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61화
2부 외전 4화 근육적 전차(3)
김상옥과 하르빈의 기갑 연구소가 주관한 전차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치독일이 본래 역사와 같은 시기에 폴란드를 침략하며 2차 세계대전의 포문이 열린 이후에도 개발은 지속되었다.
이 전쟁이 세계를 뒤흔들 전쟁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폴란드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 동부의 국지적인 전쟁이 될지는 몰랐지만, 홍범도도 전차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부터 기갑 연구소를 방문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만일의 경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소련으로 전차 사단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무게가 문제로군. 총 중량이 팔십 톤을 넘어갈 경우엔 포탑을 떼어내도 옮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네.”
“저희 공화국이 콧수염 인간백정과 동맹을 실시한다니요? 차라리 히틀러 총통과 동맹을 성립하겠군요.”
“거 상황이 틀어지면 소련 놈들에게 몽둥이를 좀 휘둘러야 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나저나 포르쉐 교수는 심신미약으로 집행유예와 금고형 삼 년이 선고되었다네.”
용접 이전에 리벳 결합으로 전차의 형태를 잡아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상옥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홍범도를 바라보았다.
전차 시연회에서 나라 망신을 시켰음에도 집행유예라 의아했는데 홍범도는 웬 도면 뭉치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중언부언(重言復言)을 일삼아서 모두 자금 횡령이나 배임(背任)을 의심하여 자택을 압수수색했다네. 그러다 발견한 증거가 이 거대한 똥 덩어리 전차라네. 세상에 이백 톤이 넘는 중전차를 계획했더군.”
“원수님께서는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그런 거대한 전차가 움직이기만 해도 지축이 무너지고 도로가 박살 나며 주변 건물이 충격을 입을 겁니다. 속력이야 사람이 빠르게 걷는 수준일 거고 연비는 대충 생각해도 리터 당 백 미터는 될지 의문이구요.”
“나도 믿지 않았는데 이미 목업(木業)은 물론이요, 십 분의 일 크기로 만든 철업(鐵業: 철 모형)까지 만들어 둔 상태더군. 심지어 전차의 명칭은 생쥐(mouse)일세.”
홍범도가 건네준 도면을 확인한 김상옥은 그 흉측한 몰골에 질겁하였다. 정말 이백 톤이 넘는 거대한 전차의 상세 설계도가 묘사되어 있었으며 내부 동력은 그가 자랑하는 혼합기관(하이브리드 엔진)이었다.
모든 수치와 예상 무게까지 명확히 기재된 생쥐 전차, 본래 역사의 마우스 전차의 모습을 본 김상옥은 그 흉측함에 머리를 감싸 쥐며 도면을 접었다.
홍범도는 혀를 차며 팔짱을 끼고는 말하였다.
“자네가 보아도 맨정신이 아니지 않은가. 공화국군의 전술은 화력을 앞세운 포격 이후 고속 진군으로 적진을 유린하는 것인데 이 전차의 예상 속도는 십 킬로미터 내외라네.”
“이런 똥 덩어리를 만들려면 아무리 함선용 부품을 전용(轉用)하여도 이 전차만 생산할 공장의 생산 계획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최소 사단규모로 운용해야 할 텐데 여기에 들어갈 물량과 예비용 부품까지 감안하면…….”
“내 말이 그 말일세. 전차 대대 하나를 편성해 30대를 만들면 그 가격으로 소형전차나 중형전차를 사단 규모로 만들고 돈이 남을 걸세. 그렇게 만들어봤자 전쟁에서 쓸 수나 있겠나.”
“공세 참가가 불가하니 거점에서 수비나 담당하지만 기동이 거의 불가하니 전차 다섯 대 정도나 상대하고 멈추겠지요. 만약 전선이 밀려나도 생쥐 전차는 퇴각이 불가능할 겁니다. 결국 자폭시킬 놈이면 그 돈으로 벙커나 열 개 만들고 말겠습니다.”
히틀러와 포르쉐가 본래 역사에서 만든 끔찍한 전차 마우스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내린 김상옥이었지만 이 평가는 아주 정확한 내용이었다.
그나마도 적이 바보같이 정면으로 공세를 퍼부을 때 한정으로 다섯 대 정도를 격파할 뿐이고, 우회기동을 하거나 아예 자주포와 야포를 부어 넣으면 돈만 많이 들어간 똥 덩어리가 되리라.
김상옥은 홍범도를 위로하듯이 말하였다.
“포르쉐 교수가 명성과 달리 헛짓거리를 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신 상태가 안 좋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급적 마음의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면 좋겠군요.”
“나도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네. 젊은 시절엔 포르쉐 교수가 만든 보행기로 몸을 단련했는데 이제는 집에 연금(軟禁)되어 심신을 다스려야 하는 신세라니.”
홍범도는 잠시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운 표정을 짓다 임시로 리벳으로 용접된 전차 차체에 관심을 돌렸다.
하나같이 거대한 부품들이 들어차니 지금까지 대한공화국에서 만든 적이 없는 거대한 전차가 완성되고 있었다.
원통형의 성형엔진으로 인해 차체의 높이가 증가하고 이를 출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변속기 또한 거대해지게 마련이었다. 또한 지난 5개월 동안 복제된 러시아 제국의 함포 130㎜ B-7이 포탑에 장착되기 시작하였다.
홍범도는 이 모습을 보며 혀를 차댔다.
“이래서야 소련 놈들이 만드는 T-35 전차나 프랑스의 샤르 2C 전차보다 거대한 녀석이 되겠군. 실전 능력이야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되겠지만 너무 거대하다네.”
“예상에 따르면 출력이 960마력에 달하니 기동력은 준수하며 주포 화력은 부족함이 없더군요.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은 주포 무게를 줄이려고 잘라낸 덕분에 철갑탄 사용이 불가합니다.”
“함포를 전차 위에 올렸는데 모두 이득으로 돌아올 수가 있나. 그래도 고폭탄을 마구 쏘아 전차건 보병이건 가리지 않고 쓸어버리고 정 단단한 상대면 점착유탄을 쏘면 될 것이네.”
각 구경별로 최적화된 설계를 찾아야 하는 성형작약탄이 나오려면 아직 한참 뒤의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임시 조립이 완료된 전차의 모습을 본 홍범도가 목을 가다듬었고 연구원들은 설명을 시작하였다.
“임시로 조립된 전차이기에 철판 두께는 모두 100㎜로 통일하였습니다. 설계대로라면 전면 120, 측면 80, 후면 60㎜로 구성할 예정이지만 조립이 먼저이니까요.”
“포탑 장갑은 어떠한가? 장갑이 포 방패를 포함해 두 겹이나 들어갔는데? 또한 무게에 여유는 있는가?”
“전면은 120㎜ 장갑이고 같은 두께의 포방패가 결합하여 240㎜가 되며 측면과 후면은 100㎜ 장갑으로 통일하였습니다. 무게는 계획대로라면 74톤에 시험용 전차는 66톤입니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하였으니 시험용 전차라 해도 기본 설계는 완료되었다. 전면에 경사장갑을 채용한 모습까지 확인한 홍범도는 방어력에 만족하였지만 아직 시험이 끝나지는 않았다.
“예전처럼 기동시험에서 탈락하면 안 되니 차체에 공령이라도 잔뜩 매달아서 기동시험부터 시작해. 운전병부터 시작한 기갑사단 장교들을 대기시켰으니 염려하지 말게나.”
공령을 사용하라는 지시면 다른 국가가 기겁하겠지만 대한공화국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연구소 곳곳에 있는 공령들이 사람의 손으로 옮겨지고 전차 이곳저곳에 매달리고 안에 적재되며 임시 무게추 역할을 하였다.
74톤의 무게를 달성한 전차는 불완전한 임시 리벳 결합으로 차체가 덜컹거렸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한 엔진 출력 덕분에 장교가 운전에 난항을 겪을 수준이었다.
연구원들은 이 모습을 보며 말하였다.
“기동시험은 성공입니다. 성형엔진의 출력이 지나치게 높아서 문제이니 가속도를 조금 낮추면 되겠고 문제가 하나 있으니 무게중심이 조금 높은 편이로군요.”
“무게중심 정도야 차체가 선회할 때에나 문제가 되는 것일세. 혹시 모르니 차체 측면으로 포구를 향하고 발사해보게나.”
가장 불리한 조건인 언덕 위에서 차체 측면으로 포구를 돌린 채 발사하는 시험까지 끝나자 김상옥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미 전쟁의 포문이 열렸기에 김상옥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지시를 하달하였다.
“내년 4월까지 시험용 전차 30대 일개 대대를 편성할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 리벳 결합이 아닌 용접 결합에 모든 사항이 설계대로 완성되었다는 조건으로 말일세.”
“불가하지는 않습니다. 대량 양산이야 공정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 41년이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30대 정도라면 공정이 없이도 가능하지요.”
김상옥의 표정이 풀어지고 홍범도 또한 시험운행을 마친 전차를 매만졌다. 이 보고는 총리 유동열에게도 들어가 김상옥은 한양에서 임명장을 받아들게 되었다.
“중장 김상옥을 이전까지의 공훈과 새로운 전차 개발에 이바지한 공훈을 반영하여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시키며 육군 참모차장으로 임명한다.”
중장에서 마침내 대장으로 진급한 김상옥은 경례를 올리며 계급장을 받아들고 군기를 인수받았다.
자연스럽게 육군 원수 홍범도의 퇴역도 결정되며 새로운 세대가 대한공화국 군대의 주역으로 임명되기 시작하였다.
* * *
1940년 4월. 예정대로 대한공화국의 신형 중전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듯이 혹독한 시험을 통과한 전차, 후일 41식 전차라 불릴 신형 중전차는 1년 전 포르쉐 교수가 실패하였던 벌판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전차는 비가 내려 부드러워진 하르빈 인근의 평야를 거침없이 박차고 진격하였다. 960마력에 달하는 엔진 출력은 이 거대한 전차를 도로가 아닌 벌판에서 40㎞로 질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상옥은 이 모습을 지켜보더니 조심스럽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전 대대 선회를 실시하도록! 차체 균형이 다소 높은 편이니 주의하여 선회하라! 이후 미리 배정된 진흙탕으로 나아가 주행 시험을 계속 실시한다!”
경쾌한 기동을 자랑하는 다른 전차들과 달리 무게중심이 다소 상부에 위치한 41식 전차이니 선회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포르쉐 교수의 전차들이 모조리 주저앉은 진흙탕으로 향한 전차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진하였다.
예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41식의 설계는 어중간한 진흙탕을 돌파할 거대한 무한궤도를 장착하게 하였다.
비록 30대의 전차 중 4대가 깊은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총리 유동열은 박수를 치며 말하였다.
“훌륭하군! 몇 대 정도는 지나치게 깊은 진흙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런 경우는 사고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전차들을 어서 구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주행시험이 완료되었으니 이후 화력 시험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차의 구난조치가 완료된 뒤 화력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전 전차 시험의 문제점을 영원히 묻어버리려는 듯이 목표물은 포르쉐 교수가 만들었던 전차가 배정되었다.
내부 부품을 모조리 탈거하고 외부 장갑만 남긴 전차이지만 전체 중량이 60톤에 달해 현존하는 전차 가운데 가장 튼튼한 전차이니 포의 위력을 시험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김상옥은 30대의 전차 앞에 도열한 목표를 확인하고 명령을 내렸다.
“장전 개시.”
-장전 개시!
무전기로 지시를 받은 전차 대대의 장전수들은 32㎏에 달하는 포탄을 가볍게 들어 장전하고 여력이 남아 다음 탄환으로 손을 뻗었다. 기본적으로 근력이 출중한 병사들이니 다른 나라처럼 분리형 장약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전방의 목표물로 조준을 돌린 포수가 손을 올려 조준 완료 표시를 하였고, 전차장도 이를 확인하며 무전기를 눌러 소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고작 15초 만에 장전과 조준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상옥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처음 다섯 발은 고폭탄으로 자율 발사하도록! 발사 시작!”
포르쉐 교수의 전차를 향하여 30문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비록 전면장갑이 100㎜에 달해 관통되지는 않았지만, 전차의 외부는 쑥대밭이 되었고 예산을 잡아먹은 고철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본 유동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나라의 병사들이라면 기껏해야 분당 5회를 발사하겠지만 대한공화국의 병사들은 평균 36초 만에 5회 발사를 달성하였다.
김상옥은 병사들의 힘에 흡족해하며 설명하였다.
“보십시오. 러시아 제국의 함포를 개수한 신형 전차포는 기본 탄환인 고폭탄으로도 적의 중 전차를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설령 전차 차체가 분해되지 않아도 모든 부품이 엉망이 될 것입니다.”
“듣자 하니 예산을 상당수 사용하여 신형 주포에 맞는 탄환을 설계했다고 하였지. 당장 시험해 보게나.”
“명령 받들겠습니다. 예정대로 다섯 발을 추가 발사하며 일 번부터 십 번까지 전차는 점착유탄을! 십일 번부터 이십 번까지 전차는 철갑고폭탄을! 나머지 전차는 고폭탄을 발사한다!”
다시 굉음이 벌판을 울렸지만 포탄에 적중된 전차는 각기 다른 형태로 망가졌다. 장갑 표면에 달라붙은 이후 충격을 전달하는 점착유탄은 발사 이후 지연시간을 가진 뒤 작은 폭발을, 철갑고폭탄은 지연시간 없이 장갑 표면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전차들이 뒤로 물러나 주포를 뒤로 돌린 채 대기하자 유동열을 비롯한 수뇌부는 혹시나 모를 파편과 불발탄 제거작업이 끝난 뒤 목표가 된 전차로 향하였다.
김상옥은 전차 표면에 붓으로 페인트를 바르며 탄흔을 설명하였다.
“이 흔적들은 고폭탄으로 인한 피격 중심부입니다. 비록 장갑을 뚫지 못하였지만 피격당한 철판이 휘어들며 궤도와 임시로 설치한 기관총을 비롯한 부품들이 모조리 붕괴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종이 울리듯이 내부의 승무원들이 피를 토하며 기절하겠군.”
“전차는 거대한 쇳덩어리라 가벼운 종처럼 소리가 울리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철모를 망치로 살살 두드려 맞은 수준의 충격만 가해질 뿐이지요. 대신 전차의 기동이 불가해집니다.”
군대를 나온 적이 없는 유동열이기에 잘못된 상식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바로 수정하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두 번째 전차로 향한 김상옥은 다시 페인트를 덧칠하며 말하였다.
“피격 부위가 적합하다면 고폭탄으로도 적 전차의 장갑을 붕괴시킬 수 있고 내부 승무원들은 고폭탄의 파괴력에 휩쓸려 곤죽이 될 겁니다. 또한 이 생쥐가 파먹은 것 같은 흔적은 점착유탄의 탄흔입니다.”
“이거 안으로 장갑재가 모조리 말려 들어갔는걸. 그렇다면 내부는 찢긴 철판이 날아들어 끔찍한 몰골이 되었겠군. 만약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안이 시산혈해가 되어 있을 걸세.”
“옳은 말씀이십니다. 비록 점착유탄이 관통하지 않아도 흡사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철갑고폭탄은 관통력이 부족하여 전차 표면을 일그러트린 것이 전부이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포탄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유동열은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연구원들까지 치하한 뒤 말하였다.
“이 전차를 뭐라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양산하면 될 것 같군. 이미 구주(歐洲: 유럽)에서 전쟁의 불길이 일어났으니 내 예산을 대량 편성하겠네. 내년 1월까지 일천 대를 양산하면 어떻겠나.”
“콧수염이 멋진 인간백정이 기겁하겠군요. 아시다시피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이 전차를 운송할 수 있으니 동방에 배치한 육십여 개의 사단을 더욱 증설할 겁니다.”
“스탈린을 조금 더 무섭게 만들어볼까. 진도수치(다자이 오사무)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늠름한 전차, 마치 대한공화국의 상징이자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입신체비로 정제된 근육 같은 전차를 확인한 다자이 오사무는 한참 동안 시상을 떠올리더니 눈물을 한 줄기 흘리며 말하였다.
“전차는 격노했다. 반드시 그 간사하고 포악한 적을 없애 버리리라고 결의했다. 전차는 패배를 모른다. 전차는 대한의 수호자이다. 주포로 불을 뿜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악행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민감했다.”
“표현이 참으로 참신하군! 그렇지 않아도 독일의 지도자인 히틀러가 연일 우리 공화국에 승전 보고를 보내고 있으니 진도수치 자네와…… 김 대장의 친구인 모렴야라는 요리사가 독일까지 나아가 연회를 대접하며 소문을 퍼트리면 어떻겠나?”
“불란서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습니다. 젊은 시절에 불란서를 다녀왔다가 샤브샤브를 대접받았는데 거위의 간을 끓는 버터에 살짝 익혀서 먹는 요리를 먹고 구토한 적이 있어서요.”
다자이 오사무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헛구역질을 하였고, 프랑스에서 젊은 시절에 잠시 유학했던 유동열 또한 쓴웃음을 지으며 답하였다.
“나도 젊은 시절에 불란서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대창 안에 다진 대창을 넣은 소시지를 비롯해 기름을 요리라고 내놓아서 석 달 만에 도주하였지. 그럼 잘 다녀오게나.”
이후 다자이 오사무가 대한공화국의 신식 전차에 대해 늘어놓은 시구는 서양 각지의 언어로 번역되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소련에서는 발작적으로 동방 65개 사단을 95개 사단으로 증설하였다.
1941년 3월, 마침내 독일까지 나아간 모렴야와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부공차는 독일 정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각종 정보를 반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독일은 유럽을 정복하고 있었다. 프랑스를 단 4주 만에 격침시켰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은 본래 역사와 달리 독일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영국이 수세에 몰리자 이제 전쟁의 표적은 러시아가 될 예정이었다.
마치 4주 만에 무너진 프랑스를 확인하듯 모렴야의 특제 샐러드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히틀러는 다음 요리를 받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하였다.
“역시 모렴야의 요리는 일품이구려. 프랑스 놈들이야 매일같이 비계만 먹어대지만 위대한 근육의 나라 대한은 채식조차도 맛이 대단하군. 이 샐러드를 모스크바처럼 섭취하게 될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견딜 수 없군.”
소련 전선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본래 역사보다 더욱 많은 사단을 대한공화국 견제를 위해 동방에 파견하였으니 독일의 공세를 견딜 수 없으리라.
두부 스테이크를 맛보는 히틀러에게 모렴야는 흡족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저야 언제나 재료에 마음을 들여 음식을 만들 뿐입니다.”
“그럼 더더욱 좋소. 훌륭한 시를 듣고 맛 좋은 채식을 즐기니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구려. 대한공화국의 신형 전차와 흡사한 전차 개발 계획을 세웠으니 조만간 소련을 양분하고 함께 세상을 정벌하면 어떻겠소? 내 조만간 대한공화국에 사절단을 파견할 거요.”
아직 독소전쟁이 개전되기 이전이었지만 히틀러의 마음속에서 대한공화국은 소련을 협공할 동맹국이었다. 이후 아리아인과 대한인이 세상을 양분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자신의 사상을 담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히틀러를 보고 모렴야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조금 길거리가 어수선한 것 같군요.”
“이어진 승리로 국민들의 마음이 들뜬 덕분이지. 그나저나 친구가 기자라 하였는데 위대한 승리를 거듭한 독일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해 보지 않겠는가.”
“총통께서 허가를 내려주시니 이 부공차(도미나가 교지)는 어서 길거리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도미나가 교지는 충성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대한공화국은 물론이요 어떠한 국가와 단체에 소속되어도 일신의 평안을 추구하며 상식적인 모습에 만족하는 소인배에 속하는 자였다.
그런 이에게 광적인 충성심을 자랑하는 겉보기만 좋은 머저리, 독일 무장친위대의 모습은 역겨운 깡통들이 허영심에 찌든 모습에 불과하였다.
그는 하르빈 일보의 편집장이기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로 향하였다.
“참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 대체 뭔 일이 있기에 저렇게 어두운 걸까?”
한때 큐슈 출신이며 대한공화국으로 이주한 사람인 부공차이니 15년 전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큐슈로 몰려온 이주민들이 한없이 착취당해 고난과 피폐함이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피폐함과 베를린의 피폐함은 명백히 달랐다. 고난과 역경에 짓눌린 사람이 아닌 상실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설프게 배운 독일어로 물어보니 사람들은 애써 슬픔을 감춰가며 말하였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책이니 어쩔 수 없지요.”
“국가 시책?”
편집장이지만 한때 기자생활을 역임하던 사람으로서의 감이 없는 머리숱을 쭈뼛하게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국가 시책이라는 말에 촉이 곤두섰으니 이를 수행하는 무장친위대 막사를 찾았고 병사들은 미소를 지으며 부공차를 안내하였다.
“어이고 대한공화국 기자 양반 아니신가? 마음대로 찍으십쇼.”
멋들어진 쓰레기라 불리는 무장친위대이니 기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막사를 공개하였다. 그저 병사들의 일상생활을 담으려는 듯 셔터를 누른 부공차였지만 도저히 믿지 못할 포스터를 확인하였다.
-병자나 기형아를 절멸시키는 것이야말로 병적인 인간을 보호하려는 미친 짓에 비하면 몇 배나 자비로운 일이다. 이들은 밥벌레이자 열등한 인간이다.
입신체비가 전해지며 장애인의 인권의식이 세상 최초로 싹튼 것이 조선이었다. 이들은 입신체비를 행할 수 없어 자신들이 불효를 저지른다 생각하던 이들이었다.
후일 장애인 문제가 거론되자 입신체비의 논리에 의거해 모든 이들이 배려와 대접을 하였다. 기회가 있음에도 행하지 않으면 욕을 먹어야 하지만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면 무엇보다 불행하다 여긴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상체가 온전하다면 하체를 보존하고 상체라도 입신체비를 할 수 있게 하며 반대라면 하체라도 입신체비를 시킨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면 주변의 양반이나 부유한 이가 하인을 보내 평생 동안 수발을 하며 부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효도를 대신한다.
아직 장애인 관련 법안이 없는 대한공화국이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 모두가 배려받고 대접받는 사회이기에 법안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이 사상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부공차는 막사에서 나오자마자 하수구에 대고 속의 모든 것을 게워낸 뒤 외쳤다.
“이 미친놈들! 사람도 아닌 놈들! 자신들의 국민이 사람이 아니라고!”
“엄마! 나 안 갈래! 특별치료 갔다 온 애들 모두 안 돌아왔잖아!”
한눈에 보아도 사시(斜視)가 심각한 어린아이가 무장친위대 두 명의 손에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명분이야 특별치료겠지만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으니 아이는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네놈이 사람이냐! 그냥 맞아 죽어라!”
부공차의 주먹이 무장친위대 병사의 턱을 강타하였고 끈이 풀린 인형처럼 병사가 쓰러졌다.
이마의 핏줄은 물론이요, 눈을 까뒤집은 부공차는 다른 병사의 사타구니를 걷어차며 말하였다.
“내가 네놈들을 모조리 장애인으로 만들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만들어주마! 이 사람도 아닌 놈들을 짐승처럼 대접해야지!”
“대한공화국 기자가 미쳤다! 어서 제압해!”
신들린 듯이 날뛰는 부공차였지만 무장친위대 병사들의 수 앞에서는 재간이 없었다.
일곱 명의 병사를 반죽음으로 만들어놓은 부공차였지만 결국 몽둥이찜질에 쓰러져 버렸다.
이 사건이 히틀러에게 보고되지는 않았다. 한 명에게 일곱 명이 당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부공차를 총칼로 협박하여 입을 다물게 만들고 독일 공산당 패거리에게 기습당한 사태라 허위 보고를 하였다.
비록 입을 다문 부공차였지만 그는 반드시 대한공화국으로 돌아가 이 소식을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이 악적들에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알려줄 날이 머지않았다.
#작가의 말
41식 전차의 모티브가 된 M6 중전차의 파생형 M6A2E1 전차입니다
이 전차의 주포를 90㎜에서 130㎜로 교체하고 포탑 크기를 더 키우면 41식 전차가 됩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6a2e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