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19화
2부 28장 3화 두 번째 수확
교황의 거처인 사도궁전 회의실에는 오늘도 회의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 완성된 베드로 성당의 거대한 돔을 바라본 교황 클레멘스 8세는 회의의 시작을 선언하였다.
“1594년 8월의 첫 주일을 기념하며 회의를 시작할 것이니 어서 안건을 내어놓게.”
로마에 소속된 추기경과 주교들은 각자의 안건을 제출하였고, 화려한 금박이 장식된 스페인의 포고문을 확인한 클레멘스 8세는 궁금한 표정으로 포고문을 손에 집으며 확인하였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먼저 논해보게. 작년 말 벌어진 메카 약탈로 인하여 각국의 정세가 요동치지 않았는가. 펠리페 2세가 논하기를 조선이 모범적인 대응을 보였다고 평가하였던가?”
“모범적인 대응이지만 아쉬운 점이 적잖이 있다 평가하였습니다. 동방의 강대국인 조선과 동맹 관계를 맺은 입장이라 섣불리 간섭할 수 없었으니 나온 평가가 분명한 것 같더군요.”
클레멘스 8세는 스페인에서 전해진 포고문을 읽으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잉글랜드가 성전을 주창하며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공격한 거룩한 행위를 벌였지만 이 거룩함이 순식간에 소실되었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시작되었다.
[1593년 10월, 잉글랜드가 성전을 제창하며 오스만 제국의 도시인 메카를 공격하였다. 이는 참으로 거룩한 행위였으며 메카를 수비하는 병사들 대다수가 성전의 불길 아래 정화되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행각은 멈출 줄 몰랐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약탈과 살육을 하였으니 이는 성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옹졸하며 편협한 행위이다. 주님의 종이 될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은 해적이라 하며 조선에 노예로 팔았으니 또한 조선을 기만한 행위이다.]
“스페인에서 보낸 콘키스타도르도 민간인을 마음대로 학살하고 노예로 삼는데 이런 행적은 생각하지도 않고 잉글랜드의 행적만 비판하다니 우스운 일이로군.”
로마 대심원(교권을 재판하는 최고 법원) 주교가 헛기침을 하자 클레멘스 8세는 웃음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가톨릭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교황청의 자신의 사람들을 배정한 펠리페 2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런 간섭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날이 언제쯤 올지는 클레멘스 8세도 예측할 수 없었다.
다음 문단으로 내려가니 조선에 대한 칭찬이 시작되었다.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가톨릭의 포고를 허락한 조선은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았다. 범죄자가 아닌 민간인을 노예로 팔아버린 행동에 격노하였으니 이는 실로 정당한 행위이다.]
[성전의 뜻을 어지럽힌 잉글랜드 해적은 조선의 해군에게 몰살당하였으며 민간인들은 모두 자신의 재산을 유지한 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이들을 주님의 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아쉬운 일이지만 조선의 대응은 정당하며 확고한 신의를 지켰음을 공표한다.]
“자칫 잘못하면 무차별적인 전쟁을 벌일지도 모르는 사태를 조선이 잘 수습하여서 다행이네. 오스만 놈들이 잉글랜드를 타격하기 전까지는 침략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
“옳은 말씀입니다. 잉글랜드 놈들이 메카를 공격하기만 했다면 될 것을 너무 나갔습니다. 그나마 사태가 수습되어 오스만이 함대를 확충하는 선에서 끝났다 하더군요.”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어서 다행이로군. 오스만 하나라면 모르겠지만 같이 피해를 입은 무굴 왕국이 가세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을 걸세. 당장 고아 식민지의 사제들이 피해를 입었겠지. 다음 안건은 뭔가?”
“스페인의 요청입니다. 앙리 4세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여도 그를 신뢰할 수 없으니 여전히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 합니다. 이미 스페인에서 보내온 후원금이 수십만 두카트에 달합니다.”
클레멘스 8세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지고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프랑스 문제에 더 간섭할 수 없다 생각했는데 다시 문제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클레멘스 8세는 아예 눈살을 찌푸리면서 스페인 출신 주교와 추기경이 들으라는 듯이 말하였다.
“펠리페 2세가 또다시 후원을 빌미로 교권에 간섭하려 하는군. 스페인이 강대한 국가임은 인지하고 있지만 교권은 엄연히 독립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교황성하께 무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처리해야 할 시급한 안건이 있는지라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군요.”
클레멘스 8세가 눈짓을 보내자 회의에 참석한 주교와 추기경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인원이 자리를 비워 버렸다. 어떻게든 스페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하였다.
절반만 남아도 회의는 회의이기에 이탈리아 반도 출신 추기경과 주교들은 짜증을 억누르며 회의를 재개하였다.
마침 눈치를 볼 스페인 출신이 사라졌으니 스페인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재정이 다시금 파국을 맞이하여 네 번째 파산을 선고하기 직전인데 조금만 견디면 영향이 상실되지 않겠습니까. 파산을 당해 보았자 신대륙에서 전해지는 막대한 은으로 채무를 메우겠지만 영향이 일 년은 갈 겁니다.”
“자네들은 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가! 예순이 넘어 일흔을 향해 나아가는 펠리페 2세가 명을 다 한다면 다음 왕위는 경건한 펠리페(el Piadoso: 펠리페 3세)의 차지가 될 걸세.”
경건한 펠리페는 명군 펠리페 2세의 뒤를 이어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할 왕자였다. 그의 형제들은 제법 뛰어난 이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단명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왕위 계승권이 내려오게 되었다.
이미 암군의 자질이 엿보이는 경건한 펠리페, 훗날의 펠리페 3세는 왕자 시절부터 모든 이들에게 염려의 대상이 되었다.
주교를 비롯한 보좌진들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클레멘스 8세는 아예 천장의 성화(聖畫)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체면을 지키는 선에서 간섭하는 펠리페 2세라면 지금과 같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후대에 가면 심각한 간섭이 시작될 걸세. 이를 억누르려면 다른 명분이 필요하다네.”
“그렇지 않아도 기이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선에서 개척한 미주라는 영토에서 세스페데스 신부와 만나게 되었는데 일만 명이나 되는 신자를 만들어냈다 하더군요. 이미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신부 가운데 열 명이 지원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세스페데스 신부가 선교를 시작한 지 십 년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교구(敎區: 천주교에서 신자를 관리하기 위한 구획)에서 다루어야 할 신자를 만들어냈다 하였는가? 지금 조선의 신자도 삼천 명이 넘지 않는데?”
트리엔트 회의에 참가하였던 클레멘스 8세인지라 세스페데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육신을 단련하여 선교를 실시한다는 주장이었고 당시에는 코웃음을 치며 넘어갔다.
선교사가 평생 동안 천 명의 신자를 만들면 위대한 선교사라 칭송하는데 고작 칠 년 만에 일만 명의 신자를 만들어냈다면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클레멘스 8세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지만 명백한 사실만 적혀 있었다.
“처음에 신자 천여 명으로 시작하여 스페인의 개척이 가속화되자 다른 부족을 만나 신자를 만들기를 반복하여 조선의 영토인 미주까지 흘러갔다 하였는가. 왜 하필 조선의 영토까지 나아갔는지 알고 있는가?”
“스페인은 개척을 실시할 때 모든 원주민들을 소탕하고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습니까. 반면 조선은 원주민들을 가급적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합니다. 아마 공포에 질린 신자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군요.”
“이를 감안해도 모든 신부와 주교는 물론이요, 신자들조차 경악할 일이로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한 시기 이후로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생겨난 경우가 있던가?”
“간혹 한 자리에서 수천 명의 신자가 생긴 경우에도 많은 선교사와 군인이 파견되어 협력한 성과입니다. 칠 년 만에 홀로 일만 명의 신자를 만들어낸 전례는 근 오백 년 동안 없습니다.”
클레멘스 8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일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신자들을 통솔하려면 조선에서 임시로 파견한 열 명 이외에 제대로 된 성직자가 필요하다.
스페인에 연락을 보내 대서양을 경유하여 신부를 빠르게 충원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스페인에서 육성한 도미니코회 신부들이 미주를 장악해 버리리라.
반면 조선을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조선의 선교는 스페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신자들 또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귀족(양반)이 많았다.
클레멘스 8세는 엄숙한 표정으로 양피지를 집으며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바라신 일일세. 주님의 은총을 받은 적이 없는 머나먼 서쪽의 신대륙에 첫 가르침이 이렇게 광대하게 퍼져 나갔으니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여 세스페데스 신부를 지원하게.”
“전력을 다하여 지원하라 하시니 당장 스페인에 연락을 보내…….”
“스페인에 연락을 보낼 필요는 없네. 세스페데스 신부가 주장한 육체 단련을 통한 선교방식이 효과를 입증하였으니 로마에서 엄선한 신부들을 조선으로 먼저 보내야 하지 않겠나.”
육체 단련을 통한 선교방식을 모든 성직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최소한 조선과 조선의 속령(屬領)인 미주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적용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 클레멘스 8세였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초임 신부들, 혹은 경력이 부족하여 부제(副祭)로 일하는 신부들 중에 체격이 담대하고 골격이 큰 신부들을 선발하여 조선으로 보내게. 조선에서 오 년 이상 생활하여 세스페데스가 주장한 육체 단련을 통한 선교방식을 배우도록 하면 될 걸세.”
“엄연히 서로 같은 직급에 있는 이들이니 세스페데스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주교를 한 명 보내시는 게 마땅해 보이는데 누구를 임명하실 겁니까?”
“세스페데스 신부를 주교로 서품할걸세. 교회법에 의거하면 주교 세 명의 안수가 필요하지만 지금 미주라는 땅에는 일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으니 세스페데스 신부를 불러올 수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으니 임시 주교로 임명하고 후일 제대로 된 안수를 받게 하세.”
천주교를 전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땅에 주교가 필요한 경우는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명의 사제가 담당하면 충분한 경우가 대다수였으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주교를 파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반면 지금 미주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주교구를 창설해야 할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들끓고 있었다.
아예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심정으로 세스페데스를 후원하기로 작정한 클레멘스 8세는 아예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조선의 영토에 주교구를 두 개 창설할 것이네. 하나는 한양 주교구이며 미주는 후성(휴스턴)이라는 도시가 있으니 후성 주교구라 칭하겠네. 상황이 급하지 않은 한양 주교구에는 조만간 주교를 파견할 것이나 후성 주교구의 주교는 세스페데스 신부일세.”
세스페데스를 임시 주교로 임명하는 서신이 작성되고 조선으로 보낼 신부들을 모집하기 위한 요청서가 작성되며 교황청 소속 주교와 추기경들의 서명이 날인되었다.
이 요청서를 받은 이탈리아 일대의 젊은 신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말하였다.
“조선에 나아가 사제 생활을 지낼 수 있도록 허가하시다니 주님께서 저를 어여삐 보시어 이런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나저나 저보다 야고보 형제가 더욱 지식이 많고 경력이 많은데 왜 저를 데려가시는지요.”
신부 세 명 가운데 가장 어리고 덩치가 큰 신부가 고개를 숙였고 나머지 두 명의 신부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황청에서 파견된 관리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답하였다.
“교황 성하께서는 조선 생활이 고될 것을 염려하여 덩치가 크고 골격이 큰 사람들을 선발하라 하셨네. 자칫 잘못하여 풍토병에 걸리더라도 힘이 좋다면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교황성하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조만간 다른 형제들도 파견할 수 있도록 제가 많은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일대에서 소집한 신부들은 하나같이 2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을 소유한 이들만이 소집되었다.
이들은 앞으로의 고난을 모르고 있었지만 세상 반대편 조선의 신부들은 오늘도 신자들의 열렬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자세가 틀리셨으니 열둘입니다. 아직 열둘이란 말입니다!”
“수학을 다시 배우셔야 할 것입니다! 열둘 다음에는 열셋입니다!”
신부가 자신의 가슴 위에 놓인 역기를 안간힘을 쓰며 밀어냈지만 무의식중에 반동을 주었다.
의압(벤치프레스)에서 반동은 몸을 상하게 하며 중량을 늘리는 행위이니 유생은 엄숙한 표정으로 신부에게 말하였다.
“신부님께서는 입신체비를 다시 배우셔야 할 것입니다!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횟수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주님! 제발 저를 대신할 형제를 보내주십시오! 여기서 있다가는 죽겠습니다!”
모두의 소원을 공평하게 이루어주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로마에서 막 배에 올라탄 신부도 조선에서 절규하는 신부도 미주에서 유생과 승려들에게 지도를 받는 신부들도 자신의 소원을 성취할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 * *
첫 벼농사가 완료된 1594년 8월 15일이 되었고 후성부의 논은 최소 일등전 수준의 옥토(沃土)라는 말을 증명하듯 황금빛 물결이 출렁거렸다.
농부들은 도리깨로 벼를 탈곡해 댔고 나는 알곡이 가득 들어찬 벼를 훑어보며 칭찬하였다.
“쭉정이가 일 할은커녕 오 푼에도 미치지 못하니 작황이 너무나 훌륭하군. 지난달에 벼가 쓰러졌는데 위기를 잘 넘겨서 참으로 다행이라네.”
“구풍(태풍)이 몰려왔을 적에는 벼가 모조리 쓰러질까 염려하였지만 다행히도 무사하게 넘어갔습니다. 관찰사님이 보시기엔 어떠합니까?”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쌀이야말로 모든 곡식의 으뜸이며 세상 사람들이 즐겨 먹는 물건일세. 그나저나 쌀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네.”
후성부는 대충 1결당 500두, 조선 기준으로 대풍년을 맞이한 최상급 토지 수준의 작황을 자랑하였다.
반면 동요현은 농민들의 평가대로 600두 심지어 650두를 찍어내는 작황을 보여줬다. 너무 쌀이 넘쳐나서 소주를 만들어 미주인들에게 팔아치운다던가.
곡식이 남으면 좋은 일 같지만 조선으로 수출할 방법이 없다. 태평양 위에서 5개월 넘게 배를 타고 움직이면 곡식은 죄다 습기를 머금고 썩어버리니 아예 옮기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그렇다고 남는 곡식을 무턱대고 미주인들에게 제공하면 나쁜 버릇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이거야 차츰차츰 조정하면 되니까 수확을 마친 농부들에게 적당히 권유하였다.
“올해는 작황을 가늠하는 해였으니 문제가 없지만 내년부터는 풍족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곡식을 심고 나머지 땅에는 목화나 땅콩을 비롯한 작물을 심어보게. 이런 땅이라면 목화도 잘 자랄 것 같지 않은가?”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씀이군요. 보통 땅에는 지력이 삽시간에 쇠하여 목화를 심으면 손해가 더 크지만 이런 땅이라면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농사를 마치자 다시 공사의 시간이 돌아왔다.
수확이 끝난 농부들은 죄다 성형요새를 만들었던 경험을 되살리며 미주인들이 대략적으로 쌓아둔 흙더미를 내 지시에 따라 깎아나갔다.
자신이 쌓아놓은 흙이 깎여 나가기 시작하자 미주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성형요새는 많은 뿔을 만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성형요새를 만들었던 하주도 백성들과 요새를 다듬고 있으니 마침내 첫 구리가 채취되었다.
“관찰사님! 빙요(현 솔트레이크 일대) 광산에서 구리를 캐내어 정련하여 가져왔습니다. 아직 목탄을 많이 만들 수 없으니 구리를 많이 제련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수준이로군. 이러다가 사막배가 무너질 지경이 아닌가?”
“조금 욕심을 부려 보았지요. 대충 사만 근 정도 캐내어 보았는데 나무만 많다면 매달 십만 근을 캐내도 거뜬할 수준입니다. 호주에서 건너온 유향목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고작 넉 달 만에 사만 근의 구리를 캐왔다는 소식을 듣자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사막배 스무 척에 나눠서 운반된 구리의 무게를 확인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광산은 필요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구리를 녹여낼 나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시설이 확충된 이후에는 연간 수백만 근의 구리를 캐내고도 남으리라.
차츰 형태를 잡아나가는 성형요새에 돈대와 포루를 세우고 화포를 놓을 자리를 하나씩 배정하였다.
군기시의 장인들은 질 좋은 구리와 주석을 만나자 쉴 새 없이 화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마 내년쯤이면 성형요새가 외형만큼은 완전히 완성되리라.
#작가의 말
??? : 너희가 열렬히 청하기에 그 뜻을 모두 이루어주겠다
신부들 : 이게 밀어내기인가 그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