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51화
2부 30장 13화 환갑 선물
일대의 성을 모조리 발굴하고 복원하다가는 내가 요동에 뼈를 묻게 생겼으니 어느 정도는 일을 덜어내야 하리라.
나도 환갑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일을 늘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니 적잖이 고민하고 답했다.
“내 몸은 하나인데 찾아내야 할 성은 수십 개에 달하지 않은가. 큰 성을 발굴하려면 옛 유물을 찾아내는 방법을 익힌 사람이 많아야 하는 법일세. 내가 성 하나를 발굴하여 사람을 가르칠 것이니 그 사람들을 동원해 주게나.”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품계가 또 오를 예정이니 자네가 키운 사람들로 병사들에게 옛 성을 복원하는 방법과 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퍼트리면 충분할 것이네.”
“자네 품계가 오른다 하였는가? 자네는 이미 정2품으로 좌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데 혹여나 통합 수군통제사 자리가 신설될 예정인가?”
“주상전하께서는 군관의 품계가 낮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시어 찬성(贊成)과 대등한 우지휘사와 좌지휘사를 둔다 하셨네. 현직 군관은 아니고 군제개편과 훈련편성의 업무를 담당하지. 이미 밀지를 받았는데 내가 첫 지휘사로 임명된다 하더군.”
이순신은 무덤덤하게 말하였지만 이순신의 전공이 너무 드높아 규칙을 깨고 새로운 무관직을 신설한 사례나 마찬가지이다.
당장 명나라도 정2품이 군관 승진의 한계치이다.
이 이상으로 올라가면 지방 지휘권과 군권을 통합한 지방관의 자리이니, 사실상 이순신은 무관으로서 최초로 종1품에 올라가는 업적을 달성하였으리라.
이순신이 나를 친히 기함에 태워 도성까지 데려다주었고, 가까스로 내 환갑 이틀 전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머나먼 변방에서부터 내 환갑을 기념하려 하였는지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인사를 올린 사람은 나대용이었다.
“영의정 대감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해추선의 개량을 위해 여송에 머물며 설계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으나 소식을 들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자네도 안색이 많이 좋아졌군. 그나저나 해추선의 개량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예전 해추선보다 여해의 기함이 더욱 커진 것 같은데?”
“이제는 육백 돈(약 540톤)급을 넘어선 해추선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저도 하루에 일곱 시진(14시간) 이상을 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나대용다운 모습이다. 나대용과 악수를 나누고 옆을 돌아보니 예전보다 훨씬 비대한 체격을 자랑하는 강덕만과 하와이 출신 사람들이 우각세를 취하며 나를 맞이하였다.
“여섯 달 뒤에 하바이이에 있는 거석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입신체비의 본고장인 조선에서 제대로 배울 작정으로 하성군이라는 분에게 가르침을 청했지요. 그러다 대감께서 환갑이 되셨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찾아왔습니다.”
“하성군 대감은 엄한 입신체비로 정평이 나 있는 자인데 스스로 고난을 자처할 줄은 몰랐군. 그나저나 하바이이의 거석을 움직이면 정말 왕이 될 수 있는가?”
“왕은 아니고 하바이이의 대표가 되겠지만 그게 왕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평생 단 한 번만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하면 섬에서 추방당하나, 남자로 태어나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봐야지요!”
실패해도 미주에서 살면 충분하니 큰 문제는 없겠지. 이외에도 나를 찾아온 외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여송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아예 코끼리를 데려와 버렸다.
내가 즐겨 타고 다녔던 완보 녀석이 아닌가?
-뿌아오앙!
코끼리는 기억력이 좋긴 한지 나를 여러모로 확인하고 코를 뻗어 냄새를 맡아보더니만 발을 구르며 기쁨을 표시하였다.
나는 손을 뻗어 완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옛 추억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네 녀석도 많이 늙었구나. 상아가 많이 닳아버렸고 몸의 털이 점점 희게 변하니 내 머리와 흡사하여 마음이 놓이는구나. 거기 진 서방, 완보에게 옥수수를 잔뜩 내어주게.”
어느새 돌아온 고니시도 인사를 올렸고 미주 대주교인 세스페데스도 미주에서 근무하던 신부들과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세스페데스는 인사를 마치면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드디어 후성 주교로서의 제 업무가 끝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신부들도 입신체비를 익혀 이제는 동방에 파견할 신부들에게 미리 입신체비를 익히게 하였지요.”
“그러하면 입신체비가 선교의 근본이 되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오로지 동방에서 천주교의 선교를 허가한 조선에 파견하는 신부에게만 입신체비를 익히게 할 뿐입니다. 사실 익혀서 나쁠 것이 없겠지만요.”
“입신체비를 익히면 몸이 강해지고 마음이 저절로 단련되는 법이오. 사실 그것 말고도 생각해둔 것이 하나 더 있지만 후일이 되면 알아서 드러날 일이 아니겠소.”
세스페데스는 후일이 되면 알아서 드러날 일이라는 말에 감이 잡히지 않아 눈을 굴렸지만 내가 생각해둔 사실이 있다.
입신체비를 익힌 사람은 기본적으로 몸을 단련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며 식생활이 올바르게 변한다.
그렇게 되면 개개인은 몰라도 평균수명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백 년쯤 지나면 오래 살며 더욱 높은 직급에 오른 신부들이 천주교를 입신체비로 물들이겠지.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린 사람은 지팡이를 짚은 이이였다.
“이것 참 별일이 다 있군. 내가 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한가로이 관직생활을 재개하였는데 자네가 더욱 많은 유물을 발굴하겠다고 하였는가?”
“유…… 율곡 대감께 폐를 끼쳐드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내가 고개를 박아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퇴직을 하고 제자를 키우던 이이는 새로운 관직이 생겨나서 퇴직 상태에서 반 억지로 박물관 관장이 되었다.
다행히도 이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말하였다.
“송구할 일은 없다네. 그저 자네의 퇴직이 언제일지 언제쯤 박물관에 올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 자네 퇴직은 언제쯤 할지 정해는 두었나?”
퇴직이 언제일까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사실 퇴직을 해보았자 이이의 후임으로 박물관에 틀어박혀 내가 발굴한 유물을 연구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보고서를 써내야 하리라.
이이는 내 표정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러하면 아니 된다네. 안사람이야 자네가 얼마나 많은 나라의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 참고 있지만 나중에 안사람과 외방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나. 이를테면 퇴계 선생님처럼 대양도라도 다녀오든지.”
“조언을 명심하고 마음속에 새겨두겠습니다. 이번 업무도 가급적 짧게 끝낼 작정입니다.”
이이는 개가 똥을 끊지 내가 업무를 끊겠냐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윽고 아내와 만날 차례가 되었다.
아내는 조용한 안채로 나를 이끌고 말하였다.
“낭군님께서는 환갑이 다 되어도 한사코 업무에 매진하시니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입니다. 선친(先親)께서도 세상을 떠나시는 그 날까지 붓을 놓지 않는 것이 유생이라 하셨지요.”
“조만간 주상전하께 은퇴를 청할 것이며 설령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박물관 관장으로 근무하며 제자를 기르고 집안 관리에 힘쓸 예정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그리고 요동의 발굴은 작은 성 단 하나만 할 거요.”
“제가 부족한 머리를 굴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낭군께서는 가급적 크고 웅장한 성을 발굴하여 주십시오. 혹여나 작은 성을 발굴하였다가 일복이 터져 나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뭔 삽을 뜨면 유전(油田)을 터트리고, 곡괭이를 놀리면 금광을 쏟아내는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없는 일을 찾아 했지만 이제는 지쳤다. 나도 일을 줄여서 하고 싶은 심정이다.
커다란 성은 기본적인 측량과 지층 확인 작업만 따져도 여섯 달이 걸리고 지층을 확인하는 데 또 여섯 달이 걸린다. 심지어 요동의 겨울은 음력 10월부터 3월까지 여섯 달에 달하니 1년 6개월을 요동에서 보내는 격이다.
아내는 내 표정을 살펴보며 말하였다.
“어떤 업무를 하고 돌아오신다 하여도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나 제 조언을 눈여겨 주십시오. 비록 업무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지만 불현듯 드는 생각이 이러하였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구려. 혹여나 지나치게 작은 성을 발굴하여 북인과 백정들이 실망하여도 이들을 잘 타이를 방법은 여럿 생각해 두었소.”
나도 늙었고 아내도 늙었지. 이제 좀 노년을 즐기며 살아볼까 하는데 작은 성에 뭐가 잠들어 있다고 아내가 염려한 대로 초대형 사고가 일어날까.
이틀 동안 푹 쉬고, 환갑 당일에 궐로 나가니 주상전하께서는 선물을 내려주셨다.
“영의정 유성룡이 요동에 나아가 험난한 일을 당할까 마음이 불안하니 궤장(几杖)을 미리 하사하겠다. 머나먼 야지에서 안석(安席)에 앉아 업무를 주관하고 지팡이로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신이 미리 궤장을 받게 되었으니 일흔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사력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일흔쯤에는 은퇴시켜준다는 말을 하니 다행이구나.
앞으로 9년 남았으니 열심히 노력해 보기로 하고 퇴궐하니 도성의 백성들이 몰려들어 내 이름을 연호하였다.
“서애 대감께서 환갑을 지내신다! 도성 관원 모두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벼락을 몰아내는 방안을 만드신 분이시며 사람이 이주할 장소를 만드신 분이 아닌가!”
어느새 내가 가르친 일본 출신 제자들이 바람잡이가 되어 백성들을 인솔하였고 얼마 전 기로소(耆老所: 노년이 된 관원이 머무는 임시 관직)로 이전한 권율은 나와 안면이 있는 노신들을 데리고 내 앞길을 맞이하였다.
말 그대로 도성이 떠나갈 정도의 환갑을 치르고 해가 지나 1603년 3월이 되었다.
지난겨울 동안 발굴할만한 제법 작은 성 하나를 택했고 변명거리도 충분히 준비해 뒀으니 일복이 터지지는 않겠지?
* * *
겨울을 마치고 요동으로 돌아오자 북인들은 항구부터 모여서 내 도착을 환영하였다.
이미 충분한 지원을 받은 이덕형 덕분에 요동 일대의 상황이 계속 나아졌으며 북인과 백정 모두가 마을을 만들고 정착을 마친 상황이었다.
“저희가 발견한 거대한 성 중 어디를 발굴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땅이 녹아서 파내기 좋게 되었으니 가급적 커다란 성을 하나 골라주시지요.”
“이미 간략하게 조사를 하여 비사성과 오골성, 그리고 요동성을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택한 성은 이 성이라네. 서쪽이 트여있는 골짜기에 만들어진 토성이자 아직 이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성이지만 신묘함이 느껴지는 성이라네.”
내가 발굴하기로 정한 성은 지금까지 발견한 성 가운데 규모가 작은 축에 속한다.
심지어 제대로 돌로 쌓은 성도 아니며 지금은 작은 언덕 수준으로 깎여 나간 토성, 흙을 쌓고 위에 돌 약간을 덧대 보충한 성이다.
자기들이 뭐라 해봤자 영의정이자 건축의 대가, 그리고 유물 발굴의 대가인 내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내 명령에 따라야지 반박할 수 있겠는가?
북인들은 적잖이 실망한 눈초리로 쭈뼛거리며 캐묻기 시작하였다.
“영의정께서 신묘한 기운이 감돈다 하시니 믿어 보겠습니다. 대체 어디서 신묘한 기운이 감돈다 하시는지는 영문을 알 길이 없습니다만.”
“며칠 전 꿈에 검은빛이 도는 찰갑과 드높은 경갑(頸甲: 목 갑옷)을 입은 장수가 봉황이 알을 품은 자리를 찾으라 하였네. 당시에는 헛된 꿈이라 생각하였는데 지세를 보니 이 자리는 봉황이 알을 품기 좋은 자리가 아니던가.”
지세는 틀리지 않지만 크기가 문제였다. 심양에서 준비를 마치고 내가 정한 성, 이 시대에 요동에 살던 이들이 영성자산성이라 부르는 성으로 다가가니 참 작다 못해 아담한 성이었다.
둘레는 기껏해야 12리(4.8㎞)에 동남쪽 모서리에 치성(雉城)이나 둔덕을 쌓아 방어력을 키우려 했는지 언덕이 튀어나와 있는 성이다.
북인들도 나를 따라온 관리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지만 나는 당당하게 선포하였다.
“봉황이 드넓은 터에 알을 낳겠는가? 봉황이 알을 품으려면 아담하고 둥지로 삼기 좋은 지세여야 하니 어서 발굴을 실시하게.”
다들 못마땅해했지만 나도 일을 줄이고 싶은 심정 하나였다.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전쟁 관련 유물이 발굴되면 역사적 사실과 끼워 맞추면 충분하겠지.
아예 유물이 발굴되지 않는다면 모를까 고구려도 나름 멸망 이후 부흥운동을 했는데 이런 변방의 성에도 유물은 어느 정도 발굴되리라.
북인들이 유물을 적게 발굴하거나 중요한 성이 아니라 실망하면 이런 답을 내리면 된다.
‘내가 꿈을 잘못 해석했나 보군. 그래도 자네들 모두가 옛 조상의 물건을 발굴하는 법을 익혔으니 관원들과 한 몸이 되어 다른 성도 발굴해 주게나.’
나에게 배운 관원들과 공무원은 지시를 내리고 북인들이 인력이 되면 뭘 못하겠나.
팔짱을 끼고 발굴을 위해 잘려나가는 나무를 확인하는데 웬 백정이 와서 쭈뼛거리며 말하였다.
“순변사 대감님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성안 쪽의 언덕에서 튀어나온 돌부리를 확인하였는데 돌부리인 줄 알고 걷어내려 하니 자연석에 대충 쪼아 만든 비석이었습니다.”
“벌써 비석을 발견하였단 말인가. 혹여나 무덤 인근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파헤치지 말게나.”
이 성의 주인의 무덤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무덤일 수도 있어서 찾아가 봤는데 허리 높이의 자연석에 대충 정을 쪼아 만든 비석이었다.
문제는 이 비석의 주인이 제대로 죽은 사람이 아니란 점이었다.
<부복애지두묘: 傅伏愛之頭墓>
“부복애의 머리 무덤? 왜 머리 무덤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부(傅)라는 성씨는 명국을 비롯한 대륙의 성씨인데? 아국의 성씨는 아비 부(夫)를 쓴다네.”
“제가 들은 바가 있습니다. 부복애는 옛 고려와 당이 전쟁을 벌일 적에 실책을 저질러 당태종 이세민이 참수하라 명하였고 시신도 돌아오지 못한 자라 합니다.”
북방 역사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는 백정의 말을 듣자 머리 한 구석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부복애라는 장수는 안시성 전투 때 토산을 소홀히 관리하여 무너트린 죄로 참수당하였다고.
섬뜩한 마음에 주변을 살펴보니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생땅이 나오지 않은 구덩이를 발견해 계속 파헤쳐 보니 수많은 유골이 있었습니다. 불에 그슬리고 터져나간 흔적이 역력하니 아마 시신을 수백 구씩 묻어 불태운 것 같습니다!”
“잠시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팔뚝 크기의 청동 못이 발견되었는데 옛 시절에 운제(雲梯: 공성용 사다리)를 엮던 못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발굴되는 현장을 확인해 보니 어마어마한 전투의 흔적이 있었다.
갑옷이야 전리품이고 재활용이 가능하니 벗겨놓고 시신만 불태웠지만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의 뼈가 모두 불타지 않고 퇴적된 구덩이도 있었다.
다른 곳은 공성병기가 부서지고 파묻힌 흔적이 있었다. 이미 썩어 문드러진 나뭇더미 사이에는 아직 덜 부식된 청동 부품이 있었고 녹슨 화살촉 수십 개가 발견되었다.
일단 명령을 내려 유물을 따로 보관하라 하였지만, 그 유물이 벌써 수레 열 대 분량이다.
설마 이 성이 안시성은 아니겠지?
일단 유물의 보존처리와 동시에 유골이 파손되지 않게 잘 간추려 이장(移葬)하라 지시하였는데 파손된 공성병기가 종류별로 발견되고 유골이 묻힌 구덩이만 열 개가 넘게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성이라 실망하고 있던 북인들은 옛 조상의 흔적을 찾겠다면서 황동으로 만든 솔도 아닌 멧돼지 털로 만든 솔을 만들어 와서 유물을 발굴하였다.
이윽고 한 북인이 남쪽 산기슭에서 헐레벌떡 뛰어 내려와 말하였다.
“황토를 캐내다가 묵직한 느낌이 들어 확인하여 보니 진흙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토를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진흙을 따로 꺼내었는데 이게 무엇인지요?”
조선시대인 지금은 종이는 물론 밀랍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기밀문서는 대나무 통에 넣는다. 이 위에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밀랍을 뿌리되 안에 얇은 종이를 넣고 위에 직인을 찍어 훼손되었음을 즉각 확인하게 만든다.
반면 삼국시대에는 기술이 부족하니 기밀문서를 얇은 나무토막 두 개 사이에 끼워서 노끈으로 묶고 위에 진흙 봉인을 덧씌운 뒤 직인을 찍어 기밀을 유지한다.
간혹 이렇게 아예 진흙 통에 넣어 파손을 방지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들었다.
조금 흔들어 보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는 목간(木簡: 글을 적은 나무 조각)으로 작성된 기밀문서가 제법 온전한 형태로 들어 있으리라.
북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어쩔 수 없이 답을 말해주었다.
“옛적에 기밀문서를 보관하는 데 쓰이는 봉니(封泥) 같군. 평상시에는 봉인목간(封印木簡)을 사용하지만 험한 환경에서는 진흙으로 감싸서 파손을 막는 이러한 봉니를 쓴다는 기록이 있네. 혹여나 다른 흔적은 없었는가?”
“인근에 뼛조각도 있었는데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 뼈가 삽시간에 바스러져서 흰색 조약돌로 위치만 표시하여 두었습니다. 그나저나 내용이 무엇인지 알 길이 있을까요?”
표정은 태연하게 유지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봉니가 발견된 위치는 산세가 가장 험한 곳이었는데 이런 장소에서 전령이 죽었다면 격전이 진행되는 포위상황에서 보내던 서신이리라.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안시성 전투에서 보내던 기밀문서겠지.
생각 같아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가 도성이라면 모를까, 주변의 사람이라고는 관원과 인부, 그리고 북인과 백정이니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리라.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발굴된 유물은 즉시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엄청난 속도로 손상된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이 자리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의 죽간은 몇 년 이내에 부패해 현대까지 전해져 오면 썩은 나무 조각 몇 개만 남아 있으리라.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이다.
봉니가 훼손될 염려가 있다면서 방치하여 후손들에게 이 내용을 전하지 않고 일신의 안위를 택하는 법.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남아 발굴을 진행할 각오를 하고 내용을 확인하고 보존하는 법이다.
“이거 참으로 고민이로군. 이걸 그대로 후세에 전한다면 썩어 문드러질지도 모르고 열어본다면 내 손길에 오히려 더욱 빠르게 훼손될지도 모르겠군.”
역사의 대다수를 잃어버린 현대인이자 전통건축을 생업으로 삼아온 사람으로서 이를 확인하고 보존하여 후세에 전할 의무가 있었고 결국 의무를 택했다.
나는 봉니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으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봉니를 열어볼 작정이니 내 지시대로 준비하게. 봉니는 젖은 흙 속에 파묻혀 있었으니 열어볼 적에도 축축하게 젖은 장소에서 열어봐야 하는 법이 아닌가. 또한 내용을 확인한 봉니를 다시 봉인할 준비도 갖추어야 하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고고학 지식을 최대한 동원하였다.
진시황릉을 비롯한 고분은 외부의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자 순식간에 채색이 파손되었다는데 이걸 막으려면 습도가 높은 공간에서 개봉해야 하리라.
여기에 목간을 보존하는 방법도 문제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부패할 것이니 현대까지 보존하기 위하여 뜨겁게 덥힌 밀랍을 부어 세균을 죽이고, 습기를 차단해 북방의 영구동토에 대대손손 보관하면 그나마 파손이 덜하리라.
준비가 끝나 분무기로 물을 축여 눅눅해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파손될지도 모르는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관원 다섯 명을 참관하게 하고 봉니에 칼을 대었다.
“생각 외로 딱딱하군. 내용이 즉시 사라질지도 모르니 자네들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목간의 글귀를 적을 준비를 하게. 제발 물에 씻겨 나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즉석에서 만든 나무칼로 조심스럽게 진흙을 걷어내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로 내용물을 확인하였다
파손을 염려하였는지 고구려 시절 봉인된 기밀문서는 겉에 기름을 먹인 종이로 감싼 목간에 적혀 있었다.
축축한 기름종이에 내 콧김이 닿자 그 충격만으로 종이가 산산조각으로 파손되었고 콧김조차 내뿜지 않으려고 숨을 참으며 나무토막을 조심스럽게 꺼내 미리 준비한 따듯한 물에 넣었다.
이윽고 안까지 침입한 진흙이 씻겨 나가며 글귀가 보였다.
“참으로 다행일세. 혹여나 폭우로 봉니가 뭉개져도 속의 글귀만큼은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아교를 잔뜩 사용한 먹으로 글귀를 남겼군. 나무토막이 해면(海綿)처럼 푸석거리지만 형태는 남아 있다네.”
깨끗한 세숫대야로 조심스럽게 목간을 옮기고 등불을 가깝게 대서 목간의 형태와 길이를 기록하고 글귀를 옮겨 적었다.
삼국시대 특유의 문법으로 기록된 내용을 적어나던 관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들이켜면서도 아무 말 없이 글귀를 적었다.
목간이 절반 가까이 파손되었지만 절반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들여 지시를 내렸다.
“목간이 훼손될지도 모르니 겉을 밀랍으로 감싸야 한다네! 준비한 틀에 밀랍을 부어 넣게!”
“알겠습니다! 거기 밀랍 가져와!”
겉을 솜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 최대한 손상을 막은 목간 아래에 녹아서 말랑거리는 밀랍이 깔리고 위에도 밀랍이 부어졌다.
현대의 기술력이면 내가 보관한 목간이 훼손되어도 밀랍에 찍힌 먹의 흔적으로 글귀를 복원할 수 있으리라.
할 일은 다 했으니 해석조차 하지 못하고 옮겨 적기만 한 내용을 확인해 볼 차례였다.
다른 관원 다섯이 적은 내용과 대조하여 글귀를 해석하였는데 첫 대목부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시성주(安市城主) 보고를 올림. 금일 구월 열여섯일 당왕(唐王) 이세민과, 여긴 확인 불가하고. 세 번 이 항목은 교전이겠고. 행하여 세 번 이겼고 네 번째 전투에 본군이 달려왔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이 성은 안시성이 확실하였다. 예상대로 보통 보고도 아닌 1차 고당전쟁의 최고 격전인 안시성 전투가 진행되던 와중에 외부로 보내려던 역사의 기록이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다스리고 다시 글을 해석하였다.
“네 번째 교전에서 이세민이 읽을 수 없고, 모조리 쏘아붙여 낙마하였음. 이세민이 읽을 수 없음, 이후 역으로 공세를 실시해 적이 다섯 리 밖으로…… 읽히지는 않지만 물러남이겠군.”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이 안시성에서 한 눈을 잃었다는 야사가 있었는데 한 눈은 몰라도 낙마하여 중태에 빠진 것이로군요!”
“글은 계속 읽어야 하는 법이네. 중간의 내용은 훼손되었지만 마지막 내용은 명확하다네. 적이 퇴각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우회기동으로 포위하여 주십시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하필 작고 평범한 성을 찾아서 발굴했는데 안시성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대에는 진흙 속에서 썩어버렸을 당시의 보고서마저도 발견하였으니 이 성이 안시성이 아니면 어디이겠는가.
이런 작은 성이 삼십만 대군, 아무리 대규모 원정이라 보인(保人)이 많다 하여도 제대로 된 병사가 십만 명에 달하는 이세민의 본대를 막아설 줄은 몰랐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엿듣고 있던 북인과 백정들이 얼싸안고 마음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안시성임을 확인하셨다! 그러하면 서애 대감님의 꿈에 나온 장수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보장태왕(보장왕)께서 갑주를 입고 나오신 것일지도 몰라!”
“혹여나 안시성주의 존함을 알 길이 있겠습니까? 명나라에서는 양만춘(楊萬春)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옛 고려에서 양씨는 없다 하였습니다. 어서 알려주십시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서 내가 적은 해석을 베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 말하고 임시로 부설된 숙소로 들어와 대 자로 뻗어버렸다.
“아내의 말이나 제대로 들을걸…… 하필 발굴해도 안시성을 발굴할 게 뭐람.”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은 물론이요, 이 소식을 제대로 전하자며 도성으로 올라가 보고를 올릴 사람을 뽑자는 북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자리에 누워있자니 웬 피비린내가 밀려왔고 관원들이 보고를 올렸다.
“북인들과 백정들이 말과 소를 마음대로 도축하고 사냥을 하여 거대한 제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례한 일이니 말려야 합니까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합니까?”
“조상의 위업을 칭송하기 위해 제사를 올리니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게.”
이제는 뭘 어떻게 되돌릴 방법도 없다.
안시성을 발굴한 데다 빙의자로서의 의무로 여기가 안시성임을 입증하였으니 일대를 모조리 발굴해야 도성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아마 여기서 이 년 이상 발굴만 지휘해도 모자를 것이다.
흐느적거리며 밖으로 나와 몰골을 확인해 보니, 쉰 마리가 넘는 가축과 들짐승이 도축만 마친 채 통으로 구워져 어디선가 가져온 거대한 반석 위에 놓였고, 북인과 백정은 서로를 들어 올리며 제사를 진행하였다.
“보십시오! 저희 옛 고려의 후손들이 한 몸이 되어 입신체비로 몸을 단련하는 모습을!”
“자네만 훌륭한 몸을 자랑하면 쓰나? 어서 나도 제사를 지내도록 내려놓아 주게!”
조선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소 앞에서 삼대운동을 하여 효심을 이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이들은 참으로 무식하게도 천 년 전의 조상에게 효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튼 좋으니 어떤 불세출의 천재가 달려와 나를 대신해 이 발굴 작업을 대신해 주기만 기원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작가의 말
안시성의 위치와 유물 발굴, 그리고 성룡이가 발견한 장계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제가 창작한 내용입니다.
성룡이는 목재 유물이 완전히 부식되기 이전에 발굴을 시작해서 현대인에게 많은 선물과 자신의 환갑 선물도 챙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