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17화
2부 28장 1화 미주 민방위
성형요새의 기초 건축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흙을 쌓아 요새를 축조하고 적을 마음대로 두들겨 팰 수 있는 포루(砲壘)를 설계하면 되니 아직 내가 나설 필요도 없긴 했다.
박승종은 한창 공사를 진행하다 나를 보고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관찰사님 오셨습니까. 기본적인 사항이야 이현전 출신인지라 진행할 수 있지만 조만간 관찰사님께서 요새 공사를 지휘하셔야 할 시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내가 지휘할 시일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자네는 너무 겸손을 떨어서 문제라니까. 그나저나 공사현장이 조금 이상하군?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미주인이 아닌가?”
처음 공사에 투입한 사람은 하주도 출신들이었는데 이제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고 웃통을 벗고 뛰어다니는 미주인들이 잔뜩 있었다.
미주인을 고용하라는 지시를 내리긴 했는데 왜 이렇게 변했지?
박승종은 내 말을 듣자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미주인들에게 요새를 쌓으면 매일 미곡 석 되를 지급하겠다고 하니 처자식까지 데려와서 아예 요새에 매달려 살 지경입니다. 저길 보시면 미주인 부녀자들이 밥을 짓고 아이들이 요새에 올릴 잔디와 묘목을 기르고 있습니다.”
쌀 두 되가 표준 노임이지만 아직 쌀을 수확할 시기가 아니라 옥수수나 보리를 지급하니 미곡 석 되로 늘려서 사람이 많이 찾아왔나?
급료가 아무리 높아도 미주인들이 저렇게 열정적일 줄 몰랐는데 박승종의 보고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미주인들이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는데 시일이 지나자 너나 할 것 없이 공사에 참여하더군요. 덕분에 기초 공사가 오 할 이상 진행되어 올해 말쯤에는 포루를 축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사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대충 1593년 겨울에 축조를 시작하여 내 임기 종료 시점인 1596년경 공사를 완료하려 하였는데 1년 넘게 시간을 앞당기지 않았는가.
날림공사일지 몰라 천리경을 들고 사방을 확인하였는데 모든 공정은 거의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정 수준의 흙을 쌓으면 절구로 땅을 다져 붕괴를 방지하며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배수시설도 빠짐없이 완성되고 있었다.
공사가 빠르면 좋으니 박승종의 공을 치하하려 하였다.
“자네가 사람을 잘 다룬다 하였는데 다사다난한 성형요새 공사를 저리도 빨리 진행하다니 고생이 많겠군. 그나저나 미주인들에게 어떻게 공사 의욕을 불어넣었나?”
“저는 공사 의욕을 불어넣거나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관찰사님을 믿는 미주인들이 요새가 완성되면 동방의 침략자를 막아낼 수 있다 나선 덕분이지요.”
“동방에서 오는 침략자를 막아낼 최후의 보루라 하였는가. 그런 소문이 어디에서 퍼졌나?”
“그야 처음에 일한 하주도 백성들이 소문을 퍼트린 덕분이지요. 왜장 등길랑(히데요시)의 십만 대군을 막아낸 분이라 칭송하니 미주인들은 서반아 군대 십만 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된 소문이기는 하지만 성형요새가 완공되면 수군과 육군이 파상공세를 실시해도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방어력을 추구하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지역 미주인들은 스페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세스페데스를 따라온 미주인들과 접촉하며 소문이 퍼져 나갔다.
결국 미지의 침략자를 막아내는 조선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미주인들은 흙 칠갑이 되어 마구잡이로 흙을 쌓았고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과 공무원들이 지시를 내리기에 바쁜 실정이었다.
다시 흙을 가져가기 위해 내려온 이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내 얼굴을 알아보더니 마구잡이로 달려들면서 외쳤다.
“이미 소문은 들었습니다. 십만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요새를 여기에 만들어주신다니 저희가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저희 전사들을 군인으로 고용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저는 돌을 쪼개는 일을 잘합니다! 이 요새의 벽을 쌓을 때 제 이름 웅크린 곰을 꼭 기억하고 불러주십시오!”
“저희 가족은 대대로 사냥꾼을 해 왔습니다. 거대한 곰도 함정으로 유인해 처리할 수 있으니 요새의 함정을 만들 때에 저를 꼭 불러주십시오!”
이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들어보니 대다수가 사냥을 하던 수렵민족이니 자신을 병사로 써달라는 청원이었다.
한창 훈련 중인 이회까지 불러서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보려 하였으나, 이회는 시큰둥하게 답하였다.
“소장 또한 미주인들을 병졸로 활용해 보려 하였지만 이들은 아국과 풍습이 다르고 행동이 달라 여의치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탐검(探檢)을 보내는 이들을 호위하게 할 뿐 모아서 병사로 조련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겁니다.”
“옛 기록을 보니 성정이 난폭하기로 소문난 대양도의 부족들도 임해도감을 창설한 정범수라는 장수가 조련하여 훌륭한 병사로 탈바꿈하였다네. 선례가 있으니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 불가한가?”
“임해도감을 창설할 당시의 대양도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사니 수백 명 단위로 모여도 싸움에 능숙하였지만 이들은 기껏해야 스무 명이 넘게 모이면 서로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시일이 지난 다음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가합니다.”
농경민족이라면 마을을 구성해 힘을 합치는 일이 자주 있으니 가능하지만 이들은 말도 타지 않는 단순한 수렵민족이라 애초에 많은 수로 모이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다.
세월이 지나면 이들도 자연스럽게 군인으로 채용할 정도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아직은 이회의 뛰어난 재능으로도 힘들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잔뜩 만들어둔 염초전(焰硝田)으로 향하였다.
영직이가 창안했다는 염초전은 분변과 소변을 섞어 거대한 봉분을 만들고 계속 소변을 부어가며 이 염초전 위에 피어오르는 초석 결정을 채취하여 화약 재료를 채취한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조선 기준으로 대략 한 평(3.3㎥)당 연간 10근(6.4㎏)가량의 초석을 생산할 수 있었다.
조선도 대부분의 화약을 인도 교역으로 충당하지만 비상시를 대비하여 염초전은 항상 가동하고 있으며 나도 이 방법을 택해 염초전을 만들었다.
평상시에는 거들먹거리며 먹거리를 찾아 요리를 만드는 허균이기에 염초전을 만들어 관리하라 하였고, 허균은 내가 방문하자 분변 냄새를 풍기며 달려왔다.
“관찰사님! 제 생각이 참으로 맞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찰사님께 보고를 올리고자 하였는데 염초전 한 평에서 초석 열두 근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스갯소리 한번 잘하는군. 만들지 여섯 달도 지나지 않은 염초전이라면 다섯 근을 만들어도 대단하다 여길 지경이네. 심지어 소변조차도 많이 부어 넣지 않았는데 어찌하였는가.”
“전에 수백 마리나 잡아둔 상어를 발효시키려 하다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버리기 아까워서 소변 냄새가 나는 점에 착안하여 염초전을 만들 때 사용해 보았습니다.”
초석은 내가 기억하기론 질산칼륨이다. 어떤 화학적 변화로 오줌에서 질산칼륨으로 변화하는지 모르고 있지만 염초 밭에는 오줌을 계속 부어대니 오줌에 있는 암모니아가 재료이리라.
당연히 소변 냄새가 진동하는 상어의 몸에는 오줌과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암모니아가 잠들어 있으리라.
허균은 새하얗게 초석 결정이 자라난 초석 밭에 오줌이 아닌 상어의 피와 고기를 눌러서 짜낸 체액을 부어대며 말하였다.
“상어는 살에서 소변 냄새가 진동하여 먹으면 탈이 나고 돔배기(삭힌 상어고기)로 만들 수 있는 상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신농도인들이 살길을 찾기 위해 사냥하는 상어가 지천에 널려 있으니 닥치는 대로 퍼부어보았지요.”
“그 결과가 이렇게 많은 초석으로 돌아왔다는 말인가. 지금이야 좋지만 상어의 씨가 마르면 염초전을 제대로 경영할 수 없을 것인데 후일에는 어떻게 할 건가?”
“그야 상어의 씨가 마를 때쯤 되면 체제가 정비되고 고을이 제대로 돌아가며 소변을 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상어는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허균의 표정을 보니 여기서 빨리 탈출해 미식(美食)을 추구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였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허가하자 알아서 저 멀리 산속으로 뛰어가는데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낸 것 같으니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인구가 늘어나며 소변을 원료로 초석을 만들어내면 인도 초석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용할 초석을 모을 수 있으리라. 조만간 구리도 잔뜩 얻어낼 수 있으니 성형요새에 올릴 화포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겠지.
감영으로 돌아가 생각에 잠겼다.
“다 좋은데 미주인으로 군대를 만드는 게 문제네. 미주인 출신 병사가 스무 명 이상 모일 때부터 효율이 급격히 감소한다면 정찰병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데. 이래서야 수십 년이 지나서 농경이 정착한 다음에야 병사로 쓸 수 있겠는걸.”
순간 세스페데스를 따라온 미주인들을 고용해 볼까 생각했는데 거기까지는 너무 많이 나갔다. 아무리 세스페데스라도 자신의 신자들을 병사로 고용하면 심하게 반발하리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미주를 관리할 수많은 관원들은 물론이요, 세스페데스 신부가 도착하였다는 소식에 이들을 지원할 천주교 승려들 그리고 불자(佛子)들이 방문하였습니다. 방금 금주(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고 한 달 뒤 여기로 올 것입니다.”
“불자들이 방문하였다고? 미리 올 예정이라 하였지만 대체 누가 왔는가?”
“제가 듣기로는 법명이 유정(惟政)이라는 분이십니다.”
유정이면 훗날 사명대사라 불리는 명승이며 왜변 때 서산대사와 함께 왜놈들을 향해 장총통을 마구 난사한 훌륭한 승려이다.
미주인들에게 불교가 얼마나 퍼질지는 모르지만 불교 신자가 많은 하주도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많겠지. 이들이 머물 장소도 충분히 있으니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다시 보름 정도 세부 업무를 진행하고 있자니 겨울 추위가 물러날 무렵, 텍사스 일대를 탐사하라고 보낸 사람들이 돌아왔다.
맹수의 습격도 빈번할지 모르니 자원을 탐색하기 위해 새로 보낸 탐사대에는 호위를 위한 병력을 통솔할 무관과 공무원 위주로 편성하였다.
이 무관 가운데 한 명인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젊은 군관이 보고를 올렸다.
“관찰사님께 보고 올립니다. 캐내기 아주 좋은 철광을 마침내 발견하였습니다.”
“철광이 드디어 발견되었다고? 대체 어디서 철광을 찾아냈는가? 혹여나 빙요(聘凹) 광산처럼 머나먼 산길에 있으면 아니 된다네.”
이 넓은 땅에 철광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캐내기 아주 좋다는 말을 듣자 저절로 목에 힘이 들어가며 기대감이 솟구쳤다.
그는 보고를 위해 가져왔는지 머리통만 한 사암(砂巖)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말하였다.
“후성부에서 북쪽으로 팔백 리(200㎞) 정도 올라가니 연못 아래의 진흙이 붉게 변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랐지만 제 휘하에 있던 공무원이 철광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물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더군요.”
“역시 공무원 고시에 문제를 낸 보람이 있었군. 철물을 습한 데에 보관하면 시뻘건 녹이 올라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이 깃든 땅을 흐르는 물은 빨간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네.”
두 번째로 선발된 공무원들은 새로운 문제 유형인 객관식에 완벽히 적응하였다.
조선에서 기본적으로 실시하는 시험인 서술형 주관식이야 스스로의 주장을 표현해야 하지만 객관식은 오로지 지식을 많이 축적하면 풀 수 있는 방식이다.
비록 많은 지식을 축적한 사람이라 해도 지식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현장에 던져놓고 한 달 정도 고생을 시키면 없던 지식도 떠올리는 법이었다.
김충선은 머쓱한 듯이 목을 긁적이더니 당시의 일을 말하였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미주인들을 시켜 땅을 마구 헤집었습니다. 흙을 다 걷어내자 철을 머금어 발그스름한 사암이 잔뜩 있었는데 검증을 위해 군문에서 배운 대로 임시로 가마를 만들고 철을 녹여내 보았습니다.”
평범한 군인이라면 철을 녹이는 방법을 모르겠지만 김충선은 엄연한 군관이며 훈련원에서 수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개중에는 임시로 무기를 수리하는 법도 있었기에 이런 지식도 가지고 있을 법했다.
현장에서 자신의 지식을 응용한 김충선은 가마로 사암을 녹여내 쌀알 크기의 쇳조각을 얻어냈다.
제대로 된 쇠부리 가마가 아닌 어설프게 만든 가마라 많은 양을 녹여내지는 못했지만 명백한 철광석이라는 증거이라 절로 미소가 나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쌀알 크기의 철물이라니, 이걸 어설프게 만든 가마와 목탄으로 녹여낼 줄은 몰랐군. 이렇게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자네가 군문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네.”
“한낱 무관인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을 하시니 몸 둘 곳을 모를 지경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으니 사암에서 비롯된 철인지라 철물의 질이…….”
“나쁠 것 같기는 하군. 사암은 엄연히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돌인지라 안에 깃든 철물도 결국 사철(沙鐵)과 흡사할 것이네. 캐내기도 쉽고 주변에 목탄을 마음대로 만들 나무도 있지만 수철(水鐵: 무쇠)나 숙철(熟鐵: 강철)로 쓰기는 힘들어.”
제대로 된 철광은 캐내기도 힘든 강한 화산암으로 된 철광석이 있어야 한다. 캐내기는 힘들지만 철의 질이 좋아 강철로 벼려낸 무기를 만들 수 있으니 전천후의 광산이다.
반면 이 광산은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캐내기 쉬워도 철의 질이 나빠 제대로 된 강철을 만들 수 없다.
여기서 캐낸 철로는 무쇠 혹은 연철만 만들 수 있는데, 이래서는 칼도 창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병장기를 찍어낼 수 없다.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연철만 사용하는 병장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내 뒤의 벽에 걸려 있는 보총의 총열은 연철이 아닌가?
김충선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청하며 지시를 하달하였다.
“철광을 처음 발견한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네. 당장 광부들과 야장(冶匠)들을 데려가 철을 마음대로 캐내어 보총을 만들기에 적합한 철봉을 잔뜩 생산해 내게. 주변의 미주인들에게 땅을 빌리는 대가로 쌀을 지급하기로 하면 충분할 것이네.”
“네? 보총만 덮어놓고 만든다면 무엇이 해결되겠습니까? 들짐승들이 넘쳐나니 보총을 제법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보총만 있다고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나 또한 왜변을 막아낸 덕분에 삼수군(三手軍)이 있어야 함은 잘 알고 있다네. 전쟁이라면 앞에서 적을 막아낼 창병이 필요하며 긴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보졸도 필수적이지. 그러나 전쟁이 아닌 방비를 위해서라면 보총만 많으면 만사가 해결된다네.”
요새에서 방어를 하는데 왜 칼과 창을 쓰는가? 화포를 마음대로 쏘고 총으로 상대를 쏘아버리면 충분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보총을 사용할 군대는 더 있었다.
김충선을 보내놓고 시일이 조금 지나자 사명대사를 시작으로 조정에서 보내온 관원들과 기술자들이 인사를 올렸다.
신부들은 세스페데스와 만나 면담을 하고 있으니 일단 사명대사부터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서애 대감께서는 연세가 더욱 깊어져도 외모가 변하지 않고 빛을 발하니 젊은 시절에는 여심을 잔뜩 홀리셨을 것 같군요.”
“내 외모는 열일곱 무렵에도 이러하였는데 너무 칭찬하지 마시오. 그나저나 품 안에 장총통을 꽃을 수 있는 틀을 품고 있으니 왜병들을 도륙한 장총통 맛이 아직도 가시지 않나 보구려.”
장삼 안에 불룩 튀어나온 형상은 왜변 당시 사용했던 장총통을 넣었던 가죽 틀과 흡사한 형상이었다.
사명대사는 자신의 장삼을 더듬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살생계(殺生戒)는 지켜야 하지만 제 몸을 지키기 위해 짐승을 위협하는 일도 필요한 법이지요. 미주에는 집채만 한 곰과 송아지만 한 늑대가 있다기에 불자들 모두가 무례를 무릅쓰고 장총통을 가져왔습니다.”
산사(山寺)에서 살아가려면 호랑이는 물론이요, 맹수의 습격이 잦으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승려들은 이 경험을 살려 왜변 당시 철저한 매복 기습을 실시하였고 왜군 분견대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다더라.
당시에 각 절에 있는 승려들이 호흡을 맞추어 서른 명 단위로 움직였는데 여기까지 떠올리자 촉이 왔다.
나는 장총통 대신 방 안에 있는 보총을 전해주며 사명대사에게 조금 무례한 부탁을 하였다.
“미주인들에게 불자로서의 가르침을 알려주기 전에 보총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면 고마울 것 같구려. 내가 보기에는 미주인이 자기 보호를 위해서는 보총이 꼭 필요할 것 같소이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불경 이전에 보총을 쓰는 법을 가르치라니요?”
미주인들을 군대에 들여놓기는 힘들어도 왜변으로 경험을 쌓은 승려들의 가르침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살육과 폭력을 달고 다니는 스페인 탐험대를 상대로 방위가 가능한 정찰대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민방위라 칭하면 어떨까. 오로지 자기를 지키는 방어를 위한 군대이자 풍부한 화약과 넘쳐나는 연철 보총으로 숲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군대이다.
물론 사명대사가 왜변 당시 수십 명에 달한 왜병을 쏘아 죽였다 하던데 이 가르침을 받으면 자기 보호를 한답시고 적을 모조리 쏘아죽일지도 모른다.
그게 뭐 대수인가? 적을 모조리 죽이면 문제가 없으니 최고의 방어가 아닌가!
#작가의 말
이 시대 콘키스타도르를 비롯한 유럽 세력의 총병 비율은 30%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심지어 선형진도 50% 비율로 출발했는데 미주 민방위의 총병 비율은 총이 찍히는 대로 늘어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