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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30화 (530/573)

근육조선 530화

2부 29장 2화 모든 것이 필요 없는 자

내가 심양에서 돌아와 정식 보고를 올리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다.

명분상으로는 북원에 대한 공세를 진행할 것이라 하였지만 명백히 북경을 향한 칼날을 준비한다는 보고였다.

“신은 물론이요, 임차손이 심양 일대를 상세히 시찰한 결과 명백한 변란의 조짐이 보였나이다. 독고율은 경진만란에서 북원에 팔려나간 서반아의 패잔병을 거둬들여 공성에 쓰일 화포를 만들고 삼수병에 준하는 병사들을 육성하였나이다.”

“참으로 흉측한 일이로구나. 임차손 자네가 보기에는 요동의 병력이 얼마나 강성한가. 또한 수많은 군세를 통솔하려면 장수의 자질 또한 탁월해야 할 터인데 독고율은 어떠한 인물인가.”

“아국의 오위보다는 못 한 경지이지만 제대로 된 군사를 훈련시키고 있사옵니다. 또한 군문에 능한 사람인지라 첩보와 정탐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지극히 위험한 흉적이 분명하옵니다.”

임차손도 독고율이 도적 출신이 아닌 군문에 속한 사람이라는 예측을 하였고, 나도 이여송이라는 진실은 마음속에 담아둔 채 명나라 장수 출신이 분명하다고 동의하였다.

주상전하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자 관원들이 나서서 말하였다.

“신 김명원 아뢰옵나이다. 명백한 변란을 준비하고 있사오니 당장 오위를 이끌고 독고율을 토벌하시옵소서. 만에 하나라도 북경이 함락당하는 날에는 돌이킬 수 없사옵니다.”

정론이지만 요동을 먹어치우려는 주상전하가 싫어할 만한 말이지.

주상전하께서는 당장 독고율을 토벌하라는 말이 이어지자 손사래를 치면서 고함을 쳤다.

“나도 지쳤다! 지치다 못해 명나라와 연관된 일만 벌어지면 눈이 찌푸려지고 손이 떨릴 지경이 되었단 말이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르고 명나라와 연관되어 좋은 일이 있기는 하였더냐.”

주상전하께서는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는 발언을 하자 관원들 가운데 몇 명, 눈치가 아주 빠른 이이나 정치에 능한 김성일 등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관원들은 이를 만류하려 하였다.

주상전하께서는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말하였다.

“물론 명국 황상께서 수많은 황은을 내려주시기는 하였다. 그러나 황은을 내리지 않도록 명국을 올바로 통치하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느냐? 아무리 이문을 얻었다 하여도 수많은 아국의 병졸들이 명국과 연관되어 피를 흘리지 않았느냐!”

명나라와 얽혀서 이득을 챙겼지만 언제나 똥은 명나라가 싸고 수습은 조선이 하는 구도가 되었다.

가장 먼저 무인변란(戊寅變亂)이라 칭해진 요동 일대로 복원이 쳐들어온 사건이다.

여기서 조선은 요동 도적을 소탕했지만 근본 원인은 명나라에 있었다.

다음 사건은 경진만란인데 이는 명나라의 명백한 자폭이었으니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왜변? 애초에 육주성에서 막아낼 수 있는 일을 막아내지 못하고 조선까지 침략할 발판을 마련해 줬다. 심지어 뒷수습도 모조리 조선이 해버렸다.

비록 만력제가 조선을 아껴서 수많은 금은보화를 내려줬지만 이는 사고를 치고 피해보상금을 듬뿍 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상전하께서는 심호흡을 하며 표정관리를 하더니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이번 요동의 변란에 대해서 명국의 명백한 참전 요청이 떨어지기 이전에는 병사를 동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번국(藩國)이 상국을 보좌해야 함은 마땅하지만 상국이 모범을 보일 적에야 가능한 일이다.”

“북경이 함락되고 수많은 도적들이 이에 응하면 명국의 명운이 위태로울 지경이옵니다.”

“그게 뭐 대수라 하느냐. 명국이 제정신을 차려 홍무제의 시기처럼 백만 대군을 이끌 수 있다면 독고율이 열 명이 있다 하여도 적수가 될 길이 없지 않더냐.”

이여송은 앞으로 여섯 달만 자신을 내버려 두라 하였다. 지금이 1598년 1월이니 6월 이전에는 산해관을 공격하며 명나라의 북경을 노린 대공세를 시작하리라.

다른 관료들은 주상전하의 결정에 반대하였지만 나를 비롯하여 주상전하의 뜻을 눈치챈 이이나 김성원을 비롯한 소수의 관료들은 침묵으로 동의하였다.

여러 번의 언쟁이 끝나고 결론이 정해지고 주상전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미 북경으로 나아간 이들에게 조사한 바를 면밀히 정리하여 황상께 보고토록 하여라. 변란이 긴급히 일어난다면 위태로울 수도 있으나 미리 알고 대처한다면 지금 명국의 힘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처가 이루어질 이유는 없겠지만, 이여송 정도의 인물이면 명나라 정계에 대해 제법 지식이 있으며 뇌물을 먹이고 회유하여 설득을 하여 만력제의 시야를 흐트러트려 놓으리라.

안타까운 점은 친조선 관료들 가운데 희생양이 있을 것 같은데 이는 이여송이 알아서 조절하리라.

친조선 관료들은 대부분 요동을 정상화시키려는 사람들이었으니 다 죽이지는 않겠지.

* * *

만력제를 향한 선물 공세는 십 년 이상 칩거하였던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수준이었다.

오래간만에 칩거에서 벗어나 궐로 나온 만력제는 장남 주상락의 인사를 받았다.

“아바마마 기침하셨사옵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용안이 밝으시며 성심이 지극하시니 소자의 마음이…….”

“네 손에 붓을 들어 생긴 굳은살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차라리 복왕 상순(常洵: 주상순)이 나았을 것 같다.”

태업을 일삼는 황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효심이 지극한 주상락, 후일의 태창제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한사코 배움을 이어갈 것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명나라의 태자치고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본래 역사와 달리 아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만력제이니 태자 책봉을 딱히 미루지 않았지만 장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동일하였다.

장남을 없는 사람 취급한 만력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삼남 주상순을 찾아가 품에 안으며 말하였다.

“소자 아바마마께 인사를 올리옵나이다. 일전에 전해주신 웃는 사슴(쿼카)이 두 마리나 죽었으니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염려하지 말거라. 내가 조선에 연통을 넣어 웃는 사슴을 더욱 많이 데려오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의복에 올이 나가 있는데 이런 비루한 몰골을 하다니!”

“잠시 밤앵무와 놀다 할퀴어졌으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니다! 내관들은 뭘 하는가! 당장 복왕(福王)에게 배정된 시녀 중 의복을 담당하는 자에게 곤장 서른 대를 치고 변방으로 쫓아내 버려라!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곤장 예순 대로 늘리겠다!”

본래 역사에서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사흘에 한 번꼴로 사람을 구타해 죽였던 만력제이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있었다. 반면 복왕 주상순은 더욱 혹독한 탐학을 일삼으니 명나라의 꼴은 비슷하게 돌아갔다.

가장 아끼는 삼남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만력제는 대전으로 나서지 않고 엉뚱하게도 태의(太醫)가 머물고 있는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마침 서적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허준은 절을 올리며 만력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지엄하신 황상을 배알하오니 조선의 어의로서 지나친 영광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조선의 어의 가운데 탕약에 가장 능한 허준이라 하였느냐. 듣자 하니 두창(천연두)을 막아낼 방법은 물론이요, 본초강목에 없는 기화요초를 수없이 찾아냈다 들었다.”

“신의 부족한 재주를 황상께서 이리도 칭찬해 주시니 그 성은이 망극하오나 세상의 수많은 험지를 찾아다닌 이들이 고생을 하였으며 신은 그저 이를 수집하였을 따름이옵니다.”

“그 부족한 재주를 태의들에게도 가르쳐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구나. 자고로 두창을 막아낼 수 있다면 병마에 신음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천연두보다 무서운 것이 만력제의 사치와 태업으로 인한 관료들의 부패였지만 어찌 되었던 만력제의 흥미는 허준이 가져올 새로운 약재의 효과를 증명하는 데 있었다.

잠시 허준과 대화를 나눈 만력제는 환관을 지목하며 말하였다.

“학질을 막아내는 금계랍(金鷄蠟: 키니네)이라는 약을 찾아내다니 이는 태의들이 즐겨 사용해야 마땅하구나. 천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 약재이니 이자에게 황금 천 냥을 내주어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금 천 냥, 은으로는 일만 냥에 달하는 거액을 받게 된 허준은 다시 깊게 절을 올렸고 만력제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 장소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만력제가 가장 좋아할 만한 생물들이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일전에는 매양 웃는 사슴(쿼카)을 잔뜩 가져오더니 이번에는 참으로 기묘하게 생긴 여우를 데려왔구나. 대체 어디에 사는 녀석이기에 귀가 토끼만큼 크단 말인가.”

“듣자 하니 솔로몬국이라는 지역의 북방에 서식하는 여우를 힘들게 구해왔다 하옵니다.”

“과연 조선의 상인은 대범하구나. 이렇게 작은 여우를 데려오는 것조차 힘겨울 지언데 다섯 마리나 조공으로 올리다니. 짐이 이리도 귀여운 여우를 본 적이 없구나.”

사막여우들은 만력제의 품과 대전을 뛰어다니며 캥캥 소리를 내었고 환관들은 기회라는 듯이 사막여우와 놀고 있는 만력제에게 이런저런 정세를 이야기하였다.

평상시라면 극히 노하여 호통을 치고 곤장을 치라는 명을 내렸을 만력제이지만, 이 귀여운 사막여우들과 함께하니 여우들을 쓰다듬으며 멍하니 듣기만 하였다.

이윽고 한 소식이 만력제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요동에서 변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하였느냐.”

“실로 그러하옵니다. 이미 요동으로 다녀온 조선의…… 실제로는 황상께서 임명하신 독사 유성룡이 요동을 면밀히 시찰하고 장계를 첨부하였나이다.”

“당장 대전으로 나아가겠다. 모든 신료들을 집합시키도록.”

오랜만에 대전으로 나온 만력제를 확인한 대소신료들은 다시 정무에 임하려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조차 있었다.

십 년 이상을 칩거한 황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고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만력제는 옥좌에 앉으며 말하였다.

“그동안 적체된 업무에 대한 보고를 실시하도록.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만 당장 처리할 업무도 중요한 법이다. 산적한 서류를 당장 내오너라.”

십 년 넘게 적체된 업무는 많고도 많았지만 머리가 영민한 만력제는 가급적 빠르고 즉시 실시해야 할 업무부터 받아들여 처리하였다. 개중에는 형벌과 관련된 내용도 많이 있었다.

“수감된 죄수 가운데 사형수의 집행을 당장 실시하도록. 이미 오십여 명이 옥에서 노환으로 죽었으니 이 어찌 비루한 일이 아니더냐.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만 도합 삼백이십여 명에 달하는구나.”

만력제의 뛰어난 능력은 수많은 서류 가운데 심문 중 사망한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였고 대다수가 몰락한 가문의 후예임을 알아차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의 재산 대다수는 부패한 관리의 손으로 넘어갔으리라.

이윽고 재정 항목으로 넘어가자 만력제는 더 이상의 흥미를 두지 않았다.

애초에 태업을 실시한 이유가 지나치게 부패한 명나라의 내부 사정 때문이니 단 두 시간 만에 서류 업무가 종료되었고 만력제는 가장 관심을 두는 업무를 처리하였다.

“조선의 유성룡이 보내온 장계에 의하면 경략 독고율이 마음대로 사병을 훈련시키고 변란을 준비하고 있다 하였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구나.”

“신 오유충 아뢰옵나이다. 경략의 권한은 변방을 통솔하고 변란을 억제함에 있지만 병력이 오만여 명에 달할 지경이니 방비를 소홀히 하면 위험하옵니다. 적어도 금군을 보내 면밀히 조사해 봄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아니옵니다! 신 장세작 아뢰옵나이다. 근래에 들어 달자들의 준동이 심상치 않을 지경이옵니다. 이를 대비하는 행동을 번국에 불과한 조선이 불민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니 독고율은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사옵니다.”

만력제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대전을 돌아보았다.

이미 대소신료들의 사 할 이상이 친조선 관료이며 조선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 육 할도 제대로 된 사람은 없었다.

변란이 의심된다는 첩보를 입수하면 하나같이 이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처하자는 의견을 내놓는 것이 정상이다.

반면 지금 대전의 상황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신 양호 아뢰옵니다! 신이 직접 요동으로 나아가 목숨을 걸고 요동의 정황을 시찰하겠사오니 변란을 미연에 방지하시옵소서!”

“신 심유경 아뢰옵니다! 병부상서는 충심을 품은 유일한 경략 독고율을 탄핵하려 혈안이 된 것이 분명하옵니다. 대신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친조선 관료들은 목을 놓아 변란을 대비하자 말하고 반대편에 선 관료들은 하나같이 요동이 정상적이며 독고율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었다.

잠시 관료들의 복식을 눈여겨본 만력제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설령 요동에서 변란이 일어난다 하여도 천하제일관인 산해관이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짐은 괜한 일에 힘을 쏟지 않고 당분간은 정무에 임할 것이다.”

“폐하! 아니 되옵나이다! 변란의 싹은 미리 짓밟아두어야 하는 법이옵니다!”

“말이 들리지 않더냐!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는 이는 삭탈관직 할 것이다! 도적들이 변란을 일으킬 때에는 언제나 방심한 틈을 타서 엄습하는 법이다! 산해관의 방비를 철저히 하고 예비대를 충원할 준비를 마쳐두면 충분하다!”

삭탈관직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음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억지웃음을 이어간 만력제는 대소신료들의 몰골을 보며 코웃음까지 쳐댔다.

조선의 후원을 받는 친조선 관료들의 복식이 화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반면 후원을 받지 못해 돈이 궁한 나머지 관료들의 복식도 화려했다.

이들은 뇌물로도 모자라 멀쩡한 부자에게 죄를 덮어씌워 재산을 약탈하거나 아예 약식 심문 중에 장살(杖殺)할 정도로 돈에 굶주려 있었으니 벌일 행적은 분명하였다.

이들이 요동에서 수상한 행동을 벌이는 독고율을 감싸고 도는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독고율은 변란을 준비하기 전에 경계를 풀기 위해 수많은 뇌물을 바쳤으리라.

만력제는 이를 재차 확인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선언하였다.

“쌓인 업무가 지나치게 많고도 험하구나. 특히나 경진만란 이후 남경에 배정된 군대와 조선의 병사들이 새로 구성한 남경의 방어선을 확인하는 업무가 중요하겠구나.”

“지극히 중요한 업무이옵나이다. 하오나 조선이 방비에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된 군관만 배정해 두면 경진만란의 세 배에 달하는 변란이 벌어져도 능히 막아낼 수 있사옵니다.”

남경 일대의 방어체계는 조선군이 몇 년간 주둔하면서 완전히 뜯어고쳐졌다.

비효율적인 성벽 구조를 개선하고 주변의 수많은 요새를 쌓아 조선군조차도 전력을 동원해야 단기간에 뚫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굳이 황제가 직접 방문하여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북경에 머물며 서면 보고를 받으면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만력제는 오유충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 외에도 남경에서 행할 업무가 산더미 같은데 단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오유충의 좁은 식견을 보내 내 속이 갑갑할 지경이구나. 십 년 동안 적체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짐이 움직이는 것이 답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경에 만력제가 머물며 업무를 진행하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다면 조정을 절반으로 나누는 꼴이라 조금 비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업무 진척 속도는 빨라지리라.

만력제는 대전을 거닐며 신료들을 하나씩 지목하고는 말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지목한 이들은 남경으로 동행하여 정무를 수행하도록. 혹여나 변란이 발생하게 되면 황후의 허락하에 보정대신이 정치를 하며 태자인 상락(常洛: 주상락의 휘)이 간단한 정무를 처리하게 하여라.”

“하오나 태자께서는 아직 약관(弱冠)에도 미치지 못하여 작년에 관례를 올렸사옵니다.”

“내가 알기로 자네들 모두가 말하기를 태자의 자질이 비범하여 여느 관원들과 견줄 수 없을 지경이라 하였는데 이 말이 기군망상이란 말이더냐.”

평상시에는 만력제에게 없는 자식 취급을 당하다가 갑자기 정무를 처리하게 된 주상락은 드디어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졌다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만력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대전을 나서며 선언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복왕이 요즘 근심이 많은 것 같으니 짐과 함께 남경으로 나아갈 것이다. 혹여나 변고가 일어나더라도 태자가 진두지휘하며 모범을 보이도록.”

태자가 절을 올렸지만 만력제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싸늘하게 웃으며 주상순과 함께 남경으로 향하였다.

대부분 친조선 관료들과 함께한 대열인지라 북경에 남을 관료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만력제의 뜻은 정해져 있었다.

관원들에게 뇌물을 먹인 독고율의 행동을 보건데 산해관을 뚫고 북경을 함락시킬 확실한 수를 가지고 있으리라.

태자는 죽거나 포로로 잡히면 이를 명분으로 폐하고 북경에 남아 있는 부패한 관료들은 독고율에게 응할 것이니 나중에 죽이면 충분하다.

이후에는 친정(親征)을 선포하고 조선군이 후방을 자신이 전방을 담당하여 독고율을 죽이면 더할 나위 없는 이득이다. 비록 북경이 조금 망가지겠지만 눈엣가시들을 치우는 비용이라 생각하면 크게 아깝지 않았다.

만력제는 배에 올라 오유충에게 확인차 질문을 하였다.

“오유충 자네가 보는 독고율은 어떠한 사람인가? 생각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 분명한가?”

“위험한 자이옵니다. 위험하다는 뜻은 생각이 똑바로 박히고 변란을 준비한다는 말과 같사옵니다. 진린이 산해관을 막고 있으니 준비만 철저히 하면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공격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으니 오유충을 비롯한 군관들도 미리 대비하면 막아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력제의 속내를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배는 하염없이 운하를 가로지르며 남경으로 향하였다.

#작가의 말

만력제 : 설마 북경이 함락당하겠어? 함락당해도 그리 큰 피해는 안 입고 내가 친정에 나서면 복구도 금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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