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62화 (562/573)

근육조선 562화

2부 외전 5화 영화를 봅시다

상세한 설명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다.

내가 결혼하기 직전까지는 세계의 전차라는 게임에 미쳐 살았고 결혼한 이후에도 가끔 게임을 해서 많은 지식을 배운 사람이기는 하다.

그런 내 입장에서 41식 전차는 6개월 만에 만들어진 괴물 전차라는 분석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차체의 내구도?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최종병기 티거2 수준이고 엔진 출력이 탁월하니 기동력은 셔먼이나 4호 전차 같은 중형 전차 이상이다.

화력도 차고 넘친다. 130㎜ B-7 주포의 대구경 고폭탄이면 피격당하고 전투력을 유지할 전차가 없다. 설령 중전차라 하여도 세 발 정도 얻어맞으면 모든 부품이 손상되어 완전 수리를 거쳐야 하리라.

아놀드 아니 아르놀트는 내 표정을 보면서 답하였다.

“이야기는 잘 들었나? 대한공화국도 역사학에 몰두하긴 하지만 전차를 직접 타고 몰아본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지. 그러고 보니 자네 체격이면 41식을 마음에 들어 할 요소가 또 있군.”

“넉넉한 차체 공간이겠군요. 무게가 무겁고 크기가 크다는 말은 전차병들에게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는 말과 마찬가지니까요.”

“바로 보았네. 아메리카의 M48 패튼도 수집해서 타보았는데 그 비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으니 숨조차 쉴 수 없었지. 평범한 사람이면 몰라도 삼대운동 사백 정도 되는 사람은 대한공화국 전차가 제격이야.”

세계의 전차 게임을 중계할 때 전차병 출신으로 나온 진행자가 하는 말이 있었다. 자기 체격이 큰 편이라 전차를 탈 때마다 찌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 했었지.

반면 아르놀트는 여전히 비대한 이두박근을 부풀리며 말하였다.

“105㎜ 주포라니 빈약해서 어디에 쓰겠나. 탄약이 너무 가벼워서 한 손으로 장전할 수 있으니 입신체비에 도움도 안 되었으니 130㎜ 탄약은 장전해야 팔 근육을 기를 수 있지.”

“그것참 명언이군요. 하긴 전차 안에 갇혀 있으면 근손실이 심각해지는 법이지요.”

“역시 대한공화국 사람다운 답이야. 그럼 나는 좀 쉴 것이니 자네도 들어가 쉬게. 수면이 늦으면 근손실이야.”

입신체비에 미친 나라답게 대답을 하니 아르놀트는 내 등을 두드리며 웃어대며 관장님과 팔씨름을 시작하며 서로의 힘을 확인하였다.

어차피 내수린 연습도 끝났고 내일은 주말이니 잠시 바람이나 쐴 마음에 후성시를 돌아보았다.

후성시는 현대화가 많이 되어서 내가 세웠던 임시 마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관아도 허물고 새로 지었는지 옛 관아 터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공원을 만들어둔 것이 전부였다.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길거리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넘쳐나네.”

쉴 새 없이 몸을 놀리는 이들이 넘쳐났다. 청년들은 농구나 아직도 우모구라 불리는 배드민턴을 즐겼고, 몸이 노쇠한 노인들마저 게이트볼을 즐겼다.

쌀쌀한 밤바람을 느끼며 아무 데나 걸어가다 보니 웬 동상이 보였다.

“내 동상 봐라. 말년에 남긴 초상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저렇게 후덕하게 되었지.”

조선시대를 살 당시 말년에 간 기능이 떨어져 부종이 심해졌는데 그걸 초상화로 남긴 적이 있었고 이게 표준 영정이 된 것 같았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에는 소역기를 들고 머나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내 동상과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미국의 아버지, 서애 유성룡을 기념하며]

내가 미국의 아버지라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기껏해야 서해안 일부에만 있던 조선의 영토를 북미대륙 중앙까지 확장한 장본인이니까.

흐뭇한 마음이 들어 살펴보니 내 뒤에는 세스페데스의 동상도 있었다.

[미주인과 핍박받는 이들의 수호자, 대주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기념하며]

세스페데스는 모든 미주인들의 수호자라 불리고 있었다.

세스페데스를 따라온 일만여 명의 신도들은 자유의 길이라는 경로를 만들었다. 이 길은 유럽의 확장으로 밀려난 미주인은 물론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들까지 탈출 경로로 삼게 되었다.

덕분에 아메리카는 1940년대까지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고 산발적 교전이 이어졌다더라.

그 첫 사례를 표현하듯 대전사의 상징인 깃털 모자를 쓰고 양손에 도끼를 거머쥔 동상도 있었다.

[미국 최초의 대전사, 백정(百政) 고란 만도를 기념하며]

고란 녀석의 동상이 여기에 있을 줄은 알았는데 백정, 일백 개를 다스린다는 새로운 호(號)가 생겨날 줄은 몰랐다.

궁금한 마음에 설명을 읽어보니 그 호가 생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란 만도는 조선의 장수로서 경진만란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이후 왜변 이후 일본의 지배구도 확립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후일 대추장을 겸하는 광조(光祖) 이연의 명령을…….]

“우리 대왕님 묘호가 광(光)이라니 훌륭한 평가를 받으셨네. 하긴 묘호 붙이는 법을 따져보아도 장(長)이나 세(世) 수준이지만 세종과 세조는 이미 선례가 있었잖아.”

잡생각은 뒤로 무르고 적혀 있는 고란의 이야기를 계속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대놓고 미주 대전사로 날뛰었지만 유럽인들이 항의하자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코만도라는 대전사에게 패배하여 중상을 입고 대전사 작위를 넘겨준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 이후에는 코만도라는 대전사로 분장하여 코만치와 아파치 부족은 물론이요, 온갖 미주인 부족을 흡수하여 거대한 군세가 되었다더라.

여기에 자발적으로 합류한 민방위 대원들도 삼천 명이 넘으니 미주인의 공포를 온 세상에 떨쳤다던가.

“조선의 화약고를 기습하여 털어낸 것으로 위장. 다연발 작렬신기전을 입신체비를 익힌 미주인들과 함께 언덕 위에서 난사하며 이천 명에 달하는 원정대를 몰살시켰다. 이거 영화로 나오지 않았을까?”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있었다. 대한공화국에서 만든 영화는 고증에 충실하여 고란이 피부를 갈색으로 분장한 것이 조금 씻겨나간 흔적이 포스터에 드러났다.

여기에 고란을 어엿한 장수로 묘사한 스틸 컷이 간혹 보였다.

반면 아메리카에서 만든 영화는 고증 따위는 아예 밥에 말아 먹은 수준이었다.

톱 같은 검으로 민간인의 내장을 쑤시며 목덜미를 물어뜯는 괴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다니, 고란이 보았다면 당장 도끼로 머리를 찍었을 수준이다.

이후 대한공화국의 영화는 고증대로 조선의 영토로 돌아온 고란이 중범죄를 저지른 미주인 사형수들의 목을 유럽 원정대에게 전하고 돌아와 비웃으며 끝났다.

반면 고증을 밥에 말아 먹은 아메리카의 영화는 서로 상잔을 벌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고 묘사하였고.

“하긴 서양 놈들 역사와 고증을 밥 말아 먹은 영화 많이 만들었는데 여기서도 그러네. 아예 창작물을 만들거나 실존인물과 묘사가 다르다는 언급이라도 하지.”

내일부터는 주말이니 시간이 비는 형편이었다.

한때 영화광이었으니 영화나 몰아서 볼까 생각하다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숙소로 돌아가 제안하니 양 부장님은 자신이 고전영화를 즐겨 보았다면서 이런저런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살아 있는 근육의 밤이 가장 멋진 영화지. 4편까지 나왔는데 1968년에 나온 첫 편이 걸작 중의 걸작이고 입신체비장 장면은 지금까지도 영화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이라네.”

“저는 더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영화도 본 것 같습니다. 을병대기근이 역사적으로는 가장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참극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역사 고증 영화니까 재미와는 거리가 머니 나중에 봐야지. 영의정 태량붕탁(太樑崩坼: 큰 보가 터지고 무너지다) 송시열 역을 담당한 이덕환 씨의 열연이 돋보이지 않았는가.”

변한 역사의 나와 친했던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본래 역사에는 없던 인물인 진 실장이 끼어들었고 셋이 의기투합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고전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는지 살아 있는 근육의 밤은 하루 두 편이나 상영하고 있었다.

포스터를 확인하니 좀비 영화였는데 어중간한 좀비들은 입신체비사가 휘두르는 쇳덩어리에 두들겨 맞고 두개골이 깨져 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초반부를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약품을 사용하면 석 달 이내에 입신체비사의 근육이 이 할 증가할 거야. 부작용이 좀 있겠지만 상품을 팔아야 하지 않겠어?]

어떤 미친 과학자가 입신체비사는 물론이요, 입신체비를 즐기는 사람들의 필수품인 유청분말에 이상한 화학물질을 섞었는데 보라색 빛이 맴도는 흉측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이 약품이 당시의 도핑검사에도 걸리지 않으며 막대한 근육을 붙여준다는 점이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이 회사의 유청분말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석 달이 지나자 입신체비사들은 폭력성이 극대화된 근육 좀비가 되었다.

[육질! 육질! 육질이 필요하다!]

[승모근이 넘쳐나는구나!]

복용량이 가장 많은 입신체비사가 좀비로 변하자 이에 호응하듯 다른 감염자들도 좀비가 되었고, 순식간에 한양 시내 전체가 근육의 물결에 뒤덮였다.

한 장면에만 최소 오백 명에 달하는 입신체비사들이 질주하였다.

더군다나 이 좀비들은 완력이 최소 다섯 배 이상 강해진 데다 잠복기에 있는 감염자와 접촉하면 즉시 감염자로 만들었으며 입신체비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

정상적인 입신체비사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판국이었다.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동차를 뒤엎고 경찰과 헌병대가 쏘아댄 총을 맞아도 근육으로 버텨내기까지 하였다.

사태 수습을 위해 기갑사단이 파견되었지만 이들도 답이 없었다.

[적이 너무 많습니다! 대령니이이임! 이미 주포와 기관총 탄환이 다 떨어졌습니다!]

[자네들은 전차에 타고 있지 않은가! 신속히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하게!]

[후퇴가 불가능합니다! 대역기봉으로 궤도를 부숴 버렸습니다! 모두 살아 있을 때의 다섯 배에 달하는, 거의 열 배가 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악! 해치가 뜯겨나간다! 살려줘!]

입신체비 좀비 세 명이 힘을 합치니 해치가 뜯겨나갔고 전차병은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는데 이들은 보통 좀비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끌려간 장소에 도착한 전차병 앞에 대역기가 떨어졌다.

[근육을 길러라, 아니면 먹혀서 우리의 근육이 되어라.]

[이…… 이걸 들! 알았어! 입신체비 하면 되잖아!]

입신체비를 했던 사람은 유청분말을 먹으니 좀비가 되었다.

반면 좀비에게 잡혀 온 이들 가운데 입신체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입신체비를 하며 유청분말을 먹고 좀비가 되거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잡아먹히는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군부대 내부에서도 입신체비 좀비가 전염되어 온 나라가 순식간에 근육에 미친 좀비들에게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도 희망이 있는 것 같았으니 한양에 여행 온 외국인들이었다.

[잘 들어, 입신체비사의 행동 방식을 유지하는 저 좀비들을 멈추게 만들 계획이 있어. 저기 저 좀비 보이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이상한 자세를 취하는 좀비 말이야.]

[나도 보고 있어 벤, 저 이상한 자세를 왜 취하는 거지?]

[수양팔근도에 나온 측굴세(사이드 트라이셉스)라는 자세야. 전신거울을 앞에 둔 좀비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자신 있는 입신체비 자세를 취하지. 그러니 이걸로 공항까지 탈출하자고.]

흑인 배우는 어디선가 얻어온 높이 2m에 달하는 거대한 거울을 가리켰고 생존자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지만, 일단 효과가 있으니 거울을 사방으로 들고 밀집대형을 취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 진형처럼 바깥 면에 전신거울을 비추며 길거리로 나온 생존자는 이윽고 입신체비 좀비들에게 포위되었다.

좀비들은 벤이라는 생존자의 말대로 거울을 살펴보며 입신체비 자세를 취하였다.

[흐읍! 허엇! 역시 내 근육은 완벽해.]

[벤 말대로 효과가 있네. 거울이 지독하게 무거워서 문제지만.]

[입 다물고 천천히 움직여. 어디 쉴 곳을 찾아서 골목에 들어간 다음 거울로 좌우를 막자고. 최소한 전기가 끊어지기 전까지는 밤에도 포징(Posing) 트랩의 효과가 유지될 거야.]

거울이 움직이면 전신의 근육을 확실히 보기 위해 좀비들이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졌고 서로 밀치고 부대끼며 진로를 열어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탈출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췌한 백인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공령을 눈치채지 못하여 다리가 걸려 넘어져 버렸다.

고속촬영 효과로 인해 전신거울이 아주 천천히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한창 흑룡세를 취하다 자신의 모습이 사라진 입신체비 좀비가 몸을 더듬었지만 반대편에 보이는 것은 초췌한 백인 남자였다.

그러더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를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감히 내 자랑스러운 근육을 없애? 너를 근육하겠다!]

[도망쳐어어어어어!]

처절한 도주는 한 명 한 명씩 사로잡혀 좀비의 밥이 되면서 영화의 절정을 알렸다. 가까스로 입신체비사가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환기구로 들어온 주인공이었지만, 건물이 대역기봉으로 무너져 내리며 그의 도주도 끝날 것 같았다.

이윽고 시커먼 밤하늘 위에 여러 개의 빛이 보였다. 그러더니 장면이 급격하게 전환되어 웬 핵폭발 장면으로 전환되었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사태를 종료시켰다.

이후 대한공화국 각지에서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후속편을 예언하듯 무너져 내린 빌딩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입신체비 좀비의 손가락이 클로즈업되며 영화가 막을 내렸다.

“뭐…… 뭐라 할 말이 없군요. 그나저나 당시 평가는 어떠하였습니까?”

진 실장은 영화에 감동받은 듯이 상반신의 근육을 꿈틀거렸지만 나는 본래 역사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감독이 걱정되었다.

저런 영화를 만들면 맞아 죽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양 부장님은 피식 웃으며 답하였다.

“유청분말 판매량이 사 할이나 감소해서 회사가 울상이 되었지만 이후 공장제 유청분말 대신 고품질 수제 유청분말이 대세가 되어 일 년 뒤에 더욱 많은 판매고를 올렸지.”

“그거 말고 김길덕이라는 감독 말입니다. 저런 내용을 34세의 나이에 만들었다면 보복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요. 영화 자체는 명작이지만 한양에 핵폭탄이라니요.”

“어차피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 약간의 불만을 담은 입신체비사가 편지와 230㎏ 대역기를 누가 들고 와서 문 앞에 내려놓았지. 힘이 열 배 강해진 입신체비사 쉰 명이면 전차를 뒤엎어야 하는데 못 뒤엎으니 고증오류라 하던가.”

그나마 현실과 영화를 분간해서 다행이기는 하다.

놀란 가슴을 달래려고 영화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이 되기 전 영화를 한 편 더 보려 하는데, 고전영화 가운데 내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

“동부전선이라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영화 같군요. 1972년 영화인데 이건 어떻습니까?”

“명작 기록영화이지. 근데 영화가 세 시간 길이라서 조금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까짓것 소역기 하나 들고 가서 팔 운동도 하고 무게 없는 공좌라도 해서 하체를 유지하면 충분하겠지요. 입신체비가 가능한 좌석 표를 사서 봅시다.”

뭔 영화를 보며 입신체비인가 했는데 진짜 입신체비 전용 좌석이 있었다.

맨 뒤의 좌석들은 간격이 거의 네 배가량 넓었는데 이 정도면 앞 열의 사람이 일어나도 뒷사람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 수준이다.

심지어 약간의 보증금을 내고 소역기를 빌릴 수 있었는데 대역기는 사고 때문에 빌릴 수 없다던가.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안전수칙을 다시 보며 소역기로 양팔을 단련하였다.

기록영화에 가까운 녀석인지 옛 한양의 모습은 물론이요 수많은 군인들을 보여주었고 시기는 1941년 10월이라 적혀 있었다.

그러다 장면이 전환되어 어처구니가 없는 모습을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

[입신체비를 본받자는 놈들이 장애인 학살이라고? 암! 어림도 없다! 암! 어림도 없고말고!]

화질과 음질을 보니 당시 이승만의 연설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근육이 넘실거리는 몸에 신부복을 입은 채 사람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옆에서 등장한 사람이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여러분! 정의가 무엇입니까! 정의는 바로 입신체비 낙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 목사 김일성! 평시에는 견원지간이었던 이승만 신부와 함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뭔 미친…….”

“미친놈 맞아. 김일성 목사가 말년에 미쳐서 금수산 입신체비궁전을 만들다 불법 입신체비 약품 사용 죄목으로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 잊었나?”

신부 이승만과 목사 김일성이라니 이 미친 조합은 대체 뭐란 말인가.

평상시에 사이가 안 좋았는지 신도들도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둘은 신문을 펄럭거리며 같이 연설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정부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치 독일이라는 역적패당을 가만히 방치한 채 관망만 하였습니다! 우리 공화국이 힘을 들인다면 천만 대군으로 나치당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치 독일을 막아내야 할 구주(歐洲: 유럽)의 국가 영국은 우방인 아메리카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미국과 다툼을 벌인 덕분에 여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아래에 자막으로 나오기를 ‘미국은 무진천명대전에 도움을 주기를 원하였으나 아메리카의 견제 때문에 참전하지 못하였다. 그 보복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아메리카를 역으로 견제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 연설 장면이었는지 카메라가 천천히 돌아가 신도들의 모습을 비추었는데 하나같이 분노한 표정으로 총리 유동열에 대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러다 한 사람이 도착하자 모두 고개를 숙이며 침묵하였다.

[자네들의 분노를 나 또한 이해하고 있다네. 그러나 분노를 앞세워 무턱대고 달려들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자막으로 건양제의 아들이자 대한제국 황태자 이탄(李坦)이라는 이름이 나왔고 이승만과 김일성 둘 다 고개를 숙이며 이탄이라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연단으로 올라온 노인은 목을 가다듬더니 시민들에게 말하였다.

[건양제께서 대륙 연합군을 막아내실 적에 독가스 공격으로 심히 진노하셨지만 네 번을 참으시고 정당한 보복을 행하셨던 일을 잊었는가. 이를 보아 세 번만 참아줄 수 있겠는가.]

황실을 폐했지만 폐한 이후에도 권위가 어마어마하였다.

순식간에 분노한 신도들도 이들에게 연설하던 신부 이승만도 목사 김일성도 하나같이 침묵하였는데 누군가가 달려와 종이를 뿌리며 외쳐댔다.

[호외요! 호외입니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할 따름입니다만 긴급 의원투표로 유길준 총리가 물러나고 총리로 조만식 의원이 임명되었습니다!]

이승만과 김일성도 호외를 읽어보고 싶었는지 카메라를 밀치며 달려들었고, 사람들의 아우성과 기쁜 목소리 그리고 분노에 찬 목소리가 교차하였다.

이윽고 카메라가 향한 곳은 여의도에 세워진 총리 관저였다.

모두 배우였지만 당대 총리인 조만식은 물론이요, 각 의원들과 장성들까지 집무실에 있었으며 부공차라는 큐슈 출신이 분명한 사람이 자신이 모아온 자료를 가지고 피를 토하듯 말하였다.

[나치 독일은 있어서는 안 될 국가입니다! 놈들은 이미 장애인을 몰살시켰고 유대인을 비롯하여 폴란드인, 집시 그리고 각종 약자들을 게토라는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검열과정도 없이 독일의 사실을 퍼트려 나라를 진동시킨 부공차였지만 지극히 합당한 말이기에 모두가 침묵하였다.

이윽고 대한공화국 중앙정보부 소속 지정천은 보고서를 내밀며 이 발언에 쐐기를 박았다.

[저희 정보부에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절멸수용소라 하여 불순한 이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기관이 운영될 예정이라 하였습니다. 그 규모는 최대 기준 매일 2만 명 이상입니다.]

[이천 명이 아니고 이만 명이라고? 그 예측이 정확한가?]

[정확한 보고는 아니지만 유럽의 동부 전선에서만 매일 오천 명 이상이 생매장당한다 합니다. 이마저도 소모품을 역산한 보고이며 실질적으로는 더 많을 수도…….]

배우의 연기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는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조만식의 모습이 영상 가득 비쳤다.

잠시 숨을 고른 조만식은 장관들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에게 연락해, 대한공화국은 독일의 침공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첫 단계로 아무런 대가 없이 소련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을 것이라고. 미국의 운일준 대통령에게도 서한을 보내 아메리카와의 상호 불가침 조약을 시행하도록.]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미 인천항과 부산항 그리고 대남도에서는 영국에 의용군으로 참전하겠다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이미 오만 명 이상이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올렸다 합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당시의 기록영상이 나왔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거대 상업선박에 오르며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으니 이미 의용군이 조직된 상황이리라.

조만식은 한숨을 쉬더니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일단 소련의 동부전선 사단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아메리카가 영국에 힘을 실어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라네. 이후 공화국은 물론이요 옛 대한의 형제들이 모조리 참전할 예정이니 국민들에게 계획을 알려주고 사단을 정비하여 원정을 준비하게.]

장면이 급격히 전환되며 병사 확충과 신형 병기 생산을 독촉하는 모습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한양으로 모여든 옛 대한제국 출신 국가의 수뇌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대한제국에 속해 있던 국가들이 독립하였지만 독립 이후에도 현대 미국이 그러하듯 사실상 한 몸과 마찬가지인 세상이 되었다.

당시의 기록 영상인지 대한공화국, 미국, 남미국, 솔로몬 연합, 호주, 그리고 무진 합중국의 수뇌부가 여의도의 관저로 입장하였다.

#작가의 말

PC방에도 역기가 있습니다.

노래방에도 역기가 있습니다.

보드게임카페에는 벌칙수행을 위해 모든 입신체비기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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