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46화 (546/573)

근육조선 546화

2부 30장 8화 변란의 싹

조선의 도성에서 한참 신소설이 유행할 무렵, 명나라의 임시 수도 남경에서는 소설은 생각지도 못하고 오로지 집무에 임하는 만력제가 있었다.

만력제는 이제 하루 14시간 동안 일하고 2시간을 휴식하며 나머지를 자는 인간 같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눈에 핏발이 선 만력제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눈을 비볐다.

지방에서 들어온 보고를 확인하고 변란이나 이상 징후가 없음을 확인한 만력제의 눈은 다음 서류로 움직였다.

자금성 보수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확인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빌어먹을, 거목이 부족하니 아예 조선에서 모조리 수입해야겠군. 당장 조선에 서신을 보내 지름이 열 자(3.4m)가 넘어가는 거목 이백여 그루를 주문하도록 하여라.”

철저히 파괴된 북경을 복원하지 않으면 천명이 무너졌음을 간파한 세력이 도처에서 일어나리라 예상한 만력제는 북경 복구공사에 안간힘을 다하였다.

그는 유성룡이 집필한 건축 관련 서적을 훑어보며 이를 참고로 하여 지시를 추가 하달하였다.

“겨울이 되면 한기가 치밀어 오르니 경목조(경량목구조)로 만든 숙소에 거주하는 이들이 삽시간에 얼어 죽을 것이다. 도처에 쌓여 있는 벽돌로 집을 만들어 인부들을 보호하도록.”

“하오나 이십만 명에 달하는 인부들이 머물 숙소를 마련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공사를 중단하여도 좋으니 일을 신속히 진행하여라. 또한 벼락을 막아내는 피뢰침이라는 기물을 조선에서 만들어냈으니 이를 자금성 곳곳에 설치하여 낙뢰를 막도록 하라.”

영민한 축에 속하는 만력제였기에 업무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북경 보수를 이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정무에 임해 식사도 대충 때운 만력제는 피로가 쌓여 움직이지 않는 팔을 움켜쥐며 말하였다.

“잠시 가배(커피)를 마시려 하니 정원에 다과를 내놓도록 하라.”

“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평상시라면 정무를 슬쩍 훑어보고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가겠지만 이제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태업을 하였다가는 모든 대신들이 몰려와 양위를 강요하리라.

황제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나마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것은 만력제가 상식적인 실책을 저지른 덕분이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과를 거칠게 깨물어 먹고 말하였다.

“독고율 그 미친놈은 대체 무슨 원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라를 이다지도 망쳐놓았단 말인가. 그렇게도 짐이 싫었다면 차라리 달자들과 결탁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인데!”

북경의 파괴는 벌써 명나라의 내부를 뒤흔들어 버렸다.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던 일대의 행정력이 붕괴하였으며 유민이 속출하였다.

결국 전세를 비롯한 조세 수입의 3할이 날아가 버렸다.

전성기인 홍무제 시절에는 은자 3,500만 냥을 가볍게 넘어가고 욕심을 부리면 4,500만 냥까지 끌어올릴 수 있던 조세 수입은 이제 2,000만 냥에 불과하였다.

만력제의 내탕금은 대연군과의 일전을 벌인 병사들의 위로금으로 하사되고도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제대로 된 공사를 실시하자 삽시간에 바닥나 버렸다. 이후 조세와 임시 세금 또한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나마 증세(增稅)를 하여도 반발이 없어서 다행이기는 하였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만이 도처에 잠들어 있어서 언제나 신경이 쓰였다.

꿀 같은 휴식을 독고율에 대한 욕설로 마무리 지은 만력제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황상께 불민한 말씀을 올리겠사옵니다. 내탕금이 바닥을 드러내 앞으로 석 달 뒤인 10월부터 휴식을 취할 인부들에게 지급할 금액이 부족할 지경이옵니다.”

“벌써 내탕금이 바닥을 드러냈단 말인가. 도적들이 버리고 간 은자와 구리를 비롯한 부피가 큰 재물을 내린다면 몇 달이나 더 버티겠는가.”

“겨울동안 생활비를 탕감하는 것이 전부이옵니다. 미곡은 왜국 대군인 이달정종이 보내온다 하여도 땔감과 의복 그리고 각종 생필품을 구매하는 자금도 필요하옵니다.”

평상시라면 황제의 명이라 말하자마자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필요한 물자를 내놓았을 호족과 부호들이 자취를 감추었으니 비용이 더욱 증가하였다.

그나마 북경 보수를 위해 10년 동안 은자 600만 냥의 추가 세금을 도입하여 비용을 벌충하려 하였지만, 이마저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되어버렸고 만력제는 머리를 감싸 쥐고 돈이 나올 구석을 찾아내려 하였다.

“전세를 삼 할이나 올렸는데 이 이상 전세를 올린다면 독고율이 퍼트린 악독한 종자들이 당장 창칼을 들고 반란을 일으키겠지.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더더욱 많은 변란이 일어날 테고.”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업무를 보아 이갑제를 손봤다면 지금쯤은 모든 호적을 갱신하여 북경 보수비용 정도는 간단하게 얻어냈겠지만, 이갑제는 이백 년 전 홍무제가 갱신했을 시절로 멈춰 있었다.

만력제가 어쩔 수 없이 업무를 진행하려 하자 멀리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일종의 휠체어에 앉아 있는 태자 주상락이 들어왔다.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 대신 팔의 힘으로 억지로 무릎을 꿇어 인사를 올리려 하였다.

“아바마마께 소자 인사를 올리옵나이다. 불민하게 수레 위에 올라 있으니…….”

“수레 위에서 인사를 올려도 좋으니 그대로 앉아 있도록 하라.”

처음에는 절을 받은 만력제이지만 그럴 시간조차 아까워서 인사를 대충 하라 지시하였다.

주상락이 은혜에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깊숙이 숙이자 만력제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정무에 대해 물어보았다.

“네가 정무를 함께하여 참으로 보기가 좋구나. 진작 네 재주를 알았다면 여러 정무를 함께 하였을 것인데 손에서 벗어나 보아야 소중함을 느끼니 모든 것은 짐의 잘못이다.”

“아니옵니다! 소자가 도적들을 꾸짖어 격분케 만들려는 실책을 저지른 덕분이옵니다. 아바마마의 뜻을 알았다면 모든 백성들을 피난시킨 뒤 어마마마와 함께 움직였어야 하옵니다.”

언제나 내치고 싶어 하였던 장남을 바라본 만력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적에게 홀로 나아가 당당하게 맞선 태자를 내치려 하면 자신이 내쳐질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신하들의 불만도 풀어내고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내면 좋을 것이라 여겨 사소한 업무를 종사하게 하였고, 제법 뛰어난 모습을 보여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만력제는 오늘도 태자의 의견을 참고하려 하였다.

“네가 보기에 명국의 상황은 어떠하더냐. 여기서 어떠한 말을 하여도 짐이 모든 일을 무마해 줄 것이니 어서 의견을 내놓아보거라.”

“위소제와 이갑제가 붕괴되고 어언 이백여 년이 흘렀사옵니다. 삼십여 년 이상을 업무에 종사하여야 이를 되돌릴 수 있겠사오나 그리 하면 북경의 복구가 불가할 것이옵니다.”

어린 시절 두 제도가 붕괴하였음을 알아차리고 절망한 만력제는 도저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돌렸지만, 태자 주상락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만력제에게 청하였다.

“하오나 이갑제를 임시로 되돌릴 방편이 있사옵니다. 소자가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이갑을 구성하는 이호(里戶: 이장)는 유복한 자인지라 세금의 오 할을 납부하였습니다. 이호를 우선 갱신한다면 오 할의 세금이 되돌아오는 격입니다.”

“네가 생각이 짧은 것 같구나. 대다수의 이호는 지방 호족들과 면밀한 연관이 있는 법이니 서로를 이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뇌물을 줄 것이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은자 삼백만 냥이나 거두면 다행이겠구나.”

“한 가지 꾀를 내었사옵니다. 어사를 보내시며 이웃 마을의 군관을 파견하여 면밀히 살피게 하시옵소서. 어사가 포상을 내린다 하면 더욱 많은 사람을 찾아낼 것이옵니다.”

만력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사업 실효성을 검토하였다.

약식으로 부유한 호의 호적을 갱신하려면 대략 은자 칠백만 냥이 소모되며, 개중 이 할의 호구만 갱신하여도 매년 은자 육백만 냥의 세금을 합법적으로 거둘 수 있다.

다만 첫 예산이 문제였는데 만력제는 머리를 굴리다 좋은 꾀가 떠올랐다.

주상락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려보낸 만력제는 담배를 가득 담은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명을 내렸다.

“병부상서와 호부상서를 부르도록 하여라.”

병부상서 석성과 호부상서 진거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자 만력제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북경에서 죽어 나간 부패한 관료들과 달리 이들은 능력도 있고 돈을 탐하지도 않는 자들이었다.

만력제는 먼저 호부상서 진거에게 질문을 하였다.

“조선에서는 관세(關稅)라 하여 물품을 수입하는 관청이 적게는 일 할에서 많게는 삼 할의 세금을 거둔다 하였다. 만약 남경에서 일괄적으로 관세를 적용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어느 정도의 실효성은 있겠사오나 큰 금액은 아닐 것이옵니다. 기껏해야 일 년에 은자 이백여 만 냥의 세금이 생기는 것인데 이로서는 북경을 보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 염려하지 말도록 하여라. 올해부터 관세를 적용할 것이며 이 관세로 얻어낸 자금을 동원하여 병부상서가 이갑제의 갱신을 실시하라.”

관세를 걷어 얻은 자금을 굴려 이갑제에 기반을 둔 호적을 임시로 갱신하는 방식으로 빙빙 돌아가는 길이지만, 이미 무너져가는 명나라이기에 이런 복잡한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북경을 보수하고 호적을 완전 개편하여 명나라를 되살릴 신의 한 수라 여긴 만력제의 명을 이해한 석성과 진거는 고개를 숙이며 이에 응하였다.

다만 아직도 부패한 부호들을 다스릴 방법이 필요하기에 명령 하나를 추가로 하달하였다.

“근래에 들어 불민한 이들이 도처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조선에 명을 보내 금군(禁軍)에 소속시킬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넘치는 병사 일백여 명을 요청하도록 하라.”

간혹 관세를 회피하려는 불순한 이들이 있으면 아예 금군을 보내 엄벌에 처할 생각까지 끝낸 만력제였다.

그의 지엄한 황명은 명나라 곳곳으로 전해지기에 이르렀다.

* * *

오래간만에 지엄한 황명이 전달되자 산시성 촌구석의 벽호촌을 담당하는 관리도 이 황명을 전달받아 이행하려 하였다.

그는 군관을 소집하여 옆 마을인 양수촌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지금부터 모든 호적을 갱신할 것이니 군관들은 각 민가를 확인하고 이갑(里甲) 제도에 의거하여 이장(里長)으로 삼을 부유한 호를 선별하도록 하라!”

중앙에서 보낸 감찰어사(監察御史: 도찰원에서 감찰을 수행하는 관리)가 친히 감독하여 부유한 집을 하나 찾아낼 때마다 약간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였으니 병사들은 곳곳에 숨겨진 부유한 집을 찾으려 하였다.

이미 세 개의 집을 찾아내 호적에 올린 병사들은 산기슭에서 호적에 없는 번듯한 스무 칸(間) 기와집을 찾아냈다.

백호장이 집 앞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보고를 올렸다.

“집주인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당장 문을 두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둘까요? 모(毛) 백호장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이호에 속해야 하는 부유한 집인데. 그나저나 아예 새로운 터에 새로운 집을 지었으니 참 이상하군. 이 사람은 아예 땅에서 솟아났다는 말인가?”

새로 발견된 부유한 집은 번듯한 기와집이었는데 딸린 농토는 보잘것없었고 황무지에 가깝게 방치된 땅도 있었다.

벼락부자라 생각한 백호장 모문룡은 집의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주인 있는가? 나는 백호장 모진남(鎭南: 모문룡의 자)일세. 이 집이 가세가 빼어나고 재산이 많아 이장으로 선별되었으니 어서 문을 열고 호적을 갱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아이고! 저희 집이 뭔 문제가 있다고 이장으로 뽑히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세금이라니요?”

모문룡을 포함한 병사들이 집으로 들어가자 제법 젊어 보이는 집주인은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말하였다.

얼마 전에 이사한 벼락부자라 생각한 모문룡은 만력제가 내놓은 임시 임명장을 내밀며 말하였다.

“자네를 양수촌의 새로운 이장으로 임명하였네. 앞으로 조세를 낼 의무가 있으며 호적에 등록되어 매년 관리를 도와 업무에 종사할 의무 또한 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주변에 이장으로 분류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만 세금을 내면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말은 끝까지 듣도록 하게. 자네는 열 가구를 기령호(호적에 올라 있되 가난한 호)로 만들어줄 권한이 있다네. 이 기령호 주민들을 다스려서 소작세라도 거두면 세금을 벌충하지 않겠는가.”

조선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금이 급한 만력제는 임시방편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고 이는 최악의 실책으로 돌아왔다.

집주인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붓을 들어 호적에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을 적으면서 말하였다.

“근래에 들어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건 복일지 흉일지 알 수 없군요. 요즘 들어 제비(燕: 연)가 낮에 돌아다니지 않고 달밤에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달밤에 돌아다니는 제비라니 참 특이한 새로군. 거기 자네들! 이 동네에 밤에 돌아다니는 제비가 있기는 한가? 혹여나 박쥐를 제비라 착각하지 않았는가?”

“그럼 제가 밤눈이 어두워서 착각한 모양이군요.”

집주인의 말에 대다수의 병사가 코웃음을 쳤지만, 병사 가운데 제대로 된 갑주를 패용한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주인과 눈을 마주치고 한 눈만 깜빡거렸다.

집주인도 눈을 한참 마주치고 한 눈만 깜빡거리더니 모문룡에게 좋은 제안을 하였다.

“밤눈이 어두워진 흉 다음엔 복이 올 것 같은데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풍채가 대단하신 모 백호장께서 이 집에 방문하셨으니 오늘 저녁에 제가 후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풍류를 아는 이장을 만나서 마음이 놓이는군. 그러하면 저녁에 보도록 하지.”

저녁이 되어 돌아온 모문룡과 병사들을 집주인이 환대하였고 먼 이웃 마을까지 나와서 일하던 병사들은 술에 취해 낄낄거리며 이야깃거리를 늘어놓았다.

모깃불을 피우던 집주인은 어느새 뒤에 다가온 병사를 확인하고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제비는 밤하늘에서 달을 한입에 물었지만 아직 해를 물지 못하였네.”

“이제 제비가 해의 한 조각을 쪼아 땅으로 떨어트릴 차례라네.”

한때 대연군에 소속된 집주인과 병사는 이미 암호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독고율, 실제로는 이여송의 최후를 알고 있으며 은자 이백 냥 어치의 금품을 받은 사람들이니 충성심은 그가 죽고도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주고받은 암호는 간단했다.

제비의 한자인 연(燕)은 그들이 잠시 속해 있던 대연군의 상징이며, 명나라의 한자인 명(明)은 해(日)와 달(月)로 파자하였다.

제비가 달밤에 움직인다는 말은 이 마을에 대연에 속한 사람이 더 있다는 뜻이며 해의 한 조각이라는 말은 끌어들일 수 있는 부패한 관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모깃불을 뒤적이는 척 한 옛 대연의 병사들은 암호를 주고받았다.

“이미 나는 해의 두 조각을 찾아 한 조각을 땅으로 떨어트렸다네.”

“나도 해의 한 조각을 찾았으나 이제 열 가구를 휘어잡게 되었네. 제비를 위해.”

아직까지는 변란을 일으킬 상황이 아니었으니 두 대연의 잔당은 서로 모르는 척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거나하게 취한 모문룡이 집주인의 부축을 받아 숙소로 향하며 말하였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는데 이장이 아니고 관직에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자네처럼 잘 베푸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정말 그럴 마음이 있으십니까? 진심이신지요? 제가 부유한 친족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 은자는 제법 비축해두고 있는데 얼마나 돈을 드리면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까?”

“은자 오십 냥을 주게나. 이 모문룡이 반드시! 아주 반드시! 자네를 관직에 올리겠네.”

부패한 군관의 대명사 모문룡은 뇌물이라는 말에 집주인과 악수를 나누고 술김에 계약서까지 작성하였다.

일 년간의 약식 호구조사에서 집주인은 물론이며, 대연의 잔당들 가운데 수백여 명이 호적 조사에서 후일 지방관에 오를 것이라는 확답을 듣게 되었다.

이장으로 선발된 대연의 잔당들은 휘하에 둔 가구들을 포섭하고 비축한 자금을 전달하여 점차 지방 군벌로 발돋움하였으며, 이 변란의 흐름을 막아낼 군관들은 뇌물에 취해 이를 방임하기에 이르렀다.

몇 달 뒤 돌아온 보고를 확인하여 새로운 세금이 삼백만 냥이나 걷힐 것이라는 장계만 확인한 만력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호구조사를 절반에 조금 못 미치게 진행하였으니 잘만 하면 쓰인 돈을 삼 년 이내에 벌충하고 북경 보수자금으로 빼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만력제가 더욱 큰 절망으로 맞이하기까지 몇 년조차 남지 않았다.

#작가의 말

이후 대연의 세력은 제비 음모론의 주축으로 현대까지 음모론의 대명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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