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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40화 (540/573)

근육조선 540화

2부 30장 2화 호부견자(2)

수풀 사이에서 발사된 장총통을 두들겨 맞은 스페인 탐험대는 순식간에 사지가 꺾이고 두개골이 분쇄되었다.

정상적인 군대를 상대로 했다면 바로 발각될 기습이었지만 상대는 세바스티안을 제외하고 대부분 경험이 일천한 이들이었다.

“삼계의 스물여덟 하늘의 뜻을 담은 탄환이다. 이십팔천을 거쳐 속세를 떠나거라!”

“나는 해탈의 의미를 담아 서른세 발의 탄환을 넣었다!”

조선은 거대한 목탑을 활용해 산탄을 대량생산하여서 하나하나의 크기가 작아 거의 일백 발의 산탄을 발사하였지만, 미주는 그런 목탑이 없어서 오로지 손으로만 산탄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크기가 커졌다.

직경이 1.5배나 거대한 산탄이기에 살가죽을 찢고 근육을 도려내는 조선의 산탄과 달리 미주인들의 산탄은 뼈를 부수고 내장을 헤집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첫 기습 이후 사방의 숲에서 총성이 울리며 대원들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대장님! 원주민들이 총을 쏩니다! 이 미친 새끼들 좀 죽어!”

“총을 좀 조준해서 쏘란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총을 난사하였기에 미주인 전사 대다수는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고 후방으로 도주하여 장총통을 장전하였다.

반면 대열 앞의 세바스티안은 총성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총을 쏠 줄도 모르며 총 소리만 들으면 도망치는 게 상식이었다.

원주민들이 화약병기를 사용할거라 생각하지도 못 한 세바스티안은 주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오인사격이다! 이 머저리 새끼들아 우리는 원주민이 아니란 말! 죽어!”

많은 경험을 쌓은 세바스티안의 본능이 이성보다 빠르게 반응하였다.

섬뜩한 기분이 들며 머리카락이 곤두서자 그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수풀을 향해 머스킷을 쏘았다.

그의 본능이 틀리지 않았는지 비명이 들려왔다.

“총 맞았다! 총 맞았다고!”

“어서 후방으로 데려가! 주정으로 소독하고 의원에게 보내는 것 잊지 말고!”

이미 장전을 끝낸 장총통으로 대장인 세바스티안의 머리를 노리던 미주인 전사의 허벅지에 머스킷 탄환이 박혀 바닥을 굴렀고, 다른 전사는 동료를 부축해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미개한(스페인 기준으로) 원주민들이 화약병기를 사용하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세바스티안의 뇌가 굳어버렸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머스킷을 청소하고 장전하였다.

장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린 세바스티안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놈들은 보통 원주민이 아니다! 머스킷보다 조금 작은 화기를 쏜단 말이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원주민들이 어떻게 총을 쏩니까?”

“후방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대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들 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뭉치도록! 죽기 싫으면 대열을 유지한 채 사격하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산개를 해서 각자 전투를 치르는 것이 답이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하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산개하라는 명령을 내린 즉시 사방으로 도주하다 사냥당하리라.

서로가 서로의 등을 보호하며 굳건히 진형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라 여긴 세바스티안이지만 그 선택은 아예 틀려먹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오른쪽의 수풀에서 수십 자루의 장총통이 튀어나와 불을 뿜었다.

“엎드려! 엎드리라고 이 머저리 새끼들아!”

세바스티안은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나무에 아로새겨진 탄흔(彈痕)을 보고 질겁하였지만 그는 엄연한 군인이었다.

바닥에 엎드리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세워둔 머스킷을 조준한 세바스티안은 호기롭게 명령을 내렸다.

“일제 사격 개시!”

단 두 발의 총성이 울리고 미주인 전사 한 명이 배가 꿰뚫려 바닥으로 자빠졌다.

살아남은 열여덟 명의 부하 중 단 한 명만 총을 쏘았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들은 바닥으로 엎드리며 총을 내팽개쳐서 장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사이 천천히 진격하는 미주인 전사들은 더 이상 숨을 필요도 없다 여겼다.

태연하게 총열을 닦아내고 화약포를 찢어 화약과 산탄을 넣어 막대기로 다져 장전하기 시작했다.

땀 한 줄기가 세바스티안의 눈에 들어갔지만 그는 정해진 죽음 앞에서 맹렬히 머리를 굴려댔다.

이윽고 자신의 등 뒤에서 울리는 총성을 알아차린 세바스티안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전원 후방으로 퇴각하라! 서둘러 퇴각하여 아군과 합류한다!”

“사방이 에워싸였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몇 번 들어보니 알겠다. 원주민들이 쏘는 총은 산탄이라 바람 소리가 더 많이 섞인단 말이다! 후방의 소대는 우리와 달리 제대로 된 교전을 벌이고 있으니 어서 뛰어!”

조금이라도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뭉쳐서 싸우는 수 외에는 없었다.

세바스티안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숲속으로 도주한 상대를 바라보던 미주인 전사는 장전하던 장총통을 거꾸로 잡고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도주한다! 추격해서 장총통으로 때려눕혀라!”

“사냥의 시간이다! 놈들을 죄다 생포해서 전리품으로 삼자!”

장총통의 무게는 아무리 총열을 짧게 잘라내도 조선 기준으로 4근, 거의 2.6㎏에 달하는 데다 거꾸로 잡으면 무게중심이 어긋나기에 평범한 사람은 한 손의 힘으로 휘두를 수 없는 지나치게 무거운 둔기였다.

그러나 미주인 전사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족에서 대우를 받던 젊은 전사들이 사명대사를 시작으로 각종 입신체비사들에게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신체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이들이었다.

이윽고 대열의 후방에서 화약병기를 사용한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이 미친 새끼들! 한 손으로 저걸 든다고! 내가 이래 봬도! 아악!”

“동방의 여행자건 뭐건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머리통을 박살 내주마!”

아르케부스를 들고 수풀을 돌파하느라 뒤처진 탐험대 한 명이 미주인 전사와 근접전을 벌였다.

병사는 긴 목봉(木棒)을 다루듯 아르케부스를 휘둘렀고 미주인 전사는 도끼를 다루듯 장총통을 한 손으로 휘둘렀다.

오추세로 건너오기 이전 스태프(staff)로 사람을 여럿 두들겨 패본 경험이 있는 스페인 탐험대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였다.

아직 총검술(銃劍術)이 확립되기 이전 시대이지만 무술은 세상 어디에나 퍼져 있었다.

스태프의 사용법을 다시금 숙지하며 그는 아르케부스를 양손으로 잡고 허리에 힘을 바짝 주었다.

상대가 휘두르는 장총통을 받아내고 걷어차 제압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엄청난 힘에 허리가 뒤로 넘어가며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으악 이게 뭔데!”

입신체비로 단련된 미주인 전사가 전력으로 휘두른 장총통은 아르케부스의 총열을 찌그러트리고 여력이 남아 그를 바닥에 자빠트렸다.

미주인 전사는 아르케부스를 빼앗아 던지더니 멱살을 잡고 그를 바닥으로 메다꽂아 버렸다.

“제압에는 질식투가 답이다!”

“께흑!”

호신 용도로 내수린을 비롯한 무술도 배운 미주인 전사들을 상대하려면 제대로 된 군인 외에는 답이 없었다.

뒤처진 탐험대가 육박전을 시작하고 삽시간에 제압당하자 세바스티안은 남은 병사들을 규합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전원 다시 장전하라! 먼저 오는 놈들을 쏘아 죽이고 다시 탈출한다!”

숲속의 공터에서 12명밖에 남지 않은 병사들이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머스킷과 아르케부스에 화약을 넣고 탄환을 장전하였다.

간혹 원주민들의 기습에 당해도 이들은 제대로 된 전략전술을 모르기에 적은 수로 달려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에 스페인의 노련한 탐험대는 도주와 사격을 반복하며 적의 전력을 갉아먹었다. 그러나 세바스티안의 예상과 달리 미주인 전사들은 다시 대열을 갖춘 채 천천히 진격하였다.

주변 수풀이 모두 움직이는 모습을 본 세바스티안은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렸다.

“다시 퇴각해라! 이놈들은 어설프기는 하지만 군대다! 대체 어떤 놈이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거야! 이놈들을 상대하려면 오추세에 있는 테르시오가 필요한 수준이 아닌가!”

“테르시오라니요? 오추세에 테르시오가 있기는 합니까?”

“사람 모아서 대열 만들면 테르시오지! 어중간한 대형이지만 최소한 그런 수준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다고! 거기 마누엘! 자네 괜찮은가?”

다른 테르시오 출신 장교인 마누엘이 이끄는 소대는 운이 좋은 데다 주변에서 울리는 총성을 듣고 바짝 경계한 덕분에 기습을 피할 수 있었다.

다급히 달려온 세바스티안을 맞이한 마누엘은 그를 대열에 합류시키며 말하였다.

“대위님이 먼저 기습을 당하셨군요. 주변에서 총성이 마구 울리기에 경계했는데 놈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놈들이 물러났지만…….”

“물러났다 생각하지 말게! 놈들은 제대로 된 군대야! 어떤 놈들에게 배웠는지 모르지만 아주 제대로 훈련받은 흔적이 보인다고! 당장 다른 소대와 합류해서 뭉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숲에서 죽어 나갔을지 모르지만 합류하여 싸운다면 적을 몰아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숲속에서 유리한 산탄을 사용하지만 대열을 갖춘다면 산탄은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었다.

열 개로 분열한 소대가 서로 총을 쏘아대며 위치를 확인하고 반나절 만에 합류하였다.

처음에는 조선 탐험대와 교류를 하거나 원주민을 사냥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탐험대 대다수는 불안에 떨고 있었으며 싸울 수 있는 사람은 150여 명에 불과하였다.

보고를 들으니 미주인 전사 가운데 20여 명만 죽였다는 참담하고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세바스티안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하달한 명령은 부상병의 이송이었다.

“서른 명은 당장 부상병을 데리고 퇴각하라. 미시시피 강 하구에는 아직 보급을 위한 선박이 남아 있을 것이니 서둘러야 한다.”

“퇴각하다 놈들에게 사로잡힐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놈들이 제대로 훈련을 받은 군인이라면 쓸데없는 힘을 빼지는 않을 게 분명하니 염려하지 말도록! 부상이 심각해질지 모르니 어서 움직여!”

더 이상 원주민은 사냥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습의 묘미를 살릴 줄 아는 제대로 된 군인이자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적이라 여긴 세바스티안은 철저히 장교의 입장에서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번 교전으로 적 스무 명을 죽였지만 아군 가운데 백오십 명이 당했다. 이 복수를 지금 하지 않으면 뭘 하겠는가! 다들 대열을 이루어 진격하라! 놈들의 무기는 숲속에서만 위력적일 뿐 대열을 갖추고 싸우면 위협적이지 않다!”

제법 잘 싸웠지만 무기가 문제였다.

산탄총의 사거리는 기껏해야 30m에 불과하며 머스킷은 그 세 배에 달하는 100m이니, 밀집대형으로 교전을 벌이면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리라.

상대가 백병전을 벌여도 좋았다. 벌판이라면 장창을 쓸 수 있으니 돌격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계산한 세바스티안이었다.

숲 남쪽에 고스란히 노출된 벌판으로 향한 세바스티안은 천리경으로 사방을 확인하며 천천히 진군하였다.

* * *

세바스티안이 한창 진격을 실시할 무렵. 머나먼 서쪽에 있는 미주인 부락에는 부상병들의 치료가 한창이었다.

조선에서 배운 대로 탄환을 칼로 째서 뽑아내고 주정을 부어 상처를 닦아내었지만 전사들의 표정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한 전사는 팔뚝에 아르케부스를 맞아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선인 의원에게 의술을 배운 제사추장은 이 전사의 팔뚝을 주정으로 닦아내더니 다짜고짜 칼로 총상을 입은 자리를 잘라내 탄환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으아아악! 이거 더럽게 아프군요! 두 놈 정도 쏘아죽이고 한 놈과 싸우다가 탄환을 맞았는데 퇴각하지 말고 싸울 걸 그랬습니다.”

“이상한 소리는 하지도 말게나. 조선에서 건너온 의원이 말하기를 납이 박히면 살 속으로 파고들어 주변 근육을 모조리 곪게 만든다 하였네. 그럼 자네 팔뚝은 어떻게 되겠나?”

“이두박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 어서 뽑아주십…… 아흐으으윽!”

검사이자 뛰어난 외과의사인 제로니모와 함께 집필한 동의보감은 창상(創傷)을 비롯한 외과 의술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새 상처의 소독과 봉합까지 마친 제사추장이 다음 환자에게 다가갈 무렵 보고가 들어왔다.

“전투추장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동방의 여행자 놈들이 남쪽 벌판에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진군하고 있습니다. 대열 중간에 창이 잔뜩 보이는데 놈들이 바짝 약이 오른 것 같습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못하겠군. 장총통에 산탄 대신 제대로 된 탄환을 넣어도 멀리 쏠 수 없는 법이야. 우리 민방위(民防衛)가 사백 명에 달한다지만 이겨도 피해가 클 걸세.”

“그럼 퇴각해야 할까요?”

“퇴각은 무슨. 얼마 전에 조선에서 받아온 물건들은 잊었나? 놈들이 탐험이랍시고 약탈과 살육을 하러 왔으니 이런 늠름한 화포를 챙겨올 수 없겠지. 놈들이 입신체비를 익히거나 소를 잔뜩 끌고 왔으면 모르겠군.”

민방위를 제대로 된 군대라 평가하던 세바스티안이었지만 원주민들이 화포를 사용하리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조선에서 받아온 다섯 문의 황자총통(본래 역사의 현자총통)을 쓰다듬은 전투추장은 명령을 내렸다.

“화포로 쏘아 혼비백산하게 하고 사방에서 달려들면 충분히 이기겠지. 포로가 잔뜩 생길 테니 사람 가둬둘 장소나 마련해. 그리고 냄새 올라오니 부상 적은 포로들은 어서 씻기고!”

“으아아악! 원주민 놈들이 우리를 물로 고문하려 한다! 주님 우리를 구해주시옵소서!”

저 멀리 탐험대에서 잡혀 온 포로들이 아우성을 치며 미주인에게 끌려가 강제로 몸을 씻자 시커먼 땟물과 거품이 냇물을 더럽혔다.

냇물을 바라본 전투추장은 비위생적인 몰골에 치를 떨며 전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화포를 끌고 놈들을 맞이하여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모든 전사들은 민방위의 이름 아래에 집결하여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전투추장님의 말씀 들었나! 놈들과 마지막 일전이라 하였다! 동방의 여행자들을 본래의 땅으로 돌려보내라! 말을 듣지 않는 놈들은 탄압하라!”

장총통을 착용하고 조선에서 지급한 소와 말로 화포를 끌고 유리한 위치를 점한 미주인 전사들이 적을 기다리기를 삼 일.

마침내 저 멀리 벌판에서 세바스티안이 이끄는 탐험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상대는 화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전사들을 발견한 순간, 최대한도의 밀집 진영을 펼치며 천천히 진군하였다.

전투추장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놈들이 쏘아대는 보총의 사거리는 조선 기준으로 최대 일백여 보(180m)에 달한다! 처음에는 포위하였다가 점차 물러나며 화포의 사거리까지 유인하도록!”

명백한 유인이었지만 아직도 오만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세바스티안은 약간의 의구심만 품은 채 천천히 진격하였다.

천리경으로 주변을 확인했지만 적은 자신들의 대열을 보고 주눅이 들어 서서히 후퇴하는 것이 분명하다 여겼다.

그는 주변을 다시 살피고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어디까지 후퇴할지는 모르지만 기습을 택하지도 않고 벌판으로 나온 순간 우리가 이긴 것과 마찬가지이다! 꾸준히 진격하여 놈들이 돌진하기를 기다려라!”

진격은 쉽지만 후퇴는 어려운 법이었다.

제법 대열을 갖춘 미주인 전사의 대열이 흐트러지며 얇아지는 모습을 확인하자 세바스티안을 비롯한 장교들은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세바스티안 대위님, 저놈들 가만히 보니까 기습만 잘할 줄 아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열이 얇아지는 모습이 포위하는 형태를 갖추었는데 얇은 포위망을 갖추어봤자 뭘 합니까?”

“혹시나 일제 돌격할지도 모르지. 머스킷과 아르케부스로 두들겨 맞고 산탄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창으로 돌격했다가 죄다 꿰어서 죽어 나가게 마련…….”

세바스티안의 말은 요란한 포성과 함께 끊어졌다.

저 멀리 있는 언덕에서 포연이 치솟아 오르며 소리보다 느리게 발사된 현자총통의 소구경 탄환이 대열 주변에 흙먼지를 피웠다.

“놈들이 포를 쏩니다! 구경을 보아하니 셰이커에 준하는 화포입니다!”

“병사들이 질겁하고 있습니다! 타격은 크지 않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놈들이다 보니 도망치려는 놈들이 생겨납니다!”

세바스티안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구경이 작은 현자총통이라 위력은 부족하지만 그 말은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도 계속 쏠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정확도가 부족하니 피해는 적었지만 일방적인 포격은 사기를 바닥으로 떨궈 버렸다.

어느새 대열에서 탈주자가 생겨났고 세바스티안은 누군가 버리고 간 아르케부스를 바라보다 허탈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전원 퇴각한다! 미시시피 강 하구에서 만나서 오추세까지 반드시 살아 돌아가도록!”

얼마나 많은 인원이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퇴각할 이유가 없었다.

설령 살아 돌아간다 하여도 자신은 테르시오가 아닌 원주민에게 패배한 머저리로 대대손손 조리돌림을 당하리라.

그런 생각은 테르시오 출신 장교들 대다수가 품고 있었다. 모두 총을 내려놓고 허리춤에 패용한 칼을 높게 치켜들었다.

서로 시선을 교차한 세바스티안과 장교들은 괴성을 지르며 돌격을 감행하였고 장총통의 산탄에 맞아 벌판에서 숨을 거두었다.

“살아서 불명예를 얻느니 죽어서 명예를 얻기를 원했는가. 참으로 대범한 이들이로군.”

배에 장총통을 맞아 눈을 부릅뜬 채 즉사한 세바스티안의 시신을 확인한 전투추장은 이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해답을 찾았다.

듣자 하니 이들 대다수가 천주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으니 세스페데스라는 사람에게 보내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며칠 뒤, 후성 주교구의 본당인 만천서원에 위치한 후성대성당에서는 사망자를 위한 장례미사가 거행되었다.

세스페데스는 70여 개나 되는 관에 일일이 기도를 올리고 이들을 임시로 매장하였다.

이번 전투는 미주인 전사가 집결한 민방위의 첫 전투이자 화약병기를 사용한 원주민의 첫 전투. 그리고 일방적인 원주민의 승리라는 역사적 의미가 담긴 전투였다.

이 소식이 조선과 스페인에 닿은 시기는 1589년 2월 무렵이었다.

#작가의 말

이번 전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주 민방위 : 총원 450명, 사망자 23명, 부상자 41여 명, 포로 없음.

스페인 탐험대 : 총원 300명, 사망자 95명, 부상자 67명, 포로 4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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