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516화
2부 27장 12화 해적 소탕(3)
모리셔스 섬은 주변에 산호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 산호초는 인도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며 섬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좁혀주는 천연 요새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 천연 요새를 포격 한 발도 없이 먼저 점거한 이순신은 천리경으로 항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적의 첫 반응은 늦었지만 숙련된 해적이라 이런 사태에 차근차근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적의 거선을 한 척 더 무너트렸습니다! 반면 양측에 있던 소선이 출항하여 바다 위로 나섰습니다! 통제사께서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포격을 이어가되 포위진을 무너트릴 수 있는 거선을 집중 타격하라! 야간이라 포탄이 잘 적중하지 않으니 더욱 매섭게 몰아치도록! 안쪽의 가장 큰 배는 공격하지 마라!”
이순신의 선단은 2리(800m)를 유지한 상태에서 포격을 이어갔다. 이전의 조선 수군이라면 1할의 명중탄이 나와도 대단하다 여길 상황에서 3할 이상의 탄환이 적중하였다.
가장 안쪽에서 철저히 보호받는 배도 포격의 사거리 안에 들어왔지만 이순신의 명령대로 단 한 발의 포탄도 날아가지 않았다.
이순신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항구를 살펴보다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적도들이 여느 해적과는 다르군. 영길리의 해적들은 더욱 큰 서반아 선박들도 약탈할 수 있다 하였는데 벌써부터 효과적인 대응을 하다니 숙련도가 대단하군.”
소형 갤리온이라면 항구에서 돛을 펼쳐 바로 출항할 수 있지만 대형 갤리온은 잘못하다가 항구 시설을 부숴 버릴 수 있으니 예인선이 항구 바깥으로 끌고 나오는 작업이 필요했다.
예인선들은 횃불을 크게 밝히고 각자 간격을 크게 두어 목표물을 자처하였다.
작은 예인선은 포탄을 명중시키기 힘들뿐더러 한두 척의 예인선이 포격을 맞아 침몰하여도 나머지가 대형 갤리온의 예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순신이었다.
“적도들이 거선(巨船)의 횃불을 끄고 예인선의 횃불을 키워 화포를 유도하게 만들고 있다! 횃불에 현혹되지 말고 예인선의 후방에 있는 그림자를 노려 화포를 발사하라!”
예인선을 향해 조준을 좁혀 나가던 화포가 명령을 받고 항구에서 끌려 나오는 대형 갤리온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스스로를 희생시킬 각오로 죽어라 노를 저어대던 해적들은 수십 발의 포격이 집중되어 나무 파편이 되어가는 대형 갤리온을 보며 괴성을 질러댔다.
“차라리 우리를 쏘라고! 우리를 쏘란 말이다!”
“어떤 새끼들이야! 불도 꺼놓아서 희미하게 보이는 목표에 어떻게 포탄이 날아와! 저놈들은 악마다! 밤에도 한낮처럼 볼 수 있는 이슬람의 악마가 불을 뿜는다!”
가까스로 예인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려던 대형 갤리온이 쏟아지는 포화에 사방에 구멍이 뚫리며 돛을 펼치던 선원들이 물 아래로 뛰어들었고, 이순신의 기함에서 발사된 뇌력포(캐논 로열)의 포탄이 선체 깊숙이 쑤셔 박혔다.
선체 중앙에 다시 튼튼한 나무로 감싸 철저히 보호한 탄약고가 32근(20.5㎏)에 달하는 수철연의환의 직격을 맞아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내며 유폭하였다.
거대한 폭음이 전장을 휘감자 잠시 포격이 멈추었고 이순신은 당혹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적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섬 안으로 도주할지도 모르니 포격을 잠시 늦추도록! 각 선박은 미리 사슬탄을 장전해 두고 각 선박의 거리를 벌려 적이 도주할 길을 열어두어라!”
재차 지시가 하달되자 차츰 포격이 둔해지고 정확도가 떨어지며 이순신이 철저히 만들어둔 대열도 흐트러지기 시작하였다.
얼핏 보면 전리품에 눈이 먼 선장들이 멋대로 명령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포위망에 느슨한 구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항구 밖으로 뛰쳐나온 소형 갤리온과 캐러벨이 열 척이 넘어갈 무렵 캐번디시도 상황을 파악하고 눈을 굴려댔다.
기습이야 성공적이었지만 적이 소형 함선을 내버려 둔 시점에서 그나마 목숨을 건질 방법이 생겨났다.
“적의 선박 가운데 돌출된 몇 척의 함선을 포위하여 요격하라! 적을 쫓아낸 다음 반대편 항구로 도망치면 살길이 열린다! 어서 움직여라!”
캐번디시의 대응은 합리적이었다.
아무리 이순신이라 하여도 좁은 항구에 큰 배를 몰고 왔으니 기동력을 이용해 사방을 유린하면 피해가 누적될 우려 때문에 일시적으로 퇴각하리라.
하지만 뭍에서 지시를 내리는 캐번디시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현장 해적들의 대응이 같을 이유가 없었다.
가까스로 소형 갤리온을 몰고 나온 선장들은 주변을 에워싼 조선의 거함을 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선장 명령은 개뿔, 나도 살고 봐야겠다! 대형선이 모조리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우리 소형선이라고! 저놈들이 욕심을 부리는 사이 도망쳐야지!”
두 함선 사이에 끼어들면 빗나간 탄환이 아군을 노릴까 염려하여 사격을 멈춘다 생각한 해적들은 선회를 거듭하다 항로를 정하여 전속력으로 포격을 퍼붓는 조선 수군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형선이 함선 사이를 파고들기 무섭게 조준하고 있던 사슬탄이 발사되었고 사슬에 휘감긴 소형선의 돛대가 부러지고 찢기며 함선의 기동력이 소실되었다.
나무파편을 온몸에 맞아 피를 흘리는 해적들은 박살 난 돛을 보며 절규하였다.
“이 미친놈들…… 사선에 아군이 있는데 거리낌 없이 발사해? 우리를 잡으려고 아군도 죽인다고? 제정신이냐!”
“저놈들의 배를 보십시오. 사슬이 돛대를 스치기는커녕 빗나간 사슬이 선체 하부에 박힌 것이 전부입니다. 놈들이 서로 쏘았지만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조선 함대를 밀어낼 수 있는 대형선이 대부분 침몰하거나 전투력을 상실하였고, 기동력으로 적을 혼란에 빠트려야 할 소형선도 기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하였다. 그나마 남은 선박은 500톤급 중형 갈레온 10여 척과 항구 인근을 빙빙 돌아다니는 소형 선박 10여 척이 전부였다.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패색이 짙어졌다. 캐번디시조차 섬 반대편으로 도망치려 하였지만 반대편의 항구(현 포트루이스) 방향에서도 잔잔한 폭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캐번디시가 허탈한 표정을 짓자 마이클 기어가 도주를 권유하였다.
“이제 남은 선박이 스무 척에 불과하다네!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게 숲속으로 숨어들어 적이 물러날 때까지 버티자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거대한 섬에 숨어서 어떻게든 목숨만 부지하고 후일 나룻배라도 만들어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기는 했다.
캐번디시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보고가 갱신되었다.
“북서쪽의 항구에 적선 열다섯 척이 나타나 마구 포격을 쏟아대 타격이 막심하다 합니다! 지금 우리 항구를 몰아치는 적선도 열다섯 척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해적으로서의 자존심과 450만 파운드(은자 1,350만 냥)에 달하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캐번디시는 이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애검을 집어 들면서 자신을 뜯어말리는 마이클 기어와 윌리엄 파커에게 칼을 겨누고 외쳤다.
“너희들이나 도망가라 이 머저리 새끼들아! 내 기함을 출격시켜! 놈들이 가장 깊숙이 둔 기함만큼은 손대지 못했음을 저주하게 만들어주마! 내가 놈들을 몸소 죽여 버리겠다!”
세 번째로 세계를 일주한 캐번디시의 기함 디자이어(Desire)호는 지나치게 작고 오래된 배라 이미 폐기되었지만, 새로 630톤급 레이스 빌트 갤리온으로 만든 디자이어의 힘을 믿고 있는 캐번디시는 자신의 애검을 뽑은 채 배에 오르며 말하였다.
“우리 선박은 스무 척이고 적의 선박은 조금 크지만 열다섯 척이다! 이제야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 다들 돌격 준비를 하라!”
가장 거대한 기함 디자이어호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자 조선 함대에서 퍼붓는 포격이 점차 잦아들었고, 항구에서 도망갈 때만 노리고 있던 해적들도 용기를 내어 나룻배를 통해 모든 배에 올라탔다.
캐번디시는 상대의 기이한 대응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철저히 준비하여 기습했음에도 성공적으로 바다에 나왔으니 당황했겠지. 아니면 네놈도 바다 사나이답게 제대로 한번 붙어보고 싶었거나! 전투를 시작하라!”
“Aye aye! captain!”
배의 배수량에 비해 많은 함포를 올리는 잉글랜드 특유의 건함(建艦) 방식은 500톤급 중형 갤리온의 전투력을 750톤 대형 갤리온과 비슷한 수준을 달성할 정도로 강화시켰다.
조선의 함선이 제법 큰 배로 구성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대로면 서로의 화력은 대등하다는 계산이 캐번디시의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
그는 적의 대응이 어설퍼진 것을 확인하며 승리를 확신하였다.
“화살촉 형태로 진형을 만들어 포격전을 준비하라! 놈들이 어설픈 포위진(학익진)을 유지하고 있으니 선박을 격침시켜 진형을 무너트리고 놈들을 분열시켜 도륙한다!”
학익진은 모든 함선의 진형 가운데 화력을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진형이지만 한 방향이 무너지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만약 한 귀퉁이의 함선이 도주하거나 격침되면 그곳으로 파고드는 상대를 막을 방법이 없다.
어설픈 학익진을 펼친 조선 수군의 모습을 바라본 캐번디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격 명령을 내렸다. 두 함대가 모든 화포를 동원하여 포격을 개시하였다.
조만간 어느 한구석의 진영이 붕괴되며 활로가 생기고 이후에는 뛰어난 잉글랜드 선박의 기동력으로 활로를 통해 적을 모조리 유린하면 될 것이라 여겼다.
그 기대는 첫 포격을 주고받은 직후 여지없이 무너졌다.
“놈들이 첨차찰진(화살촉 형태의 진형)을 유지한 채 포격을 실시합니다!”
“철저히 격멸하라! 모든 적선을 가리지 않고 고루고루 타격하여 모조리 수장시켜라! 적이 돌격한다면 모르겠다만 이제는 포격으로 끝낼 수 있다!”
캐번디시 휘하의 해적들의 포격 솜씨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초탄에 조선 함대 인근에 물기둥을 일으키고 차츰차츰 탄착군을 좁혀 나갔으니 이전까지의 조선 수군과 대등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아래에서 맹훈련을 받은 조선 수군의 사격 실력은 달랐다.
이순신이 창안하여 모든 화포에 배치된 수석(燧石)식 발화장치인 쇠부리가 당겨지며 물결에 넘실거리는 상황에서도 조준대로 포격을 날렸다.
“또 명중하였습니다! 적의 중선(中船) 한 척이 가라앉았습니다!”
“계속 쏘아! 자율방포니 염려하지 말고 마음대로 쏘라 하셨다! 다음 목표는 알아서 정해 쏘도록! 화약 사 분의 한 개 더 넣으라고!”
겉으로 보기에는 대등한 전투로 시작되었지만 세 번의 포격이 교차하자 차이점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이제야 조선수군에 명중탄을 내기 시작한 캐번디시의 함대와 달리 조선 수군은 벌써 수십 발의 탄환을 적중시켰다.
다들 훈영제식법은 물론이요, 입신체비도 하니 힘 하나는 넘쳐났다.
화포를 끌어낸 병사들은 순식간에 포구를 청소하고 화약을 다져 넣었으며 마지막으로 두 명이 낑낑대어 옮겨야 할 포탄이 한 명의 힘으로 옮겨지며 절반의 시간 만에 완벽한 장전을 마쳤다.
장전속도가 절반이며 명중률이 세 배라면 실제 화력은 여섯 배에 달한다.
이순신의 함대는 15척이 아닌 90척의 거대 함대와 같은 수준의 포격을 쏟아댔고 캐번디시 휘하 해적들은 공포에 질려 물로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악마새끼들이야! 악마새끼들이 입에서 포탄을 쏘는 것이 분명해! 이런 한밤중에 저렇게 정확하게 포탄을 맞춘다니 말도 안 되잖아! 난 도망가겠어!”
“도망치지 마라! 야 이 머저리들아! 차라리 돌격하라고! 돌격해!”
해적 출신이 대다수인 캐번디시의 함대는 전투력은 보증할 수 있어도 충성심은 보증할 수 없었다.
선원이 떼로 죽어 나가고 침수가 시작되며 선장들은 캐번디시의 명령을 무시한 채 각자 살길을 찾아 해안으로 도주하였다.
기함은 튼튼한 선체를 지녀 포격에 버틸 수 있었지만 캐번디시의 바로 옆에 거대한 포탄이 구멍을 뚫었고 그는 나무파편에 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선원들은 공포에 질려 바다로 뛰어들었고 침묵한 기함 옆으로 이순신의 기함이 접근하였다.
“네놈이 캐번디시인가? 무고한 오사만국의 백성을 납치하여 아국을 기만한 죄인이냔 말이다.”
“이거 놓! 캑!”
50살에 가까운 나이에도 3대 운동 800근을 유지하고 있는 이순신은 단 한 손으로 캐번디시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고, 캐번디시는 애검을 뽑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손으로 목을 움켜쥔 이순신의 왼손을 떼어내려 애썼지만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하였다.
이순신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캐번디시를 갑판에 집어 던졌고 뒤이어 드레이크의 기함 여왕전하의 철권도 다 침몰해 가는 디자이어호에 접근하였다.
비참한 캐번디시의 몰골을 본 드레이크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참 훌륭한 싸움이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명장이 많다 하였는데 머나먼 동방의 명장의 싸움을 내 눈으로 견식하다니 평생 이를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싸움을 눈여겨보다니 부족한 실력을 세상에 알려 안타까운 일이로군.”
“겸손을 너무 하시면 모욕과 같…….”
진짜 겸손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의 전투를 분석하는 이순신의 표정을 확인한 드레이크는 아예 창백하게 질려 이번 전투의 전개를 되짚어 나갔다.
이순신의 함대는 완벽한 등화관제로 일반적인 신호를 전달할 수 없었지만 은제 거울을 씌워 지향성(指向性)으로 만든 촛불 빛을 켜고 끄는 방식으로 신호를 전달하였다. 처음에는 신호를 이해하지 못한 선원 때문에 대열이 붕괴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모든 함대가 대열을 유지한 채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하였으니 모든 선원이 신호를 이해하거나 해설서를 읽을 수 있는 식자(識字)라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배에서 실시한 정확한 화포 사격은 대체 어떻게 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머리가 좋은 다른 사람들과 분석하기로 정한 드레이크는 자신의 이해를 벗어난 이순신의 위업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대신 아직도 숨을 고르는 캐번디시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하였다.
“이놈의 처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듣자 하니 무굴 제국의 구원 요청을 받고 이번 전투에 응하셨는데 시신을 무굴 제국에게 증거로 제출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영길리의 사람이니 영길리의 형법을 적용하여 처형하되 처형이 끝난 시신을 소금에 절여 묵을국(嘿乙國: 무굴 제국)에 보내려 한다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 처분이 적당한가?”
“무굴 제국에서 아주 흡족해할 처형 방법이 있습니다. 캐번디시와 휘하 선장들은 여왕전하의 명령을 거부하였으며 이는 내란죄에 준하니 교수척장분지형을 내리면 적당하겠군요.”
교수척장분지형이라는 말을 들은 캐번디시가 어떻게든 기어서 바다로 도망치려 하였으나 드레이크는 눈을 부라리며 그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이윽고 조선 수군의 손길에 잡힌 캐번디시는 뭍으로 끌려와 끔찍한 극형의 집행 대상이 되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냥 죽여! 아아아악! 제발 죽여줘! 제발 죽여주라고!”
먼저 피부가죽을 벗겨내고 거세를 시작으로 내장을 발라내는 능지처참(陵遲處斬)에 준하는 극형이 차례차례 거행되었다. 난폭한 캐번디시가 목숨을 구걸할 정도로 끔찍한 형벌이었다.
휘하 선장과 간부 중 생존한 15명에 대한 형이 집행되자 이순신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직 형벌이 남았다.
드레이크는 캐번디시 휘하 선원에 대한 처벌도 시작하였다. 드레이크의 기준으로도 그의 부하인 평범한 해적들의 기준으로도 이들은 죽어 마땅한 겁쟁이였다.
“저희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선장 명령을 받아 약탈에 나섰을 뿐입니다!”
“네놈들은 자존심도 없는 겁쟁이지 않느냐! 일괄적으로 교수형에 처할 것이니 닥쳐라!”
“어찌하여 교수형으로 처벌을 마무리하려 하는가. 묵을국과 오사만국의 진노를 무마하기 위해서 저들을 모조리 매가(메카)에 노예로 팔아버리면 합당할 것 같군.”
이순신의 말을 전달받은 해적들은 창백하게 질리며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교수대로 달려갔다.
오스만 제국에 노예로 팔린다면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을 테니 때깔이라도 곱게 죽는 것이 차라리 났다 여겼다.
처형이 끝나고 나머지 처벌도 마무리되었다.
메카의 외항 제다를 약탈하였던 마이클 기어와 윌리엄 파커는 캐번디시의 행적에 간접적으로 협조하였으니 영국의 법대로 처벌하기로 하였으며 이들은 전리품을 드레이크에게 압수당한 채 본국으로 압송될 준비를 마쳤다.
반면 메카에서 약탈한 전리품과 사기극을 벌인 노예 거래대금 그리고 무굴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분노를 사그라트리기 위한 해적들의 시신은 모조리 이순신의 차지가 되었다.
해가 중천에 뜨자 이순신은 드레이크와 악수를 나누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자네 덕분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렸다네. 훗날 아국에 돌아가게 되면 영길리의 선장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훌륭한 선장이자 나라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하겠네.”
“제가 한 일은 길안내에 불과한데 이리 칭찬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드레이크가 영국으로 귀환하고 이순신의 함대는 두 갈래로 분열하여 각기 호주와 메카로 향하였다.
메카로 향한 이순신의 함대는 해적의 시체와 모든 약탈품을 전달해 주었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으로 전해져 양국의 분노를 사그라트렸다.
이윽고 두 달이 지나 호주에서 메카로 되돌아온 순례자들은 한 톨의 금품도 헛되이 착복하지 않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칭송하며 순례를 재개하였다.
조선과 무굴제국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태는 이순신 덕분에 가까스로 봉합되었다.
#작가의 말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어떻게든 소설에서 묘사해 보려 했는데 제 한계는 한산도대첩 + 부산포 해전 합쳐서 재구성이더군요.
명량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 위업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