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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42화 (542/573)

근육조선 542화

2부 30장 4화 이득을 챙기는 방법

내 예상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미주에서 전투 보고가 들어오고 넉 달이 지났을 무렵.

가장 빠른 배를 통해 스페인 사절단이 여송에 도착하고 바로 조선의 새 선박인 해추선으로 갈아타 도성으로 당도하였다.

태풍이 한창 몰려올 음력 7월에 도성에 도착했으니 이들이 얼마나 다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얼마 전 완공된 근정전을 앞에 사신들이 도열하자 주상전하께서는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인사를 올렸다.

“평상시에는 여송에 머물며 국서를 주고받았는데 아국으로 방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도대체 무슨 일로 이리도 머나먼 길을 움직인 것이오?”

“일전에 조선에서 보내신 조문에 대한 답례로 감동하신 펠리페3세 전하께서 이전 조약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이전 누에바 에스파냐의 영토 조약이 마땅치 않으셨는지 더욱 큰 양보를 행하며 양국이 재차 합의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말 속에 뼈가 담겨 있었다. 정말 순수하게 양보할 생각이라면 마땅치 않다는 말 대신 어디까지 내어주겠다고 말했겠지만 단서를 굳이 달아두었다.

한마디로 조선이 미시시피 강까지 먹어서 짜증이 나지만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어서 영토를 뱉어내서 서로 합의를 보자는 말이 아닌가.

이 정도면 내 예상범위 이내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주상전하도 나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양보하여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더욱 커지는 법이오. 그렇지 않아도 미주의 광활한 땅에 대하여 논의를 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소.”

“그리도 과감한 행보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삼중 성형요새는 물론이요 바실리스크 포를 여섯 문이나 둘 정도로 과감하다니요.”

스페인 사절단에 속한 이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신하들이 성형요새를 쌓은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아마 권력에서 소외되었다가 펠리페 3세가 무슨 실책을 저지를지 몰라 나라를 위해 뛰쳐나온 명신(名臣)이겠지.

비록 주도권은 펠리페 3세가 임명한 애송이들에게 있지만 이런 나이 많은 신하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법이다.

주상전하께는 일부러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덕분에 나라의 허리가 휘어지는 줄 알았소. 승자기를 구주에 팔아 국고를 변통하였기에 망정이지 아니 하였으면 명국에 손을 내밀어 구호를 청해야 했을지도 모를 상황이구려.”

“조선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하면 승자기를 더욱 많이 판매할 생각은 있으십니까?”

나이 많은 신하가 눈에 불을 켜며 본차이나를 찾는 젊은 신하를 노려보았지만, 권력은 젊은 신하에게 있었는지 그는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주상전하께서는 그 모습을 보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답하였다.

“한 해 일만여 개의 승자기를 판매할 예정이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그럼 영토 양보에 대해서는 우의정 유성룡과 논하도록 하시고 후일 판매할 물건을 감상하러 가면 어떻겠소?”

젊은 신하 가운데 외교 문제로 방문하지 않은 이들.

정확히는 자신의 업무를 도외시하고 사치에 몰두하는 이들은 조선의 사치품을 확인하러 떠났고, 의정부에 마련된 별실에는 스페인 사절단 가운데 그나마 생각이 있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대다수가 나이 많은 신하였는데 펠리페 3세가 내려준 명령을 반쯤 곡해하며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 하였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작성한 북미대륙 지도를 펼치며 말하였다.

“일단 조선에서 얼마나 많은 영토를 마음대로 침탈하였는지 확인하여 봅시다. 미시시피 강 유역까지 조선의 영향권이며 산 하산토 강(San Jacinto River)과 일대 습지는 아예 요새를 구축해 뒀더구려.”

“불행하게도 콜로라도 산맥을 넘어 첫 유역을 찾아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소.”

“저희 탐험대가 예전에 확인하기로는 조선에서 후성이라 칭한 고장부터 콜로라도 산맥까지 강이 여섯 개는 있었습니다만 그 강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겨울이 되면 말라붙고 여름에만 그럭저럭 천(川)이라 칭하면 유역이라 볼 수 없잖소. 아국에서 제대로 된 강(江)과 유역이라 칭하려면 한강 정도는 되어야 하는 법이오.”

내가 생각한 변명거리는 조선의 수도에 흐르는 강인 한강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 봤지만 내가 직접 본 강 가운데 여름철의 한강보다 거대한 강은 중국의 장강 단 하나가 전부이다.

이런 거대한 강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미주대하라 칭한 미시시피 강쯤 되어야 유역이라 칭할 수 있으리라.

도성으로 올라오며 물이 불어난 한강을 목격한 사절단은 딱히 반박도 할 수 없어서 분노를 억누르며 답하였다.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강을 유역의 기준으로 삼기로 하셨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양보할 조선의 새 영토는 샌 하산토 강 서쪽이 어떻습니까? 비록 유역이지만 성형요새가 있으니 방비에는 문제가 없겠지요.”

“샌 하산토 강이라 칭한 강 서쪽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영토로 양보하겠다는 뜻이오?”

“그 북쪽에는 미주리 강이라 부르는 강이 있습니다. 경계를 미주리 강의 본류(本流)와 샌 하산토 강으로 삼을 것이며 이 경계가 저희가 양보할 수 있는 한계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주리 강 유역의 절반만 사용하는 꼴이 아니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려.”

내 말이 시작되자 더 이상 욕심을 부렸다가는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노신들의 의지가 표정으로 드러나서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은 비록 리스본에서 하릴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다.

정 펠리페 3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유럽 전체에 양보가 아닌 조선이 스페인 영토를 침탈하였다고 선포하고 전쟁이 시작되리라.

내가 말을 정리하여 명문화하자 다음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람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항이 있으니 원주민에게 화약병기를 비롯한 무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저런 훌륭한 소리도 나오는군. 당시에는 제철기술이라 불릴 능력도 없는 미주인들에게 화약병기를 줘서 조선의 영향권에서 귀속시키려는 방법을 택했었다.

화약 제조법은 몰라도 보총을 만들 수준의 제철기술은 쉽사리 발달되지 않으니까. 편리하고 강력한 화약병기 맛을 본 미주인들이 알아서 조선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었지.

상대는 내 답이 없자 분노를 억누르며 말하였다.

“이미 탐험대 가운데 화승총을 사용하는 원주민에게 피해를 입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분별하게 화약병기를 뿌려댄 조선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아국은 아국의 말을 배우고 풍습을 배우는 이들을 아국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외교의 전제요. 당연히 복속을 표시하는 이들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조선의 정책에 대해서는 저희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탐험대를 무참히 죽이는 일이 자주 있으니 이를 어찌하실 겁니까?”

나름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미주인들이 먼저 공격한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데 애초에 미주인들에게 산탄총을 나눠주면서 자기 호신을 위한 용도로 쓰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상대가 먼저 무기를 겨누어 위협하거나 명백히 적의를 보일 때에만 공격하라 했지.

물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고 복수심에 물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스페인의 주장도 아예 틀리지는 않다.

진정한 외교는 서로의 분쟁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며 이미 이득을 챙길 수단을 마련해 두었다.

일부러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 척 한참 동안 이마를 매만지다 말하였다.

“아국의 영향을 받은 미주인들을 모두 이주시키겠소. 아국에서 미주대하라 칭하고 당신들이 미시시피라 칭하는 강까지 아국의 영향을 받은 미주인들이 살고 있으니 모두가 대상이오.”

“그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스페인의 본토와 비교하여도 열 배 가까운 거대한 땅에 거주하는 이들을 어찌 먹여 살릴 작정이십니까?”

“최소 이백만 명이 넘는 미주인이 살고 있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노력할 거요. 아국도 개척민을 보내 가까스로 식량을 산출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서로의 분쟁은 피하는 법이 아니오.”

스페인은 조선 영토의 작황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어마어마한 결단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리 문제 될 게 없고 오히려 이득이다.

내 후임인 미주관찰사 이산보가 보고하길 내가 찾아낸 흑토지대, 조선 기준으로 특등(特等) 농토라 따로 분류된 땅은 조선 팔도를 세 번 겹치고 남을 수준으로 분포되어 있다 했다.

농사 초보자조차 풍년을 넘어 부산물로 돼지와 닭을 비롯한 가축을 기를 수 있는 땅이니 사람을 받는 대로 이득이 아닌가.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스페인 사절단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오히려 난색을 표하며 말하였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사람이 비어버린 땅을 얻는 꼴이 아닙니까. 그 거대한 땅에 아무런 사람도 살지 않는다면 정보를 얻을 수 없으며 각종 광산의 위치도 찾아낼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알기로 서반아를 비롯한 구주의 각국은 미주인들을 내쫓고 땅을 차지한다 하였는데.”

“그런 일은 성정인 난폭한 이들을 매로 다스렸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조선이 가져가면 이득을 챙기기까지 시일이 너무 많이 걸리니 어느 정도 선별하여 데려가 주십시오.”

안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저게 뭔 소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비웃음이 나오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썼다.

쉽게 말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미주인 노예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땅을 멋대로 차지하고 비위생적인 저들의 몸뚱이에서 전염병이 퍼져 나가면 운이 좋은 몇몇 부족만 살아남게 된다. 여기서 총칼로 위협해 노예로 삼고 개척하는 것이 저들의 방식이다.

처음에는 별문제 없이 넘어가 주려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유럽 탐험대를 위한 선물을 하나 남겨두기로 하고 이에 대해서도 단서조항을 달아 넘어갔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구려. 아무리 아국이 양보받은 강역이 넓다 하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많으면 기근이 생기는 법이오. 미주인들의 의사를 물어 그 땅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가급적 남겨두기로 하겠소.”

“그에 대한 명문화(明文化)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국의 권유를 받아 이주한 미주인들의 영토 끝자락에 아국의 글과 서반아의 글로 이주하였음을 뜻하는 비석 여러 개를 남겨 비어 있는 땅임을 천명하겠소. 다만 문제시될 사항이 있는데…….”

문제라는 말을 하자 상대방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나를 쳐다봤는데 오히려 그런 표정을 보자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였다.

“화약과 장총통을 받은 미주인들 가운데 성정이 난폭하거나 덕이 없는 이들은 아국의 결정에 반발하여 마음대로 날뛸 것이 분명하오. 이들의 제압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 가능하리라 믿겠소이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머스킷에 준하는 화기를 사용하여도 원주민에 불과하니 많은 병력으로 몰이사냥을 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지요.”

몰이사냥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사냥 대상은 당분간 미주인들이 아닌 스페인 개척자들이다. 조선에서 충분한 무훈(武勳)을 쌓은 고란이 미주인들의 대전사로 임명되었다.

고란은 장수가 되었음에도 특기가 숲속의 백병전이며 그가 이끄는 별동대는 다테 마사무네가 일본을 차지하는 와중에 수십 번을 싸워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고란이 인솔한다면 스페인의 최정예 테르시오라면 몰라도 어중간한 식민지 주둔군은 천부적인 그의 백병전과 지리를 파악한 미주인들에게 휩쓸려 삽시간에 도륙당하리라.

최종 검수하여 제출한 국서에 옥새를 찍은 주상전하께서는 한 건을 넘기셨다는 듯이 옥좌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토를 양보한 스페인을 위해 여러 사항을 양보해야 양국의 균형이 맞는 법이었고 주상전하께서는 처음 양보할 대상을 정하셨다.

“서반아가 아국과 여러 일을 함께하였는데 양평군이 저술한 동의보감이 개중 하나이다. 인쇄한 동의보감 스무 질(帙)을 선물하며 조만간 번역을 마친 동의보감을 일백 질 인쇄하여 보내도록 하여라.”

동의보감은 엄밀히 말하면 동양과 서양의 처방이 결합된 의서이자 현시점에서 최고의 의서이다.

여기에 들어 있는 정보에는 천연두 예방 및 치료법과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말 그대로 조선이 쌓아놓은 지식을 넘겨주는 격이라 조금 못마땅하긴 한데 오히려 허준이 반색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말하였다.

“하오나 동의보감은 아국의 의원 가운데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이들만이 내릴 수 있는 처방을 포함하고 있사옵니다. 서반아에 동의보감을 보내어도 탕약(湯藥)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오로지 약재에 관한 사전에 불과하옵니다.”

“아국이 동의보감을 감추고 있어도 수십 년 이내에 퍼져 나갈 저서이니 차라리 선물로 주는 것이 차라리 나은 형편이 아니겠더냐. 또한 탕약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오로지 약재에 매달리는 법이다. 후일 서반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주상전하께서 품으신 깊으신 뜻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사옵니다. 아직 아국에서만 사용하는 금계랍(金鷄蠟: 키니네)의 효능이 구주 만방에 퍼지게 될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미 금계랍의 효능이 확인되고 십오 년이 넘게 지나 여송 일대의 산림에는 금계랍을 기르는 이가 넘쳐나고 솔로몬국의 사람들도 금계랍을 복용하여 학질을 이겨내고 있다. 이제는 구주에 금계랍을 팔 때도 되었구나.”

말라리아 치료제인 금계랍, 현대의 키니네는 두통, 시력약화, 부정맥, 그리고 간 손상 등의 부작용이 산재하는 약이지만 말라리아를 억제하는 효과 하나만으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유럽의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원산이라 정말 사람이 죽어 나가는 병이다. 아주 먼 훗날이 되면 유럽세력도 식민지에서 키니네를 만들어내겠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 그때쯤 되면 새로운 상품이 팔리겠지.

주상전하께서는 친히 동의보감을 건네주며 나에게 말하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처방 가운데 하나인 영창(우두)의 전파는 우상(右相)이 담당하는 것이 나아 보이는구나. 서반아 사절단이 돌아가기 전 영창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도록 하여라.”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두의 효과를 확인한 사람은 허준이지만 이를 가장 널리 퍼트린 사람은 나였다.

한창 돌아갈 준비를 하던 스페인 사절단을 방문해 우두에 대해 알려주려 하였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시어 서반아의 검객 제로니모와 함께 집필한 동의보감을 전해주기로 하였소이다. 개중에 가장 중요한 처방이 있으니 두창을 막아내는 처방이오.”

“두창이면 저희 말로는 비루에나(viruela: 천연두)군요. 그 끔찍한 질병을 막아내는 방법이 조선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조선의 군주께서 정녕 이 방법을 퍼트리라 하셨습니까?”

“나는 주상전하의 명을 따르는 신하이기에 이 자리에 왔소이다. 제법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니 꼭 들으시오. 후일 의서를 통해 전해지겠지만 이를 널리 퍼트리려면 설명이 필요하오.”

순간 미래를 아는 빙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종두법을 유럽에 퍼트려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역사는 얼마나 틀어질까. 혹시나 새로운 위인이 나타나 유럽을 통일시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명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우두 접종법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기로 하였다.

모든 백성에 대한 우두 시술, 조선에서는 영창법이라 칭해진 시술이 계속되기에 모든 재료를 갖추고 설명을 시작하였다.

“두창을 막아내는 방법은 영길리에서 전해진 영창이라는 병에 먼저 걸리는 방법이오. 영창이라는 병은 체질상 아주 약한 이들을 제외하면 지금처럼 손발에 약간의 부스럼만 생기지.”

“부스럼이야 사람 몸 어디에나 생기지 않습니까? 저희가 보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만?”

내가 데려온 사람은 막 접종받은 농부인데 손발에 우두 부스럼이 몇 개 올라오기는 했다.

이 시대에는 항생제가 없고 현대수준의 위생개념도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위생적인 조선 사람들도 손발에 부스럼 몇 개 정도는 피어나는 시대이다.

스페인 사절단에 소속된 의사가 농부의 몸을 한참 동안 돌아보고 만져보며 열이 나는지의 유무도 확인해 보았지만 지극히 정상이라 말하였다.

상대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마다 영창의 증세가 차이를 보이는 법이오. 일단 이 영창에 걸리게 되면 두창에 걸리지 않게 되며 설령 두창에 걸려도 증세가 심하지 않다면 영창 고름을 넣어 치유할 수 있소.”

“그게 말이나 됩니까? 병 같지도 않은 병에 걸린다고 그 끔찍한 질병을 막아낼 수 있다면 세상 어디에 병이 퍼지겠습니까?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나온 비루에나?”

“잉글랜드에도 비루에나, 그들의 말로는 스몰폭스(smallpox)가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럼 왜 잉글랜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까?”

스페인 사절단은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

조선이야 호주 일대에 우두가 퍼졌고 하필 증세가 지독하게 발현되는 호주 원주민과 몽골 탐험대가 첫 감염 대상이 되어 우두가 질병임을 인식하였다.

첫 감염 대상이 조선 사람이라면 퍼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첫 환자는 의원이 부스럼을 째서 주정으로 소독한 다음 손이나 씻고 다니라고 타박을 줬을 수준이다.

일단 알려는 줘야 하니 서적에 적힌 정보를 모조리 알려주었다.

“아국이 발견한 방식을 말할 뿐이오. 일단 이 영창이라는 질병은 증세가 지극히 양호하며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병이 퍼지더군. 소와 돼지는 물론이며 고양이와 호랑이까지 각 짐승에게 병이 퍼지니 이를 짐승을 통해 옮기다가…….”

“이젠 잉글랜드 병도 아니고 짐승의 병을 몸에 담는다 하셨습니까? 병에 관한 처방 가운데 미신에 비롯된 처방이 있는데 그런 처방이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시지요.”

“나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했을 뿐이오. 일단 두창이 퍼지면 아국에서 전해준 영창 고름을 접종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영창을 널리 퍼트려 주시구려.”

유리병에 넣어둔 우두 고름을 건네받은 스페인 사절단은 똥을 씹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에드워드 제너가 최초의 종두법을 퍼트렸을 당시의 반응이다.

당시 시기가 1800년에 근접하여 철학과 이성 그리고 과학적 논증법이 유럽에 퍼져간 시기인데 사람이 소로 변해서 여물을 뜯어 먹는 그림으로 인신공격을 해댔지.

아직 미신이 팽배하고 종교적 광신에 얽매여 있는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미친 짓이 따로 없으리라.

내 호의를 무시한 사절단이 스페인으로 돌아가자 저절로 한심한 마음이 들어 주상전하께 질문을 하였다.

“주상전하께서는 서반아인들이 영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어찌 예측하셨나이까. 신이 상세히 이를 알려줬음에도 미신이라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나이다.”

“이미 명국에 두창을 몰아내는 영창을 알려주었는데 근래에 들어 열심히 업무에 종사하시는 황상께서도 이를 천히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시더구나. 아국이야 인과(因果)를 파악하니 이를 받아들였지만 저들은 백여 년은 걸려서 받아들일 것 같다.”

주상전하께서 백 년을 예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백 년이다. 천연두가 전 유럽을 강타해 사람을 떼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는 한 저들의 생각이 변할 이유는 없으리라.

내가 계획한 대로 조선의 영토는 휴스턴을 포함한 강 서쪽으로 정해졌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미주인이 건너올 예정인 미주가 얼마나 발전할지는 이제 후손들에게 맡겨야 하리라.

#작가의 말

제너가 창안한 종두법이 퍼지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으며 그마저도 종두법을 무료로 소개한 제너 덕분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조선은 검증 대상으로 일본의 천연두 확산을 꺾은 사례를 들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수십 년이 걸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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