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59화
2부 외전 2화 근육적 전차(1)
새벽에 일어나 낮에는 건물을 실측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한다.
퇴근한 이후에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자연스럽게 입신체비나 기타 활동에 매진하다니. 본래 역사의 끔찍한 업무량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질식투(초크슬램)는 그렇게 넣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 체중에 그 체격으로 전력을 다하여 기술을 걸었다가는 어느 누구라도 경추가 골절되잖아!”
“주의하겠습니다. 이거 힘 조절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네.”
오늘도 입신체비 대신 내수린 강의에 열중하였다.
기초 과정인 접수야 일 년 정도 연습했다고 뻥을 치고 거대해진 몸과 내 신경을 완벽히 일치시키는 수준에서 끝냈고 강의의 8할은 공격 기술 수련에 몰두하였다.
나이가 환갑이 넘어 칠순이 다 된 관장은 여전히 푸짐한 근육을 유지한 채로 나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알려주었고, 이걸 모두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정신을 집중해 다시 질식투를 조심스럽게 걸었고 판정이 내려왔다.
-경추 손상입니다.
“아이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힘을 좀 빼야겠네. 아예 엉덩이를 손으로 잡아야 하나.”
이놈의 내수린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태권도나 펜싱에서 사용하던 전자호구가 아예 전자 더미(dummy)가 되었다. 인체의 형태와 무게를 갖춘 인형에 내수린 기술을 걸고 손상 정도를 충격량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물론 피폭자 기준은 근육을 기르지 않은 평범한 일반인 기준이지만. 오늘도 영직이의 경추를 여섯 번 날려 먹고 일곱 번째가 되어서야 합격 판정이 떨어졌다.
휴식시간이 되자 관장은 나에게 이온음료를 가져다주면서 말하였다.
“누구에게 원한이라도 있어서 이렇게 기술을 연마하는가? 배우는 속도도 엄청나고 자세도 아주 정확한데 혹시나 내수린에 투신해 볼 생각도 있는 건가 했더니만?”
“내수린이요? 혹시나 복수자설이라도 할 예정입니까? 전 예맥대장이 하고 싶은데요.”
“그건 좀 힘들고 단역배우는 가능할 것 같군. 그나저나 복수자설의 아메리카 번안판인 복수혈전(revenge)에서 덕국대장을 연기한 배우가 여기 출신이긴 하지. 내 친구이기도 하고.”
“아놀드?”
“아르놀트 이슈테네거(Arnold Eastenegger)라네. 아놀드는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아메리카 놈들 발음이지 않나.”
체육관 한구석을 살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영화배우 아놀드의 사진이 있었다. 가슴에는 옛날 독일에서 사용하던 철십자를 별 대신 박은 채로 기관총과 거대한 타워실드를 착용한 채 자세를 잡고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복수자설은 동양의 위대한 작품이자 고증과 재미를 사로잡은 녀석이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는데, 아예 유명 영화배우인 아놀드까지 영향을 받았다니.
관장은 옛 추억을 떠올리듯 말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출신인 아르놀트는 전차병 시절부터 입신체비에 몰두하였지. 듣자 하니 당시에는 대한 공화국의 53식 전차를 탑승하고 포탄으로 공좌(스쿼트)를 즐겼다더군.”
“혹시나 탈영해서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습니까?”
“정답이지. 나도 처음에 듣고 미치광이라 생각했는데 유럽 입신체비 초회 대회에서 탈영병이 우승을 차지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 이런 세상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관장의 눈이 커지며 내 뒤를 바라보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아놀드, 아니, 아르놀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왔다.
“창선이! 나 왔다네! 내가 돌아오겠다고(I will be back) 말하지 않았는가!”
“이 친구야 돌아오는 것이 이 년 만에 돌아오나!”
아르놀트는 역사가 변해도 아르놀트였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얼굴과 수염 모두가 새하얗게 변했지만 어마어마한 골격과 근육이 나를 반겨주었다.
두 노인의 해후가 끝나자 아르놀트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하였다.
“이 친구 체격이 제법 좋은데. 나이가 많은데 혹시나 대한공화국에서 건너온 선수인가?”
“아니야 일반 강의 듣는 사람이지. 특이하게도 접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데 힘 조절이 부족해.”
“나도 근육이 잔뜩 불어났을 때에는 그런 적이 있었지. 온 기념으로 내가 만든 알로이스(Alois) 공령이나 하나씩 받아가게나. 대한공화국제와 호환이 가능하니 직접 써도 되고.”
아르놀트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내려놨는데 죄다 2㎏ 공령이었다. 여기에 기판에 글을 쓰는 하얀색 펜으로 사인을 하나씩 적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근육적 사인회가 끝나고 아르놀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였다.
“그 손목시계는 세계의 전차 협찬 제품인데? 내가 배우로 나와 광고한 물건 아니야?”
“그러고 보니 같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군요.”
이 투박한 손목시계는 본래 역사에 내가 쓰던 물건인데 그런 녀석일 줄은 몰랐다.
아르놀트는 휴대전화를 몇 번 눌러 자신이 찍은 촬영현장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자랑하였다.
“내가 광고를 찍을 적에 내가 젊은 시절에 타고 다녔던 53식 전차를 몰고 다니며 직접 촬영했지. 나도 게임을 좀 하는데 자네 주력 차종이 뭔가?”
본래 역사에서는 주지사 일 하다 실수도 저지르며 재혼도 했던 사람이 왜 이렇게 얌전해졌나.
여하튼 나도 세계의 전차를 즐기는 사람이라 인식했으니 적당히 둘러대며 답했다.
“요즘은 입신체비에 몰두해서 별로 안 하고 있습니다. 다만 프랑스 전차가 마음에 들더군요.”
“이 친구 참 별난 사람이군. 대한공화국 사람이 대한공화국 전차를 안 타고 뭘 하나? 내가 이래 봬도 취미가 전차 수집이라서 전차 역사에 대해서는 빠삭하다네. 뭐 묻고 싶은 거 있나?”
“41식 전차라는 녀석의 역사에 관해서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 전차라서 찾아보고 싶었는데 일하고 근육을 기르느라 찾아볼 짬이 나지 않았다.
인터넷의 정보는 부정확한 면이 있으니 전차 수집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아 물어보니 아르놀트는 싱긋 웃으며 답하였다.
“41식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네. 엄밀히 따지면 임시방편으로 만든 전차의 성능이 좋아 명품이 된 사례지. 녀석을 만든 사람은 당시의 김상옥 중장, 후일 대한공화국 육군 원수라네.”
아르놀트는 자신이 수집한 전차인 41식 전차 1940년 프로토 타입이라 적힌 사진을 보여주며 위대하고 장대한 전차 개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1939년 4월 5일. 요동과 북변의 경계인 하르빈 일대의 벌판에는 평상시와 다르게 철저한 경계가 이루어졌다. 다른 무엇도 아닌 신형 전차의 성능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막사에서 한참 동안 군복을 정돈하던 사람은 대한공화국 육군참모차장이자 중장 김상옥이었다.
그는 희끗희끗해지는 콧수염에 바셀린을 발라 말끔히 정돈한 뒤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 장교가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단! 심! 하르빈 일대 향토사단의 집결을 마쳤습니다! 두 시간 뒤 시연회에 참석하실 분들도 조만간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단심, 고생이 많았으니 병사들을 잠시 쉬게 하게나. 시연회에서 불민한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 아닌가. 당장 참석할 사람들이 넘치는 실정이라네.”
혹시나 모를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옛 순나라에서 무력도발을 실시해도 김상옥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제4군단장을 역임하는 김좌진이라면 물샐 틈 없는 방어선을 구축한 지 오래이리라.
김상옥은 막사 밖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잠시 일대 보병부대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돌아오겠네. 아니, 그들도 참관하여야 하니 미리 배정된 참관 장소로 안내하도록 하게.”
무진천명대전으로 젊은 나이에 명성을 떨친 김상옥은 자신과 함께 전쟁에 참전한 일반 병사들이 일대에서 영관급 장교를 역임하고 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차의 능력을 확인하기 편하도록 높은 언덕 위에 설치된 참관 장소에 도착한 김상옥의 뒤에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 영관급 장교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에 청춘을 바친 사람답게 김상옥을 만나자마자 칼 같은 경례를 실시하였다.
“단! 심! 박진문 준장 외 이십구 명 중장님의 명령에 의하여 참관을 실시하겠습니다!”
“단심. 박진문 자네가 드디어 준장으로 올랐군. 다들 알고 있는 사이이니 편히 쉬게나.”
박진문은 전쟁 당시 김상옥과 함께 최전선에서 용맹을 떨친 일반 병사였다.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지라 진급이 늦었지만 그에게 무수히 달린 훈장만 보아도 무용(武勇)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상옥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하였다.
“오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네. 대한으로 망명하여 명성을 떨치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교수가 설계한 신형 전차는 기본 성능에서 중화인민군 전차 다섯 대를 상대하고도 여력이 있다더군.”
“그러하면 놈들을 화력으로 압살할 수 있겠군요.”
“물론이라네. 대륙 놈들이 삼십 년 전처럼 대륙 연합군을 결성하여 수천만 병력을 쏟아부어도 이를 죄다 어육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무진천명대전, 대한제국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무엇보다 제국군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요소는 인구 차이였다.
1909년 당시 대한제국의 인구는 1억6천만에 달해 열강 가운데 최고수준의 군사력을 자랑하였지만 상대는 세 국가의 연합이었다.
연합을 구성해 7억이 가뿐히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순과 제, 그리고 준나라는 덩치만 따지면 5배에 가까운 상대였다. 더군다나 이들은 헤이그 조약으로 금지한 독가스로 선전포고 없는 기습을 실시했다.
당시를 떠올린 노병(老兵)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하였다.
“저는 희뿌연 아황산가스를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삼십 년이 지났지만 연탄을 태우는 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나 또한 똑똑히 기억한다네. 같이 장교로 부임한 벗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까.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동안은 구들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탄내도 역겹게 느껴지더군.”
당시 사관학교를 갓 졸업하여 우수한 성적을 인정받아 중위로 임명되었던 김상옥은 자신의 중대가 독가스에 허물어져 가는 꼴을 보며 땅을 치고 통곡한 기억이 있었다.
전쟁의 상흔은 깊게 남아 참전한 이들은 아직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았고 김상옥도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의 미간이 뒤틀리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말하였다.
“독가스를 마음대로 뿌려서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아직 제독(除毒) 작업이 끝나지 않은 우리 영토로 여러 개의 사단을 진군시켜 애꿎은 병사들을 죽이는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나.”
“그야 인구가 썩어 넘치는 대륙 연합군이니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짓을 하고도 전쟁에서 패배하였지요.”
“승리하지 못하였으니 우리도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네. 당시 적군을 이천만 명을 죽인 대가로 사상자만 육백만 명에 달하는데 뭐가 그리 좋다 하는가. 적어도 삼천만 명은 죽여야 수지타산이 맞는 수준이 아닌가.”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과 협정을 무시한 독가스 공격에 당한 대한제국에서는 다급히 신형 독가스인 포스겐 탄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목표가 된 일개 사단이 몇 시간 만에 궤멸당하자 대륙 연합군은 헤이그 조약을 들먹이며 독가스 사용을 금지하자는 협정을 맺었다.
이후의 전쟁은 지리멸렬한 소모전이었다. 대륙 연합군은 참호를 파고 철조망을 연장하여 대한제국군의 진군을 필사적으로 봉쇄하였고, 요동은 말 그대로 개미지옥이 되었다.
노병들은 괜히 권총 주머니를 매만지며 말하였다.
“그래도 당시에 중장님께서 무명(武名)을 떨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열여덟에 군대에 들어와 어찌나 가슴이 뛰었는지 아직도 그때의 꿈을 꿀 지경이지요.”
“내가 결사대 열 명과 대륙 연합군의 참호에 뛰어들어 양손에 권총을 들고 난사하였다는 이야기 말인가? 그때는 젊었고 혈기도 왕성한 시기였으니 했던 일이고 지금은 안 한다네.”
“쌍권총을 쏘시기 이전에 놈들의 기관총을 뜯어내서 난사하시고, 참호의 벽을 발로 차서 무너트리고, 수류탄 묶음을 삼십 매다나 던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참호의 벽이야 놈들이 멍청하게 참호를 파댄 덕분에 무너트릴 수 있었던 거고 기관총이야 수랭(水冷) 기관을 교체하려고 뜯어낸 녀석이라 쏠 수 있었지. 그마저도 탄띠 하나를 비우니 총열이 휘어지더군.”
열 명에 달하는 결사대를 동원해 기관총을 난사하고 참호를 꿰뚫고 진격하며 과장을 조금 보태 천 명의 적을 상대한 김상옥의 일화는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김상옥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당시에 전차가 있었다면 참호를 돌파하여 후방에 있는 대륙 연합군의 병력을 이천만 명 정도 더 죽일 수 있었겠지. 그 정도로 힘을 빼놓았다면 대한공화국은 제국으로 남아있을 텐데.”
“하주도 구매 말입니까? 듣자 하니 이백 년 전의 조약을 순나라, 지금은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들먹이며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하더군요. 그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인두세(人頭稅)를 매겨서 한 사람당 오십 원(현대 화폐가치로 약 150만 원)을 차출하고 도합 삼백여 억 원(약 1,000조 원)을 고스란히 대한제국과 일본의 사이를 갈라놓는 데 사용하였다네.”
을병대기근 당시 4년의 기근이 조선을 강타하였다. 처음 2년 동안은 연금으로 곡식을 사들이고 사민(徙民)을 실시하며 나라를 유지했지만, 3년 차부터는 곡식을 판매하는 나라에 역으로 기근이 일어날 지경이라 구매할 방법이 없었다.
개중에 유일한 협력자가 있었으니 일본의 쇼군 다테 쓰나무네(伊達綱宗)였다. 그는 매년 추가로 일천만 석의 곡식을 제공하기로 결정하고 당시의 왕인 효종과 밀약을 맺었다.
밀약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큐슈를 돈으로 살 수 있도록 협상의 여지를 남겨달라는 내용이었고, 백성의 굶주림과 훗날의 화근 가운데 백성을 택한 효종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단서조항을 추가로 제시하였다.
백성은 팔 수 없으니 뜻을 물어 이주를 원하면 이주를 시키며 이주비용도 일본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조약을 완성하였다. 이후 219년이 지난 1917년이 되어서 갑자기 튀어나온 무인(戊寅)조약은 대한제국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상옥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였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당시 하주도에 거주하던 백성 가운데 팔 할이 이주를 택하였다네. 비용이야 순나라와 야합(野合)한 왜국 총독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이 철저히 계산해 내어놓았지만 결국 강역을 팔아치운 꼴이 아닌가.”
김상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노병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진실은 명백히 달랐으니 의문이 생겼다.
“그럼 왜 황실이 폐지되었습니까? 삼백여 억 원이면 하주도의 땅값은 물론이요, 팔 할에 달하는 주민들의 이주비 및 정착 비용을 대고도 남을 예산이 아닙니까?”
평범한 사람들이야 황실폐지가 큐슈 반환과 세계대전 참전 거부로 인한 반작용이라 생각하였지만 진상은 달랐다.
건양제도 끝없는 업무의 수렁에 허우적거리며 근육을 기르기는커녕 피골이 상접한(다른 국가 기준으로 충분히 건장한) 몰골을 자랑하였다.
황실은 정치인을 설득하여 자신들이 책임을 짊어질 것이라 표방하였고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접한 대한제국의 정치인들은 반박하였다.
그러나 전성기의 육체를 자랑하던 성림왕 이형에게 근육적으로 설득당해 버렸다.
그저 모든 책임을 짊어진 채 황실을 폐지한 것이라 퍼트렸으니 자신의 말실수를 수습해야 하는 김상옥은 비참한 표정을 억지로 지으며 말하였다.
“팔 할의 백성이 하주도에서 아국으로 이주하였지만 남은 이 할의 백성이 있지 않은가. 백성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폐하께서 이 책임을 짊어지신 것일세.”
다들 침묵하여 건양제의 결단을 존중하였지만 김상옥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큐슈에 남기로 결정한 이들은 대부분 불법 이민자이거나 조선시대부터 동화를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살던 뼛속까지 일본인이니까.
그런 이들의 뒤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상옥 중장님께서는 안녕하신지요. 이번 신형 전차의 시험 주행을 참관하러 왔습니다.”
“이거 백범 총장님 아니십니까? 그간 격조하셨는지요.”
“저야 근손실이 시작되었으니 더욱 열심히 입신체비를 하여야지요.”
한양국립대학교의 총장 지위를 역임하는 백범 김구는 63세에 달한 나이에도 어마어마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으니 김상옥이 작고 연약해 보일 수준이었다.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김상옥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성이었다.
“이 친구는 누구입니까? 이런 장소에까지 왜 양복을 입고 당도하였는지요?”
“왜국의 내전이 거세지고 있지 않은가. 내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다 보호하기 위해 교수로 섭외한 친구라네. 진도수치(津島修治: 다자이 오사무의 본명) 자네도 어서 인사를 나누게나.”
“진도수치라 합니다. 일본의 발음으로는 쓰시마 슈지라 부르고 부족하지만 몇 편의 소설을 쓰고 필명을 다자이 오사무라 하였습니다. 조선의 발음으로는 태재치(太宰治)라 하지요.”
김상옥이 온 힘을 다하여 손아귀를 움켜쥐었지만 상대 또한 입신체비를 즐겨서 간단히 대응하였다.
상대의 입신체비 경지가 자신보다 높은 것을 확인한 김상옥은 악수를 마치고 다자이 오사무를 흘겨보며 말하였다.
“삼대운동이 진양근에 근접한 수준이군. 젊은 나이인 데다 왜인으로서 대단한 경지라네.”
“대한의 글을 배우다 보니 몸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더군요. 아직 문인(文人)으로서는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유허 이철을 능가할 정도로 노력할 겁니다.”
“자네의 소설을 본 적이 있는데 참 대단한 필체더군. 그나저나 제목인 근육의 방황은 조금 어색하지 않던가.”
“제 글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제목에는 더욱 만족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러니 이 자리에 참관하여 시상을 더욱 키워보려 합니다. 설령 저를 통해 정보가 새어나가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상대의 생각이 뭔지 알고 있으니 김상옥도 슬쩍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번 전차 시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를 다자이 오사무가 일본에 퍼트리면 내전을 벌이는 일본은 전차를 구매하기 위해 혈안이 되리라.
내전까지 벌이는 일본에 처음 생산한 전차를 팔아치우고 실전을 통해 개량할 요소를 찾아낸다면 돈도 아끼고 희생자도 줄이는 격이다.
이윽고 웅장한 군악이 울리며 칠순이 다 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 심! 육군 중장 김상옥! 홍범도 원수님을 뵙습니다!”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뭔 소리인가. 어서 쉬게나.”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도 않는 거구, 신장이 194㎝에 달하며 아직도 팔뚝에 이두박근이 꿈틀거리는 육군 원수 홍범도는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김상옥과 김좌진을 비롯한 수많은 장성들을 가르치고 무진천명대전까지 참전한 사람이 홍범도였다. 말에 올라 최전선에서 진격하여 대륙 연합군 일개 사단을 몰살시킨 전설이니 모든 군인의 귀감이리라.
그는 괜히 힘을 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조만간 은퇴하면 종로에 있는 내수린장의 수위 역할이나 할 것이니 날 귀찮게 하지 않으려면 내수린을 보러 오지 말게나.”
“원수께서 말씀하셨으니 모든 장병들이 내수린을 끊는 날이 오겠군요.”
잠시 웃음이 지나가자 홍범도는 쌍안경을 들고 벌판을 바라보았다. 흙먼지를 피우며 달려오는 150대의 전차, 대한공화국 사람이 된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만든 전차를 확인한 홍범도는 이상을 감지하였다.
70이 다 되었음에도 시력이 비범한 홍범도는 손가락으로 전차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흙먼지라 생각했지만 그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매연이 보였던 것이다.
“저 전차는 초기 불량인가? 아니? 전차가 벌써 다섯 대나 멈추고 연기를 뿜지 않나?”
다급한 마음에 김상옥이 망원경을 들어 확인하니, 전차는 연약한 진창을 만나자 하나둘씩 수렁에 빠진 코끼리처럼 움직임이 멈추었고 연기를 사방으로 내뿜기 시작하였다.
이백여 명에 달하는 참관인이 경악하였지만 김상옥의 대처는 누구보다 빨랐다.
현장으로 연결한 무전기를 부여잡은 김상옥은 피를 토하듯이 말하였다.
“지금 뭔 일이 일어났나! 적의 기습인가? 아니면 기관을 노린 공작인가! 평지 주행은 통과했다면서! 왜 저렇게 주저앉아!”
-저도 모르겠습니다! 전차가 평지에서는 부드럽게 나아가다 진창과 섞인 둔덕을 만나면 힘을 하나도 내지 못하고 멈춥니다. 으악! 불이야! 이러다 타 죽겠습니다!
진흙으로 이루어진 둔덕에서 움직이지 않던 대대장의 전차를 망원경으로 확인하자, 정말 화재가 났는지 후방에 있는 엔진룸에서 붉은 불길이 피어오르고 모든 병사들이 도주하였다.
거기서 끝났다면 불량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6할의 전차가 야지 주행을 통과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탄환을 비운 상태라 유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장병들은 홍범도의 눈을 보며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육 할의 전차가 주행 중에 멈추고! 불타고! 터져나가! 평지주행과 사격시험은 통과했는데 왜!”
평상시에는 호탕하게 모든 일을 넘어가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끝까지 추격하는 사람이 홍범도였다.
이윽고 포르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홍범도 앞에 도착하자 홍범도의 호통이 시작되었다.
“자네가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지 않았는가! 혼합기관(하이브리드 기관)은 완벽한 주행성능과 연비 그리고 압도적인 추진력을 자랑한다면서! 자네의 사재를 털어서 만든다 했는데!”
“워…… 원인은 진흙탕입니다. 진흙탕에 들어가면 하이브리드 기관의 전기모터가 과도하게 작동하여 과열이 일어나고 다시 열기가 역행하며 가솔린 기관에 유입하여…….”
“원인은 진흙탕이 아니고 네놈의 편협한 머리통이겠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홍범도는 아예 포르쉐 교수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다 바닥에 집어 던졌고, 바닥에 내던져진 포르쉐 교수는 마지막으로 피를 토하듯이 항변하였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좋지 않습니까! 완벽한 하이브리드 기관이 진흙탕을 만나면 힘을 못 쓰니 진흙탕을 우회해 다니면 충분할 겁니다!”
“머저리가! 전차가 계집애 같은 대륙 연합군 장성이라도 된단 말이야! 네가 뭔 일을 저지른 줄이나 알아! 아예 전차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데!”
홍범도가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포르쉐 교수는 아예 포승줄에 묶인 채 압송되었다.
이윽고 다자이 오사무가 턱을 쓰다듬다 한마디를 보탰다.
“부끄럼 많은 전차를 보았습니다. 저 전차는 전차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들 동의하시는지요.”
“아무렴 동의하고말고! 저런 전차를 몰고 다니느니 차라리 전차를 짊어지고 다니겠다!”
김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분노를 삭이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여 눈을 굴리던 홍범도의 시선이 김상옥에게 향하였다.
김상옥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과 마주치고는 두 걸음을 물러났지만 그에게 명령이 하달되었다.
“김 중장 자네에게 명령을 내리겠네. 자네가 조만간 육군참모총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니 비는 시간 동안 신형 전차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게. 성능만 좋으면 되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네.”
“네? 몇 달 안에 말입니까?”
“늦어도 여섯 달 안에 시제품 계획에 착수하여야 하네. 자네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소형 전차는 시제품이 있지만 포르쉐 교수 덕분에 대형 전차는 기초 계획안만 남아 있다네.”
김상옥은 정보부에서 예측하여 보고한 사실을 떠올렸다. 늦어도 1940년에 나치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세계를 전화로 몰아넣으리라는 예상이었다.
나치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라서 딱히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우호적인 만큼 정보 입수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정보부에서는 한 달 전에 체코를 합병한 사례를 들어 늦어도 1940년 말, 빠르면 올해 말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여섯 달 이내에 전차 시제품, 최소한 설계도라도 완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결국 완성된 부품을 조합하는 조잡한 수단을 택해야 하는데 당장 주포부터가 문제였다.
#작가의 말
1939년 시점에서 나치독일과 대한공화국은 우호 관계입니다. 엄밀히는 대한공화국이 중립적 태도로 관망하고 나치독일이 일방적으로 대한공화국을 좋아하는 관계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