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22화
2부 28장 6화 불공정 거래
만천서원에 유교, 불교, 그리고 천주교의 세 종교가 모여서 화합이 아닌 근육을 겨루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났다.
근무 이전의 입신체비를 위해 새벽부터 달리기를 시작하니 저 멀리서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가장 웅장한 근육은 역시 유생들이 가지고 있었다. 관원들도 있었지만 선대가 실책을 저질렀을 경우 이를 반성하기 위해 훈도 생활을 이런 변방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그들의 외침은 다른 종교보다 입신체비로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었다.
“고기도 맘대로 못 먹는 민대가리들에게!”
“지지 마라!”
“금요일이라는 날마다 고기를 안 먹는 속머리 없는 것들에게!”
“근육을 알려줘라!”
당연히 입신체비로 모범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이라 온몸에 힘이 넘치고 절제된 기세를 휘감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나와 천양지차인 모습을 보이니 흐뭇한 마음에 대열에 합류하며 말하였다.
“벌써 일 년이 지나가는데 다들 살아보니 어떠한가?”
“자질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 있으며 다들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후일이 되어 학문을 가르쳐 대성할 이들이 생겨날 것 같습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땅이군요!”
대열 뒤에는 농민 가운데 형편을 필 만큼 펴서 한문도 익혀 서원에 들락거리며 학문을 익히는 이들이 있었다.
흐뭇한 마음에 뒤를 슬쩍슬쩍 살펴보니 번뜩이는 대열이 뒤로 따라붙었고 내 옆에서 뛰어다니던 이항복은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뒤통수가 훤해지는 것 같으니 승려들이 우리의 뒤에서 입신체비를 실시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불씨라 삿된 믿음을 퍼트리지만 미주인들을 교화시키는 일에는 참으로 능하더군요.”
“저들 덕분에 미주인들이 삽시간에 군사로 쓰일 정도로 교화되었으며 아국에 더더욱 의존하게 되었지.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네.”
사명대사를 비롯한 승려들 아래로 모여든 미주인들은 벌써 삼천여 명이 넘어갔다. 신도가 늘어나는 기세에 맞추어 보총과 장총통의 보급도 계속되었으며 미주인들은 이제 총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총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문명이 발달하였기에 최소 수십 년이 지나야 총을 수리라도 할 수 있을 기술력을 갖춘다던가.
이들도 우리의 외침을 듣고 목소리를 늘렸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이 함께하시니!”
“언제까지나 입신체비를 즐기리라!”
옛날이라면 불씨들이 삿된 목소리를 높이냐는 불호령이 떨어질 상황이었지만 유생들은 코웃음을 치며 더욱 힘찬 발걸음으로 답하였다.
입신체비라는 틀 안에서 인종과 종교의 차별은 옛말이 된 지 오래였다.
만천서원 터로 배정된 지역을 한 바퀴 돌면 대충 조선 기준으로 20리(8㎞)에 달하여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을 덥히기 딱 좋은 수준이었는데 보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의아하여 만천서원으로 돌아가니 신부들이 이미 입신체비를 즐기고 있었다.
“관찰사 대감께서 이제야 당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는 이미 한 각(15분) 이전부터 입신체비를 시행하고 있었지요.”
후성(휴스턴) 주교구의 임시 주교로 임명된 세스페데스는 신부들을 관리하는 주교의 입장에서 입신체비를 진두지휘하였다. 나이를 먹어 그의 근육은 성장하지 않았으나 다른 신부들의 근육은 일 년 사이에 부쩍 자라났다.
조선에서는 죽지 못해 신자들과 함께 입신체비를 하였지만, 여기서는 주교 명령으로 입신체비를 실시하니 도망칠 구석조차 없었다.
유생들은 대역기에 매달린 신부들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성균관에 있을 적에 학문과 입신체비를 익힌 적이 있었지. 저리도 몸을 매섭게 단련하니 옛 추억이 떠올라 대둔근을 더욱 단련하고 싶어지는군.”
“소승 또한 어릴 적에 휴정(休靜: 서산대사) 대사님에게 입신체비를 사사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가 무량합니다. 눈빛에 독기가 사려있어 예사롭지 않지만 이 또한 좋은 일이지요.”
조선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입신체비를 익혀와 저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현대인이고 입신체비를 피해왔던 사람이라 이해할 수 있었다.
입신체비를 일 년 동안 반강제로 익힌 신부들은 하나같이 ‘내가 주교가 되면 신부들을 이렇게 다루리라’라는 아주 올바른 눈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한 신부의 대역기에 공령을 꽂아주며 말하였다.
“세스페데스 신부가 저리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마음이 흡족하면서도 자칫 사람들의 몸에 무리가 갈까 염려될 지경이구려. 내가 조금 조절해 보겠소이다.”
“몸에 무리가 갈까 조절한다 하셨으면서 왜 공령을 더 꽂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미운 제자에게 공령 하나 더 얹는다는 속담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군요.”
“이 신부의 세례명이 요한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체격과 몸에 근육이 붙는 속도로 보면 삼대운동 일천일백여 근까지는 가능할 정도로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하지 않소.”
신부가 뭐라 입술을 달싹거리며 수호성인 어쩌고 말하는데 아직 한계 중량까지 여유가 있으니 공령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만천서원 중앙의 입신체비장은 순식간에 세 종교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쇠질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나도 오십이 넘어 체력이 저하되어 숨이 가빠왔지만, 이렇게 잘 정제된 몸을 허투루 놀릴 수 없으니 의압(벤치 프레스)을 맹렬히 하며 떨려오는 근육을 손으로 주물러 풀어댔다.
이 좋은 환경에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입신체비 기구가 부족하다. 북쪽의 철광을 개발하여 철이 생산되지만, 제대로 된 강철을 만들 수 없는 질이 떨어지는 철광이라 연철과 무쇠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중량을 한껏 올려야 하는데 이런 회역기로는 영압(밀리터리 프레스) 조차도 가벼울 지경이로군. 적당히 하시고 비키시구려.”
“알겠소이다. 주교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입신체비를 조금 늦출까 합니다.”
기구가 부족하니 신부들은 양보한다는 말을 변명으로 삼아 입신체비를 덜 하기 시작하였고, 굴러온 돌 입장인 세스페데스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이해하였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신분 차이에 따라 입신체비에 격차가 생길 것 같아 안타깝다.
더군다나 부위 운동에 최적화된 기구의 수량도 부족하여 답답한 지경이었는데 강을 따라 나룻배가 올라오더니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내놓았다.
“체암(遞菴: 나대용의 호)께서 짬을 내어 입신체비기구를 만드는 일을 도와주셔서 많은 기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급히 짐을 올리느라 연락이 늦었으니 어서 받아주시지요.”
“이건 활대(스미스 머신)를 비롯하여 직압기(숄더 프레스 기구)를 비롯한 입신체비 기구가 아닌가? 그 친구는 영길리의 배를 연구하느라 시일이 부족하다 하던데 언제 이걸 다 만들었나.”
“이미 석 달 전부터 실시 설계에 들어가 지금쯤 새로운 배를 시험해보고 있다 합니다. 덕분에 매일같이 야근이지만 오히려 입신체비기구를 만들며 몸을 다루는 법을 익혀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군요.”
나대용은 일 년 전쯤에 영국 출신 상인이자 선박 기술자와 접촉하여 기술을 공유한다 하였는데 언제 이렇게 기술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영국에서 대놓고 기술을 유출할 수준이어야 가능하지만 아무튼 좋은 일이 아닌가.
입신체비기구들이 하나씩 옮겨지며 조립되자 잠시간의 안식을 즐기고 있던 신부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야 당연한 것이 기구들을 사용하면 부상 염려가 없는 가혹한 부위단련이 시작된다.
유생들은 멀뚱히 서 있는 신부들을 기구 앞에 세우며 말하였다.
“자네들은 아직 입신체비의 경지가 부족하여 과도한 중량을 다룰 수 없어 안타까운 형편이었는데 드디어 기구가 도착하였군! 자네들에게 부족한 부위단련을 철저히 알려줄 것이니 어서 기구를 사용하게!”
“이 친구들 도성에서 입신체비를 배우고 오 년도 지나지 않았지?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이니 기구들은 모두 자네들이 사용하도록 하게나.”
나대용이 조금 힘을 써준 덕분에 저런 기구들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상황이 급격히 변했으니 감영으로 돌아가며 금주에서 온 군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신형 선박이 시험에 들어가다니 충분히 많은 목업(木業: 목재 모형)으로 시험은 해보았겠지? 지난번 사태처럼 용골이 풀려나면 어쩔 수 없이 벌을 내려야 한다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예 영길리 출신 상인이 배를 마음대로 분해하라고 두 척이나 판매하여 마음대로 분해하고 철저히 이해했다 하더군요.”
그 정도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에는 임기가 끝나서 귀국해야 하니 금주에 들러서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였다.
* * *
삼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받아들였던 금주의 정착촌은 텅텅 비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다.
간헐적으로 이주민들이 오는지 기껏해야 삼천여 명에 불과한 사람이 있었는데 신주랑은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말하였다.
“관찰사님께서 백성들에게 정음을 널리 퍼트린 덕분에 정음으로 서신을 쓰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특히나 하주도에 머물다 아국의 간척지로 이주한 옛 하주도인 들이 친척의 서신을 받고 이주를 정하더군요.”
“사람이 늘어나도 염려는 없지만 나는 더욱 많은 사람이 미주에 정착하기를 원하고 있다네. 그러한 일이야 훗날이 되어 송강(정철의 호)이 알아서 글을 퍼트려 할 일이긴 하지만.”
“역시 관찰사님 아니랄까 봐 업무가 늘어날수록 기뻐하시는 것 같군요. 하긴 새로 개척한 동요현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저도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나중에는 동요현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신주랑도 슬며시 웃으며 농담을 받아냈는데 아마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 땅에서 뼈를 묻으려는 마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신주랑에게 보고를 정리하라 하고 항구로 향하니 금주만(캘리포니아 만)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선박이 움직이고 있었다.
돛의 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깝고 크기가 비대하니 하와이 출신들이 몰고 다니는 배의 돛과 흡사한 형태였다. 속도 또한 예사롭지 않아 양산 이전의 시험용 선박임에도 어중간한 쾌속선과 비교할 정도로 빨랐다.
“드디어 조립식 용골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금주만(캘리포니아 만)의 파도가 잔잔하다 하지만 저렇게 급격히 배를 틀어도 멀쩡하지 않습니까?”
나를 확인한 나대용이 선박을 가리켰는데 그의 말대로 배는 매끄럽게 움직이며 물결을 가로지르고 바람을 받아 순식간에 가속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온 측풍에 배가 급격히 기울어지니 나대용은 즉석에서 수정 사항을 적으며 중얼거렸다.
“역시나 조립식 용골로 크게 만든 배와 하바이이 사람들의 돛을 개조한 녀석을 합치면 무리가 가는군요. 이 배를 그대로 쓰다가는 넘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배가 옆으로 자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들었네. 이를테면 화포의 구경을 지나치게 키워 무게중심이 맞지 않다거나 설계보다 많은 사람이 탔을 경우에 한해서이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하였는걸?”
“애초에 새로운 배를 만들려면 바다에 수많은 시험 선박을 가라앉혀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듣자 하니 아국의 선박의 틀을 뒤엎은 방대인(大人: 방길주)께서도 새로운 선박 한 척을 만들기 전까지 스무 척은 가라앉혔다 하더군요. 대신에 저는…….”
나대용이 말끝을 흐리고 옆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영국 상인을 쳐다보았는데, 상인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인사를 올렸다. 복식은 영국 선장 특유의 코트를 걸치고 있지만 제법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상인으로 사치스러운 장신구도 없고 손의 굳은살은 칼을 제법 휘둘러 본 것이 분명하니 예사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을 하였다.
“이미 소개는 받았겠지만 조선의 관찰사 서애 유성룡일세.”
“잉글랜드에서 상인으로 일하던 갈포드라 합니다. 호주에서 조선으로 짐을 옮기다 이 땅이 마음에 들어 정착하기를 원하였지요. 아직 이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회 하나만 내보려 합니다.”
“상회 하나를 낸다니. 여기는 엄연히 율도상회가 머무는 지역이라 텃세가 만만치 않을 텐데.”
“텃세야 언제나 있는 법이지요. 상인으로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상회가 돌아가기는 합니까? 제법 많은 자금이 들겠지만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리 봐도 사람 좋은 미소를 하지만 의심스러운 말만 하고 있다. 이 머나먼 이역만리까지 일개 상인이 외서 상회를 건립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율도상회를 상대하려면 최소한 수십 척 규모 선단 단위로 무역을 성사하고 틀을 잡아야지 불가능한 일을 덮어놓고 한다면 꿍꿍이가 있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갈포드를 주시하고 있던 이회가 귓속말을 건넸다.
“참으로 수상한 사람입니다. 상인 주제에 함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배를 덮어놓고 팔아치운 것도 수상한 데다 이를 빌미로 삼아 아국의 군선을 마음대로 염탐하려 하더군요.”
“그러하면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 사람인가? 내가 듣기에도 의심하지만 나는 갈포드란 사람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였다네.”
“제가 보기에는 영길리의 군문에 속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얼마 전에 영길리의 글로 된 서신 조각을 입수하였는데 부친의 성함이 적혀 있는 것 같더군요.”
자신을 평가할 때 아버지 이순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이회이지만 이순신의 절반이면 어지간한 천재 수준이 아니다.
잠시 만나보아도 의심스러운 데다 이회의 말이 틀리지는 않으니 갈포드는 분명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보낸 첩자이리라.
첩자라 해도 공개적으로 일하는 첩자는 양국 간에 부설된 창구나 마찬가지이니 쫓아낼 생각을 하지 말고 최대한도의 정보를 뽑아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배의 상황을 적어나가는 나대용 대신 갈포드를 저 멀리 데려가 덮어놓고 물어보았다.
“내가 관찰사이니 허심탄회하게 말을 털어놓아 보게. 아국의 군문에 대해 어떠한 지식을 원하고 있는 겐가? 대체 무얼 원하기에 중요한 배의 설계를 알려주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조선에는 서애 유라 하는 대신이 있는데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고 악행을 저지르려 하면 열 곱절로 갚는 사람이라 하더군요. 저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 휘하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조선 수군의 비결을 알아내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군. 자네를 당장 쫓아낼 생각은 없으니 무슨 비결을 원하는지 말해보게. 화포야 언제든지 팔아치울 수 있으니 화포는 아니겠군.”
“대체 그 전투력을 어떻게 얻어냈는지 궁금합니다. 드레이크 제독은 물론이요, 잉글랜드의 장성들이 모두 모여 분석하여도 답이 나오지 않아 훈련을 염탐하려 하였습니다.”
이순신이 캐번디시라는 해적을 토벌하였다는 서신은 본 적이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위업을 달성한 이순신이야 덤덤하게 당시 전투는 기본만 했다 표현했지만, 그 기본은 이 시대 기준으로 최고 수준의 훈련도가 필요하다.
모든 수군 병사에게 훈민정음은 물론이요 간단한 한자를 가르치며 최소한 삼대운동 600근 이상의 입신체비를 실시한다.
야간 항해훈련을 좌초 위험이 있는 산호초 사이를 통과하게 하여 합격 여부를 결정하며 사격 훈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비결이라 할 것도 없었다. 돈 퍼먹는 기계인 수군을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방식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갈포드를 옆으로 흘겨보다가 태연하게 말하였다.
“여기에 머물고 있는 군관인 무백(茂白: 이회의 자)은 내 벗 여해의 장남일세. 호부견자라는 말이 없듯이 부족함이 없고 빼어난 사람이니 그의 훈련법을 모조리 배우게나.”
“네? 모조리 배우라 하시다니 말이 안 됩니다! 본래 군사 기밀은 퍼트리는 법이 아닙니다!”
“배울 수 있으면 마음대로 배워보라 하였네. 오히려 자네들이 훈련법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한 방식으로 아국에 새로운 훈련법을 전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예 입을 벌리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갈포드를 보며 이회까지 불러왔다.
이회 또한 내 말을 듣고 있었는지 가슴을 편 채로 당당하게 내 말을 받아들였다.
“자네가 부친인 여해의 소식을 많이 접했을 것이라 믿겠네. 이 친구가 원하는 대로 수군의 훈련을 견학할 수 있도록 하되 사표를 비롯한 자료만큼은 넘겨주지 말게.”
“부친께서 행하는 훈련이 아주 특별한 훈련은 아니지요. 그저 기본에만 철저할 뿐이며 그 철저함을 몇 년간 유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수군에게 글을 가르치고 작전을 엄수하게 만들며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사표를 바탕으로 사격술까지 익히게 하는 방식을 따라 하려면 따라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예산 소모는 물론이요, 이를 평소 생활처럼 반복하는 장수가 필요하다.
영국이 이를 알아낸다 하여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는 입신체비와 같았다. 조선 사람이 힘이 세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 힘을 경외하지만 힘을 따라오려 하면 동일한 양의 입신체비를 실시해야 한다.
갈포드는 좋다고 조선 수군 훈련 정보를 입수하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훈련임을 확인하고 절망하리라.
그러나 절망할 예정이라 하여도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나는 갈포드에게 엄숙히 말하였다.
“그 대가로 자네는 영길리에 서신을 보내 선박의 설계도 여럿을 가져오게 하게. 이미 자네의 선박을 분해하여 연구해 보았으니 다른 선박의 설계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표 개념을 제외하면 평범한 훈련을 가르쳐 주고 신형 선박 설계도를 받으면 이득이지.
오히려 갈포드는 이럴 때를 대비했다는 듯이 둘둘 말린 양피지를 잔뜩 가져왔다.
이미 준비한 입장이니 더 시간 쓸 필요가 없어서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작가의 말
프랜시스 드레이크 : 조선 수군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순신 : 간단하다네. 글을 가르치며 지식을 욱여넣고 근육을 기르며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네. 이걸 삼 년 이상 반복하면 된다네.
프랜시스 드레이크 : 간단해? 장난치나?
이순신 : 내 입장에서는 숨 쉬듯 간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