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57화 (557/573)

2부 에필로그(2)

험난한 입신체비가 끝나고 사지의 힘이 다 풀린 채 샤워장에서 몸을 씻으니 영직이 녀석이 내 몸매를 보면서 벌써부터 잔소리를 시작하였다. 녀석은 옛 성격이 남은 근육 지상주의자였는데 여기서는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성원아, 성원아 너 이렇게 좋은 환경을 두고 뭐 하냐! 전통건축이면 돈 받는 것도 많고 여가시간도 충분하잖아. 근무 중에 쇠를 만져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직장에 출장을 나가면 그 자체가 유산소 운동인데! 이렇게 많은 지방 가지고 뭐 해!”

“그걸 여기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겠냐!”

“체장으로서는 가능한 일이다. 고작 이틀이지만 네 체장이니 내 말에 따르도록.”

생전 먹지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비릿비릿한 유청을 먹었는데 이제는 단백질 보충제를 한 숟가락 타서 먹으면서 잔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참을성이 다 할 것 같았는데 영직이는 갑자기 칭찬을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자세가 이렇게 개선되었는지 비결을 모르겠어. 각 부분을 고립시켜 완벽하게 움직이는데 이건 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경지거든? 너 나 몰래 특별 훈련이라도 했냐?”

“했지. 꿈에 율곡 이이가 나와서 나에게 입신체비의 새 장을 열어봄은 어떠한가? 라고 말하더니 죽어라 굴리더라고. 날 보고 유성룡으로 착각한 거 아닐까?”

“농담 한번 잘하시네. 네가 소룡파 입신체비의 거두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친구 유성룡이면 내가 수양자다.”

그 말을 하다가 불경한 짓을 저질렀다는 듯이 벽에 붙어 있는 수양팔근도에 깊게 인사를 올리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수양팔근도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수양팔근도는 동양화의 모습으로 섬세한 근육의 미를 묘사했다면 세스페데스는 전형적인 서양화로 묘사되어 있었다. 상반신에 거대한 근육을 드러내고 거대한 천축퇴를 휘두르는 성화라니. 스마트폰으로 세스페데스를 검색하니 답이 나왔다.

[세스페데스 데 그레고리오. 16세기와 17세기의 천주교 역사를 변동시킨 성직자. 근육과 입신체비사 그리고 선교사의 수호성인.]

세스페데스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절대 추기경 자리까지 오르지 못하고 평신부만 전전하다 세상을 떠났을 사람이 동방과 미주를 선교하며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쌓았다.

문제는 그의 사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교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말년에 잠시 추기경 자리까지 겸직하다 사망한 성직자이기에 교황청은 그를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삼기로 하였고 미주의 신자들이 격렬히 반대하였다. 가만히 있자니 영직이는 나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우습지 않나 성원아? 다들 그렇게나 열심히 선교자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이제는 누구나 근육의 수호성인으로 부르기 시작했군.”

세스페데스는 결국 처음 성인으로 인정받을 때 미주인에게 대규모로 선교를 실시한 기적과 거대한 독사의 자식(악어)을 죽여 신자를 구한 기적 두 가지로 성인의 품에 올랐다.

선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군림하던 세스페데스였지만 거듭된 미주의 신자들과 조선의 신자들의 요청으로 다른 기적 사례가 계속 교황청으로 올라왔고 급기야 1960년 교황은 세스페데스를 근육과 입신체비사 그리고 선교자의 수호성인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스페인에 묻혀있는 세스페데스의 무덤에 가서 인사라도 올려야지.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입이 쭉 삐져나와 진성이를 돌봐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제는 절육 할 것처럼 말하시더니 아닌가 봐요? 갑자기 입신체비장으로 뛰어가시다니.”

“오늘 조금 과격하게 해서 그렇지. 그나저나 초겨울치고는 날도 따스한데 나가서 좀 놀아보는 건 어때? 진성이와 데리고 한강 공원이나 가 볼까?”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진성아! 아빠랑 한강 나갔다 오자!”

나는 지리도 잘 모르고 서울 상황도 잘 모르니 아내를 앞세워서 한강으로 향하였다. 수변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보고 있자니 웬 호화로운 범선들이 모터를 돌리며 한강을 거슬러 상류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말하였다.

“대명국에 보내는 동지사(冬至使) 재현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사실 동지사라 해도 대부분이 참여한 관광객이라 실속은 없고 고증만 억지로 지키는 형편이지만요.”

“그래도 옛 문화를 고스란히 지키는 게 좋지는 않아?”

“아빠빠! 나도 저거 태워줘! 아빠 위에 타는 거보다 배가 좋아.”

내 어깨위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까르륵거리는 진성이가 말했지만 나는 대명국이 웬 한반도에 있나 의심하며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정말 명나라가 영직이의 외가인 춘천에 위치해 있었다.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박살 난 명나라는 1670년 무렵에는 조선의 괴뢰정부로 남경 일대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지만 하필 그 시기에 경신대기근이 한반도를 강타하였다.

“결국 명나라는 조선이 다짜고짜 군량으로 사용할 식량과 여유분의 곡식을 모두 가져간 덕분에 치명타를 입었고 을병대기근으로 조선의 지원이 완전히 끊기자 1699년 멸망하였다.”

멸망한 이후에 춘천으로 건너온 명나라는 일종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연간 4회에 걸쳐 관광객을 포함한 사신을 보내고 각종 절차를 고스란히 간직한 상품이지. 진성이는 내 머리에서 뛰어 내려오면서 말하였다.

“명나라는 안 망했어! 나 세 살 때 명나라 갔다 와서 황제 아저씨한테 사인 받았어!”

“그래 우리 진성이 똑똑하구나. 춘천에 있는 명나라도 명나라는 맞지.”

네 살 난 아들이 명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하는데 이에 동의해야지, 안 하면 아내가 나를 타박할지도 모른다. 한동안 한강 고수부지를 돌아보니 본래 역사와 비교할 수 없는 모습만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들었는지 하늘도 맑고 환경을 어찌나 잘 보존했는지 맑은 한강물엔 철갑상어가 돌아다녔다. 이 좋은 풍경을 벤치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니 아내는 어느새 꼬치를 들고 돌아왔다.

“돌드레 꼬치 드실래요? 오늘 운동하셔서 육질 부족하잖아요. 자고로 다양한 육질로 몸을 다양하게 자극해야죠.”

“이거 참 별꼴이 다 있군. 이거 진성이도 먹을래?”

소시지 꼬치보다는 하늘소 애벌레 꼬치가 영양분이 풍부하겠지. 별생각을 안 하고 먹었는데 품종개량을 했는지 군내도 없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심지어 관광객들도 하늘소 꼬치구이를 먹고 맛에 감탄하였다.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으니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건축가로서 내가 처한 환경을 파악해야 설계에 나설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화재로 풀칠하며 살던 전통건축도 완전히 변했군. 이정도면 건축의 일파 수준인데.”

땅값이 비싼 서울에는 한옥을 많이 지을 수 없었지만 경기도 인근으로만 내려가도 한옥이 대세가 되었다. 최첨단 소재와 공법을 아낌없이 동원하여 기계화된 설계로 단가를 내리고 안전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위계는 현대와 거의 같았다.

“미터를 매다(每多)라 부르고 센티미터를 세치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는 수준이군. 그나마 전통건축은 영조척을 사용해서 모두 30㎝ 자를 사용하는 것이 표준이라 참 다행이다.”

현대와 같은 미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나름 합당했는데 조선이 1800년대에 들어 새로운 측량을 실시하여 지구의 둘레를 구할 시기가 되었는데 프랑스 혁명정부가 공동 작업을 요청하여서 동시에 측량하고 표준으로 삼게 되었다.

당시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며 야드-파운드 단위계를 퍼트리려던 대영제국을 압박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덕분에 이 세계에서 야드-파운드는 완전히 사라진 단위계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 대가로 내가 창안한 지구척은 8㎜의 오차가 생긴다고 팔미리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킬로미터, 밀리미터 등의 길이 단위계와 이와 연계되는 중량 단위계도 받아들여야 했지만, 상인과 국제 교역을 담당하는 조선회사 관원들은 모두 만족했다던가.

“그럼 만천서원 도면이나 확인해 보자고. 윤광영이 만든 만천서원이 얼마나 남아 있을······ 이게 왜 안 움직여? 내가 엉뚱한 프로그램을 불러왔나?”

도면 파일을 더블클릭하니 자동적으로 화면 구석에 있는 이현2.4라는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문제는 명령어가 작동을 안 한다. 평상시처럼 키보드의 P를 눌렀는데 마우스가 반응을 안 했다.

한참을 헤매다 알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완벽하게 망해 버린 것 같았다. 기존의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은 자동책상에서 만든 DAC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대한 공화국의 창일전산에서 만든 이현 2.4다. 즉 이 프로그램은 한글 기반이다!

“이런 망할! 선 단축 명령어는 L인데 여기선 왜 한글자판의 ‘ㅅ’이냐고!”

내가 사용하던 프로그램에서는 명령어로 L, LINE를 누르면 선을 그릴 수 있다. 반면 창일전산이 만든 이현은 명령어로 ‘ㅅ’이나 ‘선’을 입력해야 기능이 작동한다.

한글 자음을 명령어로 사용하니 원을 그리려면 ‘ㅇ’을, 복사를 하려면 ‘ㅂㅅ’을 입력하면 되니 직관적이지만 나에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나이를 먹고 단축키부터 다시 익힌다면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렇다고 단축키를 하나하나 다 바꿔서 자기 멋대로 만들면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 볼 게 분명하잖아!”

뭐라고 설명하지? 갑자기 머리를 맞아서 단축키에 대한 기억은 모조리 잊어먹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가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한참 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출장 관련 서류철을 확인하였다.

“이거다! 만천서원 실측에 나서니까 최소한 한 달은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그동안 필사적으로 익히고 또 익혀서 프로그램 단축키를 다 외우는 거야!”

끔찍하게 생각했던 한 달의 장기출장이 기회가 되었다. 건물 실측이면 야외 장부를 적고 줄자로 실측하며 건물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이 전부이니까 일종의 적응기간이 아닌가.

물론 한 달이나 되는 출장이면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최소한 당장 회사에 나가는 것 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준비했는지 캐리어에는 필요한 물건들이 모조리 준비되어 있었다. 다시 비행기 표를 확인하자 쓴웃음이 나왔다.

“미주는 결국 독립해서 미국이 되었군. 북미대륙의 반은 대한공화국의 동맹인 미주가 차지하고 나머지 반은 프랑스의 동맹 캐나다와 영국의 동맹 아메리카가 차지하다니.”

다시 출장을 준비하고 이틀 뒤, 오전 10시 출발인 후성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나는 새벽 6시부터 미리 공항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점잖게 세상 물정을 파악하고 있으니 8시에 직원들과 함께 도착한 내 상사 양 부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실장 자네는 언제나 근면해서 좋다니까. 세상에 오전 8시 집합인데 새벽 6시에 나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자네는 다 좋은데 절육만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니까.”

평상시에는 만성 설사와 위염에 시달리던 양 부장님은 나보다 더욱 비대한 근육과 건강을 챙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내 뱃살을 쿡 찔렀는데 마침 나도 절육을 하고 싶은 심정이라 쾌활하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옛날에는 뱃살이 덕이나 상징한다 하였지만 이제는 효도를 완성하지 못하여 남겨진 군살이 아닙니까. 그나저나 뒤에 오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아? 자네 잊어먹었나? 이번 실측은 미국의 요청을 받은 문화재부(文化財部)를 통해 우리가 만천서원의 일부를 실측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문화재부 사람들이 함께 감독하게 되었지.”

문화재청이 아니라 문화재부(部)가 되었다니. 생각해보니 내가 끼친 영향으로 문화재와 유물보존에 대한 종주국이 된 나라이니 부서가 더욱 확충되었으리라.

이번 기회에 문화재청, 아니, 문화재부가 돌아가는 방식도 알 수 있으리라 여기고 비행기에 올라타고 몸을 뉘었다. 처음에는 이코노미석이라 좁지 않을까 염려하였지만 근육이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한공화국이기에 조금 끼는 수준이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진영(珍榮)항공은 여러분의 탑승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미주의 후성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휴대전화 전파가 끊기기 전에 진영항공의 역사를 봤는데 노백린이라는 사람이 관여한 항공사였다. 보아하니 대한제국 시절부터 군대에 입대하여 최초의 항공기 조종사이자 공군 참모총장을 역임하고 국영 항공사를 만들었다 하던가.

본래 역사라면 독립운동가로 투신했을 사람이지만 변한 역사에서는 98세를 살아 1972년에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국가에 환원했다 하였다. 영직이라면 잘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녀석은 아직 영혼이 돌아오기 이전 상태다.

“녀석이 돌아오면 물어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지.”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피로가 쌓인 채 공항에 내렸는데 누가 대한공화국과 친한 나라 아니랄까 봐 휴대전화에 바로 전파가 잡히고 통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다들 쌓인 문자를 확인하려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는데 영직이에게 쌀톡이 도착했다.

-어디냐? 가능하면 지금 만나자.

순간 피로가 확 사라지며 온몸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필 미주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생뚱맞은 문자를 보내다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본래의 영직이가 분명하다. 양 부장님은 분노한 내 모습을 보며 사고가 생겼다고 착각했는지 화들짝 놀라 말하였다.

“혹시나 집에서 뭔 문제라도 생겼나? 문제가 생겼다면 비행기 표를 구할 테니 어서 돌아가.”

“아닙니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고 친구 녀석이 드디어 정신을 좀 차렸네요.”

장기 숙박할 펜션에서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이 지역의 시간대로 오후 8시가 되었다. 목을 꺾고 몸을 풀며 일어나니 양 부장님은 입구에 서서 나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김 실장! 시차 부적응에는 입신체비를 하고 독한 술을 한 잔 한 다음 푹 자는 게 제일이야! 어서 입신체비 하러 가세!”

“물론입니다 부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은 오후 8시니 시간대로 따지면 한국에 있는 영직이는 오전 10시쯤 되었으리라. 나는 한껏 분노를 억누르며 쌀톡을 보냈다.

-나 지금 미주(迷洲) 출장 나왔는데 만나서 이야기하자니 뭔 소리냐. 다음 출장은 바로 투이도까지 내려가게 생겼는데 그새 까먹었냐. 한 달 뒤에 보자.

이 정도면 아주 완벽하겠지.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입신체비장으로 향하니 다시금 몸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울부짖고 있었다. 혹시 내수린 더 가르쳐줄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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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조선시대의 이야기와 현대에 돌아와서 겪은 이야기를 끝내니 벌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할 이야기는 많았지만 미주에 출장 나와서 겪은 일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집에 잠시 들려 짐만 내려놓고 영직이를 만나러 온 거라 조만간 돌아가야 하는데 녀석은 낄낄 웃으며 말하였다. 녀석 입장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뒷감당을 한 내가 참으로 고마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딴 소리를 했다.

“참 대단한 일을 하셨군. 네 덕분에 이 나라가 중국 조선성이 아니고 대한 공화국이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야. 그나저나 내 잘못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잘못이 없다고 말해? 르네상스 예술품에 근육을 끼얹고, 뭐만 하면 근육으로 해결하려고 들 정도로 무식한 사람들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내 아들은 아니고 여하튼 짐승을 패게 만들어?”

“검색해 보니 그거 호주의 대표적인 행사다. 에뮤 근육 축제를 매년 개최하며 최근에는 너무 불어난 낙타도 근육 한다고 하던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으니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이제는 낙타까지 근육 하는 시대라니 말세가 따로 없었다. 영직이는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아주 정중하게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생각해 보니 이제 컴퓨터도 엉망으로 다룰 게 분명하잖아. 조선시대에 정식으로 입신체비를 사십 년 가까이 익힌 수준이면 자격증 따는데 얼마 안 걸릴 거야. 내가 도와줄 테니 진로를 바꿔보는 것은 어때?”

“너도 다른 사람 걱정이라는 걸 하는구나. 그래 뭐 프로그램 쓰는 방법 익히는 건 문제기는 하지. 대신에 나도 조선시대에 배운 기술로 이 시대에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이 괜한 배려를 하려는데 나는 이미 이 시대에서 충분히 통용되는 기술을 습득한 상황이었다. 평상시에 챙기고 다니던 펜을 들고 종이 위에 거의 완벽한 직선을 그려내 버렸다.

“내가 조선시대의 정교하지 못한 깃털펜과 어설픈 제도판으로 도면을 그린 햇수만 사십 년이 넘어. 사실상 내가 유성룡으로 남긴 도면이 이 세상 도면의 표준이 되었다.”

“이거 거의 완벽한 직선 아니야? 자가 없이 어떻게 이게 가능해?”

“시대가 시대니까 가능하지. 그 시대의 거장들은 이 정도는 했고 나는 그러한 거장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니까. 옛 도면 작법(作法)정도야 슬쩍 보면 알 수 있는 경지야.”

자도 뭣도 없이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건물의 평면도 하나를 완성하니 영직이도 적잖이 감탄하였고, 나도 미주 출장을 다녀오며 다시 세운 인생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분간 상세실측보고서에 들어가는 수기(手記) 도면 작성으로 시간을 좀 때우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전통건축 진흥재단에 입사원서를 낼 거야. 결국 현대가 되었으니 옛날 방식대로 도면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없거든.”

“넌 조선시대에서 옛날 도구로 사십 년 동안 그려왔으니 경험 측면에서 이 시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범접하지 못할 수준이군. 그렇다면 야근도 안 하겠네?”

“애초에 유성룡이 일만 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전통건축은 아예 야근 안 해! 차라리 업무 시일을 연장하고 말지! 더군다나 진흥재단까지 가면 교수들과 연구 성과를 공유 가능하고 이런저런 의견도 제시할 수 있지 않아?”

아무리 현대의 연구가 완벽하다 해도 조선시대에 살아온 사람이 더 많은 지식을 품고 있는 법이었다. 앞으로는 재단 소속 직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릴 예정이다. 야근은 절대 안 하고.

이런 방대한 인생계획을 세웠으니 앞으로 환갑까지 적당적당 대충대충 일하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영직이도 따라서 일어났고 우리는 저녁 길거리를 걸으며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이제 결혼할 준비를 하려고. 기왕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결혼 못 한건 너무 아쉬운 일 아니야? 돈도 많이 버는 입장인데?”

“얼씨구. 언제는 그거 하면 근손실에 뼈 삭는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라. 난 옛날처럼 근육 지상주의자가 아니라니까!”

순간 술을 마실 생각을 하다가 참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근손실이고 군살도 붙으니 자제해야지. 대신 저 멀리 보이는 입신체비장의 간판이 보여 저절로 근육 이야기로 넘어갔다.

“너 일하는 장소가 두물 입신체비장이라 했던가? 앞으로 거기 나갈 예정이니까 내 몸매나 다듬는 것 도와줘라. 근육도 좀 빼고 체지방도 감량해서 날렵한 몸을 만들 예정이야.”

“좋은 생각이네. 너 같은 회원이 체지방을 쫙 빼고 날렵하게 변하면 다른 회원들이 자극을 받겠지. 예전처럼 게임 할 생각은 없고? 그 세계의 전차인가 뭔가?”

“솔직히 말해 관심은 있지만 이제는 근육이 취미니 근육을 위해서 자제해야지.”

옛날의 나였다면 다 귀찮고 피곤해서 대충 간식을 먹으며 게임이나 했겠지만 조선시대에서 그토록 고생하며 모든 게 변했다. 이제는 철저히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리라.

앞으로 뭔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이런 강대국을 둘이서 만들어냈으니 모두 근육 덕분이다. 역사적 차이야 영직이와 힘을 합쳐 찾아보기로 하며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껴안고 아들을 머리 위에 올리며 말하였다.

“나 이제 다른 직장 가려고. 좀 더 느긋하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어떨까 싶어.”

“갑자기 왜 이러세요? 여보?”

아내가 굳이 알 필요는 없으니 한동안 현관에서 아내를 부둥켜안았다. 앞으로는 정말 착실하고 편안히 살아야지.

2부 완결

#작가의 말

2부 완결 및 외전 연재 계획입니다

작가 차돌박E입니다. 제 소설을 지금까지 함께 보아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보내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50화를 채워서 성의를 보이자는 마음이었지만 순식간에 늘어나는 성원으로 100화, 200화 그리고 1부를 완성하고 2부까지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도저히 이뤄낼 수 없었지만 여러분과 함께하니 총 편수 550화가 넘는 소설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소설은 언젠가는 끝이 나야 합니다.

제 소설이 계속 연재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며 저 또한 욕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소재를 중복하여 집필하니 날이 갈수록 한계를 절실히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소재나 내용이 중복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1부의 내용과 연계하다 내용을 뒤엎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세계가 계속되면 좋겠지만 제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근육조선은 공식적으로 8월 23일 월, 수, 금에 연재되는 외전으로 총 10화를 더 연재한 이후 연재를 종료합니다. 외전의 내용은 17세기부터 20세기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구상중인 작품은 순조시기를 다룬 대체역사물입니다.

상세 연재일정과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다시 뵙게 될 그날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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