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21화 (521/573)

근육조선 521화

2부 28장 5화 열도는 지금

조선의 역공으로 처참히 몰락하였다가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한 일본은 그럭저럭 국가의 형체를 다시 갖춘 것 같이 보였다. 이미 잿더미가 된 교토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 도시를 재건하고 있었다.

“거기! 조선에서 제공한 회화대로 건물을 복원하려 하지 마라! 조선에서 창안한 방식대로 건물을 가볍게 만들어두고 후일 부흥할 때에 다시 지으면 충분하다!”

거대한 백마 위에 올라 지휘봉을 휘두르는 이가 있었으니 명나라로부터 공식적인 쇼군이자 일본 왕에 임명된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였다.

그의 지휘봉이 휘둘러지자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며 명령을 이행하려 하였다.

“이런 공사 현장까지 진두지휘하시는 분일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이렇게 짓는 것 맞아? 은각사면 좀 더 고즈넉하고 우아한 모습을…….”

“시키는 대로 해야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흉측한 기병들이 우리를 모조리 짓밟을 걸세. 저 친구들은 쇼군께서 명을 내리면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더군.”

교토에는 조선에서 전수해 준 경목조 주택, 현대의 경량 목구조로 지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593년 시작된 공사는 1595년 정월 대보름을 코앞에 두고 절반 이상이 진행되었다. 물론 고증을 지킬 여력도 없어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건물만 세울 뿐이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한때 교토를 방문했던 안평대군이 남긴 회화와 각지에서 수습한 건물의 회화를 확인해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교토를 복구하는 데 백 년은 족히 걸리겠는데. 하긴 예산도 부족하고 채무도 갚아야 하는 형편인데 사람이라도 살게 두어야 돈을 벌 수 있지. 현장에 나무가 좀 부족한데 자네들이 조금 썰어내 주면 좋겠군.”

“예이 알겠습니다. 거기 자네들 뭣 하나? 자네들의 근육이 중요하지 체면이 중요한가?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는 하체도 상체도 모조리 근육이 빠질 텐데?”

다테 마사무네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고란이 명령이 아닌 부탁을 받아 전하자 거대한 고깔은 물론이요, 온몸에 휘황찬란한 황동색의 갑주를 입은 기병들이 말에서 내려 자신들이 만든 근력제제소로 달려갔다.

수십 명의 일본인들이 근력 제재소에 달라붙어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며 나무를 썰어냈으나, 북인 출신 기병들은 머리 하나는 큰 체격을 자랑하며 이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내었다.

아예 목덜미를 잡아 옮기니 다들 질겁하며 자리를 피하였다.

“힘도 없는 놈들이 까불지 말고 나무나 날라라! 어서 맞춰 서! 구령에 맞춰서 밟고 당기자고!”

고작 열 명의 북인 출신 기병들이 달라붙자 아름드리나무가 삽시간에 썰려 나가며 각목으로 탈바꿈하였고 공사 현장으로 옮겨져 건물의 기둥으로 쓰였다.

지체가 높은 기마무사들이 막노동하는 인부와 같은 모습을 보이자 다테를 우러러보는 시선이 더욱 많아졌다.

“저걸 보세나. 조선에서 들여온 기병이라 하여도 쇼군께서 명령을 내리면 철통같이 이행하지 않는가. 쇼군께서는 조선의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그 이상으로 간섭을 당하진 않으시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로군. 그나저나 자네 말투가 좀 어눌한 것이 어디…….”

“거 뭘 따지고 드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센다이에서 죽어라 일하다 온 대목장일세. 다테 님을 따라 여기까지 오면서 집안의 채무를 모조리 갚을 돈을 만들었지.”

바람잡이 몇 명이 상황을 설명하자 인부들은 다테를 칭송하며 공사 현장에 매달려 업무에 매진하였다. 그나마 민심은 사로잡을 수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였으니 조만간 실시될 다이묘 회의가 있었다.

다테는 도끼날을 손질하는 고란에게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 그 친구는 작년에는 회의에 불참하더니 올해에는 참가하던가?”

오우치 가문은 이미 유전적으로는 절멸하여 양자가 이어가고 있었다.

조선을 배신한 현 가주와 세력들이 모조리 몰살당하였고 전대 가주였던 오우치 요시타카도 나병의 후유증과 전쟁의 충격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조선의 신하를 자처하던 오우치 요시타카의 유언은 오다 노부나가의 자식인 오다 노부히데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가문을 이어갈 것이라 하였다.

조선은 이를 철저히 이행하여 조선에서 16년 넘게 생활한 오다 노부히데가 오우치의 주인이 되었다.

사실상 조선 사람이 다이묘가 되었으며 하필 일본의 은 절반을 산출하는 이와미 은광의 주인이 되었으니 다테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만하였다.

고란도 이를 알고 있으니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오다 노부히데가 아니고 오우치의 정식 후계자인 오우치 노부히데(大内信秀) 입니다. 작년에는 일이 조금 바빠서 참가할 수 없었지만 올해는 참가한다 하더군요.”

“내가 잘못 알고 있었으니 사과하겠네. 나야 어린 시절 알게 된 이름이 떠올라 계속 실수를 하고 있으니 여러 번 연습하여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겠군.”

고란이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다테 마사무네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까스로 쇼군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주변의 자신의 것은 없다시피 하였다.

이와미 은광은 조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오우치 노부히데의 것이 되어 9할의 은을 조선과 명나라에 보내고 자신이 얻는 것은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물(貢物)에 불과하였다.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세토 내해의 항구들은 조선에 항복하고 충실한 신하가 된 구키 요시타카와 도도 다카도라가 나누어 가졌다.

심지어 이들은 폐도령(廃刀令)이 내려진 와중에도 각기 삼만 명이 넘는 군세를 동원하고 있었다.

북방의 이득 대다수는 우에스기 가문에게 내어주었고 그나마 합당하게 가져갈 수 있었던 지역인 다케다 가문의 옛 땅은 사나다 마사유키와 기타 배신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군대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보시오 어르신, 속이 좀 헛헛하고 육질이 부족한 것 같은데 고기나 좀 잡아먹으면 아니 되겠소? 지천에 소와 닭이 널려 있는데 마음대로 먹어도 되겠지?”

조선에서 반 억지로 빌려준 북인 기병들은 어마어마한 봉급은 물론이요, 일본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고기를 매일같이 먹어치우는 돈 먹는 괴물딱지인 데다 다테의 명령은 듣지도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어르신이라 부르는 시점에서 글러먹은 이들이었다.

대신 조선왕이 내린 명과 지휘관인 고란과 함께하여 알아서 전쟁을 수행하고 알아서 적 영토를 점령하는 일종의 자동 전쟁을 실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모된 모든 물자와 비용은 다테 마사무네에게 떠넘겨졌다.

마침내 교토에서 조선군과 접촉하여 협의를 거듭한 끝에 일본의 쇼군이 되었지만 은자 1,000만 냥의 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아직 900만 냥이나 채무가 남은 마당에 이들을 매몰차게 대할 방법도 없었다.

윗사람이라고 억지로 명령을 내리면 배를 타고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며, 기반이 사라진 자신은 삽시간에 몰락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니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는 다테는 화를 억누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선포하였다.

“이 친구들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를 먹일 것이네! 각자 집에 있는 소 가운데 좀 비실비실한 녀석을 마음대로 내어주게나!”

마음대로라 하였지만 채무가 얼마나 더 쌓일지 몰랐기에 다테는 거대한 몸집을(일본 기준으로) 뽐내며 이상한 자세를 취하는 북인 기병들을 보며 눈을 흘겼다.

내후년이 되면 이들도 조선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때까지 이들의 뒷바라지나 하여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나마 옛 양식대로 세워지는 건물이 있기는 했으니 옛적에 덴노가 거주하였던 교토어소(京都御所)였다.

명나라 황제와 접선하는 과정에 거지 신세를 면하고 제사장 역할로 돌아온 덴노는 교토어소를 영원히 막부에 기증하기로 하였으니 회의장으로 사용하기 적합하였다.

* * *

교토어소 주변을 각 다이묘들의 병력이 빼곡하게 메웠다.

가장 안쪽의 북인 기병을 시작으로 구키 요시타카의 수군과 최고의 봉신을 자처하는 우에스기 가문의 기병, 그리고 사나다 마사유키의 총병이 집결하니 어소 일대에만 이만 명이 넘는 병력이 집결하였다.

“쇼군께서 안으로 드신다! 다테 쇼군님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좌측에는 고란이, 우측에는 맹장으로 손꼽히는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지만 아무런 충성심이 없음을 알고 있는 다테 마사무네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방 안으로 향하였다.

이윽고 여섯 다이묘의 대표가 집결하여 인사를 올렸다.

“막부를 제창하시며 저희를 다이묘로 임명하신 쇼군님을 뵙습니다.”

“일 년 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염려하지 말고 내가 직접 지시하여 만든 요리를 즐기게나.”

재정 긴축의 극한을 달리기 위해 다테 자신이 요리장이 되어 이번 행사의 요리를 만들 지경까지 몰려있었다.

소박한 생선회와 초밥, 그리고 포르투갈의 요리를 프랑스에서 변형해 만든 츄러스 튀김을 내놓았지만 다들 기름진 튀김에는 손을 대지도 않았다.

이미 이 자리에 모인 다이묘 가운데 다테 본인의 의지로 임명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간단한 차를 마신 다테는 홋카이도에 보낸 관리의 보고로 회의를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에조치에 설립한 항구의 수익은 기껏해야 매년 은자 삼만 냥 내외이며 이마저도 유지비를 감안하면 없다시피 합니다. 애초에 쇼군께서 목적하신 바를 하나도 완수하지 못하고 있으니…….”

삼 년째 항구를 임대하고 있는 조선의 행동은 일본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였다.

본래 항구를 건립하고 이를 헐값에 임대하며 선박 건조기술을 빼먹으려 하였지만 배가 돌아오지 않는 시점에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여유자금을 동원해 사업을 벌였지만 현상유지가 고작이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가슴을 쿵쿵 치더니 이번 일의 원흉을 노려보았다.

그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우에스기의 대표 나오에 카네츠쿠(直江兼続)는 뚫어지는 시선을 느꼈음에도 허공만 바라보았다.

“이보게 나오에, 자네가 조선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다 하면서 내 앞에서 절을 올리며 권유하여 이번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네. 사업의 전제조건 자체가 잘못되어 소득이 없으니 이를 책임질 생각이 있는 겐가.”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문의 진짜 주인에 대한 생각이지요.”

진짜 주인이라는 정도가 지나치다 못해 다테 자신을 지나가는 똥개 취급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순식간에 다테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고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다이묘의 주인이자 대표는 엄연히 막부를 제창한 쇼군이다. 그러나 대놓고 가문의 진짜 주인이라 말했으니 우에스기 가문을 후원하는 조선을 언급할 게 분명하였다.

다테 마사무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갈(一喝)하였다.

“말해! 누굴 생각했지! 네놈이 나를 쇼군으로 보더냐! 아니면 다른 주인을 모시더냐!”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아니하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시며 재앙마저 거두실 분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개가 짖는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나오에 카네츠쿠는 평상시 천주교를 허황된 믿음이라 욕하는 사람임에도 자신이 천주교도인 양 대꾸하였다.

시선조차 맞추지 않고 한심하게 흘겨보기에 다테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칼을 뽑으려 하였다.

그러나 손끝이 칼자루에 닫는 순간 멈추었다.

칼을 뽑으면 옆에서 호위 명목으로 붙어 있는 고란이 머리통을 날려 버릴 것이요, 어찌어찌 고란의 도끼를 막아내 상대를 죽여도 남은 것은 우에스기 가문의 합법적 반란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자네가 천주교도가 될 줄은 몰랐군. 내 알고 있는 신부가 있으니 세례인지 뭔지 하는 수계(受戒)를 받아보면 어떻겠나?”

“이미 강항이라는 분과 서신을 나누고 있는바. 쇼군께서 저를 배려하심은 단언하건대 쓸모 있는 행동이 아니라 감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쇼군에게 폭언 아닌 폭언을 일삼는 행적을 보았지만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차라리 적이었다면 시원하게 싸우고 끝냈을 텐데 백성들은 자신의 부하라 인식하고 있으니 싸울 방법도 없었다.

전쟁을 벌이면 백성들은 새 쇼군이 미쳤다면서 우에스기 가문의 집권을 합당하게 만들 것이다.

다테 마사무네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우물쭈물하며 표정 관리를 못 하는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오우치 노부히데 자네 가문의 소식은 들었네. 이번에 공납으로 보내는 은이 사백 관(약 15톤)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원인이 무엇인가?”

“근래에 들어 은광의 맥이 쇠락하여 새로운 맥을 찾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연륜이 있다면 모를까 아직 경험이 일천한 와중에 이러한 시기를 맞이하여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라면 은의 소출이 얼마나 감소하였기에 유감이라는 말인가.”

“본래 사천 관(150톤)가량의 은을 생산하여 개중 일 할을 조세로 제출할 수 있었지만 은맥이 여러 갈래 끊겨 이천오백 관(94톤)가량의 은을 생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은의 소출이 단번에 감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은맥이 끊긴다 하여도 몇 개의 갱도가 끊기지 수십 개나 되는 갱도의 은맥이 일제히 끊길 이유는 없었다.

다테 마사무네의 외눈이 가늘게 좁혀지며 오우치 노부히데를 노려보았지만 그 시선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천연두의 흉터가 남아 있는 얼굴이 마구잡이로 씰룩거리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비록 이와미 은광의 은이 명나라와 조선으로 넘어가지만 소출이 줄어들었다면 오우치의 손해가 더욱 크지 않겠는가. 자네에게 배정된 조세를 당분간 육 할로 줄일 것이니 이를 염두에 두어 어서 은맥을 다시 찾도록 하게.”

“쇼군께서 이리도 저를 배려해 주시니 제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스미는 것 같습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하는 오우치 노부히데를 살펴본 다테의 목울대에서 힘줄이 솟아오르며 격노를 참아내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은맥이 일시에 끊기기는커녕 조선에서 좀 더 많은 은을 요구하여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중이 분명하였다.

다음으로 다테의 시선을 받은 자는 구키 요시타카였다. 세토 내해에서 유일하게 수군다운 수군을 유지하는 자이며 그나마 명목상으로 충성하는 다이묘답게 제법 많은 공물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소득이 부족해 보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군. 구키와 도도 자네 둘 다 소득이 줄어든 것 같으니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도도 자네의 영지 일대에는 변란이 일어났으니 이해할 수 있지만 구키 자네는?”

“근래에 들어 조선과의 교역이 영 신통치 않아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항구에서 배가 그렇게 들락거리는데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구키 요시타카는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수많은 선박을 불하받아 기술을 계속 축적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일본 최초로 조선식 선박을 만들어내 원양 항해를 실시하였으니 이미 대양도(대만)와 직접 교역을 실시하고 있었다.

구키가 막부에 공납으로 내야 하는 수익은 세토 내해 항구의 수익으로 한정되어 있기에 외부와 교역을 한 순간부터 다테 막부에 돌아가는 수입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다테에게는 상대를 추궁할 힘이 없었다.

다테는 혀를 쯧쯧 차더니 구키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회의의 내용을 전환하였다.

이후 이틀 동안 별다른 실익이 없는 회의가 이어졌고 다테는 모든 일이 끝나고 방 안에 누워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날 구멍이 있기는 한가. 앞으로 십육 년 뒤에는 구백만 냥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알 길이 없군. 차라리 후루타 이놈이라도 믿어봐?”

고령에서 도자기 제조기술을 배우고 있는 후루타 오리배는 특유의 감성과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십 년이 걸린다는 수업을 오 년 만에 이수하고 스스로 유약을 창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잘만 하면 도자기로 채무를 갚을지도 몰랐지만 다테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조선은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나라야. 지금이야 구리를 마음대로 팔아치우면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갑자기 어마어마한 구리광이 쑥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도자기도 떡처럼 마구 찍어낼지도 모르지 않나?”

다테 마사무네는 외눈을 번들거리며 다른 채무 변제 수단을 찾았다. 사람을 팔아도 일본 열도를 텅텅 비울 정도로 팔아치워야 채무를 이행할 수 있으며 결말은 몰락 외에는 없으리라.

그렇다고 자원이나 각종 생산수단을 동원해 보았자 조선에서 어느새 상위호환 개념으로 물건을 찍어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보고서를 바라보던 다테의 시선이 한 귀퉁이에 고정되었다.

[도시마군(豊島郡: 현 도쿄) 일대에 시범 삼아 경작을 실시한 결과 침수가 없는 구간에서는 그럭저럭 수확이 좋았습니다. 다만 바닷물이 밀려오고…….]

“쌀 싫어하는 놈들이 없지 않나? 아예 도시마 일대를 싹 개척해서 쌀을 팔아서 채무를 변제해 볼까? 이론상 도시마 일대의 평야를 개척하면 매년 조선 석으로 이백만 석이 넘는 작황이 나오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일이었고 실제로는 개척을 성공할지의 여부도 불투명하였다.

대신 아무것도 안 하면 채무에 치여 죽게 생긴 다테 마사무네는 한밤중의 고란의 거처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쇼군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한참 입신체비하고 잠에 빠질 찰나였는데요.”

“입신체비? 자네들이 일하면서 몸을 단련하는 방법인지 뭔지를 하고 있지? 지금부터 자네들은 군사적으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도시마 일대로 향하게.”

2만 명에 달하는 북인 기병이면 예비마를 포함한 말이 8만 마리나 된다. 이 인력들이 단 2년 동안 일하면 현재의 도쿄 평야 대부분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

변방 촌구석에 지나치게 거대한 농토를 한 번에 개척하는 작업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막중한 업무를 통솔조차 하지 못하였을 상황이지만 다테에게는 천부적인 내정의 자질이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거대한 습지를 평야로 바꾸게 된 북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테는 끝없는 물자를 공급하는 동시에 백성을 이주시켜 작업을 도왔다.

본래 역사보다 10년 이상 빠르게 도쿄가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나오에 카네츠쿠 : 일본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조선왕 이연이 1위. 조선의 세자저하가 2위. 3위는 내 주군이며 다테는 대충 250위이다.

구키 요시타카 : 250위라 하시니 너무 높게 보신 것 아니오? 북인 기병들 아래에 있으니 3만 위쯤 하겠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