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56화
2부 에필로그(1)
이지함 이 양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안 알려줄 줄은 몰랐다.
아니, 양반이 아니고 죽은 사람이니 귀신인가. 여하튼 이지함을 탓할 것이 아니고 현대로 돌아와 다시 삶을 살아야 하리라.
왜 그런지는 몰라도 온몸의 힘이 빠져있고 아릿한 고통이 엄습하였다. 혹시나 현대로 돌아왔는데 내 생각대로 뇌출혈로 인해 쓰러진 것이 아닐까.
잠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엉덩이에 불이 치솟아 올랐다.
“으이구! 이 근육에 미친 남편아! 빨리 안 일어나? 열두 시 넘어서 침대에도 안 들어가고 방바닥에 자빠져서 뭔 짓거리야!”
찰싹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다시 불길이 치솟으며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듣지 못한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이 목소리는 현대에 결혼한 내 아내 박예원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당연히 평상시처럼 이야기했다.
“알았어! 일어날게! 으헉!”
일어난 순간 하체의 힘이 풀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아내가 어느새 내 팔뚝을 잡고 내 몸을 지탱해 줬다.
내 체중을 보아 가능한가 싶었는데 아내의 전완근에는 힘줄이 불뚝 돋아 있었다.
아내는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뭘 봐요? 입신체비 죽어라 해서 근육량만 불리다가 샤워하고 피로가 몰려와 쓰러진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기억하세요?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고! 옷부터 입어욧!”
아내의 말대로 얼마나 과격하게 입신체비를 했는지 온몸의 근육에 힘이 풀리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조선시대에도 입신체비를 죽어라 하고 몸을 씻으면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단번에 몰려오며 바닥에 자빠진 적이 많았지.
아내가 건네준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각종 간식거리가 빼곡하게 쌓여 있던 방이 두 배는 넓어졌다.
방 안에는 공령(플레이트)과 대역기봉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는 우람한 보디빌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더군다나 방 한구석에는 제도판이 있었으며 내가 대학교 1학년까지만 사용했던 펜슬 홀더와 제도용 펜을 비롯한 도면을 수작업하기 위한 도구가 즐비하였다.
이 변화에 어리둥절하여 멀뚱히 서 있으니 아내가 뭔가를 내밀었다.
“이틀 뒤에 출장이라고 입신체비를 필사적으로 하니 그 모양이지. 곡분(탄수화물)이랑 당질 부족할 테니 어서 마셔요.”
“고…… 고마워.”
아내가 내놓은 물건은 뭔가 달짝지근하면서 약간 짭짤한 맛이 맴도는 음료수였는데 효과가 좋았는지 정신이 거의 온전히 돌아왔다.
아내는 잔을 돌려받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잠잘 거지요? 어제처럼 꼭두새벽에 공령 들고 날뛰지는 않을 생각이지요?”
“나도 사람이야 사람! 정신이 너무 번쩍 뜨여서 잠은 안 오니 잠시 생각이나 하고 들어갈게.”
“늦게 자도 괜찮지만 입신체비는 좀 적당히 하라니까요. 그러다가 횡문근융해증 와요.”
늦게 자도 좋지만 입신체비를 좀 적당히 하라는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내 몸이 얼마나 뚱뚱한데 입신체비고 뭐고 라는 말을 하려다가 내 손을 보니 굳은살이 잔뜩 박인 입신체비사의 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화들짝 놀라 벽에 달린 전신거울, 영직이 같은 보디빌더들이 즐겨 사용하는 녀석이 왜인지 몰라도 내 방에 있었는데, 티셔츠와 반바지 아래에 보이는 내 몸은 본래의 몸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내 몸이 이렇게 근육질로 변했다고?”
팔뚝에 힘을 주니 근육이 불룩 튀어나왔고 어지간한 보디빌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근육이 드러났다.
비록 절육을 충실히 하지 않았는지 지방이 많아서 결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혹시나 몰라 책상 위를 확인하니 건강검진 서류가 있었는데 신장은 본래 역사보다 큰 183㎝, 체중은 거의 동일한 127㎏에 체지방률이 23%에 불과하였다. 더군다나 본래 역사에서 있었던 수술자국도 없었다.
허리에 있는 수술자국은 눈에 힘을 주고 보아도 보이지 않았으며, 뭔가 뚫은 자국이 있으니 아마 제대로 된 디스크 치료를 받고 철심을 박지도 않았으리라. 여기에 뭔 수를 썼는지 탈모도 예전보다 나아져서 조금 이마가 파인 수준이었다.
내 근육에 취해 전신거울을 보며 온몸에 힘을 주는데 하반신에서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며 저절로 힘이 풀렸다.
그러다 근육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허벅지를 자세히 보니 답이 나왔다.
“내가 왜 빙의하기 전에 갑자기 쓰러졌는지 알겠군. 하체를 이렇게 열심히 하면 쓰러질 수도 있는데 입신체비에 익숙하지 않으니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인 줄 알았네. 그럼 내가 빙의하기 전에 이미 몸이 바뀌었다는 소리잖아?”
아마 나는 빙의하기 직전 영직이가 바꾼 역사로 넘어가 버렸으리라.
그 역사에서는 이지함의 예상대로 조선이 중국을 침략하여 동화되고 조선성(省)이 되어버렸고 기껏해야 입신체비라는 특징을 가진 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렸겠지.
그 순간 내 영혼이 조선시대로 넘어가서 유성룡에 빙의하였고 역사가 재차 바뀌어버린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 영직이 녀석이 어떤 몰골일까 했는데 지금은 전화를 하면 안 된다.
“그놈은 밤 11시 이후에 전화 받으면 근손실이라고 나를 한 달 내내 쪼아대곤 했지. 복수도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중에 하고 일단은 상황이나 알아보자.”
가만히 보니 평상시에는 군것질거리가 있던 자리에는 단백질 보충제와 각종 보디빌딩에 사용되는 건강식품이 즐비하였으며, 역사가 변한 뒤에도 내 직업은 그대로 유지되었는지 각종 건축 관련 서적이 즐비하였고 전통건축 서적의 분량이 훨씬 많아졌다.
컴퓨터의 전원을 넣고 부팅되는 동안 잠시 집을 살펴보니 더 넓어지고 구조도 변했다.
형식은 아파트이지만 평수가 더 넓어지고 층간소음이 극심한 벽식 구조가 아닌 라멘(Rahmen)구조임을 증명하듯이 이곳저곳에 기둥이 보였다.
“하긴 이런 집이 아니면 어떻게, 입신체비를 하나. 벽식 구조로 만든 아파트였다면 역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놔도 쿵 소리가 울릴 텐데. 그럼 내가 근육에 미쳐서 살던 영직이 같은 사람이 되었나? 이런 집은 엄청나게 비싼데?”
순간 쿵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는데 다른 누군가가 한밤중에 보디빌딩을 하다 역기를 거세게 내려놓은 것이 분명하였다.
라멘구조이기에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층간소음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한국은 여전히 한국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자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려고 화면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뇌가 정지해 버렸다.
국가명은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공화국에 OS는 창문10이 아니고 창문 95쯤 되는 어설픈 놈이었는데 바탕화면이 문제였다.
<개상(愷祥) 전통건축 사무소 77차 입신체비 대회, 2018년 10월>
바탕화면을 차지한 사진은 2개월 전에 실시된 입신체비 대회의 사진이었는데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사진 한가운데에서 우람한 승배세(蠅背勢: 백 랫 스프레드)를 취하며 고개를 슬쩍 돌린 사람은 내가 분명하였다.
가만히 보니 직장 동료였던 얼굴도 보였으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는데 여성들도 쩍쩍 갈라진 식스 팩이나 에잇 팩을 드러내며 환한 미소와 함께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완벽하게 달라진 사람도 보였다.
“양 부장님 나이가 54세 아니야! 근데 뭔 흑룡세야! 삼대 일천 근은 치시겠네!”
평상시에는 뼈가 가늘고 앙상해 보일 정도로 쇠약하고 항상 성인병에 시달리던 양 부장님은 나보다 더욱 우람한, 정확히는 체격은 작지만 지방을 극도로 절제한 입신체비의 표상 같은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일단 인원이 문제였다. 기껏해야 경리와 계약직 포함 35명인 사무소에서 67명이 보디빌딩을 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인터넷을 찾아보려 하는데 프로그램도 평상시에 쓰던 티타늄 브라우저가 아닌 백동(白銅)이라는 녀석이었다.
“미치겠네. 그나마 자판이 안 변했지만 언어와 단축키가 순수 한글 중심이 되다니?
어렵사리 검색을 해보니 내가 다니는 개상 전통건축 사무소는 85년의 역사를 가진 ‘신예’ 전통건축 사무소이며 미주에서 1932년 대한공화국으로 이주한 윤필진이라는 건축가가 세운 사무소였다.
가장 큰 문제는 인원이었다. 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84명이 총 직원이고 67명이 대회에 참가하였다면 17명이 남는다. 사실상 이 대회는 대부분의 사원이 참가한 상태였다.
잠시 뉴스기사를 검색해 보니 대다수가 근육, 건강, 그리고 운동과 관련된 기사였다.
길거리를 촬영한 동영상도 보았는데 모두 다 건강을 유지하는 모습이며 체격도 하나같이 건장하고 간혹 보이는 장애인들도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길거리를 오갔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그냥 근육 공화국이 되었군. 사학과, 건축과 그리고 고고학과는 입신체비의 거장의 후예이니 평균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에 불과하잖아?”
다 근육이다. 모병제로 돌아가는 공화국군도 근육덩어리, 국회의원도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이지만 근육덩어리 그나마 경마 기수(騎手)나 경륜 선수 같은 소수 직군은 체중 감소가 답이라 근육을 줄이지만 이런 이들은 극소수이다.
국가별 평균수명도 찾아보았는데 남녀평균 기준으로 86세에 달하였고 세계 3위에 해당하였다.
1위는 모로코, 2위는 스위스 그리고 3위가 대한공화국이었다. 이후 10위까지 듣도 보도 못한 나라들이 즐비하였는데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44위 프랑스, 남성 76.4세 여성 80.9세>
“뭔 프랑스가 이렇게 추락했지?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죄다 상위권인데…….”
검색창에 프랑스 요리라 검색하니 여러 동영상이 나왔고, 개중 하나를 클릭한 순간 내가 과거에서 저지른 잘못이 고스란히 현대로 돌아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유성룡에 빙의했을 시절에 프랑스에서 현대의 칼로리 폭탄 음식을 형님과 함께 만들어 앙리 3세의 연회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 칼로리 폭탄들이 프랑스의 전통이 되어 현대까지 계승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엘랑 알리먼츠(élan aliments)라 하여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열량이 적고 육질과 세견물(비타민) 그리고 채소를 비롯한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나마 낭트 일대를 위시한 지방 도시에서는 옛적에 겸암 유운룡이 남긴 식단을 계승하여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파리 일대는 여전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지방의 향연이 화면에 적나라하게 표시되었다.
치즈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자를 게걸스럽게 먹으며 튀겨낸 돼지 등갈비는 물엿 같은 끈끈한 소스를 바르고 다시 기름이 느글거리는 마요네즈 기반 소스에 푹 찍어서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본래 역사의 미국에서 폭식과 과다한 지방섭취로 비만인구가 엄청났다면 이제는 프랑스가 그런 몰골을 보여주고 있었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아내가 팔짱을 끼고 나를 보면서 말하였다.
“하도 침대로 안 들어와서 또 입신체비 하는 줄 알았는데 배가 고파서 역겨운 프랑스 음식 보면서 속을 달랜 건가요? 갑자기 절육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사람이 왜 이리 변했담?”
“사람이 변할 수도 있지. 너무 끔찍해서 잠시 눈이나 좀 정화해야겠는데.”
“그럼 신부님들 모습이나 봐요. 이번에 교황청 화보집 찍은 장면 뉴스에 떴던데.”
교황청은 어떻게 변했을까. 내 예상대로라면 조선에 선교하고 돌아온 신부들이 입신체비를 익혀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그 덕분에 천주교가 근육으로 변화할 것이 분명하였다.
자판을 놀려 검색어를 입력하니 놀랍게도 예수회 신부들의 화보집 촬영현장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근육질인 라틴계 신부님들이 어마어마한 근육을 자랑하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천주교는 차츰차츰 근육화되다가 마침내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다수가 근육이 되어버렸다.
다른 신부들의 모습도 하나같이 건강과 근육이 넘치니 세스페데스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아내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말하였다.
“근육은 충분한데 우리 남편님은 왜 군살을 걷어내질 않을까.”
“앞으로 절육 철저히 할게. 근육량은 좀 줄어들겠지만 조금만 절육하면 성과가 나올걸.”
아내는 내 눈을 확인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였는데 나는 이미 유성룡으로 이이와 함께 소룡식 입신체비도 경험한 사람이다.
그냥 체지방을 12%대로 줄이면 그럭저럭 볼만한 몸매가 될 것이 아닌가.
아내는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절육에 너무 욕심을 부리다 출장 나가서 쓰러지는 사람이 간혹 있잖아요. 장기 출장 예정했는데 쓰러질지도 모르니 절육은 돌아와서 해요.”
“장기출장이라 해봤자 얼마나 하겠…….”
잠시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본래 역사에서 담당 예정이었던 장기출장은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병산서원의 실측이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지방 사람들이 유성룡이 죽고 나서 알아서 세운 서원이 아닌가.
반면 유성룡의 빙의했을 당시의 나. 정확히는 말년의 나는 귀찮은 걸 다 꺼리고 오로지 쉴 마음만 있었기에 지방 사람들에게 서원이나 향교를 남기지 말라 하였다.
그럼 내 위패는 어디로 향했겠는가. 유성룡과 가장 인연이 깊은 서원이 아니겠는가.
“한 달 다녀오실 예정이라 짐도 다 싸놨으면서 그렇게 편히 말하면 어떻게 해요?”
화들짝 놀라 서류를 점검해보니 출장 일정은 정말 한 달에 달하였다.
유성룡의 위패를 안치한 만천서원의 실측이라니. 입신체비와 관련된 서원의 실측이라지만 그 거대한 규모를 생각하고 머나먼 미주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해졌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만천서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야 하니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지금까지 휴대전화가 어떤 몰골인지 몰랐는데 아직도 물리버튼이 여섯 개나 달려 있는 어중간한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이 영직이이다.
“영직이냐?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너 내가 두물 입신체비장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나한테 부탁한 것 잊어먹었냐? 출장 나가기 전에 나한테 주말 오전반 입신체비 지도받기로 했잖아. 그런데 왜 아침식사에 대한 보고가 없냐. 난 체장이고 너는 회원인데 왜 규칙을 안 지켜.
울화통이 북받쳐 오르며 이놈의 수양대군아! 라고 고함을 치려 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태도가 이상하다.
녀석은 젊은 시절에는 꼰대 기질도 있었으며 성격도 근육 지상주의가 만연했다.
나이를 좀 먹고 성격이 유순해졌는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예전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가만 생각해 보니 녀석은 이 역사에서 사학과를 나오고 입신체비사로 활동하니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리라.
예전 녀석의 성격과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자부심, 그리고 수양대군에 빙의한 본래 영혼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가정까지 해보면 답이 나왔다.
지금 녀석의 영혼은 조선시대에 있으리라. 그러니 나는 울화를 억눌러 참고 답하였다.
“출장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규칙을 어겨서 미안하다. 아침 식사는 기름 없이 구운 식빵 두 쪽에 수란 두 개, 그리고 아스파라거스와 샐러드 약간.”
-식단은 적당하고 지금쯤 입신체비장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너 어디냐? 설마 아직도 집이야? 야! 난 너 하나만 바라보고 체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야! 너 제외하고 일곱 명을 같이 봐야 해!
“집이다. 미안하게 되었으니 몸을 덥히는 과정을 생략하면 어떨까? 내가 거기까지 뛰어가면 몸이 적당히 덥혀질 것 같지 않아?”
당장에라도 후려치고 싶었지만 일단 참는다.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의도치 않더라도 규칙을 어긴 내가 잘못이 아니겠는가.
영직이는 잠깐 동안 침묵하고는 말하였다.
-여기 먹골 입신체비장인거는 알지? 너희 집이 경수아파트니 여기까지 한 이십 리. 대충 8㎞ 되겠네. 네가 전력으로 뛰어오면 딱 알맞은 수준이니까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그럼 한 시간 뒤에 보자고.
개놈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눌러 삼키며 옷을 갈아입고 지도를 확인하며 정신없이 시내를 질주하였다.
가끔가다 이런 사람도 있었는지 내 거대한 몸집으로 전력으로 질주하는데도 어느 누구도 나를 보고 놀라지 않고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운동복을 입은 채 입신체비장 안으로 들어가자 러닝머신 위에서 뛰어다니던 회원들이 내려왔고, 영직이 녀석은 본래 역사보다 듬직해진 체격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모범을 보이니 얼마나 좋아? 회원님들도 보시지요, 제 친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조선시대에 쌓아둔 세 개의 원한에 지금의 원한까지 합쳐서 네 개가 되었다. 녀석에게 언제쯤 본래 영혼이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아직 때가 아니니 이를 뿌득뿌득 갈며 공령을 잡았다. 영직이 녀석은 옛 성격답게 자신에게 취하여 말하였다.
“이번 주말을 끝으로 저는 다른 입신체비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저에게 입신체비 강의를 받고 싶으신 분들은 두물 입신체비장으로 오시지요.”
“체장님 그런데 다음 달부터 휴식월 아니세요? 한 달 뒤에 거기로 가면 어떨까요?”
“그러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여러분 근육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물질입니다! 시작합시다!”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영직이를 보자 원한이 다섯 개로 늘어날 것 같았지만 지금은 내 코가 석자이다.
녀석은 내 자세를 보더니 우쭐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자세가 대단하네. 누가 보면 사십 년 정도 입신체비를 한 사람같이 보이겠어.”
내가 지금의 너보다 경력이 많지.
수양대군의 영혼이 돌아와도 경력이 많을지는 모르지만 내수린으로 붙으면 근력과 기술은 대등하거나 영직이가 좀 더 좋다 쳐도 지방이 많아서 내가 더 유리하리라.
이놈의 출장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모르지만 복수의 그 날을 위해 역기를 거세게 들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
영혼이 돌아오지 않은 영직이의 미소를 보며 다시금 이를 갈고 역기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