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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38화 (538/573)

근육조선 538화

2부 29장 10화 잠깐의 휴식

비구름이 막 지나간 쾌청한 하늘 아래에 주상전하 천세라는 함성이 주변을 메웠다.

근정전에 벼락이 쳐 건물의 일부를 파손시킨 이후 쌓여가던 백성들의 불만이 일소된 것이다.

“백성들이 저리도 환히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근정전이 파손된 이후 천둥이 울릴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고 움찔거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게 되었다.”

“주상전하께서는 부디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아무리 벼락을 흩어냈다 하여도 굉음이 울렸사오니 혹여나 환후가 생길지 심히 염려될 지경이옵니다.”

“지나친 굉음이 울려 이명(耳鳴)이 생겼지만 차츰 잦아들고 있으니 영상은 염려하지 말라. 산 아래에 머무르고 있는 백성들을 만나보고 싶으니 길을 비키도록 하여라.”

대소신료들 모두 주상전하의 뒤에 도열하여 함께 움직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최소한 이천여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온몸이 비에 쫄딱 젖은 채 주상전하에게 절을 올렸다.

주상전하께서는 이를 보고 흡족히 웃으시더니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법이니 고개를 들도록 하여라. 과인이 재액을 막아낼 방안이라 하여 천제사를 올렸는데 열성조(列聖朝)께서 과인을 보호하시며 재액을 막아낼 방안을 마련하였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과인이라 하시니 저희들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부디 말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사극에서는 매번 과인(寡人)이라 말하는데 이게 덕이 적은 사람이라는 자책의 의미를 담은 말이다.

임금이 엄연히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과인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법이지. 아마 백성들을 놀라게 하여 미안하다는 의미이리라.

원구단은 언덕 위에 있으니 언덕 아래 있는 백성들이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장소였고 실시간으로 벼락이 내리꽂히는 광경을 보았으리라.

주상전하께서 나를 슬쩍 째려보시더니 함께 나온 어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만히 보아하니 경증(驚症: 놀란 증상)을 일으킨 백성들이 여럿 보이는구나. 아직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이들을 어서 따로 옮겨 침을 놓아 숨을 틔우도록 하여라.”

신료들이나 군관들이야 정신이 강해 버텼지만, 하늘과 같은 주상전하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친 광경을 목격한 백성들 가운데는 진짜 혼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잠시 이야기가 끝나자 백성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주상전하께 하늘의 재앙이 닿지 않은 비결이 궁금하옵니다. 정녕 열성조께서 주상전하를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방책이 있을 것이옵니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소인의 벗이 벌판에서 쟁기질을 하다 벼락에 맞아 명을 달리하였사오니 이런 방책이 무엇인지 여쭈어보고 싶을 뿐이옵니다.”

“나는 여러 방책을 모색하라 말하였을 뿐이니 이번 일을 설명할 사람은 유성룡 외에는 없구나. 어서 나와 백성들에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말하라.”

“주상전하께서 신의 공이라 하시니 성은이 망극하오나 실은 신의 공이 아니며 오로지 제가 친하게 지냈던 토정 이지함의 경험을 되새겨 보았을 뿐이옵니다.”

백성들의 시선은 어느새 주상전하에서 나로 옮겨져 있었다.

본래대로면 피뢰침의 원리와 작동방법을 말해야 하겠지만, 그걸 말하면 내가 현대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니 이지함의 이름을 팔아야 하리라.

이지함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냥저냥 박식한 관료로 남느니 민중들에게 지지받는 인물이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백성들이 알기 쉬운 수준으로 피뢰침의 원리를 해석하여 전하기 시작하였다.

“친하게 지내던 토정 이지함 어르신이 어릴 적에 경험하였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네. 당시에 마을 어귀에 둔 장승과 솟대가 있었는데 한 무당이 솟대에 쇠로 만든 새를 올렸다 하더군.”

“거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솟대를 세울 적에는 반드시 나무로 세워서 썩어 없어지거나 꺾이면 새로 새우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필 쇠를 올리다니요.”

“이런 불민한 일을 다들 잊었는데 토정 어르신은 계속 기억하고 계셨다네. 그리고 지금과 같이 폭풍우가 치던 날 마침내 장승이 있는 마을 입구에 번개가 내리쳤다네.”

이런 일은 없지만 있다고 하자. 어느 누가 이지함의 고향인 보령까지 내려가 거의 70년 전에 번개가 쳤는지 안 쳤는지 알아보겠는가.

백성들이 장승에 번개가 쳤다는 말을 듣자 눈을 찌푸렸는데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들 장승이 벼락을 맞아 무너진 줄 알고 달려갔건만 어처구니없게도 장승에서 멀리 떨어진 솟대가 벼락을 맞고 부스러졌다네. 다들 운이 좋았다 여겼지만 이지함 어르신은 이 일을 기억하고 후일 관직에서 물러난 다음 재현해 보려 하였네.”

“재현하다니요? 혹여나 쇠로 만든 새를 솟대 위에 올려서…….”

“솟대를 사사로이 세우는 일은 금기시하지 않는가. 대신 쇠로 만든 원앙을 높은 나무 위에 올려놓았지. 그러자 다른 나무는 다 멀쩡한데 쇠로 만든 원앙을 올린 나무에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네.”

이지함이 내가 알려준 피뢰침을 실험한 일화를 각색해서 전해줬다. 하필 첫 나무가 대추나무라서 제법 쏠쏠한 돈을 건졌다는 이야기는 물론이요, 천지(天地)와 음양(陰陽)의 이치를 분석했다는 이야기를.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이지함에 대한 찬양이었다.

“구름이 모여 비가 됨은 하늘에 있는 음양 가운데 음기(陰氣)가 뭉치는 일이니 양기(陽氣)가 남아 벼락이 됨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네.”

“물론이지요. 벼락이 떨어진 집에는 불길이 일어나고 사람이 맞으면 새카맣게 타들어 가 시체가 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벌판에서 쟁기를 들어 밭을 갈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자네가 바로 보았다네. 오행의 이치에 의거하여 금(金: 금속)과 화(火)는 상극이니 이지함 어르신은 하늘의 양기가 뭉친 벼락이 날카로운 쇠붙이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셨네.”

피뢰침은 전하(電荷)가 응축하여 번개를 유도할 수 있는 뾰족한 끄트머리에 번개가 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이 끄트머리를 지면과 금속으로 연결하여 남은 전기가 모조리 지면에 흡수되게 만드는 방식이다.

현대에는 제련기술이 발달하였으니 철을 사용하지만 이 시대의 야금술로 10m 길이의 거대한 철봉을 만들면 벼락을 맞아 터져나갈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구리로 피뢰침을 만들었으니 이를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이를 개수하여 건물 위에 구리로 거대한 침을 만들어 붙여놓고 양기가 흐를 수 있도록 구리철사를 팔뚝 길이로 뭉쳐 땅에 고정하였다네. 결국 이 거대한 침에 양기가 내리쳤고 땅으로 사라져 버렸다네.”

아직 전기의 증명도 발견도 하지 못한 시대이니 그냥 양기라고 뭉뚱그려 말해야 하지만, 백성들은 어떻게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 이해해 버렸다.

백성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대화를 들은 주상전하께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앞으로 벼락이 칠 적에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으며 건물이 벼락을 맞아 무너질 일도 없겠구나. 조만간 이 기물을 모든 건물에 적용하여 하늘의 재앙을 막아내는 방법을 반포할 것이니 유성룡은 어서 원리를 파악하도록 하여라.”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또한 수많은 시험을 거치겠사오니…….”

“시험이야 당연히 거쳐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굳이 원구단 위에 구리로 만든 침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는가?”

주상전하께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계셔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눈빛을 분석하면 ‘극적인 효과를 보여줘서 망정이지 다른 방안을 모색할 생각 좀 해라’라는 뜻이 아닌가.

* * *

주상전하께서는 피뢰침 사건으로 약간의 앙금이 남아 계신 것이 분명하였다. 당장 조선회사 업무도 있는데 여기에 이현전과 협력하여 피뢰침의 분석을 실시하라는 업무가 추가되었다. 여기에 다른 업무도 하나 추가되었고.

“그럼 뭘 하나. 이미 도면은 머릿속에 다 있고 실험결과만 조금 손봐서 현대의 피뢰침을 구리로 고스란히 재현하면 끝나는 것을. 야근 안 하는 생활이 얼마나 좋아?”

새벽 4시에 홀로 조선회사에 나와 일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계약대로 1597년 8월 말에 유럽으로 배송된 본차이나 찻주전자 세트가 팔려나간 보고를 들으니 머리가 아파왔다.

일단 계약물량은 모두 맞추었으며 여유가 남아 400세트를 추가로 판매하였는데, 각지의 부호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며 경매를 시작해 한 세트 표준가격인 은자 200냥의 5배인 은자 1,000냥에 팔려 나갔다더라.

이 수익만 따져도 120만 냥에 달하니 각종 재료비와 운송비를 감안하면 매년 은자 60만 냥의 이익이 생기는 격이다.

여기에 대량생산이 쉬운 장식이 적은 찻주전자가 찍혀 나오면 수익은 거의 두 배로 뛰겠지.

막 우려낸 녹차를 마시며 흐뭇한 기분을 만끽하였다.

“조선회사의 수익이 매년 은자 백이십 만 냥에 달하고 조만간 연금이 더 쌓여 더 많은 거래를 성사할 수 있다면 타격을 입은 명나라 예산을 넘어설 수 있겠는데.”

“우의정 대감 계십니까? 도성에 도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서 들어오게. 꼭두새벽부터 대체 무슨 일인가?”

어눌한 말투로 문을 두드린 사람은 솔로몬 제국에서 건너온 마사이족 상인이었다.

새벽부터 나를 찾아와 기다리기로 했는데 정작 내가 먼저 회사 안에 들어와 있으니 황당했겠지.

그는 마사이족답게 본론부터 시작하였다.

“벼락을 막아내는 기물을 서애 대감께서 창안하시어 주상전하를 보호하였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니더군요. 혹여나 이 기물을 배 위에 설치할 방법은 없습니까?”

“배 위에 올린다 하여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구려. 애초에 태풍이 치면 배가 파손되게 마련이니 벼락을 맞는다 하여도 크게 다를 것은 없소이다.”

“태풍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저희가 나이로비(현 케냐 나이로비)를 수도로 삼았는데 거기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조선의 삼남지방이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호수가 있습니다.”

그게 빅토리아 호수였던가? 듣자 하니 마사이족이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일대를 점령했다 하던데 왜 벼락이 호수에 친단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상대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나이로비 호수는 물고기가 넘쳐나며 자원이 풍부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일대에 벼락이 한 해에 수천 번은 내리치니 전사들의 창에 벼락이 내리꽂히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벼락을 맞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그러면 아예 호수의 이름을 뇌호(雷湖)라 개명해야 할 지경이로군.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용맹한 전사들조차 호수 일대에 다가가면 창을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골치가 아픕니다. 벼락을 막아낼 비책을 마련한다면 저희도 내륙으로 더욱 진출할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벌판에 일렬로 피뢰침을 세운다면 비용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를테면 벼락에서 반드시 안전한 장소 말이다.

연해주 일대에서도 호랑이를 소탕하고 든든한 목책을 세우면 호랑이가 넘어올 수 있다 하여도 백성들이 평안해지는 법이었다.

내가 갈 수는 없었는데 관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여 인사를 올렸고 개중에는 산시양이 달려와 질문을 퍼부었다.

“서애대감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자네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나.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현전에 근무하는 입장이라 피뢰침이라는 기물의 연구를 행해야 하는데 세상천지에 마구 내리치는 벼락을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산시양은 어떻게든 업무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태풍이 오는 시기도 끝났고 조선 팔도를 다 헤집어도 벼락이 치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필리핀 일대는 벼락이 치지만 이 동네는 폭우가 내렸다 하면 강풍이 동반되니 피뢰침이 부러질지도 몰라 실험 장소로는 매우 부적합하다.

이런 계산을 하고 나에게 질문을 하였으니 더더욱 괘씸해 해맑게 웃으며 말하였다.

“벼락이 한 해에 수천 번이나 내리치는 장소가 있다네. 솔로몬 제국의 내륙에 있는 나이로비 호수인데 내가 설계한 피뢰침의 도본을 줄 것이니 거기서 일 년 정도 머물며 실험하게나.”

“일 년이라 하셨습니까! 호수라 하면 모기가 들끓어서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며 이주(아프리카)의 학질은 사람이 대번에 죽어 나가는 학질이 아닙니까! 여기에 흑질(황열)까지 겹친다면 대번에 절명할 것입니다!”

“학질의 약은 얼마 전에 내의원에서 정제한 금계랍(金鷄蠟: 키니네)이 있지 않은가. 흑질은 흔히 걸리는 병이 아니니 모기장을 치고 계핏가루를 사방에 뿌려 모기를 막아내면 된다네.”

굳이 산시양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어차피 주상전하께서 산시양을 고깝게 보고 있었으니 아래 관원들을 보내면 통솔 명목으로 파견되리라.

졸지에 아프리카에 가게 된 산시양은 옆에 있던 상인의 손목을 잡고 통사정을 하였다.

“아니네! 이러면 아니 된다네! 내가 도본을 줄 것이니 제발 자네가 피뢰침의 실험을 대신해 주게! 내가 방안은 알고 있어도 이 나이에 거기까지 갈 수는 없다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제가 어찌 실험을 하겠습니까? 저희 전사들이 편안히 모셔드릴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나이로비에 방문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청산유수같이 말을 늘어놓는 마사이족 상인이 물러나자 산시양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나도 이 나이에 이 관직을 달고 직접 갈 사람은 아니다.

붓을 놀려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리고 건네주었다.

“주상전하께서 어떤 뜻을 품으실지 모르겠지만 자네에게 충분한 예산과 시일을 주어 솔로몬국에 다녀오라는 장계를 작성하였네. 이를 직접 말씀한다면 조금이라도 출장 기한이 짧아지지 않겠는가?”

산시양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 추천서를 들고 주상전하에게 향했다.

실로 만족스러운 일이라 기지개를 켜고 나에게 배정된 업무를 확인하였다.

“요동 일대의 축성과 인구 확인 계획이라. 이거야 북원의 대규모 침략 대비용이랍시고 요서회랑 끄트머리에 성형요새를 쌓으면 충분하겠지. 성형요새를 쌓으며 호적을 작성하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면 충분하겠고.”

고구려는 대륙과의 전쟁에서 요서회랑을 틀어막다 실패하여 요택(遼澤)이라 불리는 요동의 늪지대를 일차 방어선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조선은 성형요새라는 최고의 보호 수단을 얻어냈다.

천명이 붕괴한 이후 어설프게 침입하는 도적 따위야 성형요새를 만난 순간 히데요시처럼 수만 명 단위의 시체를 쌓아나가리라.

여기에 각종 건축물 계획을 세우다 외교적으로 잘 쓸 수 있는 수단을 찾아냈다.

“요동에 건물을 세울 적에 목재를 여송 일대에서 들여온다 하였는가?”

“신형 군함의 건조를 위해 여송 일대의 거목(巨木)을 마구잡이로 들여오고 있습니다. 일전에 서애대감께서 창안하신 코끼리 개척 방법 덕분에 땅을 많이 넓힐 수 있었지요.”

나와 파양군에서 만나 내 말을 잘 따랐던 코끼리 완보는 아직 잘살고 있으려나.

내가 만들어준 진흙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던 녀석을 떠올리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올라왔다.

서류를 살펴보니 여송도 일대의 숲을 개간하면 목재 가운데 군함 건조용으로 쓰기 좋은 길이가 긴 목재를 먼저 전함사로 가져가 군함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평범한 목재는 건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지나치게 두툼한 목재는 판재로 가공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게 좀 아쉬운 방법이다.

판재는 일반 나무를 가공해도 얻어낼 수 있으니 생색이라도 내야 하리라.

마침 북경을 보수하고 있으니 만력제에게 선물이나 줘야겠다.

“요동으로 들여오는 목재 가운데 지나치게 두툼하고 올곧은 목재는 북경을 보수하는 데 보내도록 하면 좋을 것 같군. 그나저나 북경의 보수는 어찌 진행되고 있는가?”

“명국 황상께서는 삼십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남경에서 충원하여 북경을 보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감께서 말씀하신 지나치게 두툼한 목재는 기둥으로 쓰기에 아주 좋겠군요.”

“두말하면 잔소리이지. 그나저나 삼십 만 명이라…… 매년 이 인력을 동원하면 이십 년 내에 북경을 복원할 수 있겠지만 식량난이 엄청나겠군.”

“그렇지 않아도 황상께서 식량난을 예측하여 조선을 제외한 각 번국(藩國)에 사신을 보냈다 하는데 왜국이 응했다 합니다. 매년 백만 석 이상의 미곡을 제공하기로 하였다더군요.”

3년 전에 현대에 도쿄라 불리는 지역을 개척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기는 했는데 벌써 개척에 성공했을 줄은 몰랐다. 다테 마사무네는 머저리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최소한 농사 하나에는 소질이 있는 것 같군.

혹시나 일본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내가 나서야 하니 차라리 나은 형편이다.

이대로 큰 문제 없이 우의정으로 일하며 제자나 몇 명 두어 스승이었던 퇴계 이황처럼 말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말

현 빅토리아 호수, 마사이족이 나이로비 호수라 부르는 장소는 전 세계에서 벼락이 가장 많이 치는 곳입니다. 현대에도 한 해 3,000명 이상이 벼락을 맞아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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