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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514화 (514/573)

근육조선 514화

2부 27장 10화 해적 소탕(1)

좌도 수군통제사의 업무는 호주 개척 이후 더욱 늘어난 강역을 통솔하는 막중한 책무가 되었다.

그 막중한 책무조차도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업무에 불과하였기에 더욱 앞을 바라보려 하였다.

“자고로 화포를 쏠 적에는 선체를 노리는 수철연의환과 사람을 노리는 포도탄을 비롯한 탄환이 있지만 서반아를 비롯한 구주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탄환을 사용하는 법이다. 이제부터 모든 탄환을 발사하는 방식을 익히도록.”

“통제사께서 명하신 바를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이순신이 창안한 사표를 충실히 익힌 조선 수군이었지만 아직 머나먼 길이 남아 있었다.

탄환의 무게가 변하거나 형태가 달라지면 오차가 발생하였으나, 아예 탄환이 아닌 화포를 발사하기에 오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슬탄이 천자총통(컬버린급 화포)에서 발사되어 목표물인 나무를 향해 날아갔지만 스치지도 못하고 머나먼 허공을 가로질렀다.

병졸들이 이어질 공좌 세례를 상상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순신은 오히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나 또한 수많은 화포를 쏘아 보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새로운 화포를 받으면 언제나 목표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은 예측하였으니 더욱 매진하도록.”

이순신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고 사람은 처음 사용하는 물건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지시를 내리자 다른 배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화약과 쇠사슬이 전달되었다.

“더욱 매진하려면 많은 화포를 쏘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부터 석 달 동안 사표를 작성할 정도로 많은 화포를 쏘아보도록.”

사격 훈련과 항해술 강화에 매진한 조선 수군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시일이 계속 지나 1593년 11월의 한밤중에 야간 항해훈련을 마친 이순신이 복귀하는 와중에 한 척의 인도 양식의 배인 다우(dhow)가 접근하였다.

“이런 밤중에 대체 뭔 일을 벌인단 말인가. 국서를 보낸다 하여도 저렇게 급한 사항을 요구하는 국서는 흔치 않은데. 혹여나 전쟁이라도 벌어졌단 말인가.”

호주가 조선의 영토라지만 다른 이들은 북쪽 다윈 일대만 알고 있는 시대였기에 여기까지 국서가 전해질 이유가 없었다.

이순신이 의문을 품은 사이,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은 조선 수군을 만나자 목소리를 높여 고함을 쳐댔다.

“조선 수군에 요청할 사항이 있으니 어서 답하시오! 무례한 일이지만 긴급을 요하는 사안이니 국서(國書)를 보내기 이전에 찾아뵙게 되었소!”

“이런 늦은 저녁에 저렇게 다급하게 찾아오다니 예삿일이 아닐 터. 서둘러 승선시켜라.”

이순신의 기함에 기어오르다시피 올라온 무굴제국의 사신은 품속에 넣은 서신에 절을 다급히 올리고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사람을 찾아대더니 모두 조선수군임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높여 악바르 대제가 보낸 서한을 읽어 내려갔다.

“지난 무하람(양력 1593년 10월)에 메카의 외항 제다가 함락당하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통한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스마일이 순종하였던 땅 신성한 땅 메카에도 외적의 손길이 미치기에 이르렀다!”

악바르 대제는 메카 습격의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하여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조리 사용해 온 세상에 소식을 전하였다.

외적이라는 말에 영국 해적을 생각한 이순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빛냈고 사신은 자신의 말이 전해졌음을 확인하고 서신을 재차 읽었다.

“외적의 침략에 메카가 피해를 입었으니 이는 오스만의 잘못이라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제국에서 보낸 수많은 순례자들이 메카에 머물러 있었으니 이들 가운데 일만여 명이 납치당하였다!”

“지금 뭐라 하였소! 일만여 명의 순례자를 납치하였다고? 회회교는 평생 한 번이라도 매가(메카)를 순례하기 위하여 온 생애를 다 하는 이들이 아니오!”

이순신도 영국 해적의 행위를 알고 있었지만 같은 해적을 사냥하기에 묵인하고 있었다. 도적이 도적을 사로잡아 노예로 만든다면 나쁜 일은 아니기에 묵인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순례자들은 엄연한 민간인이었다.

이 시대에도 전쟁과 관련이 없는 민간인은 학살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대였다.

이순신의 말을 역관을 통해 들은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비록 메카의 카바(검은 돌, 이슬람의 성물)는 지켜냈고 메카의 서부 마을과 성문이 불타는 선에서 화재를 수습하였지만 일만여 명에 달하는 순례자는 내 백성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들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내 진노가 온 세상을 뒤엎을 것이다!”

진노가 온 세상을 뒤엎는다는 말은 순례자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반이슬람 세력을 공격하겠다는 악바르 대제의 최후통첩과 마찬가지였다.

장졸들은 어디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하였지만 이순신 입장에서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인도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땅이기에 조선은 금을 팔아 은과 초석을 비롯한 수많은 자원을 사들이고 있었다.

만약 무굴제국이 조선과 전쟁을 벌이지 않고 교역을 끊는 정도라 해도 심각한 타격이 일어나리라. 여기에 사신의 조언이 곁들어졌다.

“다들 지하드(성전: 聖戰)를 일으키자 하셨지만 악바르 대제가 만류하신 덕분에 진노를 참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순례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이번 사태를 일으킨 놈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대제께서도 진노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혹여나 알고 있는 사항은 없소? 이를테면 해적들이…….”

“습격한 놈들이 서양인이긴 하였지만 돛대에 국적을 나타내는 깃발을 달지 않은 채 습격하여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였습니다.”

“알겠소이다. 내 조선의 함대를 모두 동원하여 순례자들의 행방을 찾아 돌려보내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을 모조리 도륙하여 수급을 매가에 가져다 놓도록 하겠소.”

“조선 수군이 강대하다 하였으니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부디 저희 백성들을 온전히 돌려 보내주십시오.”

사신이 인사를 올리며 물러나고 장졸들도 별일이 다 있다면서 귀항하려 하였지만 이순신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지 오래였고 부관인 이억기마저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머나먼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순신의 입에서 명령이 하달되었다.

“전 함대! 호주의 남쪽 강역인 광계(퍼스)로 향한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항해하여 하루라도 빨리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게 노력하도록!”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은자 수백만 냥, 최악의 경우에는 무굴 제국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순신 휘하의 함선 서른 척이 전력을 다하여 호주 남쪽으로 향하였다.

* * *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대 호주 무역 최종 책임자로서 심혈을 다 하여 호주 무역을 주선하였고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소형 갈레온과 캐러벨로 구성된 함대는 이미 옛이야기가 되었으며 잉글랜드의 기술력이 결집한 거함(巨艦)을 끌고 다녔다.

아예 2년 전인 1591년 말부터는 바르바리 해적을 잡아 오는 일을 다른 해적에게 일임하였으며 오로지 잉글랜드 이주민의 운송과 면직물 수입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드레이크의 함대가 항구에 도착하자 아론은 부두까지 나아가 그를 맞이하였다.

“항구에 면직물이 가득 쌓여 자네의 배를 타고 돌아가기만 기다리고 있다네. 이번에도 사람들을 잔뜩 데려왔겠지?”

“잉글랜드에서 이주를 청하는 사람이 씨가 말라서 마우리츠 총독(마우리츠 판 나사우)의 부탁으로 가톨릭 신자들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펠리페 2세도 조선에 보낸다 하니 적잖이 만족하고 있더군요.”

“지난번에도 왔던 네덜란드 사람이라 하였는가? 영길리 사람들은 다 좋은데 음식 맛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운 차였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맛난 음식을 만들 줄 알더군. 참으로 다행일세.”

“저희 요리가 맛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진정으로 맛이 없는 요리는 프랑스 놈들 요리입니다. 세상에 조선에서 배워온 요리랍시고 기름 범벅인 미친 요리들을 내놓는 모습이라니. 당시에 사흘 내내 설사를 하였지요.”

프랑스에 면직물을 팔려다가 시카고 피자를 대접받은 드레이크는 당시를 떠올리고 헛구역질을 하였다.

아론은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더니 드레이크의 기함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고 상세히 살펴보았고 드레이크는 자랑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녀석이 옛 기함인 골든 하인드가 부족하다 느끼신 여왕전하께서 건함을 허가한 저의 새 기함 여왕전하의 철권(Gauntlets of Queen)입니다. 배수량은 조선 단위로 따지면 약 구백 돈(810톤)에 달하는 녀석이지요.”

“배의 형상이 서반아의 것과는 달리 날렵한 데다 목재의 결구 방식이 특이하군. 더군다나 함포의 수량이 조선의 것과 비견할 정도로 많으니 전투력 또한 대단하겠어.”

“스페인 놈들의 배는 기술도 없는 나무상자이지요. 크기에 여유를 두어 화물을 잔뜩 올릴 수 있게 만든 점은 좋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한 번 침수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으니까요. 물론 조선의 배와 비견하자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포 소리에 드레이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함대는 전투에 능숙한 해적 출신이 대다수지만 한 달에 세 번 이상 사격연습을 하는 조선군보다 사격 솜씨가 뒤떨어지리라.

드레이크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아쉬운 듯이 말하였다.

“조선은 영토 한구석에 초석이 마음대로 솟아나는 광산이라도 있습니까? 저렇게 많은 화약을 사용할 수 없으니 사격 정확도는 훨씬 떨어지겠지요. 만약 싸우더라도 포격전만큼은 절대 피해야 할 겁니다.”

“나 또한 철부지들이 조선 군함들을 상대로 달려들까 걱정될 뿐이네. 지금 호주 일대를 순시 중인 여해는 조선에서 탈출하던 왜국의 함선 육백여 척을 상대로 삼백오십 척을 무너트리는 대승을 거둔 명장 중의 명장이지.”

“탈출에 급급한 육백여 척의 일본 함선을 조선의 함선 이백 척이 포위하여 무차별 포격을 날리는 모습이라니 상상하기 힘들 지경이군요. 칼레 해전보다 더욱 웅장했을 것 같습니다.”

드레이크는 일본의 배에 대한 지식도 있기에 머릿속으로 전장을 재현하며 상상해 보았다.

사력을 다하여 도망치는 적보다 죽이기 힘든 상대는 없으니 최소한 이백 척 이상의 함대를 동원해 포위 격멸해야 하리라.

하지만 아론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당시 조선의 함선 예순다섯 척과 스페인 사략선단 스무 척이 막아섰다 하더군. 듣자 하니 여해는 스무 척의 주력 함선을 돌격시켜 적진 한복판에서 장수를 모조리 찾아서 죽였다네.”

“뻥 치지 마십시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입에서 불을 뿜고 번개를 손으로 내리치는 괴물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조선의 기록은 공정하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믿고 있었지만 자네는 아닌가 보군.”

“저희도 기록 하나만큼은 최대한 많이 비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나저나 농장을 한번 시찰하고 싶은데 어서 안내해 주십시오.”

잉글랜드의 노동자와 호주의 광활한 토지가 결집된 목화 농장에서는 오늘도 쉴 새 없이 목화가 가공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무명실을 매만진 드레이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목화 씨앗을 뽑아내는 인부들을 바라보았다.

“일을 제법 열심히 하는 것 같군요. 저 친구는 제가 처음 잡아 온 노예 같은데 이제는 다른 노예들을 관리하고 있으니 참 기특합니다.”

“노예가 아니고 십 년 동안 일하는 인부들일세. 이제 오 년 뒤에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돈을 좀 먹여서 정착시켜 볼까 생각 중이야.”

“정말 십 년만 일하고 돌려보내실 작정입니까? 그러다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 되니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드레이크가 아무리 해적 생활을 하지 않아도 그의 흉포함은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대놓고 살인멸구를 제안하는 드레이크를 노려본 아론은 마음을 추스르더니 무덤덤하게 답했다.

“이 땅은 호주가 아니고 솔로몬 제국의 남단에 있는 거대한 평원이라 말하였으니 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라 염려하지 말게. 또한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네.”

“고국으로 돌려보냈다니요? 십 년이 지나기도 전에 돌려보내시다니 말이나 됩니까?”

“자네의 후임자랍시고 일하는 캐번디시라는 애송이가 간혹 항구를 습격해 멀쩡한 민간인을 잡아 오는 경우가 있더군. 우리도 사람이니 바르바리 해적이 아니면 적당히 돌려보낸다네.”

“캐번디시 그 머저리 놈은 대체 뭔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마이클 기어나 윌리엄 파커도 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닌답니까?”

대답조차 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론을 바라본 드레이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손을 움켜쥐었다.

계약에 의거하면 바르바리 해적을 소탕하여 노예로 잡아 오라 하였지만 민간인을 잡아 오면 엄연한 계약 위반이다.

오히려 지난 몇 번의 거래에서 손해를 본 아론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본국으로 돌아가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청하여 해적 행위를 적당히 억제할 법안을 제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며칠이 지나 수많은 면직물 덩어리가 드레이크의 배에 모조리 적하되었다는 소식이 접수되자 아론과 드레이크는 콧노래를 부르며 항구로 향하였다.

선원들조차 면직물을 팔아치워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생각했으니 드레이크 한 명만 탑승하면 모든 일이 끝날 상황이었다.

“아론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번에 도착한 바르바리 놈들이 좀 이상해서 가만히 두고 있는데 몇 명은 머리를 땅에 찧어 자진(自盡)하려 하는 놈들까지 생기더군요.”

“뭐? 바르바리 놈들이 자진을 하려 한다고? 그놈들이 미쳤나?”

“일만 명이나 되는 놈들이 하나같이 억울하다 말하고 왕의 진노가 미치니 뭐니 악을 쓰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놈들을 팔아치운 영길리 해적도 팔아치우자마자 재빨리 내뺐습니다. 대략 이틀 전이군요.”

수많은 바르바리 해적들을 노예로 팔아온 드레이크이기에 무슨 무기를 쓰는지 손만 보아도 알 수 있었지만 병장기를 잡아본 적이 없는 가느다란 손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한 노예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들에게 악바르 대제의 진노가 내릴 것이다! 지하드가 시작될 것이다 이 악적들아!”

세상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는 드레이크이기에 지금 일어난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해적 대신 민간인들이 사는 도시를 약탈하고 멀쩡한 사람을 잡아 온 것이다.

그는 몸을 낮추어 재빨리 자신의 기함으로 향하였다.

“악바르 대제? 그 양반 천축의 지배자 아니야? 그럼 이놈들은 천축 사람이고? 드레이크! 캐번디시라는 선장이 이들을 잡아 왔는데 무슨 상황인지 알려주게! 자네는 또 어디 있는가?”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직면한 드레이크의 대처는 신속하였다.

빠르게 기함으로 달려가 배에 오르기도 전에 밧줄만 잡고 출항을 명령하였고 배가 떠나자 드레이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나먼 서쪽을 째려보았다.

“토머스 캐번디시 이 미친 새끼! 바르바리 해적을 소탕하라 했지 누가 민간인에게 손을 대라 했어? 그리고 지하드가 시작된다고? 대체 어디를 습격한 거야!”

“선장님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지하드요?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서둘러서 잉글랜드로 돌아간다. 아마 몇 년 동안 무역이 중단될지도 몰라!”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커질지는 몰랐지만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두었기에 몇 년 정도의 무역 중단은 감당할 수 있었다.

정 돈이 부족하면 다시 카리브 해에서 약탈을 실시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드레이크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돛대에서 보고가 들려왔다.

“조선 함대가 우리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놈들의 배가 서른 척에 달합니다!”

서둘러 천리경을 들고 상대를 확인한 드레이크는 선체 옆구리에 함포가 삐죽이 솟아 나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경악하였다. 상대가 엄연히 전투를 준비하였기에 지금 싸운다면 필패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미친놈들 함포를 장전해 두고 있잖아! 속도 줄여! 정선해!”

드레이크의 함대가 서둘러 속도를 늦추고 멈추자 이순신의 기함 단 한 척이 열다섯 척의 함대 한복판으로 들어왔고, 곧이어 널빤지가 내려지며 분노를 가득 담은 이순신이 드레이크를 노려보더니 갑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인사가 아닌 명령을 내렸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라 하였는가. 나는 주상전하께서 좌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여해 이순신이라네. 잠시 자네의 배를 수색해 볼 것이니 협조할 수 있겠는가.”

역관을 통해 배를 수색한다는 무례한 이야기가 전달된 순간 선원 대다수가 이순신에게 접근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한낱 상선이라도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개할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미친놈이! 네놈이 여왕 전하라도 되는 줄 아는가! 어디서 명령질이야!”

“마음대로 수색해 보시지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해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듣자 촉이 온 드레이크는 이순신을 안내하며 선창을 확인하게 하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면직물을 모조리 확인한 이순신은 분노를 조금 삭인 채 갑판으로 올라왔고 아직 분노를 담은 채 말하였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였다네. 영길리의 해적들이 회회교에서 성지로 여기는 매가라는 장소를 약탈하였으며 수많은 민간인들이 납치당하여 호주에 팔려왔다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저희가 뭘 어떻게 해볼 수는 없지만 조선 함대가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러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 이미 사람을 팔아치운 해적들이 면직물과 금은보화를 사들여 귀국할 터. 그들을 격멸하는 데 협조하거나 이 자리에서 우리와 싸우고 포로 신세가 되어 협조하게.”

거친 해적출신 선원들이 무기를 매만지며 이순신을 노려보았지만 이순신은 계속 드레이크를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전성기의 해적 생활을 떠올리며 칼을 뽑아 들려던 드레이크였지만 그의 생존본능이 경종을 울려댔다.

거대한 태풍으로 다가갈 때처럼 북소리가 귓전에 아른거리고 신물이 올라와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더군다나 상대의 수가 두 배가량 많으니 전면전을 벌여도 승산이 없으리라.

결국 드레이크는 이순신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저희는 같은 나라 사람과 싸울 수 없으니 길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레이크의 말을 들은 선원들은 고함을 지르며 당장 싸우자 하였지만 불타는 듯한 드레이크의 시선이 지나가자 잠잠해졌다.

이순신이 마침내 자신의 기함으로 돌아가자 드레이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작가의 말

토머스 캐번디시는 제가 해적 기록을 찾아보면서 뭐 이딴 놈이 다 있냐고 혀를 내두른 해적입니다. 그의 본래 역사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560년생, 호화로운 귀족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남.

1584년 24세의 나이로 로어노크 정착지에 잠시 다녀옴. 2년 뒤 윌튼 의원 자리에 오름.

1586년 느닷없이 영국 해군에 투신. 기함 디자이어 호(120톤급 캐러벨)와 60톤급, 그리고 40톤급 세 척으로 해적 시작.

1587년 드레이크가 휩쓸고 간 카리브 해에 갔다가 약탈을 실패. 이후 숙련 선원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 마젤란 해협을 첫 항해에서 돌파.

마젤란 해협 돌파 이후 스페인 무역선 9척 약탈 성공. 주변 스페인 정착지와 원주민 마을을 무차별 약탈.

1587년 10월 마닐라 갈레온 경로에서 대기하다 600톤급 마닐라 갈레온 선단을 약탈 성공. 이후 태평양 횡단.

필리핀의 스페인 첫 정착지 아레발로를 공격하여 약탈. 필리핀이 영국의 공격을 받은 첫 사례이다.

1588년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환. 기사 작위를 받고 해적행위를 재시작.

1591년 다시 항해에 나섬. 브라질 일대를 약탈하고 포르투갈 정착지 중 가장 커다란 비토리아를 육상에서 공격. 전면전에서 큰 타격을 입고 도주.

1591년 말 세인트헬레나를 향해 항해하던 중 원인 불명으로 사망.

이쯤 되면 바다의 칭기즈 칸이자 메카를 공격하기에 손색이 없는 미치광이 해적인 것 같아서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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