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58화 (외전) (558/573)

근육조선 558화

2부 외전 1화 현대의 미국

예전에 내가 개척했던 미주, 지금은 미국으로 독립한 이후에도 대한 공화국의 우방을 넘어서 통신을 비롯한 기초 체제와 언어, 심지어 화폐마저 공유하는 거대한 국가인 미국이 된 지금에는 옛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펜션은 시 외곽에 있었는데 여기서 버스를 타고 다시 후성시 인근으로 향하였다.

멀리 보이는 야경을 확인한 양 부장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였다.

“미국의 수도인 금성(今城: 현 샌프란시스코)도 마음에 들지만 부수도인 후성시도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나야 젊은 시절에 신혼여행 하려 한번 와봤지만 그동안 더욱 발전했군.”

“저야 거의 이 년 전에 와봤으니 크게 변한 건 없군요.”

공항에서 휴대전화를 매만지면서 확인한 건데, 나는 작년 초인 2017년 1월, 가족들은 물론이요 영직이와 함께 후성시에 들른 적이 있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사람들이 후성시에서 놀 만한 장소를 찾아 달라 말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서는 내 귀에 익숙한 ‘도탄 되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리니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최 대리가 휴대전화를 잡고 게임에 몰두하였다.

“최 대리였나? 자네 뭔 게임하나?”

“아 이거요? 세계의 전차 모바일입니다. 김 실장님도 세계의 전차를 제법 즐기신다 하셨는데 최근에 모바일에는 프랑스 전차가 출시되어서 요즘 즐겨 하고 있습니다.”

저절로 병이 생기는 게임을 모바일로 하다니. 그나저나 최 대리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은하가 아닌 옴니스 12였는데 게임의 그래픽이 예사롭지 않았다.

출시 시기로 유추해 보면 내가 본래 역사에서 사용했던 은하 7과 옴니스 12는 거의 같은 시기에 출시된 휴대전화인데 UI는 비참할 정도로 어설프지만 게임 그래픽은 거의 대등하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화면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으악 41식이다! 제발 신이시어!”

최 대리의 AMX M4 앞에 나타난 거대한 전차가 주포를 움직이자 겁에 질린 최 대리였지만 결과는 아주 끔찍했다. 41식의 주포가 차체에 박히자 고폭탄이 관통되며 한 방에 유폭이 일어나 버렸다.

불꽃이 포탑 주변에 솟구치더니 굉음과 함께 포탑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전차 파괴 판정이 떨어졌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 멍하니 있자니 최 대리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말하였다.

“역시 대한공화국 41식이라니까요. 고증에 맞게 전차를 만들어도 뭐 이리 무식하게 강하답니까. 이러니까 개나 소나 대한공화국 전차만 타고 다니지.”

“저게 고증이 맞는다고? AMX M4는 차체 장갑이 90㎜ 아니야?”

“당연히 고증이 맞죠. 41식 뽕 채우는 점착유탄 모르십니까? 관통력 115㎜ 점착유탄으로 전차들 다 터트리고 다니잖아요. 그나마 각도 준 티거 정도 되어야 차체가 안 뚫립니다.”

조선시대로 가기 전까지 주말에는 세계의 전차를 했던 적이 있으니 저 흉악한 위력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41식이면 시제품이 1941년에 나온 것인데 독일의 티거와 같은 시기에 저런 끔찍한 전차를 만들어내다니.

그나저나 최 대리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니 UI는 투박하다 못해 내가 고등학교 때 즐긴 게임들, 지금으로 따지면 고전게임과 흡사한 수준이지만, 그래픽을 비롯한 기타 기술 발전은 본래 역사와 거의 같아서 의문점이 샘솟았다.

“도착했어. 어서 내리자고!”

“이야 후성시에서 가장 큰 입신체비장이라 했는데 으리으리하군요!”

의문도 잠시,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체육관이었다. 도시 외곽의 값싼 땅값을 활용하려고 혈안이 된 것같이 3층 규모로 건립된 거대한 체육관이 있었고 울창한 삼림까지 끼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니 카운터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미주인, 본래 역사의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여성 입신체비사였다.

그녀는 우리의 방문을 확인하더니 안으로 안내하였다.

“대한 공화국에서 오신 분들이시죠? 이미 준비가 되었으니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준비라 할 것까지도 있나? 어서 들어오게나. 어이쿠? 김 실장 자네 장갑은 어디다 뒀는가?”

생각해 보니 입신체비에 필수적인 장갑을 빼놓고 왔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장갑을 빌리려 했는데 가만히 보니 벽에 자동판매기가 있었고 온갖 입신체비 용품을 팔고 있었다.

장갑을 하나 사서 착용하니 현대에 영직이네 입신체비장에서 잠시 사용하던 장갑보다 훨씬 튼튼하고 움직이기 편한 녀석이 고작 15원, 본래 역사에서 약 3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다들 장비를 갖추고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거 참 운동하기 좋은 환경이로군. 저기 천장을 보게나, 입신체비를 위해서 저런 설비 활용은 필수적인데 갖추기 힘들어서 대부분 못 하지 않는가.”

“저거 개인을 위한 공조장치입니까? 입신체비를 보조하기 위해 저런 걸 설치한다니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도 좀 비싼 입신체비장에는 저런 녀석을 두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입신체비장에 둘 수는 없는 법이야. 다들 알아서 입신체비를 하게나!”

문화재부 직원도 우리 회사원들도 너나할 것 없이 입신체비를 실시하였다. 간혹 입신체비를 하지 않는 직원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이 입신체비장에는 사우나나 산림욕 시설까지 존재하였다.

러닝머신, 이 역사에서는 보행기라 불리는 기구에 올라 뜀박질을 시작하니 후끈한 열이 온몸에서 올라왔고 센서가 내 체온과 습도변화를 인지하였는지 머리 위에서 서늘하고 청량한 공기가 내려와 땀을 삽시간에 식혀주었다.

“이건 이론상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는 돈을 퍼붓는 행동이라 아무도 못 하는 짓인데.”

건축 설비 분야에서는 각 방이 아닌 방에 있는 개개인에게 공기조화장치를 설치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론상 사무원들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마련하면 개별 업무효율이 증가한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비용 때문에 실제 적용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반 사원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마련하면 업무효율 증가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쓸모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 여기서는 입신체비장조차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잡념이 생겨서 호흡이 거칠어지니 다시 신선한 공기가 내려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화면만 보면서 운동하려고 TV를 켜니 거대한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그리고 본래 역사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고인이 등장하였다.

“One more Thing!”

너무나 놀라 뒤통수에 몽둥이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도저히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티브 웍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말하였다.

-Stay Ipsinchaebi, Stay foolish(항상 입신체비를 하십시오, 항상 우직하게 말입니다).

63세의 나이에도 3대 400은 할 것 근육량을 자랑하는 스티브 웍스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더니만 소역기를 들고 입신체비를 시작하였다.

여기에 웍스를 보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또한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여러분이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모든 근육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욕심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놀랍게도 스티브 웍스의 보조로 달라붙은 사람은 그의 동료이자 후일 관계가 틀어져 헤어진 스티브 레스니악이었다. 후덕한 덩치는 온데간데없고 그 또한 압도적인 근육을 티셔츠 아래로 자랑하며 입신체비에 몰두하였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티브 웍스의 카리스마에 일제히 입신체비를 실시했다.

삽시간에 근육으로 가득 찬 화면에서 스티브 웍스는 사람들을 독려하는 명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입신체비는 수양대군이 창안한 예술입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치게 마련이지요. 여러분은 베끼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근육을 훔쳐내시길 바랍니다!

“저 사람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왜 저런 짓이나 하고 있지?”

몸이 충분히 덥혀져서 보행기에서 내려왔음에도 놀라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스티브 웍스는 거듭 몸을 움직이며 입신체비에 필수적인 해법들을 하나씩 강의하고 사람들은 광적인 태도로 그의 몸을 주시하며 동작을 따라 하였다.

“누구의 영상을 저렇게 유심히 보나 했는데 미주 최대의 입신체비장인 Y헬스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스티브 웍스였군. 김 실장 자네가 보기에는 저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양 부장님도 어느새 몸을 덥혔는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슬쩍 표정을 살펴보니 벌레를 씹은 것 같이 웍스를 노려보았는데 이를 염두에 두어 적당히 말했다.

“다른 천성(天性)이 있는데 억지로 근육에 몰두한 것 같습니다.”

휴대전화의 신기원을 연 것도 있지만 컴퓨터 발전에서 UI 경쟁의 획을 그은 사람이 저렇게 쇠질이나 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었지. 이런 꼴이니 전자기기 발전양상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본래 역사처럼 하드웨어 성능이 계속 발전하였지만 그래픽 발전, 정확히는 UI계열이 부족한 이유는 스티브 웍스가 입신체비에 몰두한 덕분이리라. 그가 백OS를 만든 이후 빅소프트사는 창문 95를 만들었고 이후 서로 신나게 베껴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두 기업이 서로를 앞지르려고 혈안이 되었으니 본래 역사에서는 UI도 발달하였다. 반면 역사가 변해 스티브 웍스가 입신체비에 몰두한 덕분에 발전이 둔화되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하니 양 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자네가 아주 정확히 보았군. 내가 보기에는 저 친구는 약물을 부작용이 없는 선에서 제법 사용한 것이 분명한 데다 이를 권장하지. 요즘에 들어서 입신체비가 효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철부지들이 생겼는데 다 저 친구 영향이지.”

“그러고 보니 제 친구는 전통 입신체비사였으니 그 노력은 안 보아도 알겠군요.”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양생(벌크 업)에 절육(커팅)까지 마치면 근육이 아주 조금 증가하는데 약물을 사용하면 손쉽게 근육만 증가하지. 개인의 선택이지만 선을 넘어서면 몸이 상하는 법이야.”

영직이가 했던 말이 있는데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약물을 조금은 사용했다더라. 어디까지나 몸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의사의 조언에 따라 사용하기는 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던가.

이를 알고 있으니 입신체비의 종주국 대한공화국 사람답게 말하였다.

“몸이 상하건 말건 개인의 자유이지요. 다만 그 개인의 자유로 인한 대가를 본인의 몸으로 치른다면 그보다 바보 같은 일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쾌한 결론이야. 그럼 서로 쇠나 들어보지 않겠는가?”

양 부장님은 거대한 역기를 어깨 위에 얹으며 온몸의 힘을 주어 공좌를 실시하였고 그 모습에 감탄한 나도 입신체비를 함께하였다.

즐거운 쇠질이건 산림욕이건 밤 11시까지 힘써 운동한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왔고 파김치가 되어 술잔을 나누었다.

“서애 유성룡의 치적 중 하나인 만천서원을 실측하게 되었으니 서애주를 마셔야지! 건배!”

“건배!”

내가 정철에게 만들어주었던 약주는 서애주라 불리는 칵테일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이니 겹술이라 불리는 이 녀석이 청아한 유리잔에 담겨 있었고, 다들 한 잔을 털어 넣자 양 부장님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잠이 잘 오지 않겠지만 내일 오전 7시에 일어나서 만천서원 실측을 시작할 테니 알아서 잠을 자두라고. 혹시나 꾸벅꾸벅 졸다가 최 대리처럼 지붕에서 떨어지면 몸만 망가져!”

“명심하겠습니다! 이만 들어가 볼 테니 양 부장님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숙소로 들어와 양치를 하니 거대한 함성이 TV에서 들려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최 대리가 또 뭔 짓을 하나 궁금해서 확인해 보니 TV 화면 안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조선시대에 가끔 광왕 궁예라는 내수린을 보았는데 이게 이 시대에도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궁예역의 내수린꾼은 조선, 정확히는 대한 공화국 사람이 아니었다.

계란형의 대머리에 갈색 피부 그리고 온몸에 근육이 불룩거리는 본래 역사의 드웨인 딕슨이었는데 자막으로는 내수린꾼 두와인이라 적혀 있었다.

최 대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다시 진지한 표면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람들은 처음 무대에 오른 96년도의 두와인이 좋다 하지만 연기력의 정점은 16년의 두와인이 아니겠습니까? 김 실장님이 보기엔 어떠세요?”

“나야 두와인이라 하면 다 좋지.”

거대한 근육을 꿈틀거리며 왕건과 신숭겸 역의 두 배역을 철저히 짓밟는 두와인의 모습을 보니 광기와 살기가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어찌나 연기에 몰두하였는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열연을 거듭하였다.

-내가 미륵이란 말이다! 내가 세상에 유일한 미륵이다!

어느 정도 내용을 변화시켰는지 아니면 두와인의 괴력을 표현하려 했는지, 그는 양손에 왕건 배우와 신숭겸 배우를 각기 움켜쥐고 더블 질식투(초크슬램)를 날렸고, 세 근육덩어리가 무대에 뒤엉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최 대리와 함께 두와인 내수린 모음집을 감상하다 한 시간 만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오전 6시 45분이라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다들 같은 시간에 일어났는지 시차적응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면서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김 실장 자네도 빨리 일어났군. 그나저나 시차적응은 잘되는가? 혹시나 시차적응을 하지 못해 꼭두새벽에 정신이 들거나 한밤중에 정신이 들면 안 된다고.”

“안 되긴 왜 안 됩니까?”

“거 이 친구 농담 한번 잘하는군. 우리는 야근이나 추가근무를 하면 노동부에 신고하고 해야 하지 않나. 그냥 야근 안 하고 기일을 연장하고 말지!”

하긴 건축의 창시자는 아니더라도 건축을 정립한 서애 유성룡이 야근을 밥 먹듯 하다 은퇴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아마 건축계는 야근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못 하는 직장이 되었으리라.

아침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후성시 시내에 들어가니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만천서원의 관계자가 나와 우리를 안내하였다.

몇 번이고 와 본 사람처럼 슬쩍슬쩍 눈을 흘기며 지나가니 인종 분포부터가 달랐다.

대략 미주인 출신이 40%, 조선과 큐슈에서 이주한 동양인이 40%, 그리고 20%가량은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국의 인구가 3억2천이라 하는데 이쯤 되면 올바른 인종비율이 아닐까.

관계자가 점차 발걸음을 늦추었고 저 멀리 거대한 성당과 서원이 보일 무렵 잠시 대열이 멈추었다.

서원을 상징하는 홍살문(紅箭門) 옆에는 역기로 만들어진 산더미와 사람들이 만져 대서 다 닳아버린 하마비까지 보였다.

“만천서원입니다. 하마비(下馬碑)에는 손을 대지 말아주시고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저 하마비에 쌓여 있는 역기들은 예전보다 수가 더욱 늘어났군.”

“물론이지요. 입신체비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서애팔경(八景)이라 하여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서애 유성룡의 건물에 인사를 올리고 가는 형편이니까요.”

그 유성룡 여기에 있다! 그런 쓸데없는 흉물은 치우라 말하고 싶었는데 어디선가 거대한 근육덩어리를 자랑하는 미주인들이 와서 공령(플레이트)을 한 아름 쌓아놓고 인사를 올렸다.

다시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점차 한복을 입거나 장삼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고, 서양 신부들도 미사를 마치고 나왔는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우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향교 옆에 조그마한 초막(草幕)이 있었는데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만천서원의 시공자 윤광영의 집]

나와 헤어지고 미주로 돌아간 윤광영은 만천서원을 완전히 건립하는 그 날까지 온몸을 바쳐가며 건축에 매진하였고 여러 후손을 두며 평안한 삶을 살다 73세에 세상을 떠났다더라.

아마 내가 주상전하, 이 역사에서는 영종이라 불리는 왕에게 거의 협박하다시피 제안한 60세 출장 금지 규정 덕분에 말년만큼은 평안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만천서원 마당으로 들어가자 양 부장님은 도구를 나눠주며 말하였다.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이니까 알아서 실측하고 돌아오게나. 첫날이니까 너무 힘 빼지는 말고 적당히 하라고. 그리고 김 실장 자네는 대성전 좀 담당하게나.”

“어디까지 담당하면 되겠습니까?”

“최 대리 경험 좀 쌓게 착실하게 가르칠 정도면 충분하지. 서원 입구부터 차근차근 실측하며 들어가다 닷새 뒤에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하자고. 장 과장 자네는 측량기 준비해!”

서른 명이 넘는 직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나와 최 대리만 멀뚱히 남아 있었다. 만천서원은 내가 설계한 대로 만들어지다 한 차례 개량되었는지 벽의 재료가 회벽이 아닌 벽돌 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면 규모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장식이나 설비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관람객들이 우리를 눈여겨보는 가운데 나는 최 대리의 경험을 쌓게 하고자 지시를 내렸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만드는 야장이지. 대성전 야장을 먼저 그려보라고.”

“그러니까 이게 야장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최 대리. 전통건축을 하려면 손놀림이 좋아야 하는데 이렇게 그려서야 뭘 어떻게 하나.”

최 대리는 본래 역사에서도 손이 굼떴는데 여기서도 굼뜨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야장, 현장에서 그리는 임시 도면을 작성한 지 5분이 지나도 완성이 안 되자 답답한 마음에 내 멋대로 도면을 그렸다.

불편한 조선시대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이라서 눈으로 보아도 치수를 짐작할 수 있었고 손가락은 이미 눈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조선시대에 도면을 기입하던 깃털펜이나 연필이 아닌 볼펜을 사용했고 손가락도 두꺼워져서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대성전을 간략화한 임시 도면이 튀어나왔다.

최 대리는 내가 그려준 도면을 받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임시 도면이라니요? 김 실장님 예전에는 야장을 대략적으로 그리셨는데? 이쯤 되면 그냥 복사해서 보고서 첨부파일로 사용해도 될 수준이잖아요?”

“내 수준이 그 수준인가?”

“당장 양 부장님은 물론이고 예전에 은퇴하신 윤 소장님도 이 정도로 그릴 수는 없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문화재부 직원들에게도 조금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뭐라 말릴 틈도 없이 뛰쳐나가는 최 대리를 쫓아가려다가 멈추었다.

최 대리는 내가 그린 야장을 문화재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표정이 변하더니만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야장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그리면 실측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요.”

“대충 십 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 정성을 쏟은 것도 아니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농담 한번 잘하시는군요. 옛날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십 분 만에 그립니까?”

오기가 생겨서 대성전 옆에 있는 동무(東廡)의 도면을 쓱쓱 그려내니 문화재부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내 모습을 지켜보았고 임시 도면이 고작 10분 만에 완성되었다.

그들은 내가 완성한 야장을 보면서 기가 차서 말하였다.

“전통건축 명장(名匠)이신 김익환 어르신도 이 정도는 불가능한데. 윤범도 어르신이 전성기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분은 연세가 여든이 넘었잖아? 대체 이게 어떻게 됩니까?”

“하다 보니 되더군요.”

생각해 보니 본래 역사 기준으로 옛날 방식으로 건축을 배워 프로그램 대신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사람들, 현대에는 은퇴한 교수나 명장들이 나와 비슷한 도면을 그리려면 30분 가까이 소모하리라.

그들도 사람이고 온갖 도구를 사용하며 의지하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반면 나는 자와 어설픈 제도판만 가지고 수없이 많은 도면을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사람이니 나 이상의 경험자는 이 세상에 없겠지.

문화재부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모습을 유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등 뒤에서 찌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며 사다리를 올려 실측을 시작하였는데 내가 설계하였던 대성전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벽 구조가 바뀌어서 완전히 같은 건물은 아니라 예상했지만 추녀에서 더욱 큰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잠시만, 잠시만 확인해 볼 것이 있으니 생장추 하나만 가져올 수 있겠어?”

“네? 거기는 갈모산방 아닙니까? 어딘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십니까?”

“갈모산방은 추녀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추녀를 계획하고 덧대는 삼각형 목재라 추녀 무게에 짓눌려져서 처지게 마련이야. 반면 이 녀석은 처지지 않았어.”

대성전의 추녀 아래에 있는 갈모산방을 잠시 바라보았는데, 겉에는 회반죽으로 덮여 있고 그 사이로 나무 재질이 보였다.

하지만 내 예상이 옳다면 이 녀석은 나무 재질이 아니리라.

나무 시료를 채취할 때 사용하는 생장추를 박아 넣고 돌리자 다들 왜 저러나 했지만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표면의 회반죽을 관통해 나무로 들어간 성장추가 더 이상 박히지 않았고 이를 뽑아내니 목재가 아닌 돌 부스러기가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나무로 만든 갈모산방이라면 짓눌리게 마련인데 추녀 곡선을 항시 같게 유지하려고 혈암(頁巖: 이암)을 깎아서 갈모산방을 만들고 나무판을 덧댔군. 대체 언제 벌어진 일이지?”

혈암 파편을 보여주니 문화재부 직원들은 서원에 부설된 수장고로 찾아가 예전 보존기록을 살펴보았고 결론을 도출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건축적 변화가 내 눈으로 최초로 파악된 것이니 그들도 당황한 눈으로 말하였다.

“기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1960년대에 대성전이 태풍에 휩쓸려 파손된 시기에 혈암을 제법 많이 사용했다던데 그 당시에 시공했던 사람들이 멋대로 재료를 변경했나 보군요.”

“그렇다면 예전 형태를 되찾기 위해서는 갈모산방을 목재로 수정해야 하겠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보니 처마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처지지 않은 느낌도 들었지만 확인하기 전까지는 너 나 할 것 없이 그냥 넘어가 버렸지요. 대체 이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조선시대에서 유성룡으로 활동했으니 아는데요? 라는 소리를 하면 설명도 되고 정신병원도 들어가면서 만사가 해결되리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뒤통수를 매만지며 말하였다.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이런 세세한 차이는 전통건축 명인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쉽사리 감지하지 못하는 일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도면 그리는 솜씨를 보아하니 당장 제도판 앞에 데려다 놓고 싶군요.”

원래 역사의 나였다면 사람 잡는 짓은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제 와서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말하니 쓴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문화재부 직원들은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김성원 실장님은 이런 전통건축 사무소에서 일하실 분이 아닙니다. 근래에 들어 국가기록원과 협력하여 전통건축 진흥재단을 출범하였는데 여기에 꼭 와주십시오.”

전통건축 진흥재단의 이야기는 확인한 적이 있다. 옛 방식을 완벽히 보존하기 위하여 모든 문화재의 도면을 조선시대의 유성룡이 창안한 방식. 정확히는 과거로 돌아간 내가 만든 방식으로 그리려 한다던가.

이런 제안을 받고 당장에라도 원서를 내고 싶었지만 나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명함을 받아서 지갑 안에 넣고 거절의 의미가 없는 답을 하였다.

“저에게 주어진 업무는 물론이고 제 후임자를 정해 제 자리를 대신하게 한 뒤에 원서를 내겠습니다. 그나저나 실무 능력에서 뭘 판단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수기(手技)도면 작성능력이지요. 그 외에도 면접 분야가 있지만 당연히 큰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저를 추천해 주시니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그럼 훗날 뵐 때를 대비하여 더욱 많은 연습을 해두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가슴이 뿌듯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무리 내 능력이 좋아졌다지만 사기업인 건축사무소와 공기관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격차니까.

영직이놈은 수양대군으로 활동했으니 입신체비로 성공한다면 나는 전통건축의 옛 방식을 재현하는 대가로 성공하면 충분하겠지.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으니 업무가 끝나고 눈을 굴리며 말하였다.

“잠시 내수린 좀 하고 싶어졌는데 가르쳐주실 분 어디 안 계십니까?”

영직이를 위해 내수린도 익혀야 하리라. 이 거대한 몸에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으니 영직이를 불구로 만들지도 모른다.

문화재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에서는 거대한 근육덩어리들이 서로를 날려대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내수린을 가다듬으려 하는데 저를 가르쳐주실 분 있으십니까?”

내수린이 일종의 스포츠가 되었는지 넉살 좋은 관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적당한 내수린꾼 한 명을 붙여주었다.

내 팔을 잡고 메치는 상대에게 깔끔한 접수로 응답하니 그는 화사하게 웃으며 자신의 몸을 축 늘어트리고 말하였다.

“접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시는군요. 그럼 기본기부터 모조리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영직이를 내수린으로 박살 낼 그 날을 위해 출장을 겸해 내수린 수련도 겸하였다.

언젠가 그놈의 근육지상주의자 영직이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리라!

#작가의 말

컴퓨터 성능은 아메리카를 포함한 유럽과 대한공화국+연방들이 경쟁관계로 대립하며 개발하여서 현대와 비교하면 25%가량 향상되었습니다. 대략 CPU 기준 2세대 앞선 형편이죠.

반면 사용자 편의나 UI를 비롯한 개선점에 있어서는 사과사가 사라져 버리면서 개선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2020년 기준 하드웨어는 2025년 소프트웨어는 2020년 UI는 1995년이라는 기괴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OS의 조작이 창문 95급으로 불편한 상황만 감수한다면 컴퓨터는 현대보다 성능이 월등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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