 시체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 애처롭게 저항할 뿐이었다.
심지어 동부전선의 소련군은 대한공화국과 인접한 사단이 복귀하기 전에 모스크바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그래도 대한공화국에서 돌아온 외교관들의 보고가 있으니 정기 회의가 소집되었다.
히틀러는 팔뚝을 내밀며 자신의 주치의 테오도어 모렐에게 말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대한공화국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없는데…… 입신체비로 유전자 자체를 개조하여 위버멘쉬(Übermensch : 초인)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모렐 박사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총통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부모의 근육이 우월하면 자식의 근육도 우월한 법이지요. 애초에 대한공화국에서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입신체비로 우수한 형질만 살아남았습니다.”
히틀러는 팔뚝에 주사가 놓이자 몸에 스미는 약 기운에 미소를 지으며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DNA의 발견 이전이니 모두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유전인자를 추적할 뿐이었지만 아무튼 히틀러는 저런 말이 옳다 여겼다.
회의장에 모인 장성들을 확인한 히틀러는 조만식의 연설문을 장성들에게 번역하여 읽어주었다.
장성들의 질린 표정을 보는 히틀러는 코웃음을 치며 장성들에게 일갈(一喝)하였다.
“대한공화국이 우리 외교관들을 내쫓고 경고가 아닌 협박을 하였다. 허풍 한번 잘 치는데 병력을 어떻게 운송할 것이며 어떻게 전선에 투입할 생각인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서? 아니면 그 비대한 근육으로 끌고 다닐지도 모르지.”
“발터 모델 중장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공화국은 아직 참전을 결의하지 않았지만, 우방국들은 선전포고를 마쳤습니다. 미국과 무진합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통해 영국 해군을 돕고······.”
“영국 해군? 죄다 폭격기에 맞아 바다에 가라앉은 놈들이 뭘 어쩌고 어째? 그래, 서부전선의 상황이 조금 위태로워지긴 하겠지. 대신 에르빈 롬멜 대장이 솔로몬이라는 열등 종자들을 조만간 격멸할 것이고, 나머지는 상륙하는 족족 쳐 죽이면 된다.”
발터 모델이 식은땀을 흘리며 진언하였지만, 지나친 승리에 취한 히틀러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도 모렐이 처방한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옥시코돈에 취한 히틀러는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지도에 압정을 박아나갔다.
“이미 모스크바가 경각에 달하였고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이 스탈린그라드를 함락시키기 직전이 아닌가. 겨울이라 바르바로사 작전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늦어도 올해 말에는 모스크바를 함락시킬 수 있겠지. 그럼 병력 배치는 다음과 같게 하면 된다.”
지도를 마음대로 뒤죽박죽으로 만든 히틀러의 모습을 본 발터 모델은 식은땀을 흘리기만 하였다.
반면 히틀러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듯이 가슴을 당당히 펴며 말하였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종료 이후 산발적인 공세가 모스크바 탈환을 위해 시작되지 않겠나. 발터 모델 중장을 방면군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이니 스탈린의 패잔병을 도륙하도록.”
“그러하면 나머지 동부 방면군을 그대로 서부로 옮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죽어가는 영국이 반송장 몰골로 살아날 뿐이다. 더군다나 서부전선에 상륙을 시도하는 놈들은 모두 운터멘쉬(Untermensch : 열등 인류)가 아닌가. 지방만 비대한 신농도인? 사람이 덜 된 미주인? 그놈들이 뭘 하겠나!”
히틀러는 자신의 위대한 전략에 취해 흥에 겨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던 동부전선의 병력들은 편안한 휴가를 즐기다가 상륙하는 적병을 재미 삼아 격퇴할 것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 가까스로 해군을 재구축 중인 에리히 레더는 죽을 맛이리라.
다들 계속된 승리에 취해 있었지만 발터 모델은 속을 달래려고 위장약을 먹은 뒤 히틀러를 바라보았다.
히틀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대한공화국이 허풍을 쳤다 하여도 이들은 절대 만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몇 배나 되는 대륙 연합군을 분쇄해 버린 이들이 아닙니까? 이들의 앞에서 방패가 되어줄 소련군이 합류한다면 일개 방면군으로는 방어할 수 없습니다.”
“모델 중장! 대한공화국은 기껏해야 약간의 해군과 공군을 보내는 것이 전부라네! 팔억 명에 달하는 적이 있는 대륙을 옆에 두고 어떻게 육군을 보내겠나? 갑자기 세 나라가 내전이라도 벌인다는 말인가?”
본래 전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공화국의 영향력이라면 최소한 육군 일개 군단 정도는 파병할 수 있을 것이며, 소련 패잔병과 합류하면 3개 군단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스크바를 방어하기는커녕 동부전선 전체가 순식간에 밀려나리라.
이런 주장을 해보았자 히틀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발터 모델은 고개를 억지로 끄덕이며 답하였다.
“총통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저를 신임하여 동부 방면군을 담당하게 하시니 반드시 스탈린 놈이 모아 온 패잔병을 몰살시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자네를 대장으로 즉시 승진시키겠네. 일단 대한공화국의 동맹이라는 놈들을 해치운 뒤 다시 소련을 정복하고 아리아인을 위한 레벤스리움(생활권)을 확보한 뒤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 * *
세계정세는 순식간에 급변하였다.
4월이 되자 중화연맹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통령 장만수를 비롯한 일가족이 야포 사격으로 처형당했으며, 부패한 관리와 기업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장개석을 총리로 한 국민당 정부가 수립되었다.
다시 5월이 되자 모택동 또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남부가 혼란해진 상황을 억누르기 위해 내전에 개입한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식까지 전해지자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의 선전포고가 전달되었다.
스탈린은 잔존 병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대한공화국군을 보조하였고, 모스크바가 탈환되고 동부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1943년 3월,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발터 모델의 동부 방면군은 항복을 선언하였다.
“난 도저히 못 버티겠소. 내가 받은 명령은 동부 방면군을 이끌고 스탈린의 잔당을 소탕하라는 말이었지 대한공화국군을 상대하라는 말이 아니지 않소.”
발터 모델은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대한공화국이 예상하기로 한 달 이내에 몰아낼 수 있는 동부 방면군을 지휘하여 석 달에 가까운 지연전을 벌인 장성이었다.
그러나 적이 너무 많았다.
대한공화국의 군단이 하나 더 추가되자 희망이 없다 여겨 백기를 들고 대한공화국 진영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제1군단 사령관 김상옥은 발터 모델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이런 명장이 더 이상 싸우기를 거부하고 항복을 하였다니 다행이구려. 하지만 전쟁 범죄와 연관이 되어 있다면, 특히나 장애인 학살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요.”
“그런 미친 짓은 금지하였소. 애초에 전쟁에서 병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지, 노역을 실시할 민간인을 왜 죽인단 말이오? 물론 저놈들을 보면 내 잘못이 크기는 하군.”
발터 모델은 그동안 잡아온 전쟁범죄자들.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임시로 수용된 수용소를 가리키며 쐐기를 박았다.
“나는 양심적으로 부하들을 통솔하였지……. 하지만 범죄 정권을 위한 행동이었니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소. 내가 버린 양심을 누군가 주워섬기길 바랄 뿐이오.”
“그 양심은 우리 대한이 받아들이겠소. 항복한 대장이다! 정중하게 모시도록!”
발터 모델은 마지막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충원 속도와 규모를 보건대 6개월이 지나면 보급이 부족해지겠지만, 그건 나치 독일의 질긴 명줄을 조금 붙잡아줄 뿐이었다.
길게 버텨야 1947년, 히틀러가 미친 짓을 벌인다면 1945년이 되어서 완전한 파멸이 찾아오리라.
발터 모델은 자신과 같은 막사를 배정받은 감시병의 체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체격이니 기관총을 들고 뛰어다니지.”
독일군으로서는 불가능한 전술을 취할 수 있는 대한공화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였다.
비록 전면전 경험이 조금 부족하여 자신이 상대할 수 있었을 뿐이니, 이들은 끝없이 강해지리라.
#작가의 말
독자 여러분들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쓸 내용이 많아서 2부 외전을 10화에서 조금 늘릴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15화보다는 적을 것 같지만 10화보다는 많습니다.
나쁜 소식은 제가 다음 주 9월 6일 월요일에 백신 접종 대상자라는 점입니다. 부작용이 얼마나 심할지는 모르지만 9월 8일 수요일의 연재가 불투명해질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라 하여도 9월 6일 밤에 미리 공지를 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