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37화 (537/573)

근육조선 537화

2부 29장 9화 환구단

주상전하께서는 업무를 차근차근 진행하셨다.

가장 먼저 나를 지목하시더니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데 내가 예상한 대로 건물 설계를 보조하라는 말이었다.

“새로 지을 근정전 설계는 건축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진해대군에게 일임하였으며 이를 보좌하기 위하여 종친인 상원군을 배정하였다. 다만 지나치게 과도한 건물을 만들지도 모르니 잠시 이를 감독하여라.”

“실책을 범한 신을 이리도 믿어주시니 주상전하께서 내리시는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또한 명국의 사신인 양호가 황상을 대신해 천제사(天祭祀)를 허락하였으니 이를 주관할 제대로 된 장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잠시 심사숙고하여야겠구나.”

제사에는 장소가 중요하긴 하다. 당장 마니산 첨성대로 가서 제사를 드린다면 예법이야 제대로 지키겠지만 도성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지내니 널리 퍼지지 않는다.

주상전하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시다 말씀하셨다.

“백성들의 불안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으니 불안을 일소할 수 있도록 주변의 나무를 모조리 벌채한 용산 일대의 언덕 위에 높은 단을 쌓아 만백성에게 재액(災厄)을 몰아내기 위한 제사를 지낼 제단을 쌓도록 하여라.”

여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제사 지내다가 벼락 맞고 싶으세요? 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언덕 위에 나무를 모조리 잘라내고 건물을 세운다면 아예 벼락이 내리 찍히라는 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벼락이라는 놈은 금속을 향해 떨어지지만 주변에 금속이 없으면 뾰족한 끝을 향해 내리 찍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언덕 위에서 제사를 지내는 주상전하에게 말이지.

도저히 말을 할 방법이 없어서 우물거리고 있자니 주상전하께서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예전에 세상을 떠난 이지함이 남긴 서적을 보았는데 벼락은 하늘에 음기(陰氣)가 가득할 적에 갈 곳을 찾지 못한 양기(陽氣)가 길을 찾아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실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신 또한 서적을 탐독하고 여러 궁리를 행해보았으나 양기가 떨어질 길을 마련하기 위해 키가 큰 수목을 남겨두는 방식만 택하였사옵니다.”

지금까지 피뢰침을 만들까 했다가 만들지 않고 그냥 키가 큰 나무를 남겨두어 벼락을 받아내는 용도로 썼다.

내가 빙의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 알면서 참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지함에게 슬쩍 전한 지식이 주상전하에게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쯤 되면 벼락을 부르는 천재 이지함의 가르침을 받아 피뢰침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테니 걸릴 것도 없다.

“마침 이지함은 자네가 어릴 적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다. 그러하니 하늘의 양기를 막아낼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를테면 벼락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도 모색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제야 뭔 소리인지 이해했다.

주상전하께서는 벼락을 유도할 방법을 찾아낸 이지함을 기억하고 계셨으며, 어린 시절부터 이지함과 친한 사이인 나에게 벼락이 떨어져도 안전할 방법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돌려서 내린 것이다.

근데 이걸로 충분할까? 주상전하가 언덕 위에서 제사를 지내고 멀쩡히 내려온다고 백성들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군주의 부족한 점은 신하가 채우는 법이니 더욱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일단 주상전하에게 인사를 올렸다.

“신이 이지함과 나누었던 대화는 물론이요 경험한 일을 적용하여 가장 훌륭한 제단을 만들 것이옵나이다. 가급적 백성들의 불안이 빠르게 사라지도록 구풍이 엄습할 음력 팔월 무렵에 완공할 것이옵니다.”

“실로 만족스러운 말이로구나. 그러하면 제단을 세울 장소와 수단을 마련해 둘 것이니 인부들을 동원하여 신속히 공사를 진행하여라.”

주상전하께서는 내가 알아서 일을 진행하리라 여겼고 대소신료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입장에서는 다르다. 백성들이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벼락을 피하는 게 아니고 벼락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왕실에서 주관하는 제사면 수천 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주변 백성들에게 나눠주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젯밥을 얻어먹으려고 벌떼같이 몰려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상전하에게 벼락이 떨어진다면? 그리고 벼락을 맞고 무사하다면?

왕실의 권위는 끝없이 상승할 것이며 피뢰침을 하늘에서 내려올 재앙을 막아낼 비책이라 하여 퍼트리면 불안에 떨던 백성들의 심리가 반전될 것이다.

천명이 붕괴된 김에 아예 뽕을 뽑자는 주상전하의 정치적 안배를 확인하며 나는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실책을 저지른 신을 이리도 믿어주시니 주상전하께서 반드시 만족하실 단을 쌓고 격식에 맞는 장소를 마련하도록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겠나이다.”

주상전하에게 눈치를 슬쩍 주며 눈동자를 위로 치켜올리니 더욱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우리는 통하는 게 있다니까?

* * *

새로 세울 제단. 고려시대부터 세워져 조선시대 초기에도 있었던 원구단(圜丘壇)의 설계를 하며 진해대군과 잠시 만나보았다.

진해대군은 거적을 덮어둔 근정전 지붕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하였다.

“생각보다 손상이 심각하구려. 생각하여 보니 주상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고 나서 이십여 년이 넘게 지났는데 단 한 번도 대수선(大修繕)을 실시하지 아니하였소.”

“이래서야 몇 년 이내에 지붕을 모조리 헐어내고 개축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이로 스며든 습기가 목재를 부식시켜 대들보에 곰팡이가 피고 금이 가기 시작하였군요.”

“아무리 건물을 온전히 짓는다 하여도 이십여 년에 한 번 정도는 지붕을 모조리 뜯어내고 새로 지어야 하는 법이 아니겠소. 듣자 하니 북경과 같이 습기가 적은 고장은 삼십여 년 이상을 버틸 수 있다 하였지만 아국은 다르오.”

“물론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바를 모조리 기억하고 계시니 젊은 시절부터 대군 어른과 함께 업무를 함께 해온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지경이군요.”

근정전은 최고품질의 목재만 사용하지만 현대처럼 제대로 된 방부제를 목재에 주입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목재가 쉽게 훼손되는 법이었다.

결국 지붕을 모조리 헐어낼 정도로 보수공사를 하면 기둥만 남는 꼴이 되는데 사실상 건물의 7할을 새로 짓는 꼴이 되리라.

진해대군은 온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자신이 임시로 설계한 도면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주상전하께서 근정전을 새로 크게 만들라 하셔서 많이 욕심을 부려 보았소. 월대(月臺: 기단)를 더욱 넓게 넓히고 삼 층 전각(殿閣)으로 새로 설계를 하였는데 이는 왜국에 흔히 보이는 삼 층 전각을 본뜬 것이오.”

“허허, 이쯤 되면 전각이 양생(벌크 업)을 잔뜩 한 모양새군요.”

“물론이요. 근래에 관직이 더욱 늘어나지 않았소? 근정전에 신료들이 집결할 적에는 간격이 좁아 불편함이 심하다 하였는데 더욱 크게 만들면 이런 불편함이 해소될 거요.”

진해대군의 도면을 받아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지금 불타 사라진 태화전이 가로 60m, 세로 33.3m, 그리고 높이가 27m이다. 지금의 근정전은 가로 31m, 세로 21m 그리고 높이가 22.5m이고.

반면 진해대군이 설계한 근정전은 가로 50m, 세로 28.5m, 그리고 높이가 30m인데 그나마 가로세로 길이가 늘어나지 못한 이유는 더 이상 커졌다가는 근정전 주변에 통행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삼 층 전각에 높이가 어마어마한데 황제의 궁성인 자금성이 이 층 전각을 사용하는 상황에 대놓고 더 높은 전각을 만든다면 황제를 넘은 태황제로 칭호를 올려야 하리라.

지금은 명나라의 심기를 긁는 수준에서 끝나야 하니 설계를 현실적으로 조절하였다.

“그러니 절육(커팅)을 실시해야 합니다. 건물의 폭이 더욱 커지는 것은 마땅하지만 높이가 문제입니다. 근정전이 이리도 높아진다면 동짓날에 그 그림자가 동궁은 물론이요, 침전에 이를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려. 그렇다고 층고를 낮추면 키가 작은 왜인들도 쓸 수 없는 작달막한 건물이 될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후일이 되어 궐을 더욱 넓히게 되면 주변 전각들을 해체하여 멀리 이전하고 삼 층으로 올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더욱 큰 기둥을 사용하고 설계에 여유를 두는 방식이지요.”

그때쯤 되려면 백 년은 걸리겠지. 연유공간(왕실의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 인근의 주택을 모조리 사들여 땅을 만들고 하나하나의 전각 크기를 키우는 방식이니까.

진해대군은 내 말을 듣더니 즉석에서 설계를 수정하며 말하였다.

“기둥과 대들보에 여유를 두어 후일을 대비한다 말하면 주상전하께서도 만족하실 것이오. 그나저나 근정전보다 더욱 중요한 제사를 올릴 단을 쌓아야 하는데 설계는 있소?”

“설계야 제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충분합니다. 주상전하는 물론이요, 모든 백성들이 만족할 제대로 된 제단을 만들 작정입니다.”

“듣자 하니 주상전하께서는 하늘의 재액인 벼락을 피해갈 방법을 모색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는데 정녕 하늘의 재액을 피해갈 방법을 마련할 수 있는 거요?”

“그야 제가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해야지 얻어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힘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에도 없습니다.”

진해대군은 젊은 시절 내 행적을 잘 알고 있으니 뭔 짓을 하는지 의심하는 눈길을 보냈는데 주상전하는 무조건 안전하니 염려할 필요도 없다.

용산으로 나아가 공사현장을 시찰하는데 천여 명에 달하는 인부가 벌써 기초 공사를 마쳐 놓았다.

대한제국 시기에 쌓은 원구단은 건축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위신만 잔뜩 세우려고 없는 힘을 동원해 만든 건물이다.

솔직히 말해 그 돈으로 군대를 만들었으면 일제의 침략이 조금은 늦어졌겠지.

반면 지금의 조선은 원구단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힘이 있으니 이 시대의 건축논리에 맞으며 질서정연하고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지 않은 형태로 설계하였다.

오늘도 공사현장에 나와 석공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석물로 새길 용은 발톱이 네 개인 사조용일세. 다만 사조용치고는 발톱이 조금 두툼하고 혹여나 주상전하께서 마음에 들지 아니하실 때 새로 깎아낼 수 있도록 여유를 두게.”

위패를 모실 건물은 엄연히 제후(諸侯)의 격식에 맞춰서 세웠지만 단청이야 새로 칠하면 그만이고 석물은 새로 새기면 그만이다.

인부는 내 명령을 받더니 코웃음을 치며 답하였다.

“그냥 오조용을 새기시지요. 솔직히 말해 명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그냥 우리가 황제를 칭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어허! 명국 황상께서 지금까지 아국에 보낸 성은을 잊지 말게!”

입에서는 꾸짖는 소리가 나왔지만 한낱 석공들도 명나라가 실시간으로 붕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눈은 웃고 있으리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 석공들도 신나게 정으로 화강암을 쪼아대며 각종 조각을 만들어댔다.

수십 년 정도가 지나 명나라의 천명이 붕괴되면 외왕내제(外王內帝)를 넘어서서 사실상 제국을 표방할 때 석물을 새로 쪼아내면 되리라.

여기에 원구단의 본단에 올릴 지붕도 준비하였다. 이 본단만큼은 제법 사치를 부려 설계하였다.

주상전하의 주문대로 높은 언덕 맨 위에 제단을 쌓고 그 위를 다시 건물로 덮었는데, 이 건물 지붕은 피뢰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놋쇠로 만들 작정이다.

이미 미주에서 들여온 구리 일만 근이 배정되어 있으니 구리는 차고 넘쳤다.

“본단의 위에 올릴 지붕은 놋쇠 판으로 한 몸으로 만들게. 지나치게 긴 놋쇠 판을 만들기 힘들면 서로 엮어서 한 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 충분하다네. 이를 결부할 때 청동으로 만든 못을 쓰게나.”

“정말 놋쇠를 지붕에 올리실 작정이십니까? 놋쇠는 얼룩덜룩하게 시커먼 녹이 올라와서 닦아내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닌데 이를 어찌 감당하실 작정이십니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나. 놋쇠와 철을 같이 엮어두면 철이 새카맣게 녹슬고 놋쇠는 윤이 나는 일을 생각해 보게. 지붕 끝에 철물을 엮어 철물이 먼저 삭도록 만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지붕에 녹이 올라와 감당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인부들은 일상생활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하였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희생전극 개념은 건축에서도 자주 쓰인다.

현대에도 외부에 노출된 철제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아연이나 알루미늄 덩어리를 달아 이온화 경향이 더 큰 녀석을 먼저 부식시키게 만든다. 지금 원구단에 설치하는 쇳덩어리가 다 부식되기 전에는 지붕은 멀쩡하리라.

“놋쇠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니 쇳덩어리를 달아두면 충분히 해결되겠지. 그리고 피뢰침이나 확인해야겠군.”

조만간 벼락을 맞을 주상전하의 안전을 위해 피뢰침도 제대로 설계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기 저항이 적은 놋쇠를 기둥으로 만들고 전기가 지면으로 빠져나가도록 구리철사를 두껍게 엮어 접지하면 충분하다는 계산이었다.

인부들이 망치로 놋쇠 기둥을 두드리고 얇은 구리철사를 뽑아내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공사가 빨리 완공될 것 같았다.

한 인부는 놋쇠 기둥을 두드리다 숨을 돌리며 물어보았다.

“우의정 대감께서 명하신 대로 길이가 서른 자(10.4m)에 달하는 구리 기둥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런 물건은 본 적이 없는데 법도에 맞는 물건입니까? 구리로 만든 장침(長針)을 하늘에 찔러 버리는 격이 아닙니까?”

“하늘에 뜻을 전하기 위한 제사인데 가급적 하늘에 높게 닿아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끝은 뾰족할수록 뜻을 전하기 쉬워지는 법이니 가급적 날카롭게 만들게. 지나가던 새가 앉지 못하고 몸통이 꿰일 정도면 더욱 좋다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노끈이나 사슬로 엮으면 될 것을 구리철사로 사방에 고정한다니 저는 이런 물건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불자들이 석탑을 만들 적에 상륜(相輪: 석탑의 상부의 청동 장식)을 사슬로 엮어서 바닥에 고정하지 않던가. 그보다 격식이 높아야 하니 구리철사를 사용함이 마땅하네.”

인부들은 세계 최초의 제대로 된 피뢰침을 만들었고 나도 현대에서 제법 많이 설치했던 피뢰침 도면을 떠올리며 지시사항을 계속 수정하며 완벽을 기했다.

시기도 좋게 피뢰침이 완성될 무렵, 한밤중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게 위험을 빙자해 일대의 사람들을 모조리 물러나게 하고 제단 위에 닭장을 가져오고 닭을 다섯 마리 두어 피뢰침 시험을 시작했다.

한밤중에 벼락이 대여섯 발 정도 떨어졌지만 닭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안전이 검증되었으니 진정으로 원구단이 완성된 것이다.

주상전하께 보고를 올리니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는 표정으로 내 보고를 들었다.

“신이 사력을 다하여 매진하여 가까스로 태조대왕께서 만드신 원구단을 새로 격식에 맞게 벼려내었나이다. 하늘의 양기가 번개로 화하여 떨어진다 하여도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였으니 심려를 놓으시옵소서.”

“듣자 하니 이미 벼락이 몇 번이나 내리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건물이 상하지 않았다면 하늘의 재액을 흘려보내는 방안이 성공한 것이로구나. 길일을 택해 하늘에 제사를 올릴 것이다.”

시기도 좋은 상황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풀 꺾여가지만 이제 태풍이 올라올 시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상전하만 피뢰침에 대해 알면 충분하기에 신중히 말하였다.

“신이 사력을 다하여 하늘의 재액을 흘려보내는 방안을 마련하였사옵니다만 재액이 근방에 닿기 직전에만 흐트러트릴 수 있었나이다. 벼락이 지나친 양기를 품고 있어 이마저도 힘에 부쳤사오니 신을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재액이 근방에 닿기 직전에만 흐트러트린다 하였느냐. 그러하면 벼락이 원구단 바로 인근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더냐.”

“실로 그러하옵나이다. 신의 부족한 재주를 부디 벌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쯤 되면 벼락이 근방에 떨어질 것이라 짐작하시겠지.

주상전하께서는 길일을 택하신다며 제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먹구름이 몰려올 때쯤 원구단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리셨다.

-쿠르릉!

“이보게 서애. 듣자 하니 벼락을 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하는데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니 조만간 벼락이 내리칠 것이 분명하다네. 저 기묘한 건물이 정녕 벼락을 막아낸다면 모르겠지만 막아내지 아니한다면…….”

“제 목숨을 걸고 만들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 형상 모두가 벼락에서 안전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이니까요.”

이이가 말했듯이 내가 설계한 원구단의 형상은 참으로 기이하기는 하다.

원형 제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기둥 16개를 두어 원형 놋쇠 지붕을 설치하였다. 지붕 꼭대기에는 8개의 구리철사로 지면에 고정한 10m 높이의 놋쇠 기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문무백관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옆의 건물로 피신한 사이 언덕 아래에서 백성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점점 거세지는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빗줄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세질 무렵 벼락이 원구단을 향해 떨어졌다.

순간 사방이 환하게 빛나고 전기가 바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섬광에 기겁한 문무백관들이 모조리 주상전하를 외치는 소리가 묻힐 정도로 백성들의 탄식과 경악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주상전하께서 벼락을 맞으셨다!”

“서애 자네 뭔 짓을 한 건가! 관원들은 뭘 하는가! 우의정을 어서 포박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상전하께서 제사를 올리고 계시니 소란을 피우지 말아 주십시오.”

벼락은 피뢰침에 떨어져서 구리철사를 통과해 주변 땅으로 퍼져나갔으니 주상전하께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

벼락이 머리 위에 떨어져 놀라기는 하셨는지 한참 동안 몸을 더듬으시다 다시 제사를 진행하셨다.

나를 포박하려던 의금부 관원들도 이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곧이어 벼락이 두 발 더 원구단을 향해 떨어졌다.

제사가 끝날 때까지 총 세 발의 벼락이 내리친 다음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며 주상전하께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오셨다.

“하늘에서 내린 재액이 세 번이나 제단을 무너트리려 하였지만 이를 모조리 막아내었구나. 이는 하늘의 뜻을 사람이 감당할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백성들이 염려하고 있을 것이니 내 직접 나아가 이들을 맞이하겠다.”

수많은 백성들은 주상전하께서 멀쩡히 걸어 나오신 모습을 보고 주상전하 천세를 외쳤으며 간혹 만세가 섞여 있었다.

하늘의 재앙을 몸으로 받아내고도 무사한 임금이라니 주상전하의 권위가 얼마나 높이 치솟겠는가?

#작가의 말

이연 : 유성룡 자네! 벼락을 닿기 직전에 흐트러트린다 하였는데 닿는 장소가 내 머리 위란 말인가!

성룡이 : 그게 더 극적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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