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60화 (560/573)

근육조선 560화

2부 외전 3화 근육적 전차(2)

끔찍한 전차 시연회를 마치고 하르빈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소문은 모든 군 장성들에게 퍼져 나갔다. 시연회장에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참석하였으니 조만간 대한 공화국 전체에 이 비극이 전해지리라.

아무래도 좋았다. 아예 똥 씹은 표정이 된 김상옥은 휘하의 9기갑사단 장교들과 각 장성들 그리고 하르빈에 위치한 육군 기술연구원의 연구진을 소집하였다.

이들은 녹화된 전차 시연회 영상과 전차 실물을 가져와 원인을 분석하였다.

“자네들도 영상을 보아서 알겠지만 포르쉐 교수가 혼합기관으로 시연한 대형전차는 하나같이 진창을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아예 엔진 과열로 불타오르더군. 원인이 뭔가?”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 원인은 신형 전차에 사용된 현가장치는 여러 겹으로 구성된 차륜과 이것을 결속하는 고력(高力)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에 진흙이 유입되며 기관의 부담이 막대해진 덕분이지요.”

대한 공화국에서 최초로 개발한 현가장치인 고력봉은 본래 역사에서 토션바(Torsion bar) 서스펜션이라 불리던 물건이었다.

대역기봉을 양산하던 공장에서 전차의 무한궤도에 거대하고 단단하게 만든 막대를 사용하자는 제안을 한 이후 현실에 옮겨졌다.

아직 아메리카에서 개발한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사용하는 전차가 대다수였으니 일종의 기술 시험 및 신개념 실증을 위한 최첨단 전차가 포르쉐 교수의 대형전차였다.

연구원들은 다른 문제점도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두 번째 문제는 하이브리드 엔진입니다. 지나치게 거대한 기관이니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서 56톤에 달하는 차체가 언덕에서 힘을 쓰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무게중심이 어긋나며 과열이 시작되고 이후에는…….”

“내연기관까지 과열되어서 불이 붙어버린 것이로군. 마지막 문제는 뭔가?”

“그나마 이건 당장에 개선 가능한 문제입니다. 중량 대비 무한궤도의 폭이 좁아 돌파력이 부족한 점이지요. 그러나 이걸 다 개선해도 엔진 설계를 개량할 수 없으니 포르쉐 교수의 전차는 폐기처분 대상입니다.”

김상옥을 비롯한 장성은 아예 고개를 숙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대한공화국은 1916년 최초의 전차인 MK.1을 확인한 이후 1919년 3월 지상전함(地上戰艦) 1호기이라 명명한 20톤급 전차 2,000여 대를 양산하며 빠른 대응속도를 보여주었다.

이후 중국 대륙을 압박하기 위해 10년 주기로 신형 전차의 개발과 양산을 반복하며 3차 전차계획이 추진되던 찰나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본래 30톤 이하의 소형전차와 45톤 이하의 중형전차, 그리고 60톤 이하의 중전차로 구성된 28개 사단을 편성할 예정이었다.

예정과 달리 핵심인 60톤급 중전차가 최종 단계에서 완전히 탈락해 버린 상황이라 이 계획이 물거품이 될 지경이었다.

얼마 전 신형 전차를 배정받은 김좌진은 고민 끝에 말하였다.

“아예 기갑사단을 소형전차와 개발이 팔 할 정도 완료된 중형전차로 구성하면 안 되겠나? 우리 기준에서야 소형이지 다른 나라 기준으로는 중형전차인데.”

“자네 군단에 배치된 연운(煙雲) 경전차를 말하는 건가? 그 전차는 27톤에 불과하고 속도 하나로만 먹고 사는 녀석에다 75㎜ 주포를 사용하니 화력이 부족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소련에서는 43톤에 달하는 준대형전차를 양산한다 하더군.”

“소련에서 만든 전차가 그 정도면 연운 경전차로는 전면전이 불가능하겠군. 더군다나 전시상황이 되면 현지개수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걸 감안하면 화력이 너무 부족해.”

연운 경전차는 대한공화국의 우방인 호주와 협력하여 개발한 경전차이자 다른 국가의 분류로 어엿한 중형전차였다.

비록 비좁고 –대한공화국 장병 기준으로– 구형 현가장치를 사용하지만 기동력은 우월하였다.

시속 50㎞로 전장을 활주하며 소구경 75㎜포를 난사하며 적진을 누빌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차이지만 군단 규모의 격전에서는 보조 화력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김좌진이 침묵하자 김상옥은 한숨을 내쉬며 연구원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지금 개발 중인 중형전차는 언제쯤 개발이 완수되나? 듣자 하니 기본중량 43톤으로 차체를 더욱 증강하였다는데 성능은 어떠하고?”

“주포는 90㎜에 출력이 590마력이라 성능은 기준 이상입니다. 대신 동력기관 일체화가 필요한 녀석이라 개발이 조금씩 지연되고 있으니 1942년 말이 되어야 개발이 완료될 겁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로군. 소형전차는 몰라도 중형전차는 포르쉐 교수가 남긴 33식 전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하여튼 포르쉐 교수 하나 때문에 이게 뭔 꼴인가.”

대한공화국의 전차 전력은 2차 세계대전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연운 경전차는 전시상황의 개량을 거치면 2차 대전 말기의 명품 전차인 코멧(Comet) 전차와 대등한 물건이었다.

현재 계속 개발이 이루어지는 중형전차만 따져도 M26 퍼싱을 3년 이상 빠르게 양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한공화국의 전차가 대등한 교환을 이룰 수 없는 양산 전차는 오로지 2차 세계대전의 괴물 티거 2와 이를 개수한 야크트티거뿐이었다.

대한공화국의 생산력을 감안하면 두 종류의 전차를 합쳐 7만 대 가량 양산할 수 있으니 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를 모르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잠재적 적국들이 찍어낼 괴물 전차들만이 보였다.

김좌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소련의 신형 전차가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55톤 열차를 운송 가능하니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차도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네.”

“잠시 알아보겠네. 일단 포르쉐 교수가 경쟁에서 통과한 이유가 엔진 출력 덕분이라네. 최소 700마력 수준의 엔진을 양산할 방법이 어디 없을까. 공군에서는 얼마 전 전투기 양산이 시작되었다던데 그 기관을 사용하면 어떨까 싶은데.”

전화기를 놀려 교환수를 부르고 평양에 위치한 공군사단에 전화를 건 김상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상대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공군 참모총장 노백린이 전화를 받자 김상옥은 자연스럽게 흥분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단! 심! 공군 참모총장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단심, 묻고 싶은 것이 있다니 혹여나 신형 중전차 시험에 관련된 문제인가?

최초의 비행사이자 공군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노백린의 말을 들은 김상옥은 식은땀을 흘리며 우물거렸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일이기에 체면을 감수하고 질문을 시작하였다.

“그렇습니다. 참모총장님께 공군에서 사용하는 신형 엔진을 양도받아 전차에 사용할 수 있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불가하다네. 신형 중전투기는 12기통 1,180마력 엔진을 사용하지만 기체 전면을 꽉 채울 정도로 엔진이 거대하다네. 신형 자주포인 180㎜ 구경 팔준(八駿) 자주포가 이 엔진의 개수 이전 엔진을 사용하여 차체 길이만 9m에 달하지 않는가.

김상옥도 노백린과 같은 의견을 생각하였다. 그나마 자주포라 차체가 짧지 회전포탑을 올린 전차면 차체 길이가 10.5m에 달해 거대한 쇳덩어리가 되리라.

김상옥이 뭐라 말을 하지 못하자 노백린은 권고하듯 말하였다.

-홍범도 그 친구가 지나치게 자네의 능력을 높게 사서 무리한 요구를 하였으니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게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으니 술이라도 한잔 걸쳐보게.

전화가 끊기고 힘이 풀린 김상옥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정신적으로 몰려 있으니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하리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럴 때에는 맛 좋은 음식과 질 좋은 술을 마시며 하루 정도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지. 공군참모총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술이나 마시러 가지.”

하르빈 인구의 3할은 큐슈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구주(九州)거리라 하여 신도시가 형성되었다. 이 신도시 외곽으로 차를 타고 도착한 장성들은 사복을 입은 채 거대한 저택으로 향하였다.

채식구락부(俱樂部: 클럽의 일본식 음차)이라 적힌 저택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은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고 인사를 올리더니 사람을 불러왔고, 김상옥과 김좌진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친구이자 이 채식구락부의 주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렴야(牟廉也) 자네 그동안 잘 지냈나? 이거 더욱 후덕해졌군.”

“나야 언제나 잘 지내니 염려하지 말게. 그나저나 하루만 더 빨리 왔으면 삼산원(杉山元: 스기야마 하지메) 선배님도 만나뵐 수 있었는데 아쉬운 일이로군. 대신 다른 친구가 왔다네.”

대머리를 반짝이는 모렴야, 본래 역사의 무다구치 렌야가 인사를 올렸고 뒤에서 탈모 증세가 완연한 작달막한 체격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김좌진은 서로 얼싸안으며 말하였다.

“부공차(富恭次) 자네도 오늘 여기를 방문하였나? 선배님까지 계셨다면 사관학교 삼대영걸(英傑)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일정을 조금 틀어볼 것을 잘못하였네.”

“삼대영걸이라니 이 친구가 농담 한번 잘하는군. 우리 셋 다 졸업도 못 했는데 뭔 삼대영걸이라는 말인가? 우리가 전설을 만들기는 했지만 영걸이라 불릴 사람은 아니네.”

대한공화국, 예전의 대한제국 사관학교에는 전설이 있었다. 큐슈 반환 이전에 대한제국 사관학교에 입학한 세 명의 하주도 출신 입학자가 있었으니 본래 역사의 스기야마 하지메(삼산원), 도미나가 교지(부공차) 그리고 무다구치 렌야(모렴야)였다.

이 세 명이 전설이 된 이유는 3차에 걸친 졸업시험에서 처참하게 탈락한 덕분이었다.

삼산원은 1차 필기시험에서 사상 최저점인 4과목 합계 117점을 기록하였고, 부공차는 3차 지휘시험에서 술에 취하여 충성보다는 월급을 우선시하라는 망언을 하였다.

진정한 전설은 눈앞에 있는 모렴야였다. 그는 2차 면접시험에서 ‘보급이 없어도 근육이 많으니 풀만 먹고 근육을 불태우며 진군하자’라는 명언을 남겼고 당시 교장인 홍범도는 점수를 매기는 것을 거부하고 뛰쳐나갔으며 사상 최저점인 100점 만점에 6점을 기록하였다.

이런 끔찍한 낙제생들이지만 성격과 인품은 좋았으며 심지어 명망 높은 가문들임에도 큐슈 반환 시기에도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말을 마치고 호탕하게 웃은 모렴야는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사람들을 안내하였다.

“중장님들이 오셨으니 내가 구락부의 진미를 알려주겠네. 요즘 새로 개발한 음식도 있으니 기대하게나.”

“거참 기대되는군. 생각해 보니 자네가 식당을 세운다 하였을 때 홍범도 원수님께서 친필로 식당 이름을 정해주셨는데 어느새 온 세상에서 채식을 가장 잘 만드는 식당이 되었군.”

“교장선생님이 혜안이 있으신 분이셨지. 고기 요리는 대한에서 견줄 수 있는 식당이 수없이 많지만 채소무침 하나는 일품이니 채식에 전념하라 하셨으니까.”

채식구락부는 이미 만원 상태였지만 언제나 동기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모렴야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별채를 마련하였다.

뜨듯한 구들로 데워진 별채이지만 김상옥도 김좌진도 다른 장성들도 술부터 들이켰다.

아무리 질 좋은 음식이 들어오건 말건 술이 우선이었다.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장성들이 술기운이 올라 고개를 휘적거리기에 이르자 모렴야는 이를 확인하고 혀를 차며 말하였다.

“이 친구들 술을 너무 마시는데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안줏거리를 챙겨왔으니 어서 들도록 하게나. 이대로 덮어놓고 먹다가는 속이 모조리 상한다네.”

모렴야가 가져온 음식은 미역을 시작으로 각 채소를 식초로 무친 뒤 두툼한 왕게(킹 크랩) 살을 올린 음식이었다.

처음에는 술에 취해 젓가락을 놀린 김상옥이었지만 특이한 맛에 홀딱 반해 삽시간에 음식에 몰두하였다.

“맛이 참으로 대단하군. 완두콩은 물론이요, 오이에 미역을 비롯하여 모든 채소가 한 몸이 된 것 같다네. 더군다나 이 왕게 살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이 내륙인 하르빈에서 맛있는 왕게를 먹을 수 있다니.”

“내가 친구라서 알려주는 것일세. 이 요리에 들어 있는 모든 재료는 통조림과 병조림이야.”

“이 게살이 통조림이라고? 자네 지금 농담하…… 잠깐, 게살 통조림이 나온 것이 얼마 전이기는 하지. 신문에서 대서특필하였는데.”

“바로 보았네. 채소를 각기 병조림으로 만들어 초절임을 하고 나중에 양념을 하여 합친 음식이네. 알다시피 하주도 사람들은 해산물을 그리워하여 왕게 통조림이 불티나게 팔리니 이를 응용해 보았지.”

요리사로 명성을 떨치는 모렴야의 역작을 맛본 김상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각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양념으로 묶어냈으나 그 절묘한 배합이 너무나 완벽한 음식이다.

모렴야는 김상옥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는 그저 채소에 소금과 식초를 넣고 절여냈을 뿐이네. 그리고 채소의 맛이 도드라지지 않게 맛술과 간장, 그리고 설탕을 넣고 가볍게 삶아내 맛을 조합하고 달달한 게살을 올려내니 자연스럽게 요리가 완성되더군. 그러고 보니 자네가 다루는 전차와 흡사하군.”

“전차와 흡사하다니?”

“전차와 흡사하지 않은가? 전차는 사람을 태우고 동력기관으로 움직이며 주포를 올리고 이를 철판으로 감싼다네. 내 요리의 게살이 주포이며 채소가 사람과 동력기관이고 양념이 철판이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자네 말 덕분에 내 눈이 뜨였네.”

모렴야의 말은 대한공화국군 기준으로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전차는 목적에 맞게 덧붙여 나가는 물건이지 멋대로 물건들을 쑤셔 박고 억지로 틀을 씌우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 물건은 기술이 부족한 소련이나 만드는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60톤급 중전차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아예 전차 자체가 글러 먹은 물건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목적에 부합하는 전투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김상옥은 벌떡 일어나 모렴야의 손을 잡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무렴! 소련 놈들이야 기술이 부족하니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붙여서 기괴한 전차를 만들지만 그게 뭐 틀리단 말인가! 내 자네의 조언을 듣고 신형 전차를 만들어보겠네!”

뛰쳐나간 김상옥을 바라본 모렴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김상옥은 어떻게든 목적에 부합하는 전차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대한공화국에서 사용 중인 모든 화포가 집결하였다.

“이 야포들을 전차에 올릴 수는 있겠는가? 야포든 대공포든 상관없다네.”

“그게 말입니다……. 팔준 자주포(후일의 흑룡 자주포)만 따져도 차체 무게가 72톤에 달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우리가 사용하는 야포나 대공포는 하나같이 괴물이라 문제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쏠 때에는 좋았는데 막상 전차에 올리려니 하나같이 괴물이로군!”

대한공화국의 화포 체제는 자동장전장치가 없는 시대이지만, 오로지 포병들의 근력 하나를 믿고 큰 구경과 위력을 추구하는 화력 중심 체제로 돌아갔다.

최근 개발하고 있는 240㎜ 자주포에 올릴 초거대 야포와 사단급 포병에게 있는 180㎜포는 애초에 올릴 수도 없었으며, 155㎜ 주포도 당연히 전차 위에 올릴 수가 없고 자주포로나 사용이 가능하였다.

올릴 수는 있어도 포탑을 돌리다 근손실이 일어나리라.

120㎜ 야포는 차라리 소형 자주포로 쓰는 것이 나았고 대공포는 지나치게 거대한 주퇴복좌기의 크기로 전차에 결합할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중형전차에 올릴 90㎜ 주포는 중전차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연구원이 헐레벌떡 도면을 가져왔다.

“그나마 부합하는 포가 하나 있습니다. 러시아 왕국에서 사용하는 강구트급 전함의 포 가운데 130㎜ B-7 보조포를 보십시오.”

“강구트급 전함? 그거 무진천명대전 시기에나 사용하던 전함인데?”

“당시에 대한제국군은 주력으로 305㎜ 함포와 보조포로 155㎜ 함포를 사용하였지만 이 녀석들은 전차에 올릴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중전차에는 이런 포가 어울립니다!”

강구트급 전함은 20세기 초반에 취역한 구식 함선이었으며, 대한공화국 해군에서는 전함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한 녀석이어서 동방으로 피난한 러시아 왕국의 해군에서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전함의 보조포인 130㎜ B-7 주포는 몇 번의 개수와 개장을 거쳐 해안포와 자주포에 쓰인 S-26포, 최종적으로는 S-70 전차포까지 진화한 시대를 뛰어넘은 명품 주포였다.

유성룡 이후 도면과 설계의 종주국이 된 대한공화국의 연구원들은 원본 도면 위에 기름종이를 깔고 임시 포탑을 그려내었다.

이윽고 거대한 포탑 도면이 완성되었고 김상옥은 그 거대한 주포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였다.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길이를 조금 잘라내야 하지만 그렇게 잘라낸다면 주퇴복좌기 크기를 조금 줄여도 되겠군. 우리에게는 원본이 없으니 러시아 왕국에 전화를 해보겠네.”

다시 초조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교환을 거쳐 가까스로 연결된 국제전화는 바지직거리는 소음이 넘쳐났지만 그 잡음 사이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시아 왕국의 외무부 장관 아나스타시야입니다. 김상옥 중장님께서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는지요.

“군사적 협력이 필요하여 전화를 드렸습니다. 공식 요청이 아니어서 무례한 일이지만 강구트급 전함의 보조포로 사용되었던 130㎜ B-7 주포를 하나 얻어올 수 있습니까?”

공식 공문도 아닌 급한 나머지 전화부터 보냈으니 상대가 거절하여도 할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더니 러시아 제국의 여왕 올가 로마노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중장님께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 걱정했는데 별일이 아니로군요. 강구트급 전함은 이미 개수를 마쳐서 B-7 주포는 지금 비를 맞고 녹슬어가는 실정입니다.

“개수를 마치다니요? 저는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혹여나 현대화 개장을…….”

-현대화 개장이 맞지요. 대한공화국이 저희를 수호해 주는데 구형 전함이 있어서 뭘 하나요. 타티아나의 의견을 존중해서 게잡이 어선으로 개조하였지요. 덕분에 게살 통조림이 팔려서 대한공화국에서 지원한 채무를 착실히 갚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오시면 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불침함이라 불리며 소련을 수호한 강구트급 전함의 최후는 결국 초거대 어선이었지만 아무려면 좋았다.

김상옥은 머나먼 동북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 왕국에 사람을 보내 주포를 가져오도록 하게. 또한 전차에 사용할 수 있는 칠백 마력 이상의 엔진은 모조리 가져오도록 하고. 나는 미주로 나아가서 엔진을 하나 가져오겠네.”

“신형 엔진이라니요? 미국에서 만든 성형(星形) 엔진 말씀이십니까? 그걸 내어 주겠습니까?”

“전차를 완성하면 기술을 공유할 것이라 말해둘 것이네. 어차피 아메리카와 상시 분쟁 중인 미국이니 이번 기회에 전차라도 공유해 볼까.”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현직 총리 유동열에게 연락을 보내 허가를 받은 뒤, 즉시 공군기에 올라 미국의 수도 금성(今城)으로 향한 김상옥을 맞이한 이는, 미주인 출신 대통령인 운일준이었다.

“김 중장께서 미주까지 이리도 다급하게 오셨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요.”

“대통령 각하를 뵙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신형 전차 설계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듣자 하니 미국 공군은 성형 엔진이라는 천 마력급 엔진을 개발했다더군요.”

“이미 대한공화국 총리께 연락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형 엔진이라는 녀석이 전차에 사용하기는 참 골치 아픈 녀석이라 문제입니다. 형태를 한번 보시면 알 겁니다.”

거의 순혈이나 마찬가지라 갈색 피부가 돋보이는 운일준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방문한 군사시설에는 군수산업체 중 하나인 만천(滿天) 공업의 성형 엔진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화서 26형이라 불린 엔진은 높이만 1.2m에 달하였다.

“이게 성형 엔진입니까? 저희는 소형 기관으로 줄여서 장갑차나 트럭에나 사용하는 물건인데 이렇게 거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저희야 검증된 물건을 사용하길 좋아하니까요. 사실 저희도 전차에 이 녀석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전체 높이가 거의 3.5m에 달하는 꺽다리 전차가 되어서 문제였지요.”

성형 엔진은 가운데 축을 두고 사방으로 실린더를 보내서 마치 별처럼 보이는 엔진이었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엔진 자체가 거대한 원형이니 이를 전차 차체에 넣는다면 차체의 높이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아무려면 좋았다. 대한공화국에서 쓰이는 항공기 엔진이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서 문제라면 이 엔진은 길이 하나는 짤막하였으니까.

김상옥은 만천 공업의 사원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엔진으로 전차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다만 미국이 우방이라 하여도 전차 시제품이 합격하기 이전까지 기술을 유출시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엔진과 기술자만 따로 보내주십시오.”

“사실 기술이 좀 유출되어도 좋지만 뭐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엔진을 주고 대한공화국의 12기통 엔진을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여하튼 신형 전차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 때에는 수행원을 포함해 세 명이었지만, 돌아갈 때에는 거대한 성형 엔진 수십 개와 쉰 명의 사원을 포함하여 대규모 인원이 되었다.

가까스로 하르빈으로 돌아온 김상옥은 연구원들에게 전차 개발을 명령하였다.

“지금까지 수집한 부품들을 모조리 조합하여 전차를 만들게. 몇 가지 형식이 되어도 좋고 조합이 아무리 많아도 좋으니 대형전차에 걸맞은 녀석을 꼭 만들어보게나.”

종이는 물론이요, 나무와 심지어 얇은 철판을 포함하여 수십 가지의 목업(木業)이 만들어지며 전차 내부 설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5개월 뒤, 오로지 임시방편이지만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꿀 위대한 전차의 시제품이 탄생하였다.

#작가의 말

현재 대한공화국군의 전력은 본래 역사에서 1.2미국 수준이며, 우방국을 포함하면 1.7미국이 됩니다. 거기다가 인구수를 앞세우는 중국을 박살 내기 위해 기술 발전은 독일 이상입니다.

육군만 따져도 경전차랍시고 코멧을 1만대 이상, 중형전차인 퍼싱을 1만대 이상 찍어낼 수 있고 여기에 41식 전차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공군의 경우에는 BF109급 공격기를 전간기에 만들 수준이고, 해군은 미군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호주와 미국이 보조하면 미군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 전력이 부족하다고 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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