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52화 (552/573)

근육조선 552화

2부 30장 14화 사십 년의

고구려의 장수들에게 바치는 제사를 시작으로 광란에 가까운 북인과 백정의 축제가 끝나고, 흥분이 가라앉은 사람들은 나에게 돌아와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일단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 꼴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내가 돌아가 버리면 발굴이 엉망으로 진행되어 안시성의 수많은 유물들이 파손되거나 흩뿌려질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작성하였다.

“작은 성을 발굴하였는데 옛 고려에서 필사적으로 항전한 안시성이었소…….”

처음에는 작은 성이니 2년 안에 발굴할 수 있다 적으려 하였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 성 발굴에는 3년이 걸리리라.

일 년에 기껏해야 일곱 달 동안 일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아내에게 한사코 미안하다는 말과 말을 무시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잔뜩 적은 편지를 보내라 하자, 북인들이 내가 있는 천막 앞에 대기하여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북인들의 시선은 안시성 전투 당시의 상황을 담아둔 목간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걸 서둘러 도성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리라.

이걸 도성으로 옮길 수도 없으니 먼저 지시를 하달하였다.

“목간의 손상을 막기 위하여 자네들의 도움이 필요하네. 내가 알기로 아국의 북변에서 더욱 멀리 떨어진 곳이 목간을 보관할 가장 좋은 장소로 여겨지는군.”

“목간을 그런 험한 곳에 보관하면 삽시간에 도난당하거나 파손되지 않겠습니까? 보관을 하려면 가장 안전한 도성에 보관하는 법이 옳을 것 같습니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일세. 목간은 천 년 전에 만들어진 나무토막일 뿐이네. 살아 있는 나무라면 모를까 죽은 나무라면 몇 년 안에 썩어버리지 않겠는가.”

전통건축과 고고학은 어느 정도 협업하는 경우가 있어서 목재 유물을 보존하는 방법을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세척 후 실험용으로 쓰이는 초고농도 알코올과 접착제 계열의 강화 약품을 섞어서 내부의 수분과 교체한다.

이 작업으로 습기와 세균을 제거하며 경도를 강화시킨 뒤 다시 섬세하게 건조한다. 이후 몇 번의 처리를 더 거치고 복제품을 전시하고 원본은 기온과 습도가 유지되는 수장고에 안치하는 방식이다.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라 밀랍 안에 보존된 목간을 보존할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나마 내 짧은 지식으로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얼음 속에 보존하는 것 단 하나였으니 북인들을 설득하였다.

“자고로 얼어 있는 물건은 썩지 않는 법이네. 생각 같아서는 석빙고에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석빙고는 여름이 지나면 안을 깨끗이 청소하여 보관한 목간이 다시 썩기 시작할걸세.”

“대체 얼마나 목간을 보전하실 생각이십니까? 저희가 보기에는 기껏 해야 일백여 년 뒤에는 목간을 보존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습니다만.”

“옛 고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물건이니 완벽을 기해야 한다네. 기한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와 흡사한 유물을 발굴하여 완벽하게 복원한 뒤에 꺼내라는 말을 남길 것이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보존하는 것이 조상으로서 해야 할 일이겠지.”

아무리 기술 발달이 빨라도 잘해야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1950년대 이후에야 보존을 할 수 있겠지.

북인과 백정들은 적잖이 실망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는 목간 위에 감싸진 밀랍을 가리키며 지시를 하달하였다.

“기름을 먹인 고운 삼베로 밀랍을 재차 감싸고 다시 밀랍을 바르기를 세 번 반복하여 세월이 지나 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게. 이후 머나먼 북변의 사하(시베리아 원주민 일파, 현 사하공화국에서 거주하고 있음)라는 부족에게 요청하여 보존하면 될 것이네.”

조선에서도 북방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땅이다. 소빙하기고 뭐고 일 년에 8개월 이상이 눈이 내리는 땅이니 기껏해야 본래 살고 있던 원주민과 소규모 교역이나 하는 형편이다.

북인들의 행동반경이 넓다 하여도 어디까지나 이들의 생활 범위는 만주이지 시베리아는 아니었다.

이들 가운데 교역을 해본 사람들은 일대의 지리를 아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하였다.

“그들은 제 조상인 흑수(黑水: 여진족의 분파) 부족의 땅에서도 머나먼 변방까지 나아가야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일대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옳습니다! 봄이 되자마자 얼음이 녹으며 사람이 허리까지 빠지는 진창이 되며 겨울이 되면 모조리 얼음이 됩니다. 여기에 모기들은 코안으로 기어들어 피를 빨아대지요.”

“더욱 북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네. 사하 부족 사람들에게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 땅을 알려달라 말하고, 여기에서 이백 리를 북변으로 나아가 음력 팔월에 얼어 있는 땅을 파내 목간을 보존하게.”

산 위의 만년설에 보존할까 생각해봤는데 눈사태를 만나 휩쓸릴지도 모른다. 결국 목간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 외에는 없으리라.

북인들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오히려 홀가분하게 답하였다.

“그렇게 되면 옛 고려의 기록이 당시에는 범접하지도 못하였던 머나먼 북변에 머무르는 것이군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저희 여러 부족들이 힘을 합쳐 정기적으로 이를 보존하겠습니다.”

“목간을 보존한 곳에 요새를 축조하여 정기적으로 사람이 머물게 하면 되겠군요.”

“그러한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땅이 녹지 않는다는 말은 세상의 끝이라는 말과 같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북인과 백정 모두의 조상께서 남긴 기록이니 영의정께서 지시하신 대로 후대에 전할 것입니다.”

졸지에 시베리아에 거점 하나를 만들게 생겼지만 여기는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개발을 시작하니 큰 문제는 없겠지.

보존이 쉬운 유물들과 장계를 포함하여 도성으로 보낸 다음 계속 발굴을 실시하였다.

“이 갑주들은 아무리 보아도 당나라의 양식이 아닌 옛 고려의 양식이 확실하다네. 아무래도 기록상에 남은 검모잠(고구려 부흥운동의 일파)의 군대가 여기서 최후를 맞이하였군.”

성 외부 발굴을 진행하며 내부도 발굴하였는데 성 내부에서 수백 명 어치에 달하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하나같이 격전을 치르다 죽었는지 유골에는 잘리고 꿰뚫린 흔적이 즐비하였다.

이 유골들은 고구려 부흥운동을 행하던 사람들의 유골이니 제대로 관리해야 했다.

고구려는 불교가 국교이며 일본에 전할 수준으로 지식이 높았으니 불교식 장례를 치러주었다.

“인골 가운데 상태가 가장 좋거나 장수라고 분류할 수 있는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 다비(茶毘)를 실시하게. 이들이 믿었던 것은 불교이니 옳은 방식이 아니겠는가.”

“그럼 나머지 유골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어느 자리에서 발굴된 유골인지를 명기하고 각기 봉분을 만들어두게. 장수로 추정되는 이들이 자신들의 후손이 번성하는 모습을 본다면 혼백이 사라져 있다 하여도 흡족하겠지.”

차근차근 지시를 내렸지만 안시성 발굴은 끝이 없었다. 말 그대로 파헤치면 유물과 유골이 쏟아져 나오니 보름마다 수레 한 대 분량의 물건이 발굴되었다.

여기에 발굴이 진행될수록 후세에 남길 좋은 유물들이 솟구쳐 나왔다.

“철물은 어떻게 합니까? 녹 덩어리가 되어서 부스러지는 철물도 있고 녹이 달라붙어서 표면을 갈아내면 새것같이 쓸 수 있는 녀석도 있습니다.”

“녹이 슬어 있어도 유물일세. 부스러지는 철물은 어서 야장(冶匠: 대장장이)을 불러서 본을 뜨고 손상이 적은 물건은 갈아내지 말고 고래 기름에 넣어 도성으로 가져가게.”

“고래 기름에 넣어 도성으로 가져가는 연유가 무엇인지요? 저희도 옛 조상이 쓰던 검을 고스란히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주상전하께서도 이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뛰어난 야장은 철물을 두드려 보고 질감을 확인하여 재현할 수 있는 법이네. 옛 조상이 남긴 갑주의 형태를 살리고 손대지 않은 철을 남기면 후대에 이를 재현할 수 있으나 새로 벼려내면 아니 되는 법이지.”

북인들은 그러려니 했는데 이게 다 현대까지 유물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기름에 절인 유물이라도 현대에는 각종 원소 분석이나 환원처리를 통해 재현할 수 있으리라.

이후에는 건물을 작게 만든 장식용 토기(吐器)도 발굴되었다.

현대에는 사극 세트장도 많이 만들어봤는데 삼국시대 드라마를 찍으며 자료가 없어서, 조선시대 양식으로 건물을 지어놓고 고증이 어쩌네 하는 소리는 이 역사에서는 더 이상 없으리라.

간혹 썩어 문드러져 가는 목재도 발굴하였는데 고구려 시대의 단청(丹靑)은 물론이요, 각종 장식의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물건이 많았다.

이것도 다 기록하며 따로 마련된 숙소에서 다른 업무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젊은 시절에 죽어라 보았던 영화 내용을 팔아치우는 형편이라니.”

복수자설을 시작으로 이철의 이름으로 각종 신소설의 줄거리를 쓰고 최종 판본을 검수하며 주석을 첨부하는 최종 편집자의 업무가 나에게 달려 있다. 낮에는 발굴하고 밤에는 글을 쓰니 참 알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나 정철이 죽더라도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니 줄거리는 소설의 출시보다 훨씬 빠르게 집필하고 있었다.

정철도 자신이 환갑이 넘었으니 나에게 계속 자신이 새로 만연체로 고쳐 쓸 줄거리를 보내달라 하였다.

여섯 달 동안 일곱 편의 신소설 줄거리를 작성하고 총 수레 30대 분량의 유물을 전하니, 어느새 요동에 서리가 내리고 물이 얼어붙을 때가 되었다.

그동안 작성한 신소설과 함께 도성으로 돌아갔다. 이제 분노할 아내를 만날 때가 되었다.

* * *

아내의 말을 철저히 무시해서 안시성 발굴을 진행하고 도성에 돌아오니 음력 10월 초가 다 되었다.

중간에 끊고 싶었지만 유물이 며칠 간격으로 발견되니 도저히 끊을 방법이 없었다.

주상전하께 중간보고를 올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대문 앞에 서니 벌써부터 몸이 덜덜 떨리며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아내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되었지.

“부인, 나 다녀왔소이다.”

선물이고 뭐고 아직도 정비 중인 요동에서 가져올 물건이 있었겠는가.

평상시 아내는 내가 문을 두드리면 직접 마당까지 뛰어나와서 인사를 올렸는데 머슴 장 서방이 이미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문을 열며 귀띔하였다.

“대감께서는 어서 안채로 드시지요. 부인께서 소식을 듣고 보름 가까이 분을 삭이시다가 얼마 전부터 많은 물건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물건?”

장 서방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침묵하였고 나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안채로 향하였다. 안채 대청마루에는 아내가 여성용 입신체비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에 나도 입을 떼지 못하였다. 차라리 진노한 주상전하와 대화를 나누지 아내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아내는 내 눈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상공(相公)께서 제 말을 한사코 무시하시더니만 요동에 삼 년 가까이 머물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간략한 필체로 보내는 서신을 확인하자마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내가 잘못했소이다. 부인의 말 대로 가장 큰 성을 발굴할 것이지 작은 성을 발굴하였다가 이런 낭패를 겪게 되었지 뭐요. 내 잘못이 참으로 크니 이를 미안하다 말할 수밖에 없소.”

평소에는 사근사근하게 낭군(郞君)이라 칭하던 아내가 나를 상공이라 부르는데 이는 남편에 대한 존칭이고 딱딱한 말이다.

조선시대 초기라면 몰라도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낭군 혹은 사랑(舍廊)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아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아내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 잘못 한 입장에서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내기 위하여 어떻게든 아내를 달래줄 말을 하였다.

“옛말에 경험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였소. 밖의 일이라면 모를까 집안과 관련된 일에는 부인이 경험이 많은 법인데 내 말을 무시하다가 떡 대신 벌주를 얻어먹게 되었소.”

“경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였습니까?”

원래는 어른이지만 아무래도 뜻이 좋으면 상관없지 않은가.

아내는 내 말을 듣더니 한참을 고민하고 대청마루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였다.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한 가지 틀린 점이 있으니 말을 듣지 않아도 떡이 생깁니다.”

“그건 또 뭐요!”

아내는 대청마루 기둥 뒤에 숨겨둔 거대한 물건을 꺼냈는데 뭔가 하니 떡을 찧을 때 만드는 떡메이다.

길이는 80㎝ 정도 되고 머리 크기는 거의 주먹 네 개만 한 거대한 떡메였다. 아내는 이걸 휘적휘적 돌리면서 말하였다.

“참다 참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십 년 동안 외방으로만 쏘다니고 나머지 이십 년 동안은 업무에 매진하여 새벽 별을 보고 저녁달을 보며 퇴청해! 내가 청승 과부생활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환갑이 넘어서도 이런 꼴이라니!”

“잠깐 부인! 기다리시오! 그걸 맞으면 내가 죽소!”

“이미 이십 년 동안 과부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며! 나머지 이십 년 동안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남편을 만나서 뭘 어쩌고 어째! 떡을 주는 대신 두들겨 패서 떡을 만들어주마!”

존댓말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눈을 까뒤집은 아내의 모습은 이성을 잃은 것 같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중증 일 중독자의 아내들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병에 시달리는 경우까지 있으니까.

지금까지 내 행동이 타인의 모범이 될 정도로 올바르기에 아내도 참아왔지만 환갑을 넘자 뒤늦게 한 번에 밀려온 격이다.

이걸 밖에 알렸다가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齊家) 항목을 날려 먹은 꼴이라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집안에서 해결해야 하리라.

“잠시 진정하시오! 진정하란 말이오! 최소한 회초리를 휘두르시구려!”

“진정! 사십 년을 참았는데 이제 와서 진정!”

떡메 자루를 잡고 힘겨루기를 하였는데 이 사태를 말리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내에게 미리 말을 들었는지 우리를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장 서방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 서방! 나를 좀 도와주게! 이러다가 안사람은 의금부로 끌려가고 나는 시신이 될 것이네!”

“대감께서 지나치게 잘못을 쌓아오셨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나름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죽는다고!”

나는 요동에서 근무하며 근손실이 심해졌지만 아내는 집안에서 입신체비를 계속하였기에 서로의 힘은 대등하였다.

오히려 아내의 하체가 강해 내가 조금씩 밀려나는 형편이었다.

잠시 뒤, 장 서방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흠집을 내놓은 떡메 자루가 천천히 갈라지고 있었다. 이걸로 나를 때려보았자 별 타격을 입히지도 못하고 박살 났으리라.

장 서방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잘하였네!”

“장 서방! 내가 일에 개입하지 말라 하였는데 떡메에 손을 대다니! 까악!”

자루가 완전히 부러지자 나와 아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자빠졌다.

흙먼지를 뱉어내고 어떻게든 말로 해결하려 하는데 아내는 이미 철저히 준비했는지 다른 흉기를, 정확히는 아내가 잡으면 흉기가 되는 물건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내 상공님과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고 싶어 하였는데 다듬잇방망이로 담소를 나눕시다!”

“그걸 맞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뼈가 부러질 거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보통 다듬잇방망이는 참나무로 만들어 뼈를 부수지만 이건 낭창낭창한 촉감이 일품인 편백나무로 만든 다듬잇방망이입니다! 뼈는 안 부러질 겁니다!”

결국 편백나무 곤봉인데 그건 안 아프냐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피하려 했는데 내 허벅지에 다듬잇방망이가 찍혔고, 격통이 치밀어 오르며 바닥으로 자빠졌다.

이후로는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지난 세월 동안 쌓인 원한을 단숨에 해소하려는 듯이 다듬잇방망이가 온몸에 내리 찍혔다.

아내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며 말하였다.

“내가! 내가! 밖에 있을 때마다 평안한 날이 있을 리가 없고! 전쟁 통에도 후방이 아닌 최전방에서 십만 대군을 상대로 싸웠다는 말을 들으며!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크악! 아으악!”

아내의 말이 참으로 옳아서 반박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미친놈처럼 온 세상을 날뛰면 하늘에 빌면서 속이 타들어 갔으리라. 지금의 고통은 아내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는 거친 숨을 내쉴 때까지 다듬잇방망이를 휘둘렀고, 몸에서 편백나무의 그윽한 향이 날 때쯤 구타가 끝났다.

아내는 다듬잇방망이를 집어 던지고 말하였다.

“이제 할 대화는 다 나누었으니 낭군님께서 마음대로 하시지요.”

온몸에서 격통과 타박상으로 인한 열기가 올라오는데 사지를 움직여 보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아내가 절묘하게 힘을 조절해서인지 내 근육이 아직 남아 있어서인지 골절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종대왕님이 저술하고 문종이 추가로 수정한 경국대전에 의거하면 부부 사이에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는 여럿이 있다. 개중 강제로 이혼시키는 경우는 폭행으로 골절에 이르는 경우였다.

물론 구타당한 내가 증언을 하면 당장에라도 이혼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아내를 허투루 대하고 이혼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리라.

장 서방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옷을 갈아입은 뒤 말하였다.

“내가 잘못한 것을 부인이 잘못으로 값은 것이니 아무 일도 아닌 게 된 거요.”

“그걸로 끝입니까? 앞으로 이 년 동안 겨울에만 도성으로 돌아오실 예정이 아닙니까?”

“내가 도성에서 근무할 때까지는 각방을 쓰겠소.”

지난 세월 동안 쌓인 아내의 원한이 점차 누그러지며 침착한 표정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아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를 위해 의원을 불렀고 의원은 내 몸을 살펴보며 말하였다.

“타박상이 참으로 심하시군요. 골절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뼈가 상한 곳이 몇 군데 되니 몸을 당분간 잘 간수하셔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이렇게 되셨습니까?”

내 집까지 왕진으로 나온 의원이 영의정이 왜 이 꼴이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이걸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하였다.

“도성으로 돌아와 기쁜 마음에 말을 타다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온 여우를 보고 놀라서 낙마하였다네. 하필 돌부리가 가득 올라온 언덕이라 계속 뒹굴며 온몸이 이렇게 되었지.”

“돌부리가 하나같이 다듬잇방망이와 흡사한 형상이니 참으로 기묘한 언덕이군요.”

“그냥 그렇게 알아두게!”

의원은 영의정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처방전에도 낙마(落馬)로 인한 전신 타박상이라고 적었고, 동의보감에 의거하여 치료를 실시하였다.

사태는 잘 수습하였으니 앞으로 각방이나 쓰면서 지내야지 별수가 있겠는가.

이후 이 년 동안 안시성을 발굴하고 또한 여유가 생긴 내가 이덕형을 보조하자 요동은 점차 거지 소굴에서 사람이 사는 땅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내 영의정 임기도 끝이 날 때가 머지않은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성룡이가 외국에서 근무한 시간 : 19년.

성룡이가 전쟁에 참여한 횟수 : 2회, 최전선만 참전.

성룡이의 평균 출퇴근시간 : 새벽 4시 / 오후 9시

이때 부인의 몸에서 생길 사리의 개수를 구하시오.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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