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31화 (531/573)

근육조선 531화

2부 29장 3화 천명(1)

남경으로 건너온 만력제는 오랜만에 동생인 오왕(吳王) 주익류와 만남을 가졌다.

십여 년 만에 자신을 만나 인사를 올리는 주익류를 흐뭇한 표정으로 본 만력제는 마차에 동생을 태우고 남경 주변을 거닐며 말하였다.

“일전에는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북경보다 더욱 위엄이 넘치는 요새 안에서 마음대로 거닐 수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경진(庚辰)년의 난리는 더는 없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이미 조선군이 저를 위하여 많은 배려를 하였습니다. 관원들과 함께 일대의 이갑(里甲: 명나라의 행정 제도)을 개편하였으며, 덕분에 세금도 제대로 걷히고 백성들의 생활도 안정되었지요. 당시에 조선군을 고용하기 위하여…….”

“은자 사백만 냥을 쾌척하였지. 당시에는 모두가 반발하였지만, 지난 세월 동안 걷힌 조세 수익이 이를 벌충하고도 남을 지경이니, 짐의 선택이 실로 옳지 않더냐?”

잘 정돈된 남경성과 일대의 요새에서는 수많은 병졸들이 만세를 외치며 만력제의 행렬을 맞이하였고,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였다.

“병졸 모두에게 은자 한 닢을 나누어 주어라. 어차피 내탕금 가운데 팔 할인 천육백만 냥을 가져왔으니, 돈이야 차고 넘친다. 또한 이들을 훈련시킨 군관들에게는 은자 열 닢을 나누어 주어라.”

“황상께서 지엄한 명을 내리시니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또한 익류에게 은자 십만 냥을 내릴 것이니 네 조카인 복왕(福王) 상순이와 놀아보는 것은 어떠하겠느냐. 나는 잠시 쌓인 정무를 처리해야 하니, 이번만큼은 함께 즐길 수 없구나.”

쌓인 정무를 처리한다는 말에 주익류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음과 몸의 병이 깊다는 말을 하며 간혹 업무를 하고 칩거한 것이 근 이십 년에 달하는 황제가 만력제였다.

그러한 동생의 눈빛을 알아차린 만력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마차를 거세게 몰아 남경성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산더미처럼 적체된 서류를 확인한 만력제는 손을 풀며 붓을 들고 어린 시절의 기세를 되찾아 서류의 산더미로 파고들었다.

이후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만력제의 업무는 멈추지 않았다.

평상시 쾌락과 흥밋거리만 찾아대던 게슴츠레한 눈은 서류를 넘겨 내용을 확인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이러시다 옥체가 상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 황상께서는 어서 침소에 드시옵소서.”

“정 귀비(貴妃)에게 먼저 침소에 들라 전하라. 짐은 당장 정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신이 들었을 적에 업무를 행해야 하는 법이다.”

평상시에는 태업을 일삼던 황제가 업무에 집중하니, 한가롭게 일하던 관원 모두가 정신을 놓고 업무에 동참하였다.

산적한 업무 가운데 한 달 동안 처리되지 않았던 중요한 업무는 단숨에 해결되었으며, 장기간 진행할 업무는 만력제가 내탕금까지 써가면서 처리하였다.

아예 장부를 직접 계산하여 몇 없는 부정부패를 일삼은 관료까지 처형한 만력제는 기지개를 켜며 마지막 서류를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그의 뒤틀린 척추보다 더욱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내팽개쳐 버렸다.

“육부(六府)의 관료 가운데 삼 할이 자리가 비어 있다고? 짐은 남경 일대의 업무를 실시하러 왔을 뿐이며 북경의 업무를 처리할 여력은 없으니, 이 일은 할 수 없다.”

본래 역사에서는 30년 동안 태업을 일삼아 자금성의 관직 중 7할이 넘는 자리가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아 비어 있었지만, 그나마 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만력제이니 3할이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임명해 보았자 변란 이후 물갈이를 실시할 작정이라 귀찮은 상황이기에, 만력제는 환관이 건네준 산호(珊瑚) 담뱃대를 깊게 빨아들였고, 연기를 깊게 뿜으며 말하였다.

“일전에 남경에 당도하였을 때 짐을 맞이한 병졸들은 평상시 배정된 병사가 전부가 아니더냐. 병졸을 모두 소집하여 짐의 위엄을 확인하게 할 것이니 어서 준비하라.”

남경 일대에서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은 모두 지엄한 황명에 의해 소집되었다.

음력 3월이라 조만간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아직은 큰 문제가 없기에 아무도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평상시에 태업을 벌일 적 삼국지연의를 완독한 만력제이니, 임시로 사방(四方)장군을 임명하고 자신이 대열 중앙에 거대한 마차 위에 올라 모두를 지켜보았다.

“참으로 장관이 아니더냐. 비록 옛 척가군보다는 못하여도 어디 가서 부족한 병사라 칭할 수준이 아니구나. 수효마저도 정군(正軍)이 십이만 명에 달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인다.”

손짓 한 번에 대열을 옮기는 병사들을 바라보자 처음으로 군권을 지휘하게 된 만력제의 기대 또한 부풀어 올랐다.

아예 전열에 서서 나아가자 그의 뒤로 거대한 먼지구름이 들끓었다.

남경 일대는 조선이 경진만란 이후 제도를 개편한 덕분에 정상보다는 못하여도 그럭저럭 군대라 불릴 정도의 병력이 있었고, 훈련 수준 또한 나쁘지 않았다. 반면 북경 일대는 달랐다.

대부분 기강이 해이하고, 그마저도 소빙하기를 견디지 못하고 명나라를 약탈하기로 마음먹은 북원의 기병대를 막아내기 위해 각 변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등자룡은 만력제의 앞에서 병력을 통솔하다 크게 외쳤다.

“황상께서 이리도 대범한 모습을 보이시니 신 등자룡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짐의 크나큰 뜻을 이제야 알겠느냐. 자고로 모든 사람은 품에 은자가 들어와야 말을 듣고 충실히 행동하는 법이다. 이 모습을 보니 갖은 고생을 하여 내탕금을 가져온 보람이 있구나.”

지엄한 황상이 선두에 서는 모습을 보이고 충분한 급료가 지급되자 병사들 모두의 사기가 한없이 끓어올랐다.

하루 종일 기동훈련을 마친 병력들이 파김치가 되었고, 만력제는 흡족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려 장수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마귀, 오유충 그리고 등자룡 셋에게 짐이 물어볼 것이 있다. 만약 남경 일대의 병력 가운데 정군 육만, 보인 십이만을 차출하여 북경으로 진군할 수 있겠느냐.”

“지엄하신 황상께서 뜻하신다면 가능한 일이옵니다만, 남경 일대의 인구 가운데 십팔만 명이 자리를 비우는 것과 같사옵니다. 농한기(農閑期)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내기를 시작할 시기이오니, 자칫하면 농사에 문제가 일어날 것이옵니다.”

“농사에 문제가 일어난다 하였느냐? 그것은 북경 일대에 적도가 엄습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더냐?”

“북경에 변란이 일어난다고 하였사옵니까? 혹여나 요동의 도적들이 변란을 준비한다면 참으로 흉험한 일이옵니다! 신을 어서 북경으로 보내주시옵소서!”

만력제의 뒤틀린 미소를 확인한 세 장수는 무릎을 꿇으며 명령을 하달해 달라는 몸짓을 하였으나, 만력제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 변란을 자신의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하였다.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의 위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척계광 같은 명신이 아닌 이상 각각의 장수를 신뢰할 수 없어 대군(大軍)을 이끌 수 없었으나, 자신이 전쟁에 나서면 위엄도 챙길 수 있고 마음대로 병권을 휘두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번째 목적은 북경을 청소하는 것이다. 북경이 함락당하면 죄를 물어 모조리 죽일 것이며, 산해관이 함락당하지 않고 버틴다 하여도 변란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한직에 내쫓아 후일 처형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는 마음에 안 드는 태자도 포함되었다.

세 번째 목적은 요동을 병탄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방에서 압박을 가하고 조선이 후방에서 치명상을 입히면 요동은 몇 달을 버티지도 못하리라.

이후 조선에게 약간의 내탕금을 주면 충분하니, 만력제의 자신감은 넘칠 법하였다.

그는 지엄한 황명을 내렸다.

“세 장수는 들으라. 짐의 내탕금으로 병사를 동원하는 데 사용할 모든 자금을 해결할 것이니, 당장 남경의 군대 가운데 총원 십팔만 명을 동원해 북경으로, 더 나아가 요동의 도적들을 몰아낼 준비를 하여라.”

“지엄한 황명을 필히 이행하겠나이다.”

원정이 실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여긴 만력제였다.

설령 북경이 함락당하여도 독고율은 상식적인 사람이니, 자신이 새 황제가 되기 위해 다소 약탈을 할 뿐 북경을 멀쩡하게 보존해 놓으리라.

자신은 오로지 충성스러운 대신들의 -실제로는 독고율에게 뇌물을 받은- 간언을 듣고 남경에 와서 업무를 처리하다 황급히 병사를 이끌고 북경을 구원할 뿐이다.

성사만 된다면 위엄이 사해(四海)를 진동시킬 것이라 여겼다.

* * *

만력제가 한창 남경에서 업무를 처리할 무렵, 요동의 지배자인 이여송 또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명분도 충분했던 것이 북원의 침략 이후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조선군에 대한 공포가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양성 인근에 집결한 요동 도적들은 더 이상 도적이라 불릴 이들이 아니었다.

출신 자체는 도적일지라도 지난 세월 동안 제대로 된 군관인 이여송에게 훈련을 받은 이들이다.

이여송은 오늘도 독고율이라 불리며 연단(演壇) 위에 올라 고함을 쳤다.

“너희들 모두가 집결하여 나의 휘하에 머물고 있으니,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구나. 다만 멀쩡히 요동을 다스리는 이 나를! 명나라의 천자와 조선의 임금이 의심하고 있다!”

아무도 명나라의 천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임금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가라앉고 부하들이 조용해지자 이여송은 다시 숨을 들이켜고 외쳤다.

“천혜의 요새 요동이라 하여도 두 나라의 힘이 결집하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하니 나는 북경을 함락하여 천자의 옥새를 빼앗고 협천자(천자를 받들어 불충한 신하를 호령한다, 실질적으로는 천자를 조종함)를 행할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희의 힘으로 북경을 넘볼 수 있다 하여도 요서회랑을 뚫는 시일과 산해관을 무너뜨리는 일을 감안하면 두 달이 걸릴 것입니다!”

“천하제일관이라 불리는 산해관을 뚫다가 힘이 다하면 저희는 아무런 일도 못 하고 몰살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산속으로 피해주십시오!”

이미 예상된 반발이었기에 이여송은 허리춤에 패용한 칼을 뽑아 들어 허공에 휘두른 뒤, 반발을 시작하는 부하들에게 겨누었다.

반발이 잠시 멈추자 이여송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나는 화포를 만들어 달자(韃子)들의 침략에 대비하였으나, 이제 칼날을 명나라에 돌려야 할 차례가 아니더냐. 산해관을 보름 이내에 함락할 준비를 마쳤으니, 다들 강을 보아라!”

“저건 배가 아닙니까? 서반아 사람들이 준비한다 하였는데, 저런 배를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스페인 선원들은 선박 전문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배를 수리하거나 임시로 건조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범선은 아니지만 임시로 사용하는 갤리선 정도는 수십 척이나 만들 여력이 있었다.

이여송은 배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분견대는 바다를 따라 산해관의 노룡두(老龍頭: 성이 바다와 만나는 곳,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한다)를 우회하고 후방과 전령을 노려라. 본대는 이 화포를 끌고 요서회랑을 시작으로 모조리 무너뜨릴 것이다!”

서양 기준으로는 컬버린, 여기서는 홍이포라 불리는 거대한 화포가 등장하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인지라 다들 환호성을 질렀고, 이여송은 자신의 머리 위에 황제를 상징하는 12류 면류관을 올리며 말하였다.

“국호를 나의 성씨인 독고(獨孤) 씨의 나라였으며 옛적에 북경과 요동을 거느린 강대국이었던 대연(大燕)으로 정하며, 연호를 연원(燕元)으로 삼을 것이다! 너희는 대연의 백성이자 군대이며, 명나라 황제를 사로잡아 천명(天命)을 얻은 뒤에 복록을 누릴 것이다!”

이번 전쟁의 목적은 명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전부였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죽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명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조선이 개입할 것이 분명하니, 그 이상은 하고 싶어도 못 할 상황이 아닌가.

반면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대연(大燕)이라는 국호를 외치고 황상 만세라는 소리로 주변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여송은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말한 연나라는 오대십국 시대의 연나라이며, 당나라 말기의 군벌이 세운 나라였다.

고작 삼 년조차 버티지 못한 나라이며, 황제는 걸왕(桀王)에 비교할 정도로 포악한 자였다.

이런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여긴 이여송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미 짐에게는 십만 대군이 있으며, 그들은 서반아에서 명성이 자자한 삼수군(三手軍)의 방식대로 훈련하였으니 척가군과 능히 겨룰 수 있다. 백만 대군이라 하여도 상대할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는 정병 4만 명에 보인 4만 명으로 십만 대군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기세가 중요한 법이었다.

이여송은 제반 문제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명령을 하달하였다.

“후일에 벌어질 문제는 황제를 포로로 잡은 이후 해결할 수 있으니 당장 움직여라! 짐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면 조선군도 발길을 돌릴 것이요, 천하의 모든 이들이 복속할 것이다!”

이틀 전에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영악한지 멍청한지 모를 황제는 머나먼 남경으로 가 있었다.

혹여나 엉뚱하게 천자에 오를 위험도 없어진 이여송은 진군을 실시해 명나라가 그나마 관리하는 송산(松山) 요새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저 앞에 요새가 보이는구나! 마음대로 화포를 쏘아 요새를 무너뜨려라!”

“지엄하신 황상께서 명하신다! 어서 화포를 쏘아 요새를 무너뜨리고 마음대로 약탈하라!”

요동의 도적들, 이제는 대연의 병사들이라 칭하는 이들의 습격을 받은 송산 요새는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기를 올리기 위해 5문만 배치한 홍이포의 일제사격이 날아들자 요새 안에서는 반격이랍시고 화포로 응사하였다.

그러나 요새에서 날아온 화포는 대연군의 진영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고 들판에 곤두박질쳤다.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된 대연군의 모습을 본 이여송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듣자 하니 명국에서는 두 종류의 장수가 있다 하더구나. 부패하여 떼어먹는 놈과 부패하지 않아 떼어먹히는 놈이 있다지. 화약을 빼돌리려고 돌가루를 섞은 것이 분명하니 함락하고 모두 목을 쳐라! 짐의 대연에 부패한 놈들은 필요가 없다!”

불량 화약을 사용한 화포는 하나둘씩 망가졌고, 화살만 감당하면 되는 대연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사다리를 걸고 성으로 뛰어올랐다.

최소 닷새, 예상대로면 한 달은 버텨야 할 송산 요새가 단 한나절 만에 무너지자, 대연군의 사기는 끝없이 치솟았다.

그나마 제대로 된 장수들과 병사는 사력을 다해 저항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눈을 부릅뜬 장수의 시신을 확인한 이여송은 눈을 직접 감겨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성에 들어오자마자 뇌물을 받았던 관리들이 아첨을 떨기에 짜증을 내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저놈들은 온갖 복록을 누려서 살이 투실투실하게 올라 있으니, 그걸 모조리 태워 없애야 한다. 구덩이를 만들어 불을 피우고 산 채로 던져 넣어라. 대신 제대로 싸운 이들은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어라.”

“이보시오, 독고율! 내가 당신에게 받은 돈이 얼마인데!”

“짐을 휘(諱)로 부르다니, 저놈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서 불구덩이에 던져라. 네놈들에게 보낸 돈을 회수할 때가 되었으니, 몸뚱이는 필요가 없지 않더냐? 어서 죽여라!”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불길이 치솟아 올랐으며, 그 안으로 부패한 관료들이 사지를 묶인 채 던져졌다.

이여송은 흡족한 표정으로 시커먼 연기를 바라보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였다.

이후 금주와 영원 일대를 한 달 만에 돌파한 이여송의 대연군은 천하제일관이라 명성이 자자한 산해관 앞에 도열하였다.

그렇게 도착한 이여송이 산해관을 보고 다른 관문과 같을 것이라 여겨 잠시 방심한 순간, 관문에 배치된 12문의 천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대열이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가 하늘로 솟구치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화들짝 놀란 이여송은 요새를 확인해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천하제일관이라고 제대로 된 장수가 머물고 있구나. 이번 공성전에서 승리하면 북경까지 아무도 나설 수 없으니, 모든 화포를 동원하라!”

공성전에서 공격자가 취할 방식은 세 가지로 대표되었다.

장기전을 준비하여 토굴을 파거나, 인원을 앞세워 희생을 감수하는 법, 그리고 더욱 많은 화포로 성을 무너뜨리는 법이었다.

컬버린 서른 문과 기타 화포를 합치면 90문에 달하는 화포가 있었으나, 화약이 부족한 것이 한이었다.

이여송은 최대한 화력을 집중해 성을 무너뜨리기로 작정하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작가의 말

이연 : 우리는 요청이 오면 진군한다. 그나저나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오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